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리치 베오드라도 (4)
터벅터벅.
피가 뚝뚝 흐르는 에단의 모습은 마치 악귀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로만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자, 잘못 건드렸어.’
에단이 하찮은 평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멈춰야 했다.
아니, 그전에 에단과의 승부에서 패배했을 때 승복해야 했다. 분노에 이성을 잃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직 갈기도 채 나지 않은 어린 사자라 여기고서 얕보고 말았다. 에단은 어린 사자가 아니라 교활하기 그지없는 다 큰 사자였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었고, 로만은 그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에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 흡사한 사납고 거친 음성이었다. 목소리에서 에단의 감정이 느껴졌다.
로만은 입을 다물었다. 변명 따위가 통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에단이 주먹을 움켜쥐었고.
후웅!
이내 주먹이 로만의 얼굴 앞에 당도했다. 강한 풍압이 로만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여기서 뒈질래, 아니면 전부 깔래?”
“전부 말하겠습니다.”
로만은 일말의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
* * *
“……그 말이 사실이라고?”
에단이 얼굴을 찌푸렸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에단은 레벨린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뒷배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데스 나이트가 전부가 아닐 터.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로만의 동공이 흔들렸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로만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에단은 말없이 로만을 응시했다.
‘오판했어.’
자신도 안일하게 생각했다. 눈에 훤한 함정이라 여겨 로만을 얕잡아 봤다.
하지만 등장한 데스 나이트는 에단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다.
짜증이 일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반대쪽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판단은 내가 하지 않을 거야.”
에단은 로만을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 둘 생각이었다.
에단의 손날이 로만의 뒷목을 가격했다.
빠악!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로만의 눈이 뒤집혔다. 에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로만을 바라봤다.
‘이게 실제로 되는구나.’
에단이 학생들을 바라봤다. 학생들은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말을 마친 에단이 들어왔던 길을 바라봤다.
‘내가 갈 때까지는 버텨라.’
녀석이라면 잠깐은 가능하다.
특히 상대가 그쪽 계열이라면 잠재력은 더욱 폭발적일 것이다.
* * *
푸욱.
살을 꿰뚫은 섬뜩한 소리. 드레이는 몬스터의 목을 관통한 검을 끄집어냈다.
촤악!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
학생들은 입을 다문 채 드레이를 따라갔다.
서걱!
선두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이는 드레이뿐만이 아니었다. 리사도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검이 어둠 속에서 빛나자, 몬스터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리사는 아름다웠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검무에 붉은 피가 꽃처럼 피어났다.
“……리사가 저 정도였어?”
“나도 모르겠어…….”
율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누구보다 가깝다고 여겼던 리사가 멀게만 느껴졌다. 율리는 리사의 옆을 힐긋 바라봤다.
하나하나 몬스터를 도살해 나가는 드레이.
여러 몬스터를 한 번에 처리하는 리사와 비교하면 초라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드레이에게 더욱 쏠렸다.
드레이는 존재감이 옅은 학생이었다.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자신을 과시하지 못해서 안달인 로만과는 전혀 상반되는 케이스였다.
최근에 에단에 의해 반장이 된 이후 학생들의 주목을 조금 받게 되었지만, 이전과 다름없는 행동으로 그 관심도 시들어 갔다.
말 없고, 순한 캐릭터.
그게 드레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드레이와 전혀 달랐다.
실력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드레이의 움직임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공격을 피하고 다가가 찌른다.
지극히 단순한 일련의 동작이지만 드레이는 그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렇기에 학생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런 감상을 느끼기는 리사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의 머릿수를 주도적으로 줄이는 쪽은 리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드레이에게 기가 눌렸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리사도 드레이를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검술 수업 때 몇 번 검을 겨룬 적은 있었다. 그때마다 리사의 감상은 똑같았다.
‘실력은 괜찮네.’
기본기가 탄탄한 녀석.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리사는 눈이 높았다.
평생을 보고 자라온 게 블란테의 기사였으니, 당연히 보는 눈이 높아지고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리사는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드레이의 검이 리사의 옆을 지나갔다.
키, 키에엑…….
고블린 하나가 목이 관통당한 채 쓰러졌다.
“조심하시죠.”
드레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향했다. 어둠은 짙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드레이가 뒤를 돌자, 학생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라이트 좀 켜 줄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라이트 마법이 발현되었고, 이내 학생들은 드레이와 리사를 앞세워 더욱 깊은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드레이의 옆으로 리사가 따라 걸었다.
앞을 보며 걷던 드레이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리사에게 물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어. 고블린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아, 그렇습니까?”
“……너 반응이 그게 뭐야?”
리사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드레이는 리사의 말을 들은 시늉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말을 잘 못 합니다.”
“너 원래 이런 캐릭터였어? 아니잖아. 원래 좀 맹하고 멍청하고, 말도 없고…….”
“……그 정도였나요?”
드레이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리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야. 단지…… 조금 의외라서.”
“뭐가 의외죠?”
“몬스터 상대하는 거. 어릴 때부터 해 왔어?”
“네, 뭐…….”
드레이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기색이기에 리사는 입을 다물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듣던 학생들 사이에도 침묵이 감돌았다.
‘또 불편하게 만들어 버렸군.’
입맛이 썼다.
불편함이 싫어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 사람들이 자식을 의식하는 것이 버거웠다.
아카데미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을 뽐내는 또래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신과 다른 것을 보면 동경과 선망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드레이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조금 힘들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드레이는 서글픈 웃음을 지은 채 동굴로 전진했다.
드레이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해.’
이건 실전이기도 했지만 엄연한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안위가 최우선이다.
던전 탐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살상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너무 얼어 있어.’
드레이가 뒤를 돌아보자, 겁을 집어먹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아카데미에는 엘리트들만 모여 있었다.
던전 탐사가 처음이면 모를까, 이 정도로 겁을 먹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야.’
야생 동물이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는 것처럼.
이건 인지의 영역을 뛰어넘는 본능의 영역이었다.
‘나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나 보군.’
그래서 선두를 자처하고, 이전에 드러내지 않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드레이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앞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애초에 아귀가 맞지 않아.’
교수가 참관하지 않는 던전 탐사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드레이가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제외한 다른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는 학생들뿐이었다.
‘애초에 학생들을 나눈다고? 뭐 때문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야, 너 왜 그…….”
갑자기 멈춰 선 드레이를 향해 리사가 물었다. 드레이의 상태가 이상했다.
드레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집중하고 있는 오감에 무언가가 잡혔다.
‘이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격렬한 거부감과 함께 구역질이 치밀었다. 강렬한 두통도 동반되었다.
드레이가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리자, 리사가 다급하게 부축했다.
“야, 너 갑자기 무슨…….”
“피해야 합니다.”
대항은 불가능하다.
상대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죽은 마나가 느껴졌다. 이는 누구보다 드레이가 잘 알았다.
불길하고 섬뜩한 기운이었다. 도사리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감히 예측도 할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스스로를 숨기고 있음에도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던전 탐사?’
웃기는 소리.
이건 자살행위다. 어느새 드레이의 팔에는 닭살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다들 도망……!”
그 순간, 드레이만 느꼈던 기운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쿵!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라이트가 꺼지며 심연 같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뭐, 뭐야!”
“라이트가 꺼졌어!”
“빨리 켜!”
혼란이 퍼져 나갔다. 드레이가 급하게 몸을 돌려, 전방에서 느껴지는 존재에게 시선을 던졌다.
돌발 상황에 당황하기는 리사도 매한가지였다. 리사도 감각이 뛰어나 드레이와 똑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리사는 블란테의 적통이었다. 뛰어난 기사들과 함께 수련하며 성장했으며 그곳에는 첸과 빈센트 같은 괴물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리사는 상대방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도망가야 한다.
승산이 없다. 이길 수 없다.
에단과 맞붙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이었다. 에단은 단련된 무인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충분히 겨뤄 볼 수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가슴을 옥죄는 듯한 두려움이 치밀어 올라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내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 허억!”
“끄, 끄윽……. 나 갑자기 숨이…….”
“리, 리사! 어디 있어?”
학생들이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하나둘 바닥에 엎어졌다.
그중에서 리사에게 익숙한 율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율리! 잠깐…….”
“멈추세요.”
드레이가 손을 들어 리사를 막아섰다. 리사가 자신을 막아서는 드레이를 향해 분노를 토해 내려다 참으며 말했다.
“왜 막아서는…… 뭐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려져야 할 드레이의 모습이 리사의 눈에 들어왔다.
착각이나 환영이 아니었다.
드레이의 머리칼이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