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함정 (3)
‘에밀라 교수님!’
리사가 고개를 돌려 에밀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이 생겼다.
“방심하지 마!”
드레이의 외침에 리사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후욱!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구체를 확인한 리사는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크윽!”
바닥에 몸을 부딪치자 냉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차게 식었다. 그와 동시에 안도감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직 위험한 상황이야.’
리사가 곁눈질로 에밀라를 바라봤다. 분명 그녀의 조력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
겪어 보니 알 수 있었다. 드레이가 없었다면 진즉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근데 더 무서운 점은…….’
저 해골은 자신들을 진심으로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재밌는 장난감처럼만 대했다.
저 괴물이 진심을 다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면 승부조차 되지 않을 터.
‘교수님이 과연 저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뛰어난 기사를 보고 자라 온 리사는 보는 눈이 좋았다.
에밀라는 분명히 뛰어난 기사였고, 내로라하는 블란테의 기사들과 비교해도 수위에 들 수 있는 강자였다.
‘하지만 저 해골바가지는 급이 달라.’
저 녀석은 진짜배기 괴물이라는 사실이 오감으로 느껴졌다.
희망은 가라앉고, 이내 절망만이 남았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력감이 치밀었다.
‘어차피 죽을 거야.’
그러고 보니 왜 오빠를 찾았지?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에단이 지금 이 자리에 찾아온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실력 차이는 확연했고, 에단이 강하다고 한들 그뿐이었다.
‘오빠는 에밀라 교수님보다 약해.’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리사는 에단을 기다렸다.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무엇 때문…….
그 순간, 재차 후끈한 열기가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리사는 즉시 앞을 바라봤지만 이미 피하기는 늦어 보였다.
“제기랄.”
그때, 에밀라가 리사의 앞에 섰다.
후욱!
에밀라의 손이 리사의 팔을 잡아당겼고, 리사의 몸이 공중에 떴다.
쾅!
붉은 화구가 벽에 처박혔다. 이어지는 화구는 드레이가 막아섰다.
콰앙!
신성력과 죽은 마나와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내민 검이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번 힘겨루기의 승자는 드레이였다.
쿵.
기력을 소진한 것처럼 보이는 드레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리사가 그런 드레이를 바라보다가 에밀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리사의 눈이 흔들렸다. 에밀라의 어깨가 화상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다.
‘나 때문에…….’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자신들을 구하러 온 그녀를 위기에 빠트렸다.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치밀었다.
“리사, 괜찮니?”
하지만 에밀라는 자신의 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리사를 바라봤다.
순간 리사의 가슴에서 울컥거리는 감정이 요동쳤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바뀌는 건 없어.’
리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아니야. 늦게 와서 미안해.”
리사가 검을 들었다. 에밀라도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검을 들었다.
“……후, 저는 아무도 걱정 안 해 주시나요?”
드레이가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에밀라가 검을 역수로 바꿔 든 채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훌륭해. 역시 반장이야.”
“……존재감이 없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저를 기억해 주시는군요.”
에밀라는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내 에밀라의 시선이 베오드라도에게로 향했다.
오소소.
닭살이 돋아났다. 베오드라도의 힘이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베오드라도의 붉은 안광이 에밀라에게로 향해 있었다.
“흠……. 전달받은 인간이 너인가?”
“그게 무슨 말이죠?”
“말 안 듣는 인형을 고쳐 달라고 부탁받아서 말이지.”
베오드라도의 대답에 에밀라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인형이라 지칭하는 자는 에밀라가 분명했으니까.
에밀라가 이를 깨물었다. 그녀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글세……. 슬슬 질리는구나.”
베오드라도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이번에는 검은 칼날이 만들어졌다.
에밀라가 날아오는 검은 칼날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 냈다. 단 한 번의 일격을 막아 냈을 뿐인데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스르륵.
‘가진 걸 전부 써야 해.’
그래도 승산은 희박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검사로서의 에밀라가 아닌, ‘새벽의 달’이었던 에밀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애들은 어떡하지?’
그것이 에밀라의 발을 붙잡았다.
여기서 승부수를 던진다면 그동안 두 학생을 지킬 사람은 사라지게 된다.
에밀라를 지켜보던 리사가 말했다.
“교수님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죠.”
“……저는 좀 신경 써 주시면 안 될까요?”
“닥쳐.”
에밀라가 서글픈 미소를 지은 채 리사과 드레이를 바라봤다.
이내 표정을 굳힌 에밀라가 발을 내디뎠고, 그와 동시에 에밀라의 몸이 사라졌다. 마치 지면에 흡수된 것 같았다.
에밀라가 순식간에 베오드라도의 뒤를 잡았다. 모습을 드러낸 에밀라의 검이 베오드라도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그걸 빤히 보고 있음에도 베오드라도는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 신선하진 않구나.”
베오드라도가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그가 손을 들자, 죽은 마나가 밀려들었다.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몸을 뺄 수는 없었다. 에밀라가 정신을 붙잡은 채 검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검에는 푸른 마나가 깃들어 있었다.
쾅!
그녀의 검은 베오드라도의 검은 장벽을 관통하지 못했다. 오히려 강한 반발력으로 에밀라의 몸이 밀려났다.
그 탓에 바닥을 구르게 된 에밀라가 급하게 고개를 들어 대응하려 했지만, 검은 칼날이 쇄도했다.
“큭!”
에밀라가 검을 들어 검은 칼날을 막아 냈다. 하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곧 검게 타오르는 화구가 에밀라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왔다.
‘상대가 안 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단 씨는 살아 있나?’
이 자리에 에단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온다고 한들 바뀔 상황이 아니었다.
에밀라는 에단의 실력을 알고 있다. 에단은 노련했지만, 노련함만으로는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없었다.
쾅!
에밀라가 검은 칼날을 막아 냈다. 검의 이가 나가고 짜릿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갔다.
에밀라가 망연한 눈으로 화구를 바라봤다. 포악하게 타오르는 검은 불덩이를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그때 에밀라의 앞에 리사와 드레이가 섰다. 드레이의 신성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드레이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미약한 황금색 빛무리가 드레이의 칼에 맺혔다.
“막아 보겠습니다.”
“…….”
에밀라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신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다잡고 이 나간 검을 다시 들었다.
화구가 그들에게 직격하기 직전,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앙!
이명이 들릴 정도로 강한 소리였다. 에밀라와 리사, 드레이는 소리가 들린 이유를 찾기 위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조금 늦었군.”
그들의 눈앞에서, 어느새 나타난 에단이 왼손을 들어 화구를 밀어내고 있었다.
화구는 거칠게 타올랐지만, 에단의 왼손에 깃든 타이탄의 장갑을 불태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 어찌어찌 시간은 맞췄구나.
에단이 화구를 막아서면서 뒤를 힐긋 바라봤다. 에밀라와 리사, 드레이의 몰골이 가장 먼저 보였다.
입맛이 썼다.
‘목숨을 건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죽은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은 정말 지옥과 대면한 것 같은 고통을 수반했다. 그럼에도 부족한 시간 탓에 모든 마나를 흡수하지는 못했다.
‘죽은 마나의 흡수는 자중해야 해.’
검게 타오르는 화구를 막아 내자 상대의 기량이 느껴졌다.
‘괴물이로군.’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데스 나이트 수준의 상대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검은 해골은 에단이 한차례 상대한 데스 나이트를 아득히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간 보기는 불가능하겠네.’
에단이 왼손에 힘을 주었다. 몸속의 죽은 마나가 검은 화구를 둘러쌌다.
쾅!
검은 화구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에단이 곧바로 지면을 박차더니, 쏜살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베오드라도와 근접했다.
그 즉시 에단의 상체가 깊게 숙어졌다. 힘을 모으기 위한 동작이었다. 그러고는 한 점에 모아 둔 힘을 폭발시켰다.
에단의 몸이 떴고, 동시에 무릎을 내밀었다.
쾅!
검은 장막과 에단의 무릎이 부딪쳤다. 검은 장막은 전력을 실은 플라잉 니 킥에도 깨지지 않았다.
에단이 공중에서 그대로 왼손을 내리쳤다.
쾅! 쾅!
검은 장막은 부서지지 않았다. 에단이 사나운 눈초리로 베오드라도를 노려봤다.
“무엇을 하는 게냐?”
베오드라도의 살기가 에단에게 폭사되었다. 하지만 에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이 녀석은 정말 위험하다. 지금은 나한테…….
“아직 아닙니다.”
에단이 분노를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방법은 있었다.
역량 차이는 몸소 느낄 수 있다. 지금의 힘으로는 저 장막을 깨트릴 수도 없다.
‘죽은 나무를 사용해도 위험해.’
죽은 나무의 힘으로 검은 장벽 자체를 흡수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에단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저 해골은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고 싶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절망].”
에단이 룬어를 읊조렸다. 반응을 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베오드라도의 붉은 안광이 에단을 바라봤다.
“벌레 녀석이 지금…….”
스스스스.
에단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검은 연기가 아니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흑연이었다.
베오드라도의 붉은 동공이 흔들렸고, 그 모습을 본 에단은 비릿하게 웃었다.
“왜? 이제야 좀 다급하다 싶어?”
그런데 이미 늦었어.
에단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흑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에밀라의 눈이 흔들렸다.
“피, 피해야 합니다.”
그녀가 리사와 드레이를 붙잡고 거리를 벌렸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연기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걸.
베오드라도가 풍기는 기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음험했지만, 에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에단 씨…….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죠?’
에밀라가 학생들과 대피하면서 에단을 힐긋 바라봤다. 검은 연기를 뿜어낸 에단은 정면을 바라봤다.
처음 발동하는 룬어였다. 연기가 흘러나올 때는 에단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체 무슨 능력이지?’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룬어인 ‘절망’이 뿜어내는 검은 연기는 이제 멎었다.
에단이 주위를 둘러봤다.
코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검은 연기가 하나의 돔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연기로 만들어진 돔 안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느껴졌다.
에단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했고, 이 어둠은 에단의 오감이 되었다.
“꽤 마음에 드는걸?”
에단은 흑연으로 만들어진 ‘케이지’가 썩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