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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10화 (110/398)

◈ [110화] 성검 (3)

잭슨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채 블란테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유령이 있다고?’

이윽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잭슨은 정보 길드의 간부였다. 수많은 정보가 길드로 모이다 보니, 당연히 유령이나 귀신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헛소문이야.’

사실 관계를 확인하면 시시한 일들이 대다수였다. 그중 그나마 유령이나 귀신과 흡사한 존재는 언데드였다.

언데드의 출몰을 일반인들은 영적인 존재의 현신으로 착각하곤 했다.

하지만 언데드는 엄연히 따지면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잭슨은 망령을 믿지 않았다.

다만, 언데드는 낮에는 힘을 못 쓴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위치를 확인한 잭슨이 씨익 웃었다.

‘좋아, 위험하지는 않을 거 같네.’

소문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 또한 정보 길드의 의무라고 할 수 있었다.

잭슨은 사명감을 가지고 개척되지 않은 험준한 산길을 나아갔다.

그늘로 인해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걸으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잭슨은 걸음을 늦추지 않으며 허리춤을 슬쩍 바라봤다.

블란테의 가주에게서 선물 받은 검.

보기만 해도 자신감이 차오르고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성능을 시험해 볼 때군.’

잭슨이 눈을 빛냈다.

바스락.

그때 잭슨의 앞에서 수풀이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흠칫한 잭슨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잭슨이 시선을 돌렸다.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게끔 태세를 가다듬었다.

아찔한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수풀 속의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어서 나와라.’

잭슨의 검집에서 검이 반쯤 뽑혔다. 언제든지 적을 양단할 준비가 되었다.

바스락.

수풀이 다시 움직였다. 잭슨이 시선을 집중했다.

삐이?

하지만 수풀을 헤치고 나온 것은 토끼였다.

잭슨이 허탈감을 느끼며 식은땀을 닦았다.

“……뭐야, 악명이 자자한 블란테의 산맥이라 해서 긴장했더니 별거 아니잖아?”

끄으윽!

잭슨이 혼잣말을 내뱉은 직후 어딘가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잭슨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 뭐지?”

등줄기를 타고 다시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 사람의 목소리인가?’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이 목소리는 비명보다는 신음에 가까웠다.

이 시간에 산속에서 신음을 흘리다니.

다시금 긴장이 차올랐다.

잭슨이 침을 삼키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변을 예의 주시하면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끄으으! 끄아아아!

다가갈수록 신음 소리가 더욱 확실하게 들렸다. 잭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소, 소문이 사실이었나?’

정말 유령 따위가 실존한다고?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령이 아니라면 이 소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몬스터의 소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원한 가득한 사람의 곡소리.

소름이 돋으며 온몸이 서늘해졌다.

“도, 돌아갈까?”

이제라도 몸을 돌려 돌아가고 싶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보 길드의 간부라는 자리가 잭슨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 확인하고 가 주겠어.”

잭슨이 결심한 얼굴로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숲의 심층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곡소리 같기도 하고, 신음 소리 같기도 한 괴성이 점점 커져 갔다.

“이쪽은 맞는데…….”

소리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향은 틀림이 없었다. 잭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잭슨이 하늘을 바라봤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건만, 무성한 나무 탓인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밤이 되면 몬스터들이 더욱 사나워지고 흉포해지기 때문에 숲이나 산에서 밤을 맞이하는 건 위험했다.

잭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빠, 빨리 확인만 해 보자.”

잭슨이 정면을 바라봤다.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동굴이 보였다. 잭슨이 마음을 다잡고 동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부, 분명 바람 소리거나 새소리겠지.”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신음 소리는 더욱더 선명해졌다.

잭슨이 긴장을 머금은 채 동굴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끄아아아!

쿵!

고개를 들이밀자마자 굉음이 들려왔다. 잭슨이 검을 뽑았다.

“누, 누구야!”

어두워서 윤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동굴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따, 땀 냄새?’

후끈한 열기와 땀 냄새가 느껴졌다.

“누, 누구슈?”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들려왔다.

“사, 사람?”

당황하기는 잭슨도 매한가지였다. 유령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라니…….

“유령이 아니야?”

“유, 유령?”

동굴 안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의 남자 줄리엔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잭슨을 바라봤다.

“……혹시 당신도 에단 님이 보내신 분입니까?”

줄리엔의 물음에 잭슨이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에, 에단 님 말씀이신가요?”

그 사람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 * *

에단은 블랙 오우거를 보며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네?”

블랙 오우거라는 규격 외의 몬스터가 등장했음에도 당황하지 않는 에단을 보며, 카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녀석을 만나 본 적 있나?”

“뭐, 나름대로 알고 있지.”

“……그건 의외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를 거다.”

이 시험장은 사람의 본질을 드러나게 만드는 장소였다.

에단의 외형이 왜 저렇게 바뀌었는지는 카이나도 알 수가 없었으나, 이전과는 전제가 달랐다.

먼저 이곳에서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마나의 유무와 총량보다는 본질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리고 무기조차 없지.’

무기는 주어지지 않았다. 맨몸으로 저런 괴물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기기 불가능한 상대다.’

블랙 오우거의 가죽은 강철과도 비견할 수 있다.

날붙이를 들고 있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판국에, 에단은 단검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그게 이 시험의 의의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시험은 자격이 없는 자를 걸러 내기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세계수는 어떡하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다고 시험을 넘길 수도 없는 것이, 그녀의 권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사실일까?’

에단이 거짓말을 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왜 봉인을 깬 인물이 블란테의 후손이며, 저 빌어먹을 뇌근육이랑 같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카이나가 착잡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지만, 이미 시험은 진행되고 있었다.

쿠어어어어어!

블랙 오우거가 포효를 내지르자, 주위를 압도하는 강렬한 피어가 일었다.

심령이 약한 자는 졸도하거나 쇼크로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그러나 그 포효를 정면에서 맞닥뜨렸음에도 에단은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거참, 목청 한번 크네. 귀 떨어지겠어.”

“……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지?”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현세에서의 경지는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카이나는 에단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기는 페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이는 바로 카이나였다.

“……대체 뭐야?”

카이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쿠어어어!

블랙 오우거가 에단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뛰어드는 것만으로도 강한 강풍이 일었다.

블랙 오우거는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가장 압도적인 피어를 지니고 있었다.

피어에 적중당한 대상은 몸이 굳고,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에단은 피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 번 조진 애한테 겁먹을 정도로 병신은 아니라서 말이야.’

원래도 심령이 강한 편이었지만, 현재의 에단은 블랙 오우거보다 아득히 높은 심령을 가지고 있었다.

블랙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에단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에단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만 봤다.

블랙 오우거가 발을 치켜들었다.

거대한 발이 에단의 바로 위에 드리워졌다.

마치 벌레를 밟아 죽이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체격 차이였다.

블랙 오우거의 발이 떨어지는 그 순간, 에단이 몸을 날렸다.

쾅!

강한 충격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었다.

블랙 오우거의 공격을 피해 낸 에단이 오우거의 발을 바라봤다.

“발가락도 더럽게 크네?”

때리기 좋게.

발을 똑같이 치켜든 에단이 블랙 오우거의 새끼발가락을 그대로 짓밟았다.

콰직!

에단의 발길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직! 콰직!

크아아아아!

블랙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발을 들자, 에단은 미련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에단의 눈이 블랙 오우거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너도 수컷이구나?”

에단이 미소를 지으며 도약했고…….

콰지직!

무언가가 으깨지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페온은 차마 지켜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쿠아아아아아악!

남성체라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에 블랙 오우거의 거체가 허물어졌다.

블랙 오우거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위에 올라선 에단은 그대로 질주했고, 이내 놈의 얼굴 위로 올라섰다.

“너는 피부가 질겨서 좀 힘들더라고.”

에단이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조금 아프겠지만 참아.”

에단이 손을 들었다.

블랙 오우거가 당황하며 눈을 감았다.

에단이 오른손으로 블랙 오우거의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이 블랙 오우거의 눈을 관통했다.

콰지직!

쿠어어!

블랙 오우거가 고통에 발광하기 시작했다. 에단은 이 일격으로 끝내려고 했지만, 블랙 오우거가 발광하며 손을 휘젓는 탓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이 손에 묻은 진득한 수정체와 피를 털어 낸 뒤 혀를 찼다.

“역시 마나가 없으니 힘드네.”

에단이 아쉽다는 듯 바닥을 향해 가래침을 내뱉었다.

‘혹시나 했지만.’

에단이 왼손을 바라봤다. 방금 전 블랙 오우거의 눈을 찌르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장갑은 그대로군.’

타이탄의 장갑은 그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유가 뭐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나는 사용하지 못했고, 소지품은 모두 잃었으며, 육체 또한 에단 시절의 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타이탄의 장갑은 그대로였다. 에단은 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단이 눈살을 좁힌 채 블랙 오우거를 바라봤다. 눈을 찌르면서 뇌까지 헤집어 두려고 했지만 리치가 짧았다.

‘단검이라도 들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에단이 혀를 찼다. 한편 카이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저런 미친 녀석이…….’

배짱이 두둑하다는 수준으로 설명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겁을 상실한 정도가 아니었다. 저놈은 지금 목숨을 내건 채 싸우고 있었다.

‘……저게 가능하다고?’

카이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똑같은 환경에 놓인다면, 지금의 에단처럼 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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