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00화 (100/398)

◈ [100화] 함정 (2)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에단이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 교수님께서 가시면 저희는 어떡해요?”

“맞아요! 지원 요청은 하셨어요? 차라리 나가서 지원을 불러요!”

“일단 여기서 내보내 주세요…….”

“또 그 괴물이 나타나면 어쩌죠? 교수님도 힘겹게 이겼는데…….”

비틀거리던 에단이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네? 그게 무슨…….”

에단이 무감정한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내가 너희들을 왜 책임져야 하지?”

에단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의 본분은 학생들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동급생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안위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태도에 짜증이 치솟았다.

“교수님이니까 당연히…….”

“집어치워. 나는 교수 그까짓 거 안 하면 그만이니까.”

“…….”

“내보내 달라고? 너희만 나가면 다른 학생들은 그냥 뒈지라는 건가?”

에단이 턱짓으로 쓰러져 있는 로만을 가리켰다.

“이 새끼가 한 말 못 들었어? 걔네 쪽이 여기보다 더 위험해. 잠깐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성자가 있으니 평범한 수준의 언데드라면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 급만 나와도 안 돼.’

데스 나이트와 싸워 보고 깨달았다. 이 녀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춘 적이 나오면 드레이는 손을 쓰지 못한다.

겨우 버티는 게 고작일 터. 시간이 없었다.

에단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죽은 마나를 과도하게 흡수한 탓에 몸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여야 했다. 학생들을 인솔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판했군.’

안일했다.

갈라진 두 길.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원을 나누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이 반의 담당 교수 또한 레벨린의 꼭두각시였기에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되었지만, 에단은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작과 이렇게까지 달라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적을 얕잡아 보았고, 신중하지 못했으며, 내면에 오만함이 자리 잡아 이 사달이 난 거다.

‘아직 멀었는데 말이야.’

에단의 경지는 아직 미약하다. 그런데도 자신감이 과했다. 에단은 방금의 싸움으로 그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몬스터는 더 안 올 거다.”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에단의 감각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근처에서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그 말을 어떻게…….”

“걱정되면 알아서 나가. 이미 지나온 길이잖아.”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생들도 알고 있었지만, 공포에 휩싸여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에단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기사와 마법사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것 아니었나?”

“…….”

학생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에단은 혀를 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시큰한 고통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최악이군.’

이래서 싸울 수나 있을까?

에단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불가능해.’

지금의 몸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운신하기조차 힘들었다.

‘그걸 가지고 온다고 하면?’

에단이 이 사건을 기다린 이유. 그 무기를 들고 오면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

‘안 돼. 시간이 없어.’

하지만 그러면 늦을 가능성이 높았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에단은 발을 움직였다.

발이, 온몸이 무거웠다. 의지를 충실히 수행하던 깃털 같은 몸이 아니었다.

전신이 물먹은 수건, 아니, 쇳덩이 같았다. 속이 들끓으며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

― ……잠시 멈추어라.

‘이 상황에서 어떻게 멈춰요. 빨리 가야지.’

― 어차피 이대로면 얼마 가지도 못해. 너는 너무 무리했어.

‘알고 있습니다. 무리는 일상이죠.’

― 농담할 상황이 아니다……. 위험한 방법이지만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그게 무슨…….’

― 이렇게 위험한 편법을 알려 주게 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몸에 있는 기운을 흡수해야 한다.

이 기운을 흡수해?

에단은 자신의 몸에서 사납게 날뛰는 죽은 마나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능력으로는 억누르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가능합니까?’

― 확신하진 못한다. 아니, 오히려 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봐야지. 하지만…… 이대로 가면 결과는 정해져 있어.

‘알겠습니다.’

― 먼저 자리에 앉아라.

페온의 목소리는 침중했다.

* * *

에밀라는 며칠째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인력은 넉넉한 편이 아닌 데다, 교수 몇은 용무를 보기 위해 휴가도 냈다.

본래라면 쉴 틈 없이 수업을 진행해야 했을 에밀라는 며칠째 정원만 걷고 있었다.

심지어 담임으로 있는 반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건 명백한 견제였다.

‘알고 있는 건가…….’

레벨린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고 확신한 에밀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에밀라는 레벨린을 가족으로 여겼다.

사람을 향한 불신을 레벨린이 치유해 줬기에, 에밀라는 그녀를 그 누구보다 믿고 따랐다.

하지만 그 무한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에단을 만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에단은 그녀에게 의심에 씨앗을 심어 뒀다.

의심의 씨앗이 싹트자,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를 속인 건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부모라고 여기던 존재가 그동안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니.

혼란스러웠고,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그러한 감정이 들며 에밀라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때 에단이 교수로서 아카데미에 찾아왔다. 에단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망설이지 않았다.

에밀라는 그런 에단이 신기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에단의 행동에서는 신중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획 없이 무턱대고 들이박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흘러갔다.

‘……나랑은 달라.’

자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가문을 등에 업은 채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에단은 스스로를 믿었다. 에밀라는 그런 마음가짐이 낯설었다.

반대로 에밀라는 언제나 본인에게 의구심을 품었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인형처럼 살아왔다. 스스로 생각을 할 필요도,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구원자라고 생각했던 레벨린과 만난 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에밀라의 자아는 지워진 채 레벨린의 의도대로 움직였으니까.

‘……레벨린을 의심하라는 말이 사실이었어.’

에단의 말을 의식하고 레벨린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눈에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레벨린도 자신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에밀라는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에밀라 교수님.”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간 믿고 동경하던 목소리였으니까.

에밀라가 자리에 멈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레벨린 님…….”

에밀라의 앞에는 레벨린이 서 있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가 지금은 딱딱한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에밀라의 가슴이 아려 왔다.

레벨린의 표정을 보며 에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방황은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요.”

레벨린의 눈이 에밀라를 응시했다.

깊고 맑은 눈이었다. 에밀라는 그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제가 오판했습니다. 그런 자와 어울리게 해서는 안 됐는데 말이죠.”

“…….”

레벨린이 말하는 자가 누군지 알아차린 에밀라가 침묵했다.

에밀라가 시선을 돌렸다. 레벨린을 똑바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에밀라가 바닥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그동안 저를 이용한 건가요?”

에밀라가 목이 멘 소리로 물었다.

레벨린은 한참 동안 에밀라를 바라봤다.

“……정말 암시가 풀렸네요.”

“……!”

레벨린이 말한 순간 에밀라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 그간 모든 게 전부…….”

레벨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묵묵히 에밀라를 바라보던 레벨린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에밀라는 그 미소가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요. 방해꾼은 사라졌으니,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방해꾼이 사라졌다니…….”

“당신을 망친 그 사람. 지금쯤 죽었을 거예요.”

그 순간 에밀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녀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에단 씨 말인가요?”

“네. 그자 때문에 힘들어하던 것 아니었나요?”

레벨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블란테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하하, 역시 정말 순수하시군요.”

레벨린이 소리 내어 웃었다.

손끝으로 눈물을 닦아 낸 그녀가 에밀라를 응시했다. 레벨린의 눈동자는 차가웠다.

“일련의 일은 모두 에단의 독단으로 처리할 겁니다. 만용을 부린 교수와 희생당한 학생들이라고 말이죠. 명분이 우리한테 있으면 제아무리 블란테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겠죠.”

맞는 소리다.

아무리 블란테가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무력 집단이라고 하여도 타당한 명분 없이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대륙의 연합체인 아카데미라면 더더욱.

블란테는 강해 봤자 혼자였다. 국가가 뭉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난받는 건 블란테의 망나니가 되겠군요.”

“……에단 교수님은 강합니다.”

“그거 의외군요. 패배를 했다지만 그 정도로 고평가할 줄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벨린이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거든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불행하게도 망나니 교수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겠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꽈득!

에밀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사나운 눈빛이 레벨린에게 쏘아졌다. 에밀라가 몸을 돌렸다.

“찾아가려 하시는 겁니까? 이미 늦었을 텐데요.”

“……늦지 않았습니다.”

그가 버텨 줄 것이다.

에밀라는 그렇게 믿었다. 그녀는 몸을 숙여 다리에 마나를 집중했다. 에밀라가 지면을 박차자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밀라가 사라진 장소를 말없이 지켜보던 레벨린이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군요.”

암시는 한번 풀리게 되면 되돌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에밀라는 마크처럼 쉽게 버리기에는 아까운 패였다.

“먼저 찾아가 주면 고마운 일이죠.”

베오드라도는 리치였다. 아니, 리치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은 그를 폄하하는 일이었다.

그는 레벨린이 숭배하는 존재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힘을 쓴다면 에밀라는 다시 레벨린의 충실한 종이 될 것이다.

‘모든 건 전부…….’

그녀의 염원을 위해서였다.

* * *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이 죽을 리 없다.

에단은 강했다. 힘과 경지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에단은 정신적으로도 강한 사람이었다. 곁에만 있어도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늘 자신감과 배짱이 가득했고, 그것을 결과로 입증해 온 사람이었다.

‘더 빨리……!’

초조함이 엄습했다.

이미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이조차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에밀라가 이를 악물었다. 마나를 최대한으로 가용하여 더욱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 * *

“큭!”

드레이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리사는 화구를 얻어맞고 공중을 날았다.

두 사람의 행동은 제약되어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학생들이 몸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량의 차이가 확연함에도 페널티를 안고 있는 쪽은 학생들을 지키는 드레이와 리사였다.

드레이가 아무리 찬란한 신성력을 발휘해 봤자, 눈앞에 있는 괴물의 손짓 한 번이면 사그라졌다.

괴물은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목을 내줄 수도 없었다.

두근두근.

드레이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벽에 부딪힌 리사도 몸을 일으켰다. 리사의 얼굴에서 피가 떨어졌다.

“더럽게 아프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낸 리사의 눈은 아직 포기의 빛을 띠지 않았다. 드레이도 검을 바로 잡았다.

“흠, 슬슬 질리는구나.”

베오드라도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만으로도 두려웠지만 두 사람은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겁을 먹으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율리가 주먹을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난 약해.’

우리 때문이다. 우리가 짐이 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저들도 몸을 빼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여기서 몸을 떠는 게 전부야?

이럴 바에는 죽는 게 낫다.

율리가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교수님!”

율리가 소리쳤다. 그가 올 거라는 희망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끄럽구나.”

베오드라도가 손을 들었다. 검은 마나가 뼈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에 응집되었다.

드레이와 율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생했어.”

스르륵―

마치 그림자가 움직이듯이 모습을 드러낸 은발의 여인.

“이제 내가 지켜 줄게.”

에밀라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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