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86화 (86/398)

◈ [86화] 오만의 대가 (4)

‘에단 블란테라고?’

리사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지금 에단이 내뱉은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일단 발뺌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황한 것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리사의 생각일 뿐이었다.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누, 누가 더듬었다는 겁니까?”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리사의 모습에 에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왜? 간만의 재회라서 감동이야?”

“그 인간 말종이랑 재회하는 데 무슨 감동을…… 헉!”

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늦고 말았다. 그녀의 말에 에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지금 인정했네?”

“하아…….”

리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표독스러운 눈초리가 꽂혔지만, 에단은 어깨를 으쓱였다.

“눈빛이 불순하다?”

“그러면 지금 좋게 생겼어?”

리사의 말투가 평대로 바뀌었다.

“당신…… 정말 에단 맞아?”

“오라비한테 말버릇이 왜 그래?”

“그쪽이 제대로 된 오빠 노릇을 했어야 대우를 해 주지.”

리사가 한 걸음 다가가 에단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재수 없는 눈빛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허…….”

“그래서 잘난 블란테의 차남께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뭐겠어. 건방진 여동생 얼굴 한번 보려고 왔지.”

“개소리하지 말고.”

“편지를 그딴 식으로 보냈으면서 이 정도도 예상 못 했어?”

“그러는 본인은 애초에…… 하, 말을 말자.”

에단이 팔장을 낀 채 벽에 몸을 기댔다. 삐딱한 에단의 자세에 리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불만이야?”

“어.”

“꼬우면 교수하든가. 아, 그럴 능력은 안 되나? 이미 한번 경험했지?”

“너……!”

리사가 으르렁거리자, 에단이 피식 웃었다.

“내가 원하던 반응이야. 마음에 드는군.”

― 너랑 성격이 판박이구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페온의 말을 단호히 반박한 에단이 가늘게 뜬 눈으로 리사를 바라봤다.

“가문은 뭐 하러 숨기는 거지? 날파리들만 꼬이는 것 아닌가?”

“……그쪽이 상관할 바가 아닐 텐데?”

“왜 상관할 바가 아니지? 네 오빠인데.”

리사가 경멸의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이제 와서 무슨 오빠 노릇이야? 네가 한 짓은 기억하지도 못하나 보지?”

‘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거야, 이 새끼는.’

에단의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그렇기에 과거에 에단이 어떤 짓들을 저지른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오빠 노릇을 하려는 건 아니고, 나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입장?”

“너 따라다니는 녀석. 걔가 일을 하나 저질렀어.”

“……누구를 말하는 거지? 설마 율리를 말하는 거야? 걔가 그럴 애는 아닌데.”

“걔는 아니고, 로만이라고 너보다 먼저 나한테 깨졌던 녀석.”

“로만? 그 새끼가 대체 뭘?”

“글쎄다. 궁금해?”

에단이 미소를 머금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리사의 이마가 다시 찌푸려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

“조금?”

“너……!”

“뭐, 그러면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걔가 벌인 일의 수위가 꽤 높아. 가문을 건드렸거든.”

에단이 내뱉은 말에 리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블란테를 건드렸다고?

블란테가 거론된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가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리사의 일상은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자세히 설명해 줘.”

“그때 일로 나한테 앙금이 남아 있었나 보더라고. 뭐 나를 건드린 거면 관대하게 넘어가 줄 생각이 있었는데, 하필 선을 넘어 버렸네?”

“설마…….”

“의뢰 내용은 내 주변 인물의 암살, 납치였어. 직계 가족을 포함한 전부.”

“미친…… 그걸 말이라고.”

“너도 알고 있겠지? 가문에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

리사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먼저 건드렸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가문이었다.

“그 머저리 같은 녀석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래도 너한테는 한 가지 희소식이 있어.”

“……희소식?”

에단의 말에 리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리사는 간절했다.

힘만을 추구하는 가문은 진저리가 나 떠나왔는데, 이제 와서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힘들게 얻어 낸 자유와 일상.

블란테가 개입한다면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질 게 빤했다.

“으음……. 말을 해 줘야 하나?”

“……빠드득!”

“오우, 너 이빨 부서진 거 아니야?”

리사의 속은 타들어 갔지만 에단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리사의 눈빛을 바라보던 에단이 농담을 멈췄다.

“하나뿐인 여동생이니까 말해 주지. 아직 가문에서는 모르는 사실이야. 내가 말을 안 했거든.”

“그렇다면……!”

“그런데 내가 보고를 안 할 이유가 있을까?”

리사는 에단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차가웠다.

“내 주변 인물이 습격을 받았어. 만일 나와 그들이 약했다면 모두 죽었겠지.”

“…….”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너랑 그 새끼들의 형편을 봐줘야 할 이유가 뭐지?”

“……부탁이야.”

리사가 에단을 바라봤다. 리사의 눈은 진지했다. 가만히 리사를 응시하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좋아, 들어주지.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왜? 싫으면 지금이라도…….”

“아니야! 말만 해! 시키는 건 다 할게!”

“일단 나랑 말을 먼저 맞추자고.”

에단의 음흉한 미소에 리사는 몸을 떨었다.

* * *

“허억, 허억……. 나 죽어…….”

연무장에는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단의 체력테스트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시업을 시작으로, 스쿼트,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부위별로 시행된 성적 나누기에 학생들은 승부욕을 느꼈다.

‘내가 저 녀석보다는!’

‘죽더라도 쟤는 이긴다!’

물론 기사가 목표인 무투파와 마법이나 학자가 목표인 지식파는 서로에게 경쟁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가는 길과 목표가 달랐으니까.

하지만 같은 계열의 학생들은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무투파는 무투파끼리, 지식파는 지식파끼리.

혈기왕성한 나이대 학생들의 승부욕은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리사 쟤는 괴물 아니야?”

리사의 기록은 압도적이었다.

남녀 학생을 통틀어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표정 보여? 완전 독기를 품었는데?”

“그러게……. 교수님한테 불려 가서 무슨 소리 듣기라도 했나?”

“저렇게 잘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 들을 게 있어?”

“그건 그래…….”

2위인 반장 드레이와 큰 격차를 벌리고 있는 리사는 뛰어난 기록으로 다른 학생들의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리사는 엄청난 속도로 턱걸이를 진행하면서 힐긋 다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시선이 향한 장소는 바로 로만이 있는 곳, 로만과 리사의 시선이 교차했다.

로만을 바라보는 리사의 눈빛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로만이 이를 악문 채 운동에 집중했지만, 리사를 좇기는 무리였다.

속도를 올리던 로만은 결국 체력의 한계를 맞이해 퍼졌고, 리사는 이번에도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여기까지.”

에단의 말에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육체적으로 이렇게 고된 수업은 처음 겪었다.

학생들이 단내 나는 숨을 헐떡였다. 연무장은 땀과 열기로 가득했다.

“그럼 이제 성적을 발표하지. 1등은 리사. 그 뒤로 드레이…….”

에단이 순서대로 호명하자, 학생들의 희비가 갈렸다.

경쟁심을 느끼던 이를 이긴 학생은 기뻐했고, 패배한 자는 분함을 느꼈다.

로만의 성적은 무투파 기준, 하위에 자리매김해 있었다. 리사는 입술을 깨물며 분을 삭였다.

“모두 수고했다. 역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도록. 이건 수업을 위해 진행한 테스트였으니까 말이야. 내 수업을 잘 따라온다면 기록은 무조건 오르게 될 테니까.”

“……그 말이 정말인가요?”

열의에 타오르는 한 학생의 질문에 에단이 씨익 웃었다.

“다음 수업은 점진적 과부하다. 기대해도 좋아. 다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에단이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나서며 두 번째 수업이 완전히 끝났다.

“하아, 죽을 거 같아…….”

“……난 아직도 뭘 배운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뭔가 할 만하지 않아?”

“너 변태야?”

“그건 아닌데……. 뭔가 쟤한테는 지기 싫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 대련할 때처럼.”

“그건 그렇지…….”

“다음 수업도 이런 식은 아니겠지?”

“또 이런 수업이면 난 진짜 죽어…….”

학생들의 평가는 갈리는 편이었다. 물론 에단은 그들의 평판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 * *

기숙사에서 몸을 씻은 에단은 방에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리사가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원래는 그냥 다 뒤집어엎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저도 좀 골치가 아플 것 같더라고요.”

―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저도 그냥 넘어갈 만큼 너그럽지는 못해서요.”

― 확실히 네가 너그러운 성격은 아니지.

“……뭐, 그래서 조금 고민을 했죠. 상대에게 엿을 먹이면서 이득은 취하고, 자리는 지킬 만한 방법을.”

― 그런 게 있나?

“없을 건 뭡니까? 아버지는 생각보다 정이 많습니다. 그것도 하나뿐인 딸내미인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 않겠습니까?”

― 설마 여동생을 여기에 부른 것도…….

“정답입니다.”

― ……무서운 녀석.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원래 가족이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문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단이 문을 열자, 앞에는 리사가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까지 부른 거야?”

“꼬우면 뭐라고?”

“너 진짜……!”

“쉿.”

에단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려고? 감당할 수 있겠어? 교수 방에 침입한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 텐데.”

빠드득!

리사가 이를 갈며 에단을 노려봤다.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하지 말까?”

“……아니, 할 거야.”

“잘 생각했어.”

에단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에단의 책상에는 수정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거야? 가문에는 통신 수정구가 없을 텐데?”

“동생아, 내가 미리 다 조치를 해 놨단다.”

“……예전보다 재수가 더 없어진 거 같은데?”

“그만할까?”

“미안해.”

리사가 에단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근데 나는 어디에 앉아?”

의자는 한 개였고, 그 의자는 에단이 사용하고 있었다.

에단은 리사의 말을 무시한 채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통신 대상은 블란테로.

마나가 주입되며 수정구에서 빛이 맴돌았고, 이내 한 사람의 얼굴을 비쳤다.

‘수정구를 통해 봐도 위엄 넘치네.’

늙은 사자 같은 모습이었다.

빈센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 에단?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 접니다.”

― 옆에는 누구지? 설마 리사인가?

“네, 아빠…….”

리사의 말에 에단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졌다. 에단이 멀뚱멀뚱 리사를 바라봤다.

“아빠?”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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