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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17화 (117/398)

◈ [117화] 용사의 등장? (3)

르니엘의 뒤를 따라가던 에단이 고민에 빠졌다.

‘조지는 건 조지는 거고 어떤 명분을 만들어 둘까.’

힘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지금 에단이 가진 힘이라면 무력으로 짓누르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반발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힘 앞에서 당장은 불만을 삼키고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튀어 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는 안 됐다.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둬야 지속적인 세계수의 관찰이 가능했다.

‘귀찮은 건 질색인데.’

자신이 일일이 나서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에단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앞서 나가던 르니엘이 말했다.

“용사…… 아니…… 구원자? 호칭을 어떻게…….”

“……에단이라고 불러라.”

“음…… 알겠어. 에단,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해 봐.”

“오늘 생명의 나무를 찾아온 건 너희뿐이 아니었어. 어떤 여자가 생명의 나무 앞에서 기절했더라고.”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그거 신기하네. 그 인간은 지금 어디 있지?”

“우리 마을에서 쉬고 있어. 그런데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

르니엘이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엘프들은 원래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거의 인간을 증오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에단은 르니엘의 기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잘됐군.’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았다.

뒤에서 따라가던 가토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람이 혹시 헨리 씨인가?’

르니엘이 말한 여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맞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무사하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럼 휴고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거야.’

분명 휴고는 헨리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발견된 사람은 헨리 혼자라고 하니 휴고에 대한 걱정이 싹텄다.

‘별일 없겠지?’

가토는 휴고를 믿고 있었다. 이제 휴고는 단순한 하인이 아니었다. 가토가 진심으로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였다.

‘도련님은 휴고가 걱정되지도 않으신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보다 먼저 수하로 받아들였던 이가 휴고 아닌가. 그런데 에단은 휴고를 걱정하기는커녕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단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놈은 오래간만에 포식하겠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날을 잡은 김에 충분히 성장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쪽이야.”

르니엘이 앞을 가리켰다. 에단이 정면을 바라봤다.

* * *

‘쓸데없는 짓을 하기는.’

리트마가 혀를 찼다. 르니엘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마을의 상태가 이 꼴이 난 거지.’

한심했다.

마을을 둘러봐도 르니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엘프들이 득실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발전한다. 엘프와 비교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이다. 한데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엘프는 어떠한가.

‘버러지 같은 놈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한다는 같잖은 가치관을 앞세워 이 좁아터진 숲속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리트마는 그런 삶이 혐오스러웠다. 그에게는 미래가 보였다.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미래가.

‘이게 전부 그 나무 따위에 집착하기 때문이야.’

세계수.

엘프들은 생명의 나무라고 칭하는 거목.

힘의 원천이자, 그들이 정령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이유였다.

엘프들은 모두 생명의 나무를 사랑했지만 리트마는 다르게 생각했다.

‘고작 나무 하나에 종속되어 있는 놈들!’

생명의 나무에 집착하여 그곳을 떠나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나무를 수호하는 수호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트마의 안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결국 리트마는 숲을 나갔다. 그리고 ‘그들’과 접촉했다.

그들의 원대한 계획을 들은 리트마는 큰 충격에 빠졌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어.’

우물 안의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고 그곳에서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리트마는 그 우물을 부수고 싶었다.

‘……나도 이 계획에 동참하고 싶어.’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 위대한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물부터 부숴야 했다. 그 우물은 바로 엘프들의 보물인 생명의 나무였다.

생명의 나무만 없으면 엘프들이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리트마도 바보는 아니었다. 생명의 나무가 엘프들의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생명의 나무가 죽게 되면 엘프들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리트마에게 새로운 힘을 맛보게 해 줬다.

‘……정령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야.’

‘죽은 마나’라고 불리는 사특한 힘. 하지만 일반적인 죽은 마나보다 훨씬 정순하고 강렬한 힘이었다. 새로운 힘을 얻게 된 리트마는 그것에 매료되었다.

힘이라는 것은 중독성이 있었고, 이미 리트마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버렸다.

‘이 힘을 전파해야 해.’

그들은 리트마에게 계획을 공유했고, 리트마는 그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덕분에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명의 나무는 죽어 가고 있었으며, 그만큼 숲에 죽은 마나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달콤했다. 생명의 나무가 병들면 병들수록 리트마는 더욱 강해졌다.

‘머저리 같은 르니엘.’

르니엘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의심할 것도 없는 것이 오늘도 인간 침입자를 마을로 데려왔다.

‘예전부터 그랬지.’

순진한 주제에 모두의 총애를 받았다. 리트마는 그런 르니엘만 보면 화가 치밀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계획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명의 나무라는 사슬을 끊을 때가.

* * *

르니엘이 불안한 표정으로 마을에 들어섰고, 에단과 일행이 뒤따랐다.

‘확실히 상태가 좋지 않군.’

르니엘은 그나마 양호한 상태였다. 다른 엘프들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음울한 기운이 마을 전역에 만연해 있었다.

멍하니 있던 엘프들의 시선이 에단 일행에게로 쏠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맺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어, 알고 있어.”

에단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세계수를 병들게 만든 원흉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왔으니까.

“미안 지금 상황이…….”

“괜찮아.”

에단이 르니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왔다. 예견했던 상황이다. 지금부터는 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장로는 어디 있지?”

“……이쪽.”

르니엘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에단을 안내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에단의 능력을 보고 난 후 르니엘은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이 우리의 용사구나!

그렇게 생각해 망설임 없이 마을로 이끌고 오긴 했지만,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야. 이번에는 내 눈으로 봤잖아.’

심지어 세계수도 길을 열어 준 자들이 아닌가.

르니엘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 녀석들은 누구지?”

가장 듣기 힘든 목소리에 르니엘이 몸을 떨었다.

“……리트마.”

“너 지금 제정신이야?”

리트마가 살벌한 표정으로 르니엘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실수 때문에 생명의 나무가 병들고, 마을이 이 꼬라지가 됐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외지인을 데려와? 아까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그때 에단이 앞으로 나섰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에단의 말에 리트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리트마가 쌍심지를 켠 채 에단을 노려봤다.

“오해? 지금 오해라고 지껄이는 건가? 인간 주제에?”

‘뻔뻔한 건 대단하군.’

에단이 내심 감탄했다. 에단은 리트마가 어떤 놈인지 안다.

그가 세계수를 오염시키는 일을 주도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르니엘에게 죄를 덮어씌웠다는 사실도 알았다.

“너희 인간 놈들 때문에 우리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건가?”

에단이 눈을 껌뻑이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군. 나는 지금 이곳에서 동료를 보호 중이라고 해서 찾아온 건데 말이야. 생명의 나무라면…… 세계수를 말하는 건가? 세계수가 병들었다고?”

“하! 뻔뻔하기 그지없군. 너희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데 모른 척을 하겠다는 말인가?”

“모른 척이 아니라. 몰라서 묻는 거다. 세계수가 병들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인간들이 세계수를 오염시켰다고? 애당초 세계수를 오염시킬 방법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걸 우리가 어떻게……!”

리트마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고함을 내지르려 할 때, 에단이 리트마의 말을 자르며 말을 이었다.

“만일 세계수가 병들었다고 하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에단의 말에 리트마의 눈이 커졌다. 리트마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개,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또 무슨 헛소리로 우리에게 피해를…….”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때 멀리서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노인이 있었다. 르니엘이 노인을 보고 말했다.

“툰나님…….”

툰나라고 불린 나이 많은 엘프가 간절한 얼굴로 에단을 바라봤다.

“보잘것없지만 저는 이 마을의 장로인 툰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나무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에단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툰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장로님! 또 인간 놈들의 입바른 소리에 현혹되시는 겁니까!”

리트마가 소리쳤다. 하지만 툰나는 리트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에단을 응시했다.

“……실례되는 말씀이긴 하나, 믿기지 않기에 재차 묻습니다. 정말 생명의 나무를 낫게 할 수 있으십니까?”

툰나의 얼굴에는 간절함과 동시에 의심의 기색이 가득 차 있었다. 에단의 말만을 믿기에는 그간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 전에 제 동료가 이곳에 있는 게 사실입니까?”

“갈색 머리의 여성이라고 한다면 맞습니다.”

“먼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툰나가 몸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장로님!”

리트마가 소리쳤다. 툰나가 고개를 돌려 리트마와 시선을 마주쳤다. 리트마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또다시 인간들에게 배신당할 생각이십니까? 지긋지긋하지도 않습니까?”

“……이유 없는 의심은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의심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에…….”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그건…….”

“우리에겐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헛돼 보이는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합니다.”

툰나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리트마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에단이 리트마의 얼굴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배우가 따로 없군.’

감탄이 절로 나오는 뻔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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