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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03화 (103/398)

◈ [103화] 후회 같은 거 안 해 (1)

심장의 박동 소리와 함께 혈액이 뻗어 나간다. 그와 동시에 죽은 마나도 전신을 파고들었다.

제기랄.

죽을 거 같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몸속에서 요동치는 죽은 마나는 마치 먹잇감을 찾는 것 같았다.

장기, 뼈, 혈관, 근육.

모든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 내가 인도한 것은 큰 흐름일 뿐이다. 원래라면 차근차근 마나를 쌓으면서 그에 따라 몸이 변화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에단은 이미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일반 마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한 성격을 지닌 죽은 마나.

그런 죽은 마나를 연달아 흡수했다.

적은 양을 흡수한 것도 아니다. 마스터에 필적하는 상대에게서 모조리 뽑아냈다.

에단의 몸은 지금 살아 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꿀럭, 꿀럭.

에단에 입에서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몸속에서 누가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단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오냐. 한번 해보자고.’

에단이 다시 한번 이를 깨물었다.

고통을 참는 것에는 익숙했다. 지금은 고통이지만, 결국에는 양분이 될 것이다.

‘페온의 도움은 컸어.’

그의 말대로 마나를 인도하면 죽은 마나도 조금이나마 안정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총량이 커도 너무 컸다.

에단의 몸은 지금 부풀어 있는 풍선 같았다. 그것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집중해.’

에단이 죽은 마나를 컨트롤하려고 했다. 이끄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수용을 해야 했다.

에단이 죽은 마나를 쪼개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쪼갠 마나를 각기 다른 장소로 보냈다.

뼈, 심장, 폐, 근육, 혈관, 내장, 혈액에까지.

그리고 알아서 날뛰게 만들었다. 이내 에단의 몸이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몸 곳곳이 터질 것처럼 꿈틀댔다.

‘버텨라.’

명색이 검술 명가의 핏줄이면 이 정도는 견디라고!

에단이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서는 다시금 실핏줄이 터지며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무모하기는 하나…….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페온이 말끝을 흐리며 복잡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지금 본능적으로 최선의 선택지를 택한 것이다.

― ……성공할 수 있을까?

확률이 너무 희박했다.

이 정도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봐야 했다. 에단의 시도는 너무 무모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페온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 그러고 보니 네가 무모하지 않았던 적이 없구나.

지금껏 언제나 페온을 놀라게 한 이가 에단이었다.

― 부디 이번에도 놀라게 해 다오.

부탁이다.

* * *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에밀라가 학생들을 던전 밖으로 대피시킨 뒤 곧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교, 교수님!”

리사가 에밀라를 불러 세웠다.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마주 했다.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

에밀라가 다시 던전에 진입했다. 두 가지 갈림길.

에밀라가 눈을 감았다.

방금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길에서는 여전히 소름 끼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학생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생각이 교차했다. 상식대로라면 학생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버틸 수 있을까?

그 괴물을 상대로?

에밀라가 이를 악물었다. 에단이 더욱 위험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는 학생들의 지도자였다.

빠르게 반대쪽 길로 들어선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잔뜩 겁에 질린 채 걸어 나오는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교, 교수님!”

학생들이 울먹이며 에밀라를 불렀다.

무사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에밀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바로 저를 따라오세요! 다친 사람은…….”

에밀라의 시선이 기절해 있는 로만에게로 꽂혔다.

그녀의 시선이 로만에게 가 있자, 학생 한 명이 에밀라를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일단 움직이죠. 가면서 듣겠습니다.”

한시가 급했다.

* * *

“……괜찮겠지?”

던전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리사가 말했다. 같이 곁에 앉아 있던 드레이가 쓰게 웃었다.

“그러길 바라야죠…….”

“보통 이 상황이면 희망 있는 말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가 원래 눈치가 조금 부족합니다…….”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드레이를 쏘아보던 리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다, 됐다. 그나저나 너 대체 뭐야?”

“……질문의 의도가 뭔가요?”

“비밀이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도 비밀을 가지고 있거든.”

드레이가 고개를 돌려 리사를 바라봤다.

리사가 정면을 보고 있는 탓에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옆모습을 통해 보였다.

드레이도 리사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평소 실습이나 훈련 때 보여 주던 모습과는 궤를 달리했다.

리사가 보여 준 모습은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드레이도 던전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한편, 율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사…….’

리사를 보고 있자니 율리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녀는 오늘 리사에게 짐밖에 되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율리는 늘 리사 곁에 있었지만, 오늘 그녀의 조력자가 된 이는 반장인 드레이였다. 그 외 수많은 학생들은 그저 겁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리사를 향해 다가가 괜찮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율리는 아직까지도 미약하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나는 약해.’

오늘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엘리트들의 집단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오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리사와 드레이를 제외하고는…….

율리는 그 사실에 화가 났다.

“아, 저기!”

그때, 한 학생이 던전 입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른 길로 향했던 학생들이 에밀라와 함께 던전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두 무사하네.”

“그런데 에단 교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설마…….”

리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리사가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현재 그녀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절뚝거리며 에밀라에게 다가간 리사가 물었다.

“……에단 교수님은요?”

“……지금 구하러 갈 거야.”

“…….”

리사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에밀라의 행동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옳은 행동이었지.

하지만 리사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리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한테는 시간이 없다고!’

그토록 혐오하던 빌어먹을 망나니 오빠였다.

하지만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됐다. 이제야 남매간의 정이 생겨 가는 중이었다. 한데 자신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꼭 구해 올게.”

에밀라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때 리사의 눈에 그녀의 어깨가 보였다. 자신 때문에 입은 상처.

리사의 입술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내가 약해서…….’

모든 건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리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밀라를 통해 구출된 학생들이 쭈뼛거리며 합류했다.

“어? 로만은 왜 기절해 있어?”

“아……. 그게…….”

질문을 받은 학생이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 학생이 로만 패거리들의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사의 표정이 돌변했다. 리사가 성큼성큼 다가가 학생을 노려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리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분노한 사자 같았다. 학생은 그 순간 눈치 볼 것도 없이, 보고 들었던 일련의 사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돌변했다.

이 모든 게…… 저 녀석 때문이라고?

목숨을 위협받은 학생들이 분노를 터트리려 할 때, 정작 리사의 감정은 오히려 차갑게 식었다.

그녀의 표정은 서릿발이 휘날리는 듯 차가워졌다. 곧장 리사가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스르릉―

서늘한 소리를 내며 리사의 검이 뽑혔다. 일전의 싸움으로 칼날의 곳곳에는 이가 나가 있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려…….”

로만 패거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리사의 시선이 그 학생을 향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로사의 얼굴을 마주 보자, 그는 몸이 얼어붙었다.

“너희도 한패야?”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소름이 끼쳤다. 로만 패거리는 기절해 있는 로만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이 자식 때문에 우리도 위험했잖아!’

그들의 우정은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얄팍한 것이었다. 언제나 대장 노릇은 로만이 도맡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도 버림받았다.

‘이딴 새끼를 지킬 필요가 있어?’

패거리였던 학생은 로만을 외면했다.

“……마음대로 해.”

“야, 너…….”

“너는 아직도 이 새끼 따까리 노릇을 하고 싶냐?”

외면한 학생이 으르렁거리자, 같은 패거리의 다른 학생도 머뭇거렸다.

“정신 차려, 병신아.”

“한패가 아니면 비켜.”

둘은 티격태격하던 걸 멈추고 리사를 바라봤다.

빨리 비키지 않으면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이 자신들에게로 향할 것만 같았다.

“아, 알았어.”

서로 이빨을 드러내던 학생들도 리사 앞에서는 꼬리를 내렸다. 드레이가 말없이 리사를 바라봤다.

“리사…….”

그의 부름에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드레이의 표정에서 착잡함이 드러났다.

“왜? 너도 나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려고?”

“……그게 아닙니다.”

드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늘 후회가 가득한 삶을 살았으니까요.’

착잡한 심경이 담긴 드레이의 눈이 다시 리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리사의 얼굴은 확고했다.

“난 후회하지 않아.”

리사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일어나.”

빠악!

리사의 발이 로만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커헉!”

로만이 괴성을 내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그는 그대로 엎드려서 헛구역질을 해 댔다. 리사는 말없이 그런 로만을 지켜보았다.

“…….”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로만이 고개를 들어 리사를 바라봤다.

“리, 리사?”

로만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나, 나는 살아 있구나…….”

로만이 실감이 안 난다는 듯 히죽거렸다.

리사는 가만히 서서 로만을 지켜봤다. 그제야 로만은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로만이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경멸하는 표정들도 있었다.

“왜 그랬지?”

리사의 무덤덤한 물음에 로만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 그건 오해야! 다 오해니까 내가 설명하면…….”

“왜 그랬냐고 묻잖아.”

로만의 시선이 리사의 팔로 향했다. 날카로운 검날의 모습에 로만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거, 검은 왜 들고 있어……? 내가 설명한다고 했잖아! 설마 나를 죽이려고?! 나는 학장 아들이야! 감당할 수 있어?! 난 너 같은 평민 녀석이 건드릴 만한 사람이 아니야!”

로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리사가 고개를 돌려 드레이를 바라봤다.

“후회하지 말라고 그랬지?”

두렵지 않았다. 명분은 그들에게 있었다. 동급생과 오빠를 죽이려고 든 것은 로만이다.

‘죽을 정도로 싫지만.’

도움을 요청한다면 블란테는 리사를 외면하지 않을 터.

리사가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로만은 아직도 핏대를 세우며 리사를 향해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리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난 그딴 거 안 해.”

서걱.

리사가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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