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오만의 대가 (1)
휴고와 가토가 물 만난 고기처럼 어쌔신들 사이에서 미쳐 날뛰었다.
휴고와 가토, 둘의 실력은 우위를 가리기 어려웠다.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가토가 우세했지만,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과 신체 능력은 휴고를 따를 수가 없었다.
“크르릉!”
휴고는 피가 들끓는 걸 느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휴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토의 상태도 휴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걱!
마나가 맺혀 있는 검이 춤을 출 때마다 피가 치솟았다.
가토의 검과 휴고의 주먹에 어쌔신들이 속절없이 밀려났다.
‘……이 괴물 새끼들이!’
어쌔신들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연계는커녕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했다.
휴고와 가토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습게 여겼는데, 지금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크윽!”
지금과 같은 전면전은 어쌔신같이 속전속결이 중요한 부류에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쉬익!
가토의 검이 호선을 그렸다. 달빛을 머금은 예기가 서늘하게 빛났다.
어쌔신 한 명이 단검을 들어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나 짧은 단검과 가토의 롱소드는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토가 허연 이를 드러냈다.
“지금 힘 싸움을 하자는 거지?”
빠드드득!
‘무슨 힘이……!’
경악스러운 힘이었다.
어쌔신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날붙이끼리 부딪치자, 섬뜩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에단의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 낸 휴고와 가토였다. 휴고에 비해 밀린다는 것이었지, 가토의 몸 또한 이미 인간 병기 수준이었다.
빠드드득!
단검에 흠집이 새겨지고, 어깨 관절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끄으으윽!”
밀리는 순간 목숨을 잃는다. 그 순간, 가토의 측면을 어쌔신이 노렸다.
타닷!
짧은 순간 다가온 휴고의 다리가 어쌔신의 둔부를 가격했다.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쌔신이 나가떨어졌다.
“커헉!”
부우욱!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어쌔신이 단검을 놓쳤다.
“멈추시죠.”
그 순간, 네이드가 다가왔다.
휴고와 가토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감정이 과열되었다.
네이드는 지금 둘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흥분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가장 두려운 전사는 격분한 광전사가 아닌, 냉정함과 침착함을 겸비한 이성적인 전사였다.
“흥분을 가라앉히시죠.”
네이드의 말에 휴고와 가토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아, 하아.”
둘은 열기가 조금 진정됐는지 비교적 평정을 되찾은 표정으로 네이드를 바라봤다.
“경고입니다. 과도한 흥분은 독약입니다. 알고 계시겠죠?”
“……죄송합니다.”
네이드는 확고하게 말했다.
휴고와 가토도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
휴고와 가토, 두 사람은 모두 빛나는 원석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뛰어난 재량을 뽐내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더욱 정교하게 세공된다면 필히 높은 경지에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련님이 정말 대단하군.’
에단의 나이도 이 둘과 엇비슷했다.
그런데도 에단은 단 한 번도 이성을 잃은 적이 없었다.
손속은 잔혹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아슬아슬한 전투를 즐겨했지만, 단 한 번도 흥분을 주체 못 한 적은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기량이 떨어지는 상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늘 자기보다 강자를 상대로 그런 평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진짜 괴물은 도련님을 보고 말하는 거겠지.’
숱하게 널린 천재가 아닌, 진짜배기 괴물.
‘무슨 계기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네이드가 잡념을 떨치고 가토와 휴고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둘은 쓰러져 있는 어쌔신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살아 있는 자는 두 명.’
네이드가 처음 처리한 셋은 과다 출혈로, 휴고와 가토가 상대한 둘은 내장 파열과 두부 손상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빨리 치웁시다.”
시체를 여기에다가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가토와 휴고가 시체를 정리하자, 네이드가 남은 어쌔신 둘에게 다가갔다.
네이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어쌔신의 복부를 걷어찼다.
“끄억!”
어쌔신이 입을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네이드는 그 순간 어쌔신의 턱을 붙잡았다.
우드득!
가벼운 손놀림으로 어쌔신의 턱을 뽑은 네이드가 입안을 들여다봤다.
“……어째서 자결하지 않나 했더니, 독단조차 물지 않고 있군. 죽음조차 각오하지 않을 정도로 나태해진 건가?”
기가 차다는 듯 말하는 네이드.
“너희에게 우리를 노리라고 의뢰한 자들이 누구지?”
고저 없는 평탄한 목소리.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으…….”
턱이 빠진 어쌔신이 아우성을 내질렀다.
네이드의 시선이 옆에 같이 묶여 있는 어쌔신에게로 향했다.
“누구지?”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고 하더라도 의뢰인을 발설하는 행위를 할 리가 없었으니까.
“나, 남자 셋! 누군지는 모릅니다!”
“…….”
망설임 없이 정보를 토해 내는 어쌔신의 모습에 네이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허억, 허억!”
학생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엎어지기 시작했다.
체력의 한계는 생각보다 일찍 바닥을 드러냈다.
“저질 체력이 따로 없군.”
에단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설마 두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뻗기 시작할 줄이야.
“교, 교수님……. 다음 수업은……?”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늘 하루 종일 뛰기만 할 건데.”
에단의 말은 사형 선고와 같았고, 마지막 희망을 잃은 학생 하나가 그대로 엎어졌다.
선두를 달리던 에단이 뒤를 흘겨봤다.
남은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학생들조차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도 여동생이라고 열심히 쫓아오고 있군.’
역시 블란테의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건가.
“아직 버틸 만한가 봐?”
리사의 살벌한 눈빛이 에단에게 쏘아졌다. 말하지 않아도 시선으로 리사의 생각이 전해졌다.
에단이 페이스를 올렸다. 학생들과 에단의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저 미친 괴물 놈!’
학생들이 경악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남은 학생들은 체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뿐이었다.
그런 학생들도 이제 체력의 한계와 직면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에단은 아직 멀쩡했다. 아무리 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저게 가능한가?
왠지 속는 기분이었지만 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리사의 옆에서 따라오던 학생 하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때 뒤편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리사가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에단이 씨익 미소 지으며 따라붙고 있었다.
“……미친!”
“너무 느려 터진 거 아니야?”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리사조차 다리의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학생들이 모두 쓰러지고 나자, 에단도 자리에 멈춰 섰다.
‘대락 두 시간 반 정도인가.’
확실히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을 모아 둬서 그런지, 두 시간 이상 버틴 학생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가문이랑 비교하면 형편없군.’
수습 기사들만 생각해도 이것보다는 오래 버티는 모습을 보여 줬다.
“너무 형편없어서 수업 진행이 힘들군. 오늘은 여기까지다.”
학생들은 에단의 말을 들을 기운조차 없는 듯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카데미 직원들과 학생들이 엎어져 있는 이들을 힐긋거리며 바라봤다.
― ……이게 정말 정상적인 수업이 맞는 거냐?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연하게 대답하는 에단의 반응에 페온이 할 말을 잃었다.
‘얼추 점심시간이 됐군.’
학생들을 방치한 채 에단이 기숙사로 향했다.
‘몸부터 씻고 올까.’
에단은 땀을 거의 흘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먼지를 뒤집어쓴 탓에 찝찝하긴 마찬가지였다.
곧장 객실로 들어간 에단은 몸을 씻으며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전신을 가득 메우고 있던 지방이 사라지고, 탄력 있는 근육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에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밖으로 나왔다.
지이잉―
그때, 책상 위에 있는 통신 수정구에서 진동음이 들리자 에단이 시선을 돌렸다.
‘연락이 왔군.’
일행이 도착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에단이 수정구를 건드렸다.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얼굴은 역시 일행이 아닌 메이였다.
“무슨 일이지?”
―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메이의 말에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해 봐.”
― 어제저녁 저희 길드에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단순한 의뢰라면 에단에게 전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상관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직접 전달하는 것일 터.
― 의뢰 내용은…….
메이가 어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보고했다.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에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군지 유추가 되었다.
‘그래서 그딴 표정을 지었던 거군.’
에단을 바라보던 로만의 음흉한 표정.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가만히 있어.”
― ……네?
잘못 들은 것 같다는 표정으로 재차 되묻는 메이.
“결국 의뢰는 안 받았다는 거잖아? 아마 다른 경로로 뭔가를 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로만 녀석이 그따위 표정을 지을 리가 없을 테니까.
― 그럼 더더욱…….
“걔네들이 내 부하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스토리의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괴물이 아니고서야 네이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네이드만 있는 것도 아니고.’
휴고와 가토도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에단은 휴고와 가토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객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누가 키운 놈들인데.’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에게 패배할 만큼 나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에단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조만간 연락이 오겠군.’
빠르면 오늘 저녁 일행들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았다.
에단이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메이를 향해 말했다.
“그냥 기다리고 있어. 조만간 건수 하나 넘겨줄 테니까.”
이번에는 조금 대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