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19화 (119/398)

◈ [119화] 배신자 찾기 (2)

검을 든 에단이 숲을 걸었다. 그 모습을 네이드와 가토가 묘하게 바라봤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에단의 물음에 가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도련님이 검을 든 모습이 신기해서…….”

가토의 시선이 에단의 검으로 향했다. 에단이 피식 웃었다.

“내가 언제 검 쓰는 걸 싫어한다고 했어? 그래도 블란테의 자제인데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에단에게서 느껴지는 낯섦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에단이 검을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에단의 검술 실력은 출중한 편에 속했다.

블랙 오우거를 처치할 때도, 아카데미의 교수와 겨룰 때도 에단은 검을 썼다.

하지만 에단에게 검은 수단에 불과했다. 에단이 승리해 온 이유는 뛰어난 검술 때문이 아닌, 에단 본인의 강함 때문이었다.

그런 에단이 계속 검을 쥐고 있으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 ……크흠. 격투가가 검을 들어서 쓰나.

한편 페온은 그런 에단이 못마땅했다. 물론 에단은 페온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쯤일까.’

에단이 눈을 감고 온 신경을 감각에 집중했다. 천천히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고요하지만 풍기는 누린내는 숨길 수가 없었다. 어둡고 음험한 기운은 죽은 나무에 이끌리게 된다.

‘숫자가 적군.’

개체 수가 줄었다. 에단이 줄인 것도 원인이겠지만 다른 이유가 무엇일지도 예상이 갔다.

‘휴고 녀석이 실컷 포식하고 있나 본데.’

휴고가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과식은 몸에 좋지 않지만.’

죽은 마나는 생명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죽은 마나에 과다 노출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에단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적당한 중독이야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에단은 위기를 발판 삼아 더욱 성장했다. 에단에게 죽은 마나는 더 이상 양날의 검이 아니었다.

오히려 먹음직한 음식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꽤나 머네.”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수가 감지되었지만 거리가 문제였다.

에단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툰나가 물었다.

“설마 타락한 짐승을 찾고 계신 겁니까?”

“타락한 짐승이요?”

툰나의 말뜻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명백히 마수를 가리키는 단어였으니까.

‘아니, 얘네들은 말을 왜 이렇게 꼬아서 하지?’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게 종족 특성인가?

세계수는 생명의 나무, 마수는 타락한 짐승.

구태여 추상적인 말을 섞어서 말한다. 하지만 그걸 지적할 상황은 아니었기에 에단은 장단을 맞췄다.

“네, 맞습니다. 뭐…… 타락한 짐승…….”

“역시 그러시군요……. 저희를 대신해 그 순수한 아이들을 구원해 주시려는 겁니까?”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에단이 멋쩍은 눈으로 툰나를 바라봤다. 그의 주름진 눈가가 촉촉했다.

뭐라 말을 잇기 힘들어 가만히 있자, 이윽고 툰나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용사이십니까?”

“…….”

에단은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오늘만 용사라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었다.

― ……이 새끼가 용사면 세상은 망했어.

‘제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카이나의 말에 짧게 반박을 한 에단이 툰나와 눈을 마주했다.

“저는 용사가 아닙니다.”

에단은 용사라는 과업을 짊어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망나니면 족했다.

답답하게 지내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으니까.

에단의 단호한 대답에 툰나의 눈빛이 순간 음울해졌다.

“그러시군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툰나의 목소리에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마수…… 아니, 타락한 짐승을 찾으러 갑시다.”

감각에 걸리는 기운이 있었다. 에단은 망설이지 않고 목적지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툰나였지만,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은 어디 가지 않는 듯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왔다.

“저기 있군요.”

툰나는 동정심이 가득한 눈으로 절벽 아래 무리 지어 있는 마수를 바라보았다.

‘마수도 무리를 지어 다니는군.’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툰나의 얼굴에 걱정과 긴장감, 그리고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가능하시겠습니까?”

의심과 걱정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마수들 하나하나가 웬만한 몬스터보다도 위협적인 놈들이었으니까.

놈들이 한 번에 달려들기라도 하면 정말 위험했다.

“지켜보고 계시죠.”

검을 든 에단이 카이나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가능하시죠?’

― 나를 뭘로 보는 거냐?

‘시끄러운 검?’

― 썩을 놈이…….

‘그래서 가능합니까?’

― 충분하다. 저 정도 오염쯤이야 한 번의 참격으로 모두 정화할 수 있어.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검을 치켜들자, 툰나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분명 타락한 짐승들을 구원한다고…….”

자기가 언제 구원한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뭐 까짓것 구원해 주죠.”

에단이 앞발을 내밀었다.

체중이 사선으로 이동하며 원심력을 더한다. 에단의 뒷발이 회전하며 그와 동시에 등 근육이 강하게 수축하여 폭발적으로 이완했다.

콰앙!

에단이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후웅!

순간 광풍이 휘몰아치며 지면이 격동하는 것 같았다. 휘두른 검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쏟아지는 광채가 마수들을 덮쳤다. 강한 공격도 쉽게 막아 내는 마수들의 장벽은 성검의 광채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털썩.

마수들이 광채를 얻어맞고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수들은 점차 크기가 작아지며 검게 물든 피부색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수들이 쓰러지면서 그 근원인 죽은 마나가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에단은 손을 뻗어 죽은 마나를 흡수했다.

“대충 끝났나.”

숲에 만연하던 죽은 마나가 약해졌다.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간다면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에단이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눈이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들 그래? 장로님은 또 왜 그러시고요.”

“……오, 구원자시여.”

툰나가 무릎을 꿇고 에단에게 고개를 숙였다. 에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어나시죠.”

“……그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이래서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예상은 했다. 엘프와 자신은 상성이 나쁠 것이라고. 하지만 예상보다 더 나빴다. 속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르니엘도 탄성을 터트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르니엘의 절절한 눈빛에 에단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가토.”

“구원자…….”

“뒈질래?”

에단의 살벌한 목소리에 가토가 곧장 시선을 내리깔았다. 둘의 대화에 네이드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언제 이렇게까지.’

에단의 재능은 알고 있었고,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 줬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에단은 또 한 번 자신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나이가 들어 버린 모양이군.’

네이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에단이 네이드를 응시했다.

“왜 이렇게 죽상이야?”

“나이를 먹은 모양입니다.”

“새삼스럽기는. 아직 정정하잖아? 난 은퇴시켜 줄 생각 없으니, 기대는 접어 둬.”

에단의 말에 네이드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에단이 가파른 절벽을 순식간에 타고 내려갔다. 네이드와 가토도 뒤를 따랐다.

“르니엘.”

르니엘이 막 에단을 뒤따르려 하는 순간, 툰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네, 장로님.”

“고맙구나.”

“그게 무슨…….”

“네가 인연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번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르니엘의 말에 툰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르니엘. 삶은 선택의 연속이야. 가끔은 실수가 있을지 몰라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툰나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르니엘은 어째서인지 가슴이 먹먹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장로님.”

르니엘이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에단이 밑에 도착하자 동물들이 하나둘 눈을 뜨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마수가 아닌 산짐승에 불과했다.

‘흠, 뭔가 아직 거슬리는데.’

죽은 나무 덕분에 에단은 죽은 마나를 감지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했다. 그런 에단의 감각에 아직 죽은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잔여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짙어.’

에단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훑어봤다. 그때 에단의 시야에 무언가가 걸렸다.

인위적으로 뒤집힌 땅이 보였다. 에단이 망설임 없이 다가가 걷어차자, 땅이 움푹 파이며 거슬리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빙고.”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 * *

“……이제 거의 끝났군.”

보헨이 이마를 쓸어내렸다. 몸이 고된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보헨이 자신의 손에 들린 보석 조각을 바라봤다. 이것만 땅에 묻어 두면 이번 일은 끝이었다.

‘일은 끝났지만…….’

보헨은 숲을 바로 떠날 생각이 없었다. 보헨의 머리는 이미 음욕에 절여져 있었다.

‘그 녀석은 한 번 보고 가야겠어.’

뒤에서 자신들을 도와주는 끄나풀 역할을 하는 엘프였다.

보헨이 자신의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상당히 고가의 사치품이었지만, 이 일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고작 이딴 걸로 세계수를 얻을 수 있다니.’

웃음만 나왔다. 이제 곧 준비된 것이 발현되면 이딴 보석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질 터.

‘그러니까 그 전에 즐겨야지.’

보헨이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슬슬 시간이 됐나?”

이전 접선 때 따로 말을 해 둔 장소가 있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이 숲을 찾아왔으니, 지금쯤 가면 딱 만날 수 있을 터.

“적당한 엘프를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보헨은 부푼 꿈을 안고 자리를 이동했다.

하지만 그때,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가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자마자 머리 위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뭐야?!’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보헨이 재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보헨의 눈앞에는 야수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크르르르.

“이게 무슨…….”

그는 당황하며 검을 쥐었다. 보헨의 본능이 위험하다 경고하고 있었다.

교활하고 잔혹한 은빛 늑대.

늑대의 입에서 누린내와 함께 침이 뚝뚝 떨어졌다. 저 늑대는 지금 자신을 먹잇감으로 보고 있었다.

보헨은 침을 삼켰다. 은빛 늑대의 살기에 몸이 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