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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82화 (82/398)

◈ [82화] 조상 군번 어쌔신 (2)

휴고는 감이 좋았다.

몸에 흐르고 있는 웨어울프의 피가 휴고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과열된 열기와 흥분이 가라앉자, 휴고의 예민한 감각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이것은 본능의 영역에 걸쳐 있는 직관이었다.

휴고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쫑긋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뭐가 오고 있어.”

“휴고 씨는 역시 감이 좋군요.”

네이드는 놀란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휘잉―

바람이 불자 휴고의 후각에 희미하게 피 냄새가 흘러들어 왔다.

그 즉시 휴고가 지면을 박차 곧바로 헨리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헨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가토도 그녀의 곁에 섰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헨리는 바보가 아니었다.

흘러가는 기류만 봐도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짐일 뿐이구나.’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껏 동료로 여겼지만, 헨리는 언제나 동료의 역할로 있는 것이 아닌, 짐덩이로 여정을 함께했다.

버린 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자존심이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서면 더욱 민폐를 끼친다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헨리는 달달 떨리는 몸을 붙잡았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

휴고와 가토가 헨리의 결연한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다짐을 눈치챈 둘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슬쩍 곁눈질한 네이드가 이내 천천히 걸었다. 평소와 다르게 미소를 머금고 있지 않았다.

마치 감정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익숙한 기운이군.’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느껴졌다. 상대는 어쌔신이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신중하고 교활한 진짜 어쌔신이었다.

기척을 숨긴 채 목표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이드는 어쌔신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만히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스르륵.

네이드의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것뿐이었다.

전조, 움직임, 기세.

모든 현상이 없었다. 한데도 네이드는 발이 미끄러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헨리와 가토의 눈이 부릅떠졌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움직임에 스스로의 눈이 의심됐다.

마치 마법을 시전한 것처럼 네이드가 먼 거리를 이동했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뭐, 원래 그런 족속들이지만 말이죠.”

네이드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지극히 간결한 움직임이었고, 그 움직임에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목적만이 담겨 있었다.

네이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검을 그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옅은 일렁임이 생겼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여유와 자비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채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슥슥슥―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움직임.

그렇기에 더욱 섬뜩했다.

이윽고 일렁임이 커졌다.

촤르르륵!

어쌔신들이 장막에서 벗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막을 빼앗겼다.

“……뭐지? 당신은?”

복면을 쓰고 있는 남자의 질문에 네이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대가 많이 좋아졌군. 어쌔신이 질문을 하다니.”

네이드가 한 걸음 내딛자, 그의 신형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렸다.

그에 맞춰 어쌔신들도 일제히 산개했다.

어쌔신들은 손발이 잘 맞았다.

숫자적 우위는 어쌔신들에게 있는 탓에, 아무리 네이드라도 저들을 모두 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렇다면 한 녀석만 선택하면 되니까.

네이드가 어쌔신 한 명의 뒤를 잡았다. 순간 올라오는 싸늘한 느낌에 어쌔신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푹―

순식간에 네이드의 단검이 어쌔신의 허리에 꽂혔다.

단검이 박힌 위치는 척추.

그리고 단검을 축으로 네이드의 마나가 타고 들어갔다.

“끄으윽!”

“참을성이 부족하군요. 요즘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배우지 않는 건가요?”

격렬한 격통에 어쌔신의 몸이 감전을 당한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산개한 어쌔신들이 달려들었다.

네이드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곳을 좇지는 않았다.

마치 각기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양 눈의 동공이 개별적으로 움직였다.

달이 유일한 빛인 새벽이라 주위가 어두웠지만, 네이드에게는 그것이 더욱 친숙했다.

‘남은 숫자는 여섯.’

네이드의 시선이 헨리와 가토에게 향했다. 그쪽은 아직 잠잠하다.

그렇다면 지금 숫자가 전부라는 것.

‘잠복한 녀석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휴고라면 능히 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감각은 네이드도 놀랄 정도로 뛰어나니까.

그 순간, 네이드가 몸을 젖혔다.

그 자리에 무수히 많은 섬광이 번뜩였지만, 네이드는 부드럽게 거리를 벌린 채 어쌔신들을 바라봤다.

“단검의 모양이 친숙하군요.”

네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당신들, ‘밝은 달’입니까?”

움찔.

아주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네이드는 그 움직임을 포착해 냈다.

네이드의 미간이 좁혀지며 표정이 바뀌었다.

“하, 어이가 없군.”

“……뭐가 말이지? 설마 이제야 두려움을 느끼는 건가? 하지만 이미 늦었…….”

“닥쳐라.”

경어를 사용하던 네이드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설마 이 정도까지 추락했을 줄이야.”

네이드는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한탄처럼 보이는 분노였다.

어쌔신들이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 뒤 움직였다. 정교한 합공이었다.

창의적이고 치명적인 공격들이 촘촘하게 연계되었다.

“발전 따윈 없고, 오히려 저급해졌군.”

하지만 네이드는 아무렇지 않게 모든 일격을 피해 냈다. 그 동작에서 힘겨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합공을 피해 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피하는 동시에 파훼시켰다.

푹― 푹― 푹―

정확히 세 번의 칼질.

어쌔신 세 명이 전장을 이탈했다.

그들은 각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쌔신 한 명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네이드의 움직임은 그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밝은 달의 합공은 절대적이었다. 그간 피를 토하며 갈고닦은 연계다.

이 합공이라면 마스터라도 능히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네이드는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다.

힘겨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네이드의 호흡은 평온하기만 했다.

네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쾌한 표정을 짓던 네이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네놈들 설마 암살할 대상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움직인 건가?”

“…….”

“……큭큭, 어이가 없군. 밝은 달이 이렇게까지 추락할 줄이야.”

웃음을 터트리던 네이드의 표정이 굳었다.

“몸이 떠나면서 마음도 떠난 줄 알았는데…… 기분이 더러운 걸 보아하니 아직도 뭔가가 남아 있었나 보군.”

“……너는 누구지?”

네이드의 눈이 말을 꺼낸 어쌔신에게로 향했다.

“네이드.”

“…….”

“모르는 이름이겠지. 받은 지 얼마 안 된 이름이니까. 옛 이름은 달의 상처.”

“……!”

어쌔신의 눈이 부릅떠졌다.

“말도 안 되는……!”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너희들 따위에게 내 정체를 밝히는 게 치욕이니까. 내가 상대할 필요도 없겠어.”

네이드가 휴고와 가토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타닷!

두 사람이 지면을 박차며 순식간에 먼 거리를 도약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상대해 보시겠습니까.”

“네?”

“실전 경험을 쌓기 적절한 상대 같더군요.”

네이드가 어쌔신들을 바라봤다.

“디딤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네이드의 말에 어쌔신들이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네놈이 과거의 전설이었단 사실 따위는 상관없다! 오늘 너는 오늘 죽고, 너와 관련된 모두가 우리 손에 죽게 될 거니까!”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소리치는 어쌔신의 목소리에 가토와 휴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이드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모르고 있군. 두 분, 망토를 벗을 수 있겠습니까?”

휴고와 가토가 네이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륵―

망토를 벗어 던지자 드러나는 정복.

그리고 가슴 한편에 수놓아져 있는 검은 사자.

그 문양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했다.

블란테.

대륙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잔학한 무력 집단.

적으로 간주한 자들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알려진 악명 높은 흑사자.

“브, 블란테라고? 이건 듣지 못했……!”

“이미 은퇴한 나를 의식할 여유가 있나? 나 따위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검은 사자가 대가를 치르게 할 텐데 말이야.”

네이드가 몸을 돌려 멀어지면서 중얼거렸다.

“쯧쯧, 오만함에 빠졌구나.”

암살 실력을 과신하여 기본적인 조사조차 건너뛴 채 찾아오다니.

‘……이제 끝이겠군.’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뢰자가 누군지 지금 당장 캐낼 필요도 없었다.

‘블란테가 움직일 테니까.’

감히 블란테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세력이다. 이 일을 묵과한다면 그것은 블란테가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힘을 증명해야 할 순간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블란테는 너무 오랜 시간 숨죽이고 있었다.

‘검은 사자를 잠에서 깨웠군.’

네이드는 일말의 미련조차 지워 내고 작은 애도를 표했다.

밝은 달이라는 전설적인 어쌔신 집단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할 테니까.

‘그전에 먼저 저 녀석들에게 애도를 표해야겠군.’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사자가 먹잇감을 뜯으려 하고 있었다.

휴고와 가토가 어쌔신들을 압박했다. 아직 수적 우위는 어쌔신들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패배한 거나 다름없었다.

분명 아직 싸울 수 있는 컨디션이었지만, 기세를 잃고 말았다.

“이, 이럴 수는…….”

가토와 휴고는 바보가 아니었다.

기세를 잃은 적들이 목을 내주는데 그걸 물어뜯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어쌔신들에게 달려들었다.

가토가 시작부터 전력을 끌어내자 검신에 마나가 드러났다.

발을 내딛고, 검을 휘두른다.

일련의 단순한 동작이 경지에 이르자, 상대는 대처하지 못했다.

서걱―!

암살자의 팔이 떨어지며 선혈이 치솟았다.

‘여기서 전멸할 수는 없다.’

어쌔신들은 피를 보자 이성을 되찾았다.

“정신 차려!”

그 말과 함께 다른 어쌔신들이 움직였다.

어쌔신이 단검을 들고 휴고에게 파고들었다. 대응할 수 없는 타이밍을 노리고 온 공격이다.

휴고는 아직 마나를 다루지 못하지만 감이 좋았다.

예지의 영역에 가까운 직관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휘릭.

휴고의 몸이 회전했다.

단검을 회피함과 동시에 휴고의 팔꿈치가 암살자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콰직!

단검을 찌르면서 가해진 힘에, 휴고가 몸을 회전하면서 넣은 힘이 더해졌다.

사람의 머리는 그 정도의 충격을 견딜 수 없었다.

쿵!

휴고라는 이름의 짐승은 쓰러진 어쌔신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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