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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11화 (111/398)

◈ [111화] 성검 (4)

‘저 녀석은…….’

페온은 에단을 응시했다. 처음 그와 조우했을 때부터 느꼈던 감상이 있었다.

이질적인 느낌.

에단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공포라는 감정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뛰어난 전사들은 뼈를 깎는 훈련으로 두려움을 이겨 낸다. 그 결과 비로소 용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에단은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길 줄 알고 있었다.’

마나를 쓰지 못하며, 무기도 없는 상태로 에단은 블랙 오우거를 이겨 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페온은 에단이 해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표정 한번 가관이군.’

페온이 카이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짓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쿠어어어!

블랙 오우거가 발광하는 모습을 에단은 인상을 찌푸린 채 지켜보고 있었다.

‘흠, 어쩐다.’

상대가 저렇게 흥분한 이상 다시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카이나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왔다.

탁!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발광하던 블랙 오우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이나가 에단을 응시했다.

“……시험은 통과다.”

“오, 생각보다 후하군요.”

끝까지 통과시키지 않기 위해 시험을 지속시키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합격 선언을 내뱉었다.

“……너는 뭐 하는 녀석이지?”

카이나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에단은 눈을 끔뻑였다.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었다. 에단의 반응에 카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방금 발언은 조금 불쾌합니다.”

“뭐라고?! 뭐가 불쾌하단 것이냐!”

에단의 말에 페온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이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마지막 시험으로 들어가지.”

“좋습니다. 빠르게 진행하시죠.”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을 거야.”

카이나가 지면에 박아 뒀던 성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직접 시험할 거거든.”

그녀의 기세가 돌변하자, 페온이 이마를 좁혔다.

“이번에는 진짜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페온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좋습니다.”

에단은 강자와 싸우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마나를 사용하면 너무 불합리하겠지? 걱정하지 말도록. 나 또한 마나는 사용하지 않을 테니.”

“그거 감사하네요.”

카이나가 성검을 든 채 에단을 향해 다가섰다. 에단이 자세를 갖췄다.

기세라고 불리는 무형의 기운. 에단은 그것을 잘 느꼈다.

마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카이나 본인의 기백이었고, 위압감이었다.

블랙 오우거의 비하면 한없이 작은 덩치.

그만큼 가벼운 발걸음이었지만, 에단이 볼 때는 블랙 오우거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이게 강자라는 건가.’

마스터의 경지.

에단이 봐 왔던, 빈센트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강자.

에단이 침을 삼켰다.

‘저게 변수네.’

서로 동일한 제약이 걸려 있다면 문제점은 역시 무기의 유무였다. 무기를 들고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컸고, 전투 양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한테도 무기가 하나 있으니까.’

에단이 왼손을 쥐었다가 폈다.

타이탄의 장갑.

비록 지금은 에단이 아닌 류태신의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타이탄의 장갑은 그의 손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변수는 충분해.’

에단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변수이자, 무적의 방패였다. 찰나의 빈틈이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스텝을 뛰기 시작한 에단의 첫 자세는 왼손이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소.

즉, 정석이었다.

보폭은 비교적 좁게, 가드는 낮았다. 가드가 높을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방어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상대가 쥐고 있는 무기는 검이었다. 타이탄의 장갑이 있는 왼손에 제대로 적중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드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후…….

이 정도의 긴장은 오랜만이었다. 에단이 힐긋 뒤를 돌아봤다. 페온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에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페온 또한 검을 놓고 무투의 길을 택한 격투가였다.

에단의 격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순수한 격투기로 맞붙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전사로서 가슴이 끓는 순간이었다. 에단이 씨익 웃었다.

“역시 관중은 있어야지?”

“……여유를 부릴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마.”

카이나가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에단은 광풍이 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등줄기에 한 줄기 소름이 스쳤다.

보고 피하면 늦는다.

그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에단은 몸을 비틀었다.

쩌엉!

카이나의 검이 수직으로 그어졌다.

지면에 강한 흔적이 새겨지며 함께 풍압이 일었지만, 다행히 에단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지면에 새겨진 상흔을 확인한 에단은 긴장 어린 미소를 지었다.

“마나 안 쓴 거 맞습니까?”

“어, 맞아. 마나가 아닌 ‘아슬란’의 힘이거든.”

“……반칙인 것 같은데.”

“너도 반칙 하나 들고 있잖아?”

카이나가 에단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단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알고 있었습니까.”

“세상에서 우리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자는 없을 거야.”

카이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에단이 얼굴을 끄덕였다. 떡밥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할 때였다.

‘공격을 기다려서는 안 되겠네.’

기다리기만 해서는 궁지에 몰리기만 한다. 저런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에단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창의적으로.’

일반적인 루트로는 안 됐다. 눈살을 좁힌 에단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타닷!

에단이 순식간에 지면을 박차며 질주했다. 야생 동물 같은 속도였다.

카이나는 그런 에단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에단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휘릭!

달리던 추진력 그대로 에단의 몸이 회전했다. 에단의 뒤돌려 차기가 그녀의 머리를 노렸다.

“멍청한 놈.”

카이나가 같잖다는 듯 검을 들어 올렸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도 에단의 다리가 썰릴 것이다. 그때 에단의 다리가 더 높이 올라갔다. 애초에 그녀를 노린 뒤돌려 차기가 아니었다.

후웅!

살벌한 파공성과 함께 허공에 휘둘러진 에단의 발.

에단이 그대로 상체를 숙이자 몸이 한 차례 더 회전했고, 그의 발끝은 땅을 그으면서 카이나의 하단을 노렸다.

두 차례 회전하면서 회전력이 더해진 속도였다.

“호오.”

카이나가 짐짓 감탄사를 내뱉었다.

에단의 발이 그녀의 다리에 적중하는 순간, 그녀가 뒤로 도약하며 넘어갔다.

기민한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멀어지는 카이나를 두고 보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에단이 웃었다. 팔로 지면을 짚으면서 에단이 재차 질주했다.

타닷!

찰나의 순간에 에단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날아 차기 같은 공격은 위험했다.

카이나 정도의 검사라면 에단의 공격에 충분히 반응할 수 있었다. 다리가 베이면 승부는 끝이다.

에단은 곧장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간의 싸움에서 많은 재미를 보았던 플라잉 니 킥이었다.

‘어떤 대응을 할까.’

검을 휘두르며 맞대응? 아니면 회피? 혹은 방어?

공중에서의 공격이었다. 몸을 뒤로 넘기며 거리를 벌린 카이나도 제대로 된 움직임을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에단이 카이나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이나는 몸을 회전하며 그대로 검을 찔러 왔다.

그녀의 성검이 에단의 가슴팍을 향해 뻗어지는 순간, 에단이 무릎을 내리고 팔을 뻗었다.

키기기기긱!

강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타이탄의 장갑과 성검이 맞부딪쳤다.

‘저걸 저렇게 쓴다고?’

카이나가 당황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녀조차 처음 본 사용법이었다. 타이탄의 장갑이 무적의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날붙이에 손을 밀어 넣는 건 아예 다른 얘기였다.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행위.

에단이 초월적인 악력으로 칼날을 움켜쥐었다.

카이나는 검의 회수를 택했다.

정석적인 방법이었지만, 에단은 쉽사리 놓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끌어당겼다. 에단의 등 근육이 수축했다. 에단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카이나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잡았네요.”

“……꺼져!”

카이나가 에단을 향해 발을 뻗었지만, 그녀의 발 기술에 당할 에단이 아니었다. 에단은 카이나의 발을 잡아당겼다.

쿵!

카이나와 에단이 뒤엉키며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서려 했지만, 에단이 놓아주지 않았다. 에단은 아나콘다처럼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왼손으로는 그녀의 칼을 억눌러 놓고, 사이드 포지션을 점유했다.

“칼 좀 놓으시죠?”

“싫은데?”

카이나는 움켜쥔 검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에단이 씨익 웃었다.

“그럼 놓아드리게 해 줘야죠.”

사이드를 잡은 에단이 검날을 놓고 그대로 그립을 잡았다.

‘지금 놓아준다고?’

바보인가?

카이나가 그대로 검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에단의 그립이 완성되는 게 먼저였다.

“위험해라.”

키 락.

에단이 그대로 힘을 가하자, 카이나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큿!”

신음을 내뱉으며 검을 놓친 카이나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차!’

재빨리 몸을 돌려 보려 했지만, 에단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에단이 자세를 돌려 성검을 그대로 발로 차 날려 버렸다. 그립을 놓은 에단이 마운트를 점유했다.

상체를 완전히 제압당한 카이나가 빠져나오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숙련된 에단의 압박 기술에서 탈출하기는 요원했다.

에단의 허벅지가 그녀의 갈비뼈를 더욱 거세게 압박했고, 제대로 잡힌 다리 그립은 견고했다.

“신나는 파운딩 시간이네요?”

파운딩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는 그녀였지만, 자세를 보아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이 왔다.

“……얼굴을 때리겠다고?”

“전 원래 차별 안 합니다.”

쾅! 쾅! 쾅! 쾅!

우레 같은 파운딩이 얼굴로 떨어졌다. 하나하나가 살벌한 위력을 가진 주먹이었다. 카이나는 손을 올려 파운딩을 막아 내기 시작했지만, 부러진 팔이 욱신거렸다.

“마나 안 쓴다는 거 취소!”

카이나가 몸을 일으키자, 에단의 몸이 순간적으로 붕 떴다. 막대한 압력이 에단을 덮쳤지만, 에단은 카이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으며 버텼다.

“……그러면 반칙 아닙니까?”

“이 새끼가 머리카락을 잡아?! 놔, 이 새끼야!”

카이나가 역정을 내뱉음에도 에단은 이를 악물고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곧장 카이나의 뒤를 점유해 백 포지션을 잡았다.

“아직 포기 안 했냐?”

“포기를 왜 합니까.”

끝까지 해 봐야지.

에단의 팔이 뱀처럼 카이나의 목을 휘감았다.

“너 정말 짜증 나는 놈이구나.”

스산한 목소리에 에단은 위험을 감지했다.

에단이 초크를 포기하고 몸을 빼려는 순간, 페온이 다가왔다.

“그만.”

페온이 에단과 카이나 사이를 막아섰다.

“패배를 인정해, 카이나.”

“……엿 같네.”

카이나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퉷, 하고 바닥에 침을 내뱉었다.

카이나가 에단과 페온을 번갈아 바라봤다.

“난 너희 가문이 진짜 존나게 싫어.”

에단과 페온이 서로를 마주 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저거 칭찬이죠?”

“크하하!”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페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오!”

둘의 모습을 본 카이나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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