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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81화 (81/398)

◈ [81화] 조상 군번 어쌔신 (1)

에단을 제외한 일행은 페르나니엄을 떠나 다시금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여행길을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마차의 말을 모는 가토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했다.

‘뭔가 생각과 다른 것 같은데…….’

정식 기사로 서임된 이후, 가토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블란테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명예로운 기사가 되고 말리라고.

에단을 향한 충성심도 높아졌다. 에단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기사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블란테의 기사가 가지는 무게감은 가볍지 않았다. 어엿한 가문의 검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말을 몰고 있네?’

다그닥, 다그닥.

쌍두마차.

가토가 뒤편을 바라봤다.

허름한 마차 안에는 헨리가 곤히 잠들어 있었고, 네이드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중이었다.

가토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자기도 모르게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푸르릉.

말이 불편하다는 듯 투레질을 하자, 가토가 재빨리 고삐에 준 힘을 풀었다.

갈색 말이 가토를 힐긋 노려보더니 다시 갈 길을 달렸다.

‘……이게 맞아?’

마차를 모는 실력이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검술 실력이나 몬스터를 처치하는 노하우가 아닌, 마차를 끄는 실력이.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이 치밀어 올랐다. 가토가 옆에 있는 휴고를 바라봤다.

“하아아암∼”

휴고는 턱이 빠져라 하품을 내뱉으면서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고,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는 멍청해서 좋겠다.”

“갑자기 나한테 왜 그래……?”

“됐다. 별일 아니야.”

“아니, 욕먹은 건 난데…….”

휴고가 황당한 얼굴로 가토를 바라봤다. 하늘을 바라보던 가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근데 가토.”

“왜?”

“그 세계의 중심? 거기가 어디야?”

“너 진짜…….”

가토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휴고는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뭐, 모를 수도 있지. 나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야.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엘프의 숲이자, 세계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 그것밖에 몰라.”

“……숲이라고?”

“어. 같은 숲이지만 우리 영지 뒤에 있는 산맥 같은 분위기는 아니라고 하더라. 블란테의 산맥처럼 몬스터만 바글바글한 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엘프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숲이래.”

“와, 신기하다.”

“원래라면 인간들은 출입 금지로 알고 있는데……. 도련님이 가 보라고 하시니까 가는 거지.”

“세계수는 뭐야?”

“나도 자세히는 몰라. 동화나 신화에 나올 것 같은 허황된 소리도 있고, 단지 대륙에 뿌리내린 가장 거대한 나무일 뿐이라는 소리도 있고……. 평생 블란테에서 검만 휘둘렀는데 나라고 알 리가 있나.”

“그래도 나보단 많이 알잖아.”

“너는…… 됐다.”

“……뭔가 기분이 좀 나쁜데?”

“나는 너를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 평생 검만 휘둘렀는데, 듣도 보도 못한 하인한테 진 내 기분은 어떨 거 같냐?”

“헤헤…….”

“칭찬하는 거 아니니까 웃지 마. 기분 나빠.”

가토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몰았다.

게이트를 경유해 시간은 상당히 단축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무작정 걸어가야 했다.

엘프들은 폐쇄적이었다. 당연히 근방에 마법진이 설치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여유를 즐겨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여행 따위는 꿈도 못 꿨다. 수습 기사들의 염원과 목표는 오로지 기사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배부른 소리군.’

꿈에 그리던 기사가 되었고, 충성을 바칠 주군도 생겼다.

정말 배부른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긴 대체 왜 가는 거지?’

가토가 그날의 대화를 상기했다.

― 먼저 가 있어. 준비가 끝나면 나도 따라갈 테니까.

― 준비라 하면…… 대체 무얼 말씀하시는 거죠?

― 말해도 몰라.

두루뭉술하게 말을 넘긴 에단은 손을 휘적거리며 사라졌다.

‘……뭔가 불안한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가토는 머리를 저으며 상념을 떨쳐 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이동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 이후부터는 경유할 만한 도시나 마을이 없어 야영을 해야 했다.

“야영 준비하자.”

“노숙자가 된 것 같아…….”

“마구간에서도 잘만 자던 녀석이.”

“……가토, 너 아까부터 가슴에 비수를 던지네?”

“하지만 사실이잖아.”

가토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불퉁한 얼굴의 휴고가 발로 바닥을 차며 중얼거렸다.

“……51승 49패.”

빠득.

기어드는 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가토는 똑똑히 들었다.

가토가 살벌한 눈으로 휴고를 노려봤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기세였다.

“무슨 소리 들었어?”

“……아니.”

“하하, 빨리 야영이나 준비하자.”

휴고가 도망치듯 자리를 떴고, 가토는 말없이 노려보다가 뒤를 따랐다.

* * *

야영 준비가 끝났다.

‘……이것도 늘긴 느는구나.’

이제 야영 준비를 갖추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채 30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장작을 모아 오고, 쓸 만한 돌을 주워 오고, 불을 지피고, 끼니를 해결할 식기를 늘어놓고…….

휴고와 가토가 준비를 얼추 마치면 네이드와 헨리가 식사를 준비했다.

거창한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가토와 휴고는 언제나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웠고, 헨리도 여느 때처럼 헤, 하고 입을 벌리며 둘을 감상했다.

순식간에 식사를 끝마친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오늘도 훈련하십니까?”

“네. 가볍게 몸을 풀려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봐 드리죠.”

예상 못 한 네이드의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가토와 휴고는 네이드가 어떠한 경지에 들어선 무인인지를 알고 있었다.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주시면 좋죠!”

가토와 휴고가 적당한 크기의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있는 모닥불과 은은하게 내리쬐는 달빛만이 둘의 모습을 비췄다.

스르릉.

서늘한 소리와 함께 가토의 검이 뽑혔다.

휴고는 제자리에서 통통 뛰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런 두 사람을 네이드는 말없이 지켜봤다.

‘도련님의 영향인가?’

에단은 휴고에게 정립된 격투술을 강요하지 않았다.

짐승 같은 본능, 그로 인해 자유롭게 구사하는 변칙.

그게 휴고의 가장 큰 무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기본에 무지할 필요는 없었다. 에단은 최소한의 기본기와 기술을 지도했다.

격투기 선수 중에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라서 기본 기술을 구사하지 않는 게 아닌, 알고 나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것이었다.

에단은 휴고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것들을 알려 줬다.

덕분에 휴고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에단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반면 가토는 달랐다.

에단의 트레이닝을 통해 신체 능력은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성장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정체되어 있었다.

밥 먹듯이 하는 대련을 통한 감각의 성장.

그것도 훌륭한 자산임은 분명했지만, 가토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증은 첸의 훈련을 통해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첸은 완성된 기사였다.

검 하나만으로 대륙에 이름을 떨친 절대자였다.

첸의 검은 보고 겪는 것만으로도 가토를 크게 성장시켰다.

후우―

가토의 호흡이 낮아졌다.

평소라면 선공은 휴고가 가져가겠지만, 오늘은 가토가 먼저였다.

가토가 몸을 숙였다.

휴고와 가토.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검과 주먹을 맞댔다.

덕분에 서로의 역량과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가토는 휴고가 얼마나 괴물 같은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을 가졌는지를, 휴고는 가토가 얼마나 침착하고 날카로운지 알고 있었다.

가토가 뛰어들었다.

휴고가 뒤로 물러서자, 가토가 도움닫기를 하며 재차 가속했다.

“이걸로 너한테 졌었지!”

“아직도 담아 두고 있는 거야?”

휴고가 대결 중에 선보였던 플라잉 니킥.

그때 그 동작도 지금처럼 순간적인 도움닫기로 가속했었다.

하지만 휴고는 어렵지 않게 물러서며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토의 검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그어졌다.

“……!”

도움닫기를 통한 순간적인 가속이라 예상했는데, 거기에 검까지 휘둘러지자 공격의 사거리가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휴고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어딜!”

가토는 그런 휴고를 가만두지 않았다. 기세를 잡은 가토는 매섭게 공격을 연계했다.

사납게 몰아붙이는 가토의 검.

‘……놀랍군.’

숨 돌릴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는 가토였지만, 가토는 단 한 번도 검을 허투루 휘두르지 않았다.

상대의 경로를 예측하고 내지르는 검.

휴고의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위협적으로 번뜩이는 검.

휴고는 눈으로 가토의 검을 분주하게 좇으며, 몸을 크게 낮췄다.

거의 엎드린 것이나 다름없는 자세였다.

하지만 가토는 예측했다는 듯이 검을 수직으로 그었다.

몸을 숙인 탓에 검이 보이지 않았지만, 휴고는 느낄 수 있었다.

휴고의 발이 바닥을 그으며 가토의 다리를 노렸다.

“쳇!”

가토가 혀를 차며 검의 경로를 비틀었다. 가토의 검이 휴고의 옷자락을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휴고가 손으로 지면을 짚었다.

휘릭!

휴고의 상체가 연체동물처럼 뒤로 넘어가며 기예와도 같은 텀블링을 선보였다.

휴고는 단순히 몸을 피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순간에도 발끝으로 가토의 턱을 노렸다.

가토가 고개를 젖혔다.

간발의 차이로 휴고의 발이 가토의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와…….”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헨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투에 있어 문외한과 다름없는 헨리의 눈에도 둘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정도는 빤히 보였다.

“진짜 짐승이냐?”

“……방금 나도 죽을 뻔한 거 같은데?”

장난기 섞인 대화를 주고받은 후, 가토와 휴고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가토의 턱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나 휴고의 망토 자락에도 흠집이 나 있었다.

두 사람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둘의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뇌가 뜨거워지며 흥분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멈추시죠.”

전투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갑자기 네이드가 개입했다.

휴고와 가토의 눈이 네이드에게로 향했다. 둘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네이드를 바라봤다.

“저흰 아직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흥분에 젖어 전투를 속행하려던 가토가 입을 다물었다.

네이드의 눈.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얼마 전 전투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가운 눈빛이었다.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달빛을 투영한 것 같은 시린 눈이었다.

가토와 휴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흥분은 이미 저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지금 바로 헨리 씨의 곁으로 가시죠.”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이드가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불청객이 찾아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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