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오만의 대가 (2)
“끝났습니다.”
네이드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나왔다.
하얗던 수건이 붉게 젖어 있었다.
섬뜩한 광경에 휴고와 가토, 헨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네이드의 표정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네이드가 수건을 치워 두고 일행에게 다가가자, 가토가 물었다.
“……뭔가 알아내신 게 있으십니까?”
네이드가 두 어쌔신을 심문하기 시작한 뒤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잠을 청할 시간이었지만,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벽 내내 울려 퍼지는 비명과 신음 소리.
어쌔신들은 목이 터져 나가라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 네이드의 목소리는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
절로 몸이 떨렸다.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안 좋았다.
“특별한 내용은 없더군요.”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고 하면…….”
“암살 대상의 신상은커녕 의뢰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지가 않더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어차피 그들은 저희가 찾는 게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사냥조들이 찾을 겁니다.”
네이드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가토였다.
“사냥조라면 그…….”
“아마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네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는 사냥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사냥조가 뭐야?”
“……블란테의 기사단 중 하나야.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데, 일반적인 기사단이랑은 궤가 다르다고 하더라고.”
사냥조.
음지의 일을 도맡아 하는 자들이었다.
가뜩이나 잔학하기로 유명한 블란테의 기사들인데 그보다 더욱 잔혹한 심성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직 섣부르게 말할 사항은 아니지만요.”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결국 결단은 블란테가 할 것이다.
네이드가 수정구를 가져왔다. 에단과 연결되어 있는 직통 수정구였다.
‘보고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지체할 사안이 아니니…….’
네이드가 곧장 수정구에 마력을 주입했다.
수정구가 밝아지며 순식간에 회신이 왔다.
수정구에 에단의 얼굴이 비쳤다.
* * *
지잉―
“왔군.”
에단이 미소를 머금으며 수정구를 들었다.
에단이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하자 수정구가 빛을 머금었고, 이내 네이드와 일행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잘 지냈나?”
― 도련님,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왜? 습격이라도 받았어?”
대수롭지 않은 에단의 반응에 네이드와 일행들의 얼굴이 굳었다.
― ……그걸 어떻게?
“대충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네. 그래서 상대 수준은 어땠지?”
― 형편없더군요.
네이드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하자, 휴고와 가토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네이드를 응시했다.
“뭐, 네이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녀석들이 누군지는 확인했겠지?”
― 어쌔신 길드 ‘밝은 달’입니다.
“뭐야? 전 직장이네?”
네이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늘 평정을 유지하던 네이드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 그걸 대체…….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야. 그래서 네이드 너는 괜찮겠어?”
자신의 물음에 네이드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자, 에단이 말을 이었다.
“전 직장이잖아? 블란테에 보고가 올라가면 걔네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증발할 텐데?”
― 정 따위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자들이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면 오히려 없어지는 게 더 낫겠죠.
“냉혈한이 따로 없네. 몸속에 흐르는 피는 따뜻한 거 맞아?”
― …….
“뭐, 농담이고. 수고 많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지. 늦은 시간에 고생했고, 거기 도착해서도 고생 좀 하라고.”
― 알겠습니다.
뚝.
통신이 끊어졌다.
‘설마 암살 의뢰를 받은 게 밝을 달일 줄이야. 그건 예상 못 했네.’
사이드 에피소드에서 몇 번 등장한 집단이다.
‘여기서도 별 비중은 없군.’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정체된 녀석들.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에단이 다시 수정구를 만져 정보 길드에 연결했다.
곧 있으면 날이 밝는 시간대였지만, 에단은 개의치 않았다.
배려는 에단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
에단이 마나를 주입하자, 수정구가 그 자리에서 즉시 반응했다.
여전히 얼굴을 면보로 가린 메이가 나타났다.
“그것 좀 치우면 안 되냐? 어떻게 그 시간까지 그런 걸 차고 있어?”
― ……상관하지 마시죠.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연락을 주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왜? 대우라도 받고 싶은 건가?”
― 하아, 됐습니다. 그래서 무슨 용무신가요? 설마…….
“어, 그 설마가 맞아. 암살 시도가 있었다더군.”
― 그 머저리들이 결국…….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아빠한테 일러바쳐야지.”
― …….
가볍기 그지없는 언행에 메이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왜? 뭐, 불만 있어? 뒷배 좋다는 장점을 이렇게라도 써야지, 언제 쓰겠어?”
― ……당신은 평소에도 잘만 이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서 그쪽도 뭔가 특정한 게 있겠지? 우리 쪽도 알아낸 게 있는데, 설마 정보 길드라는 녀석들이 죽을 쑤진 않았겠지?”
― ……하아, 알아낸 것은 있습니다. 당신이 불구로 만든 길드원이 브로커 역할을 했더군요.
“그게 누군데?”
에단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메이가 미묘한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아니, 불구로 만든 녀석들이 한둘이어야 기억을 할 거 아니야? 세상에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 후던이라고 조직의 간부이던 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일로 간부 직위를 박탈당했죠. 부상당한 후 예후도 좋지 않아 장애를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 안타깝게 됐군.”
― …….
에단이 귀를 파며 건성으로 대답하자, 메이가 침묵했다.
― 어떤 조치를 원하시죠?
“글쎄, 내가 원래 거짓말을 잘 못 하거든?”
메이가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려고’라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아버지한테 사실대로 고하고 싶단 말이지. 나를 죽이려고 한 일부터 시작해서 브로커 역할까지. 생각해 보니 블란테한테 엿을 먹이려고 한 거잖아? 거참, 이거 괘씸해서 잠이 오질 않네?”
― 그 내용은 이미 합의를…….
“그러니까 다시 합의를 해야지. 추가된 게 있잖아.”
― ……그자는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그건 뭐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이미 정보 길드는 내 조직이잖아?”
에단의 말에 메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즘 내가 골치가 좀 많이 아파. 해결할 일이 많은 건 너도 알고 있잖아.”
―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그건 조만간 말해 줄 테니 기다리고. 나는 이번 일을 보고할 거야. 정보 길드에 대한 것은 빼지.”
― …….
“어쌔신 녀석들 소속은 ‘밝은 달’이라고 하더군. 뭐 아는 건 있겠지? 그래도 명색이 정보 길든데.”
그 말에 메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 녀석들이면 확실히 의뢰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으니까 값을 치러야지. 아마 이제 없어질 거야.”
― …….
한 조직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말치고는 가볍기 그지없는 언행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그 가벼운 말투에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자, 그럼 이제 일 좀 해 볼까?”
에단의 말에서 메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 * *
블란테 가주의 집무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구지?”
“에단 님의 명령으로 찾아온 손님이라고 합니다.”
“에단이라고? 흠, 들여보내도록.”
빈센트의 대답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잭슨이 들어왔다.
‘……블란테의 수장.’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써도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렸다.
‘후던, 그 머저리 새끼…….’
잭슨은 정보 길드의 간부였다. 최근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후던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그 수습은 잭슨이 하기로 하였다.
‘하필 가주에게 찾아가라니…….’
시작부터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윗선의 명령인 데다가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블란테의 땅에 발을 들일 때까지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막상 가주와 마주 서자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한 인간이 풍기는 기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강대한 위압감.
거대한 바위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빈센트는 말없이 잭슨을 응시하고 있다가 물었다.
“넌 누구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저는…… 에단 님의 심복입니다!”
“……심복이라고?”
빈센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잭슨을 바라봤다.
‘무슨…… 사람 눈빛이…….’
오금이 저린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깨달은 잭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에단 님의 힘에 감복해 수하를 자청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 블란테의 혈통이었을 줄이야……. 이제야 납득이 되는 기분입니다.”
회심의 변명에도 빈센트는 말없이 잭슨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제, 제기랄 변명이 너무 조잡했나?’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이었다.
말없이 잭슨을 응시하던 빈센트가 말했다.
“흠……. 역시 내 아들인가? 잘하고 있나 보군.”
‘……먹혔어?’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내 아들놈이 시킨 일이 뭐길래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아, 바로 이겁니다!”
잭슨이 주섬주섬 품에서 수정구를 하나 꺼냈다.
빈센트의 눈살이 좁혀졌다.
“이건?”
“에단 님과 연결된 수정구입니다. 블란테의 영지가 너무 구석에 있어 찾아뵙기 힘든 관계로 이걸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영지가 변두리 촌 동네라는 소리인가?”
“그,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닙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농담이네. 반응이 쏠쏠하군.”
‘……농담 한 번 더 들었다가는 죽겠네.’
십년감수한 기분이었다. 정보 길드의 수장인 메이를 마주할 때보다 몇 배는 더 긴장되었다.
빈센트가 수정구를 받아 들어 만지작거렸다.
“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지만, 아들놈의 부탁이니 받아야겠지. 고생했네.”
“아, 아닙니다! 고생이라니요.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네, 꽤나 충성심이 깊군?”
“하, 하하…….”
잭슨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별다른 대접을 못 했군. 어떤가,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않겠는가?”
“괘, 괜찮습니다.”
잭슨이 화들짝 놀라며 극구 사양했다. 빈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촌구석의 음식에는 손도 대기 싫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건…….”
“농담일세.”
‘……이 사람이.’
“바쁜 사람을 이렇게 붙잡아 둘 수는 없겠지. 그럼 조심히 돌아가게나.”
“……감사합니다.”
잭슨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서려 할 때, 빈센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혹시 검을 쓰나?”
“맞습니다만…… 그건 어떻게?”
“손을 보니까 대충 보이더군. 쓸 만한 검 한 자루 준비해 둘 테니, 기다렸다가 받아 들고 가게.”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들놈의 부하인데 검 하나는 괜찮은 걸 쓰게 해 줘야지. 들어가 보게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잭슨이 방을 나섰다.
‘고놈, 연락 한 통 없더니 잘 지내고 있나 보군.’
피식 미소를 지은 빈센트가 밀린 업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