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함정 (4)
주변이 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베오드라도는 혼란에 빠졌다.
이게 뭐지?
어둠은 그에게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둠을 발아래에 두는 위대한 일족이었으니까.
베오드라도에게는 빛보다 어둠이 친숙했다.
하지만 이 검은 연기는 뭔가 달랐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오드라도가 손을 들어 봤지만, 이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것뿐이면 괜찮았다.
베오드라도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사물을 보지 않고도 ‘인지’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 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이냐!”
베오드라도가 죽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마법은 발현되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다.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다니.
‘이, 이 힘은 도대체 무엇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둠 위에 군림하는 일족인 그에게조차 이 어둠은 낯설었다.
반면 에단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감각이 예민해.’
어둠뿐이지만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근육의 섬유가 하나하나 느껴졌다. 호흡을 들이마실 때 폐가 확장되는 감각.
심장이 뛰면서 혈액을 밀어내는 느낌.
그리고 몸의 중심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죽은 마나.
모든 것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초월적인 감각이었다. 그만큼 중독적이기도 했다.
에단이 정면을 바라봤다. 눈앞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존재는 확연히 인식되었다.
상대가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격차가 나던 리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같잖아.’
허둥지둥하는 리치의 모습이 보였다. 에단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 보니…….’
페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서 밀려났나.’
이 장소에 한해서는 에단이 인식하고 인지하지 못할 존재가 없었다. 에단이 터벅터벅 앞으로 다가섰다.
어느덧 베오드라도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했음에도 그는 에단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에단이 발을 들었다.
골격이 상세하게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의 구조가 어떠한지 관절이 어디에 있는지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콰직!
에단이 그대로 발을 내려찍었다. 에단의 발이 향한 장소는 바로 베오드라도의 무릎이었다.
에단이 곧잘 애용하는 오블리 킥.
순식간에 무릎이 뒤틀린 베오드라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윽! 뭐, 뭐냐!”
베오드라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무릎을 꿇은 베오드라도를 말없이 지켜봤다.
“왜? 이제 재미가 없어?”
에단의 목소리를 들은 베오드라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감히 벌레 따위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베오드라도는 혼란스러웠다.
감각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니, 그보다 감각을 제한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제 와서 무서워?”
구질구질하게 말이야.
말끝을 흐렸지만, 에단의 말은 베오드라도에게 똑똑히 들렸다. 에단의 조롱이 기폭제가 되어, 베오드라도가 격분했다.
“이 벌레 새끼가 감히!”
베오드라도가 손을 들었다. 죽은 마나가 손에 밀집되나 싶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이, 이게 무슨…….”
“뭐긴 뭐야.”
에단의 발이 베오드라도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넌 이제 좆된 거지.”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이후는 일방적인 구타 행위였다. 에단은 베오드라도의 두개골을 걷어차고, 관절을 지르밟으면서 농락했다. 입장이 뒤바뀌었다. 베오드라도는 비명을 내지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 무서워?”
에단의 목소리에 어려 있는 웃음기가 느껴지자, 베오드라도는 치욕감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내가……! 위대한 존재인 내가……! 고작 저런 벌레 새끼한테……!’
그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뇌가 있다면 녹아내릴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당장 저자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죽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이상, 그는 에단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슬슬 끝낼까?”
베오드라도를 짓밟던 에단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에단은 베오드라도가 어떻게 해야 죽는지 알고 있었다.
‘리치의 심장이 위치한 장소.’
에단이 그 방향을 노리고 검을 내려찍으려 할 때, 어둠이 걷히며 베오드라도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는 게 보였다.
“이놈!”
베오드라도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검은 마나가 폭사되었다.
그와 함께 ‘절망’이 걷혀 나갔고, 에단은 당황했지만 빠르게 판단했다.
에단이 상체를 숙였다.
베오드라도의 마법이 발현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에단이 매우 낮은 자세로 베오드라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단 태클에 성공한 에단은 베오드라도를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두 다리로 앙상한 갈비뼈를 붙잡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위 포지션을 자청했지만, 에단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오히려 좋네.”
‘절망’으로 인해 발동된 검은 장막이 걷히자 당황하긴 하였으나, 지금 이 상황은 오히려 에단에게 찬스였다.
‘붙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에단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위험도 함께였지만.
“이 벌레 새끼가! 밟아 죽여주마!”
에단에게 붙잡혀 무릎을 꿇은 베오드라도가 거칠게 소리치며 마법을 일으켰다.
“페온 님, 도와주시죠!”
검은 연기가 일자, 정체 모를 강제력에 의해 에단의 몸에서 튕겨 나온 페온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페온도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 무모한 녀석 같으니라고! 해 보마!
페온이 소리쳤다.
에단이 도와달라고 한 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하위 포지션에 누운 에단이 ‘죽은 나무’의 힘을 발현했다. 마법이 형성되기 직전이었다.
쿠구구구구―
마법을 구현하던 베오드라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 힘은? 네가 그걸 어떻게!”
베오드라도의 붉은 시야에 에단의 뒤에 있는 것이 들어왔다.
흐릿하게 보이는 앙상한 나무의 형상.
음험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흩뿌리는 나무가 베오드라도의 죽은 마나를 게걸스럽게 갉아먹고 있었다.
베오드라도의 붉은 안광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그들이 간절히 찾아다니는 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힘을 눈앞에 애송이가 들고 있었다.
“너 따위가 가지고 있을 게 아니다!”
베오드라도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런 베오드라도를 보며 에단이 비웃었다.
“그건 누가 정하는데?”
말로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으나, 에단의 상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에단의 몸은 지금 위태로웠다.
베오드라도는 가진 힘만큼, 죽은 마나의 질과 용량도 엄청났다.
― 방금 전 뚫어 둔 길을 이용해라! 하나 더 뚫을 테니까 따라와!
길을 뚫을 때는 극심한 격통이 동반했다. 하지만 에단은 이가 부서져라 악물며 그 통증을 감내해 냈다.
“가만히 있으시지?”
베오드라도가 앙상한 뼈를 움직이며 빠져나가려 하자, 에단이 상체를 일으켰다.
에단이 몸을 일으켜 베오드라도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중심을 회전하며 베오드라도의 팔을 제압했다.
기무라 락.
에단이 검고 앙상한 뼈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버틸 수 있나 볼까?”
에단이 팔에 힘을 가했다.
죽은 마나를 추출당하고 있는 베오드라도는 처음 겪는 낯선 공격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지, 지금 무슨 짓을…… 끄아악!”
베오드라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과 함께 베오드라도의 어깨뼈와 상관골이 또각 하는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부러졌다.
에단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포지션을 재정비한 에단은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얌전하게 만들려면 이게 제격일 것 같더라고.”
일명 트위스터.
경기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 고난이도의 서브미션 기술이었다. 기술을 완성한 에단이 베오드라도의 두개골을 감싸 안았다.
“척추가 비틀리는 기분이 어때?”
에단이 허리를 밀어 넣자, 베오드라도의 척추뼈가 거친 파열음을 내며 뒤틀렸다.
“끄, 끄아아아악!”
“해골도 고통을 느끼나? 그것참 신기하네!”
빠득! 빠드드득!
에단이 더욱 힘을 줬다.
베오드라도는 몸을 바둥거렸지만, 이미 그의 반대 손은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남은 몸으로 아무리 발광해 봤자 에단의 손아귀에서는 탈출할 수 없었다.
뚜둑, 뚜두둑!
베오드라도의 척추가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계속 비틀리고 있었다.
형형한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크아아악! 죽인다! 죽여 버릴…… 끄어어어억! 그만! 그만!”
“그만이 어딨어?”
꼬우면 탭을 치든가. 아참, 탭을 칠 손이 없지?
에단이 힘을 가중했다.
베오드라도가 마법을 펼치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그러는 족족 에단이 죽은 마나로 힘을 흡수했다.
‘죽을 거 같군.’
고통스럽기는 에단도 매한가지였다. 몸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페온이 인도하는 대로 죽은 마나를 밀어 넣고 있었지만, 그조차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 저런 악마 같은……!
‘집중해 주세요!’
에단이 페온을 향해 소리쳤다.
후손은 지금 생사에 갈림길에서 고군분투 중인데 저게 할 소리란 말인가?
‘페온 님은 이미 죽었다고 대충하는 겁니까?’
―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너나 집중해서 죽은 마나를 인도하거라!
페온은 다시 집중했다.
베오드라도에게서 추출하고 있는 죽은 마나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거대한 호수를 바가지로 퍼내는 것 같았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고!’
에단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몸이 터져 나갈지언정 눈앞에 있는 해골은 산산조각 낸 다음에 죽을 생각이었다.
반면 베오드라도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남았던 존재가 베오드라도였다.
제아무리 지금 힘을 제약받고 있는 신세라고 한들 한낱 인간에게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타인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그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소했고, 그렇기에 더욱 이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사, 살려……!”
느껴졌다. 이대로 죽은 마나가 모두 빨려 들어가면 자신은 소멸하고 말리라는 사실이.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영원해야 하는 불멸의 존재였다. 고작 여기서 끝날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지?”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듯한 형형한 안광이 베오드라도를 사납게 노려봤다.
“꼬우면 탭을 치라고!”
죽은 나무의 힘을 더욱 끌어올리자 밑에서 뿌리가 뻗어 나와 땅에 박혔다.
“끄아아악! 내가, 이 내가!”
마지막 한 톨의 죽은 마나까지 갈취해 내자, 베오드라도의 안광이 사그라졌다.
눈이 있어야 할 안와골에는 텅 빈 공간만이 공허하게 남아 있었다.
“……더럽게 질기네.”
새끼.
에단이 그립을 풀고 대자로 누웠다. 죽은 마나로 유지하던 해골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 ……아직 끝이 아니다.
페온이 소리쳤다. 에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곧이어 죽은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