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의심의 씨앗 (1)
일련의 상황이 정리되자 휴고와 가토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이 시작되고 우물쭈물하던 헨리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어쌔신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가토, 넌 알아?”
“멍청한 놈.”
마차를 몰던 가토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당연히 기사단이 움직이겠지. 블란테를 무시하고 도발한 상황인데.”
“그건 아는데…… 숨어 지낼 게 빤한 녀석들인데 어떻게 처리하나 궁금해서…….”
“……어떻게 잘하지 않을까?”
기사 서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은 가토도 매한가지였다.
마차 뒤편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네이드가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평범한 기사단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요?”
“네, 어쌔신은 도망치는 데에 도가 튼 놈들인지라 평범한 기사단으로는 쫓기가 쉽지 않죠.”
“그렇다면 대체 누가…….”
“아마 ‘추적하는 사자’가 움직일 겁니다.”
휴고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지만, 가토는 무언가 들은 게 있는 듯 상념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추적하는 사자는 소문에 불과한 것 아니었습니까?”
가토의 물음에 네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소문이 아니더군요.”
네이드의 미소가 씁쓸하게 바뀌어 있었다.
“가문에서 단순하게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가주님과 첸 경, 그리고 그 두 분이 이끄는 흑사자 기사단이 최강이겠지만…… 특정한 목적을 목표로 하는 일에선 ‘추적하는 사자’들을 결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휴고와 가토의 입이 벌어졌다. 흑사자 기사단을 뛰어넘을 정도라니…….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네이드가 더 이상 말을 꺼내기 싫어하는 눈치인 것 같자, 일행들도 더는 묻지 않았다.
‘……무서운 놈들이지.’
추적하는 사자.
손에 피를 묻히는 자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자들이다.
‘놈들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
빈센트를 암살하려고 잠입한 그날.
가장 먼저, 추적하는 사자들이 네이드의 냄새를 맡았다.
당황했다. 잠입 도중 발각당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
그 섬뜩한 모습과 잔혹한 전투 방식.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광전사 같은 집요함.
‘일신의 무력보다도…… 그 집념이 무서운 법이지.’
추적하는 사자의 단장은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마스터는 선택받은 자들이 인고의 노력 끝에 올라가는 경지였다.
하지만 추적하는 사자의 단장은 마스터 정도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마스터보다 더욱 위협적인 녀석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자, 네이드는 고개를 저어 저 밑바닥으로 떨쳐 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정리는 확실히 되겠군.’
그들은 어쌔신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심지어 나태와 오만에 젖어 약해진 놈들이 상대라면 더더욱.
‘별로 힘도 들이지 않겠어.’
과거의 잔재를 털어 낸 네이드는 마차에 기대 눈을 감았다.
* * *
‘흠……. 왠지 모르게 찝찝하단 말이지.’
삼자대면을 마친 에단은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분명 순탄하게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뭔가가 가슴에 걸렸다.
미묘한 찝찝함.
‘보통 이럴 때면 뭔가 있던데.’
레벨린이 할 수 있는 선택지로는 뭐가 있을까?
그녀가 쓸 수 있는 패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애초에 그것을 노리고 압박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심지어 목적을 숨긴 채 천천히 조이는 것도 아니다. 이유 없는 적의는 시작부터 드러냈으니까.
‘그렇기에 적당히 대비책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니까.’
레벨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렇게 대놓고 숨통을 압박하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그래서 찝찝하단 말이야.’
적어도 오늘은 확실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게 에단이 원하던 것이었고.
그걸 위해 시행한 삼자대면이었다.
‘좋아, 더 기다려 보지.’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슬슬 일행이 세계수에 다다를 테고, 녀석들의 허락을 맡으면 에단이 이동하면 된다.
‘여기서 얻을 것이라고 하면…….’
지금 에단에게는 구태여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검.’
그것도 성검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검이자, 그의 아이덴티티.
‘비루한 재능을 커버하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지.’
원래 에단은 성검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쥐고 있으면 귀찮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 새끼는 왜 사라져 가지고.’
골치가 아파 왔다.
에단이 복잡한 한숨을 내쉬며 정원을 걷고 있자, 에밀라가 에단에게 다가왔다.
“……대화는 끝냈습니까?”
대뜸 다가온 에밀라를 에단이 멀뚱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는 할 일 없냐?”
“그게 무슨……. 제가 궁금해하는 게 이상합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내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아서.”
“자, 자의식 과잉입니다!”
“흠……. 뭐 그렇다고 하고, 대화는 계획대로 잘 끝냈어. 아니, 계획보다 수월했다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더 찜찜하단 말이지…….”
“…….”
에단의 말에, 믿고 따르던 레벨린과 적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한 에밀라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페온이 말했다.
― 너만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지겠구나.
‘어차피 그 상태면 속 터져도 안 죽지 않습니까? 아, 이미 죽은 상태인가?’
― …….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페온이 입을 다물었다. 시무룩해진 페온을 무시한 에단이 정원을 거닐며 물었다.
“이제 곧 수업 시간인데 이제 더할 참견은 없는 건가?”
“없습니다. 아, 설마 오늘도 전과 같은 무식한 수업을 하려고 하십니까?”
“아니. 체력 측정은 끝나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오늘은 애들이 좋아하는 걸 시켜야지.”
“좋아하는 거라니요?”
“어, ‘피구’라고 애들이라면 환장하는 게 있어.”
“……피구?”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에 에밀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에밀라에게 에단이 씨익 웃어 줬다.
“궁금하면 쉬는 시간에 놀러 오든가.”
어차피 피구는 쉬는 시간이 없거든.
* * *
에단의 수업은 점점 악명 높아지고 있었다.
갈수록 몸이 힘들고 피폐해지지만, 정작 보람은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그런 경쟁을 즐기는 자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그러지 못했다.
“……죽을 거 같아. 아직도 몸이 풀리지 않았어.”
“설마 오늘도 비슷한 수업은 아니겠지?”
“차라리 나를 죽여 줘…….”
“왜? 나는 나름대로 할 만하던데. 내 체력 상태도 알 수 있고.”
“너는 변태가 분명해. 내 옆에 얼씬도 하지 마.”
반응은 격렬했다.
느낀 적 없는 강한 근육통에 교실 내부에선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때 에단이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쾅!
“힘세고 강한 아침.”
박력 넘치게 문을 열어젖힌 에단이 교실을 둘러봤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학생들의 얼굴은 전반적으로 초췌했다.
“왜 이렇게 인상이 안 좋아? 무슨 안 좋은 일들 있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학생 한 명의 볼멘소리에, 에단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봤다.
“정말 모르겠는데? 설마 어제 그 몸풀기 수준의 스트레칭으로 지금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 건 아니겠지?”
“그게 몸풀기라고요?!”
“교수님이 해 보세요!”
“맞다! 맞아!”
우우우!
학생들의 야유와 볼멘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에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나는 운동을 쉬지 않아.”
“그걸 어떻게 믿어요?”
리사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리사의 말을 지지했고, 에단은 그런 그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뭐……. 외설스럽기는 하지만 증명해 줄 수밖에.”
에단이 옷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교, 교수님!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에단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단추를 마저 풀었다.
“왜? 궁금하다며?”
에단이 씨익 웃으며 상의를 벗어 던졌다.
여학생들은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고, 남학생들은 심드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한 듯 에단을 바라봤다.
“와…….”
하지만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반응은 모두 같았다.
짙은 탄성.
조각 같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에단의 몸은 살아 있는 예술품 같았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예술품이라기에는 흉악함도 함께 존재했다.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근육들, 그리고 그 위에 두드러져 있는 핏줄.
그들의 눈앞에는 강철 같은 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사람 몸이야?”
“……저게 가능하다고?”
“혈관이 무슨…….”
학생들이 입을 벌리며 몸을 감상하자, 에단이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광배를 기점으로 뻗어 나간 흉측한 근육들.
“미, 미친!”
“오, 오우거다! 등에 오우거가 달려 있어!”
마치 오우거가 울부짖는 것 같은 등 근육.
― ……좋냐?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페온의 음성을 가볍게 무시한 에단이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여학생들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끔뻑이는 남자 학생들.
“체력과 근력의 중요성은 일전에 몸소 보여 줬고, 그에 따른 부가 효과도 오늘 보여 줬다.”
반응을 즐기던 에단이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저, 저도 그런 몸이 될 수 있습니까?!”
한 남학생의 물음이었다.
순간 에단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육체미.
건장하고 강한 몸.
학생들에게는 낯설지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는 기사라는 존재가 희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가는 기사는 병기나 진배없었고, 그만큼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사람은 본 적 없어.’
기사들의 몸에 근육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로 검을 휘두르며 단련을 하다 보니 근육이 자라는 부위가 정해져 있었고, 그만큼 지방도 같이 껴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해, 아름답지가 않았다.
물론 기사가 아름다운 몸을 추구하는 자는 아니다.
주군을 수호하는 방벽이자, 적들을 처단하는 검인 기사는, 언제나 명예와 강인함을 추구해야 한다.
학생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에단이 보여 준 ‘육체미’는 고정 관념을 머릿속에서 지우기에 충분했다.
“될 수 있냐고? 당연히 불가능하지.”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단번에 실망한 듯 빛을 잃었다. 에단은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 수업을 충분히 듣는다면 가능하다. 내 운동량은 고작 어제 한 게 전부가 아니거든.”
학생들이 다시 반색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알기 쉬운 놈들.’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직 때가 타지 않은 녀석들이다.
에단이 뒤편을 바라봤다. 로만은 가만히 에단을 노려보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쟤는 아직 모르나 보네.’
조만간 더럽게 깨질 텐데.
‘그러고 보니 그놈은 왜 안 보이지?’
크러쉬는 복귀하고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에단의 눈에는 단 한 번도 띄지 않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에단을 피하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도 안 보이고. 뭐,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애당초 그렇게 비중이 큰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때, 로만 옆으로 아카데미의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다가섰다.
그러고는 그가 귓속말을 건네자, 로만은 당황해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로만이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섰고, 학생들의 시선은 일순간 로만에게 쏠렸다.
‘얼씨구.’
시작됐구나.
에단은 심심한 조의를 표하고 로만을 기억에서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