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95화 (95/398)

◈ [95화] 리치 베오드라도 (1)

스스스.

레벨린이 목함을 열자 불길하고 음험한 검은 연기가 치밀어 올랐다.

검은 연기는 일정한 윤곽을 따라 뭉치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검고 윤기 나는 뼈가 드러나고,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요사스러운 붉은 안광이 대신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레벨린은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며 흠칫 몸을 떨었다.

‘……위압감이 이 정도라니.’

이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가지는 존재감은 과연 어느 정도란 말인가.

레벨린은 들끓는 가슴을 억누른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그만하거라.”

쇠가 부딪치는 듯한 불쾌한 음성.

그 음성에는 사람의 심령을 옥죄는 것 같은 강제력이 느껴졌다.

“현신한 육신은 마음에 드십니까?”

“……흠, 나쁘지는 않군. 꽤나 쓸 만한 놈이었나 보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제물을 물색하긴 하였으나, 최상급의 제물은 찾지 못했습니다.”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정도만 해도 네가 말한 놈들에게는 과분한 정도니까.”

붉은 안광이 기분 좋은 듯 흔들렸다.

“베오드라도 님. 준비는 마쳤습니다. 몬스터의 수, 그리고 사체의 수 모두 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고생했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정말입니까?”

베오드라도의 말에 레벨린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충복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법이지.”

“감사합니다.”

레벨린이 머리를 깊게 숙였다. 베오드라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것’은 찾았느냐?”

베오드라도의 물음에 레벨린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송구합니다. 최선을 다해 찾고 있으나 아직…….”

“흠……. 빨리 찾는 것이 좋을 것이야. ‘죽은 나무’는 우리의 계획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까.”

“그 정도로 중요한 물건입니까?”

레벨린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베오드라도를 바라봤다.

붉은 안광과 마주하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궁금한 게 많구나.”

“죄송합니다.”

레벨린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베오드라도는 가만히 레벨린을 바라봤다.

“마음은 이해하나, 조급해하지 말거라.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

“명심하겠습니다.”

레벨린은 그리 대답하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가장 조급한 것들은 너희들이면서……!’

화가 치밀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둘의 상하 관계는 명확했고, 그녀는 감정을 숨기지 못할 만큼 미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오드라도의 눈에는 그런 레벨린의 속마음이 빤히 보였다.

“그러면 먼저 자리를 잡아야겠군.”

유쾌한 음성으로 말한 베오드라도가 레벨린을 흘겨봤다.

‘우둔한 녀석.’

헛된 희망을 가진 채 발악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래도 이용 가치는 충분하니.’

적당한 과실을 보상으로 내걸면 알아서 열심히 움직였다.

레벨린이 하는 일에 비하면 그들이 주는 보상은 정말 실낱같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인 것이지.’

베오드라도는 웃음을 삼킨 채 몸을 움직였다.

* * *

“자, 슬슬 일어나지.”

에단의 말이 떨어지자, 학생들이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동굴 앞에 서자 다시금 긴장감이 차올랐다.

“왜 이렇게 겁을 먹었어?”

리사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율리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긴장을 안 해…….”

“이번이 처음이야? 아니잖아. 겁먹지 마.”

덤덤한 위로였지만 그 무덤덤함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율리는 묘한 표정으로 리사를 지그시 바라봤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되게 멋진 척하네.”

“뭐라고?”

리사가 인상을 찌푸리자, 율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조언해 줘서.”

“……별로. 그리고 걱정 마. 위험하면 내가 구해 줄 테니까.”

“정말이지? 믿고 있는다.”

율리가 밝게 미소 짓자, 리사도 마주 입꼬리를 올렸다.

에단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제법 잘 지냈나 보군. 저런 친구도 사귀고 말이지.’

― 너랑은 다르게 저 아이는 사회성이 있구나.

‘저도 사회성은 넘칩니다.’

페온의 말에 짧게 반박한 에단이 몸을 돌렸다.

“자, 다들 준비됐나?”

“넵!”

우렁찬 대답에 에단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는 끝났다. 어제 한 피구 같은 게 아니야. 갑작스러운 실전에 당황스러우리라 생각하지만…….”

에단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들 그러려고 온 거잖아?”

에단의 말에 리사가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좋아. 학생들이지만 군대 못지않네. 역시 엘리트들이야. 걱정하지 마라. 위급 시에는 내가 나설 테니까.”

에단을 필두로 각오를 다진 학생들이 동굴에 입장했다.

* * *

이 던전은 인솔 교수가 한 명만 붙는 게 이상한 곳이었다.

바로 갈림길 때문이었는데, 입구는 하나여도 음습한 동굴을 걷다 보면 길이 두 개로 나뉘었다.

‘인솔 교수가 나 혼자인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인솔과 안전.

갈림길이 존재하는 던전에서는 혼자서 책임지기 어려운 과제들이었다.

에단의 몸은 하나였고, 학생들은 다수였으니까.

아무리 에단이 능력이 좋고 뛰어난 교수라고 한들 모든 학생들을 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두 개로 나눠진 길.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인력 충원을 요청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응해 줄 리가 없지.’

애초에 짜여진 판 위에 올라선 것이니 인력이 지원될 리는 없었다.

‘원작에서는 왼쪽이었지.’

원래라면 학생들을 둘로 나누는 것도 미친 짓이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학생들을 모두 이끌고 길 한쪽씩 들어가 보는 게 옳은 선택.

‘그래서는 녀석의 각성이 이뤄지지 않겠지.’

에단은 이번 사건을 눈여겨보던 드레이 각성의 초석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그때, 로만이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저희들의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한 던전 탐사 아닙니까? 인원을 나누도록 하죠.”

‘아예 저의를 숨길 생각이 없는 놈이군.’

너무 대놓고 의사를 드러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에단이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래? 일리가 있군. 로만 너는 어디로 가고 싶지?”

에단의 반응에 로만이 씨익 웃었다.

“저는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너는 왼쪽으로 가라.”

로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인원을 나누자는 건 네가 말한 제안이잖아. 너는 왼쪽으로 가면 되겠네. 모두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는 없으니 내가 임의로 정한 건데, 불만 있나?”

로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시선을 돌린 에단이 이번엔 드레이를 바라봤는데, 그는 묘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드레이, 너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지?”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지금 무슨……!”

명백한 차별에 로만이 발끈했지만, 에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럼 교수를 하지 그랬어. 아니면 아버지한테 이르든가.”

명백한 조롱에 로만이 주먹을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과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좋습니다. 왼쪽으로 가죠.”

“잘 생각했어. 자 그러면 이제 나누도록 하지.”

에단이 학생들을 배정했다. 힘의 균형은 치우쳐져 있었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학생들이 우측에 몰려 있는 탓이었다.

왼쪽 방향을 배정받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수님, 배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이건 불공평합니다.”

에단은 예측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학생들을 바라봤다.

“뭐가 불공평하다는 거지?”

막상 에단이 묻자,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왜? 스스로 본인의 역량이 낮다고 말하기는 민망한가?”

에단이 품에서 종이 조각을 하나 꺼냈다.

“이건 너희들의 성적표다. 뭐, 이전 성적을 인계받지는 않았어. 나는 고정 관념을 가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너희들이 많이 반발했던 체력 성적. 이번 배정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물론 마법이나 학문이 전공인 학생들에게는 불리한 시험이니 그 부분은 감안했고.”

“…….”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뭐, 내 교육 방침이 옳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한 가지는 잊지 마라.”

에단이 학생들을 주르륵 훑어봤다.

“경쟁심을 가지도록. 아카데미는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야. 이곳에서의 성적과 역량은 추후 너희들의 권력이 된다.”

아카데미의 영향력은 현대의 학벌주의보다 더욱 심했다. 이곳은 신분 제도가 존재하는 세계였으니까.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에단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왼쪽으로 들어갈 테니까.”

배정을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 * *

리사와 드레이, 학급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둘이 오른쪽 입구에 들어섰다.

긴장한 듯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드레이와 무덤덤하게 별다른 표정 변화 없는 리사, 그리고 그 뒤에는 율리와 다른 학생들이 따라붙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언제든지 몬스터가 출몰할 수 있으니 긴장을 놓지 마.”

리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알겠어.”

“목소리를 낮춰, 율리. 어두운 장소에 상주하는 몬스터들은 귀가 밝아.”

리사의 경고에 율리가 입을 가렸고, 드레이는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드레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상당히 익숙해 보이네요.”

“글쎄,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들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요.”

“기분 탓이야.”

리사는 아무렇지 않게 답을 하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가문 덕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산맥을 마주하고 있는 블란테는 지리적 특성 탓에 늘 몬스터와 밀접한 삶을 살고 있었다.

빈번하게 습격하는 몬스터들, 그리고 겨울철이 되면 정기적인 토벌까지 나섰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몬스터의 습성에 관해서는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다.

자연스럽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블란테의 기사들은 몬스터에 관해서는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묘한 시선으로 리사를 바라보던 드레이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어둠을 응시하던 드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 동공은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방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아마…… 코볼트로 보이는군요.”

리사가 황당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드레이를 바라봤다.

“저 어둠 속이 보인다고?”

“네. 제가 눈이 좀 좋습니다. 한센 씨, 라이트 마법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드레이가 고개를 돌려 마법사 학생에게 부탁했다.

“아, 알겠어.”

한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을 감고 라이트 마법을 위한 구절을 읊조렸다.

“빛이여 어둠을 밝혀라. 라이트(Light).”

영창을 하자 이윽고 허공에 빛의 구가 형성됐다. 눈부실 정도로 밝지는 않았지만, 어둠이 어느 정도 걷히는 빛이었다.

크크릉.

야수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코볼트 한 마리가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코볼트야.”

코볼트를 발견한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리사의 얼굴이 획 하고 돌아가 드레이를 바라봤다.

‘……얘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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