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도주 (2)
따가운 시선이 피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내 드레이가 민망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돌렸고, 리사는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교수님.”
목소리가 불길하다. 에단이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오해하지 마라.”
“걱정할 이유가 없었군요.”
리사가 에밀라와 에단을 번갈아 바라봤다. 경멸 어린 눈초리에 에밀라가 몸을 흠칫 떨었다.
‘오해하고 있어.’
시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에밀라는 해명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다.
에밀라의 몸이 비틀거렸다. 에단이 에밀라를 부축했다. 그 모습을 보자 리사의 눈썹이 한 차례 더 꿈틀거렸다.
“……빨리 옮기세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어, 그러려고.”
에단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학생들을 둘러봤다. 특별이 다친 학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에단의 눈에 밟히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로만의 머리.
에단은 미간을 좁히며 리사를 바라봤다.
하지만 리사는 에단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기만 했다.
“후회하지 마.”
“어, 안 해. 후회 따위.”
덤덤한 대답에 에단이 씨익 웃으며 리사의 머리를 헝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동생 머리 한번 만져 봤다. 그럼 간다.”
에단이 떠나기 전에 드레이를 바라봤다.
“반장, 고생했어. 조금만 더 고생해 줘라.”
에단의 시선이 시신이 된 로만에게로 향했다.
‘쯧.’
입맛이 썼다. 리사에게 필요 없는 아픔을 겪게 한 것만 같았다.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복귀해 있어. 너희들이 책임질 문제도 아니고, 교수인 우리가 처리해야 할 문제니까.”
“……알겠습니다.”
드레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에단은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사라졌다.
* * *
에단은 자신에 왼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성검은 여전히 거부 반응을 보이며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흠, 거부 반응은 보이지만 효과는 나타나네.’
성검의 효과는 단순하지만, 확실했다.
정화와 치유.
먼저 정화는 상대에게 매우 껄끄러운 능력이다. 어쌔신이나 흑마법사가 적이라면, 그들이 저주나 중독 같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치유.
“이게 진짜지.”
성검의 힘이 소진되기 전까지 무한한 생명력이 제공된다.
즉사만 당하지 않으면 어떠한 상처도 치유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위태롭던 에단의 컨디션도 빠르게 호전되었다.
‘까칠하기는.’
성검은 에단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방증으로 계속해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유는 확실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겠어.”
에밀라를 힐긋 바라봤다.
에단은 타이탄의 장갑이라는 사기적인 기물 탓에 반발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에밀라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상태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지.’
에밀라는 단순한 탈진 상태였지만, 에단은 에밀라의 어깨 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벗겨진 피부에서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명에 지장이 가는 상처는 아니었지만, 흉터는 남을 것이다.
에단이 혀를 차고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 * *
레벨린은 개인 집무실에 앉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한없이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끝났겠군.’
에밀라가 뒤늦게 달려갔지만 의미는 없었다.
진정한 힘 앞에는 모두 무의미하니까.
비록 힘의 제약을 받고 있다고 한들 자신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자였다.
‘준비는 거의 다 되었어.’
세계수가 완전히 오염되면 그나마 있던 제약마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는 블란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에단이 거슬렸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가문이 블란테이기 때문이다.
블란테는 이용하기 좋은 세력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약화하고 집어삼키려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없어지는 게 나아.”
레벨린은 블란테를 소멸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에단의 존재부터 시작하여 모든 게 껄끄럽게 느껴졌다.
찻잔을 든 레벨린은 달콤한 향을 즐기며 눈을 감았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 강한 탈력감이 그녀를 덮쳤다.
마치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갑자기 빈혈을 느낀 그녀가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이건 뭐지?”
완연하던 생명력과 충만하던 힘이 반 토막 나 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벨린이 급하게 서랍을 열어 목함을 꺼냈다. 그러고는 기괴한 언어를 나열했다.
‘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레벨린의 이성적인 두뇌는 그 와중에도 타당한 가능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레벨린은 그 가능성을 애써 외면한 채 목함을 열었다.
목함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존재들이 잠들어 있었다.
레벨린이 눈을 부릅떴다.
하나의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그 표식의 주인은 바로 베오드라도였다.
“……그가 소멸했다고?”
레벨린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베오드라도는 ‘군주’ 중 하나였다. 비록 그 힘을 제약받고 있다 한들 인간이 대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누가 개입한 거지? 에밀라는 불가능해. 그럼 에단이 죽였다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레벨린은 주먹을 쥐어 책상을 내려찍었다.
쾅!
책상이 크게 흔들렸지만, 그녀는 곧장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베오드라도의 소멸이 확실시된 지금, 그녀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누가 개입했다고 한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에단이든 그 외의 존재든, 돌아오면 자신부터 찾을 것이 분명했다.
레벨린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할 때.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힘겹게 일궈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아카데미였다.
그 아카데미를 고작 망나니 귀족 하나 때문에 빼앗기게 된다니…….
레벨린이 몸을 떨며 빠르게 개인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이윽고 레벨린이 도달한 장소는 학장실이었다.
마크는 갑자기 들이닥친 레벨린 탓에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시죠? 아니, 그보다 일은 무사히 끝났습니까? 아들은 괜찮겠죠?”
“아마 로만은 이미 죽었거나, 죽을 겁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마크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지금 그게 무슨……! 전해 들었던 말이랑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마크는 레벨린에게 처음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아들을 잃었다는 생각에 그는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마크가 격렬한 분노를 토해 냈지만, 레벨린의 반응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크는 레벨린의 평온한 태도에 더욱 화가 치밀어 이를 꽉 문 채 몸을 돌렸다.
“나는 아들한테 가겠어.”
마크는 일말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레벨린의 미성이 들려왔다.
“선택하세요.”
“선택? 무슨 선택을 말하는 거지?! 너의 그 잘못된 판단 때문에 내 아들이……!”
“여기서 그냥 죽겠습니까?”
레벨린의 말에 마크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은 마크도 알고 있었다.
마크는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에단과 블란테는 결코 이 사태를 묵과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목만 날아가면 다행이었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고문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죽어 갈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두려움이 치솟으며 마크의 몸이 미약하게 떨렸다.
“…….”
무력함에 치가 떨린 로만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레벨린이 입을 열었다.
“함께 가시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네. 설마 아들의 복수도 안 하실 생각입니까?”
레벨린의 달콤한 말은 마크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게 바로 그녀의 능력이었다.
이윽고 달콤한 말에 홀린 마크의 동공이 흐려졌다.
“복수해야지…….”
레벨린의 암시는 잠재된 무의식의 힘이 없으면 발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학장은 쉽사리 암시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바로 이동하죠.”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세계수의 오염만 완성되면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에단.’
레벨린은 에단을 향한 살심을 억누르며 다음 계획만을 생각했다.
* * *
아카데미로 복귀한 에단은 곧바로 의무실로 향했다.
의무실에 갑자기 로브만 걸친 남자가 등장하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내 에밀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치료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기절한 지는 얼마나 되었죠?”
“20분가량 되었습니다.”
“화상이…… 이 화상은 언제 생긴 겁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에밀라를 침대에 눕히고 상태를 확인하던 치료사가 미간을 좁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마나 유저의 치유력은 일반인보다 월등한 편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뜰 겁니다. 다만…….”
치료사가 침음성을 흘리다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의 의무대에는 성직자가 없습니다…….”
치료사의 시선이 레벨린의 어깨로 향했다. 치료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건 평범한 화상이 아닙니다. 마치 오염되거나 중독된 것처럼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 없을 것 같지만, 이 상처는 아무래도…….”
치료사가 말끝을 흐리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부터는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다.
‘죽은 마나에 중독된 건가.’
죽은 마나로 구현한 마법이었다. 당연히 산 자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은 에밀라의 상처 부위에 손을 뻗었다.
“잠깐……! 갑자기 만지시면.”
에단이 소독되지 않은 손으로 환부를 건드리려 하자, 치료사가 크게 당황했다.
“괜찮습니다.”
에단은 지금 에밀라의 환부에 있는 죽은 마나를 뽑아내려 하는 것이다.
‘원래라면 정화가 부담이 덜 되겠지만…….’
성검은 아직까지 에단의 손에서 저항하고 있는 탓에 사용하기 위험했고, 성공 가능성도 희박했다.
손이 환부에 닿자 죽은 마나가 느껴졌다.
‘추출한 양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군.’
하찮게 느껴지는 양이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에단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에밀라의 몸에서 죽은 마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상처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에단이 손을 뻗어 죽은 마나를 추출하자, 어둡던 상처의 색이 서서히 옅어졌다.
“이, 이게 무슨…….”
치료사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단은 지금 말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거칠고 강압적인 추출은 에밀라에게 부담을 줄 수 있었다.
꽤나 긴 시간에 걸친 죽은 마나의 추출이 끝나자, 에밀라의 상처는 일반적인 화상으로 변했다.
에밀라의 호흡도 한결 편안하게 바뀌었다.
“이럴 수가…….”
치료사가 오염이 완벽히 정화된 에밀라의 상처를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흉터는 어쩔 수 없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이 정도의 화상이면 웬만한 고위 사제가 아니고서야…….”
치료사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고위 사제면 흉터도 없앨 수 있습니까?”
고위 사제 따위는 비빌 수도 없는 자를 에단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