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악어의 입속? 사자의 입속!
‘정보 길드라고?’
소문이 무성한 단체였다.
음지에 숨어 있고,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는 탓에 국가 차원에서 나서도 실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보 길드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곳곳에서 다양한 경험담과 소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보 길드는 베일에 싸여 있는 단체였고, 크러쉬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학장의 아들이라는 건가?’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하니 로만이 정보 길드와 접선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보 길드와 만나서 의뢰를 할 정도라니…….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이전에 로만과 나눈 대화는 별거 없었다.
‘에단의 약점을 잡아 아카데미에서 쫓아낸다.’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보 길드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로만의 번들거리는 눈은 독기로 가득했다.
“그간 강녕하셨나요, 로만 씨.”
“네, 괜찮았습니다. 오늘은 의뢰를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가씨.”
“좋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죠. 뭐가 필요해서 저희를 찾은 거죠?”
“최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고 있습니다.”
“미꾸라지라 함은?”
“아카데미의 신임 교수로 부임한 평민 녀석이 있습니다.”
“…….”
로만은 에단을 떠올리는 순간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평민이 평민답게 찌그러지지 않고 나대길래 적당히 밟아 주려고 했는데…… 그 정도로는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더군요.”
“……무엇을 원하시는 거죠?”
로만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에단, 그 녀석과 연관된 모든 정보가 필요합니다. 가족부터 친인척, 친구 등 에단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요. 그리고 그들을 잡을 어쌔신들도 필요합니다. 비용은 상관없습니다. 착수금을 어디까지 부르시든 전부 지불하죠.”
로만의 말을 들은 크러쉬의 눈이 커졌다.
‘……이거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야?’
원래 계획과 너무 달라졌다.
에단이 아무리 평민에 불과한 무지렁이라고 해도 아카데미에서 고용한 교수였다.
크러쉬는 괜히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불이익이나 징계를 받을까 겁이 났다.
하지만 로만은 그런 것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왜 대답이 없으시죠?”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로만이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의뢰는 받을 수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나가 주시죠.”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급했다.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유라도…….”
“나가 달라고 했습니다.”
설득이 불가능해 보이는 단호한 목소리에 결국 로만은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후회하실 겁니다.”
“아니요.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시죠.”
그녀의 대답에 주먹을 움켜쥔 로만이 밖으로 나갔다. 크러쉬도 로만의 뒤를 따라나섰다.
“후…….”
로만과 크러쉬가 문밖을 나서자 가림막 뒤에 있던 여성, 메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최근 들어 가장 크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지금 누구를 좆되게 만드려고…….”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남성 한 명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천박한 말은 자중하시죠, 아가씨.”
“제 말이 틀렸나요?”
“저희의 존망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저 미친놈들한테선 앞으로 의뢰받지 마세요.”
“전달하겠습니다.”
남자가 방에 드리운 그림자에 녹아들듯 사라졌지만, 메이는 신경 쓰지 않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인질을 잡으라고?’
하,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인질을 잡을 사람이 없어서 블란테를 상대로 납치 감금이라니.
‘차라리 대륙의 황자를 납치하는 게 가능성이 높겠군.’
블란테는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상대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보여 주지 않았다.
상대를 철저하게 말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귀들이 바로 블란테다.
‘그런 블란테를 상대로 인질극이라니.’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심지어 일행들도…….’
에단의 일행들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특히 그 중년.’
백발이 무성해 보이는 남자는, 까마귀들도 승산이 없다고 평가한 괴물이었다.
‘죽을 거면 혼자 죽으라지.’
가뜩이나 에단에게 약점이 잡혀 목줄이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빚을 늘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재수 없게.’
세계수 문제만 해도 머리가 복잡할 지경이었는데 별 같잖은 것들까지 말썽이라니.
오늘은 아무래도 소금을 뿌려야 할 것 같았다.
* * *
“감히 쥐새끼들 주제에!”
로만은 분통을 터트렸다.
설마 정보 길드가 의뢰를 거절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보 길드는 원래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명예나 신의보다 금화를 더 좋아하는 게 그들이란 말이다.
“그만 돌아가지, 로만 학생.”
“잠시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에단 그 개자식을 찢어 죽일 방법이…….”
크러쉬의 말에 로만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별달리 방도가…….”
“내가 알려 주지.”
그때, 멀리서 한 남자가 절뚝이면서 다가왔다.
목발을 짚으면서 다가오는 남자.
남자의 얼굴은 초췌했으며, 음울한 눈 아래로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로만은 갑자기 접근하는 외지인을 경계했다.
그런 로만의 모습에 목발을 짚은 남자, 후던은 피식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뭐라고?”
“원한을 해소하고 싶은 게 아니었나? 내가 잘못 생각했다면 여기서 물러나지.”
후던은 골목에 앉아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에단.
자신의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든 녀석이자, 자신을 파멸로 이끈 녀석이었다.
‘분명 에단이라고 말했다.’
저 녀석이 에단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잃을 것도 없다.’
블란테의 원한?
두렵지도 않았다.
이미 간부라는 직위는 박탈당했고, 앞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드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후던의 삶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에단을 향한 원한과 원망뿐이었다.
길드원들이 후던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그들은 후던을 존중하지 않았다. 안쓰럽게 여기고, 한심하게 바라봤다.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후던은 치욕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연결해 주지.”
“필요 없다. 뭘 믿고 당신의 말을…….”
크러쉬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로만은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 말 진짜겠지?”
“맹세하지.”
“그럼 안내해.”
“녀석들은 웬만한 돈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돈은 준비되어 있나?”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좋다. 안내하지.”
후던이 목발을 짚으며 길을 안내했다.
정보 길드를 찾아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미로였다.
크러쉬는 불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단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복수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키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며, 복잡한 심경으로 후던과 로만을 따라나섰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렇게 말한 후던이 먼저 지하로 내려갔다.
아래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바로 앞의 계단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크러쉬가 이마를 찌푸렸다.
“빛을 밝혀도 되나?”
“안 된다.”
“…….”
후던의 대답은 단호했다. 크러쉬는 입을 다물고 따라 들어갔다.
“……이건 벽인가?”
로만의 말은 사실이었다.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벽으로 막혀 있었다.
“설마 우리를 속인 건가?”
“기다려 봐라. 참을성이 부족하군.”
로만이 벽을 두드렸다.
“의뢰를 하러 왔다.”
로만이 의심쩍은 시선으로 후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후던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벽을 바라봤다.
그 광기 어린 모습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상을 말해라.
후던의 시선이 로만을 향했다. 로만이 벽을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 녀석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그냥 죽이는 걸로는 안 돼. 주변 인물을 붙잡아서 고통을 주다가 천천히 죽일 거야.”
“…….”
후던이 침묵했다.
‘가족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어쌔신이라고 한들 블란테의 저택에서 블란테의 수장을 납치할 수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얘기였다.
‘확률 따위는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블란테를 언급한다면 이들은 의뢰를 받지 않을 게 빤했다.
“사흘 전 페르나니엄에 찾아온 녀석들. 남자 넷과 여자 하나. 말 두 마리와 마차 하나를 끌고 있고, 현재 남자 하나는 무리에서 빠진 상태. 10대로 추정되는 남자 둘과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중년 하나, 그리고 키가 작은 20대 여성이다.”
줄줄이 나오는 정보에 로만이 깜짝 놀라며 후던을 바라봤다.
“녀석을 알고 있었나?”
“그래, 그러니까 너는 비용만 지불해.”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후던이 로만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둠 속에서도 후던의 눈은 뚜렷하게 보였다. 절망에 절어 버린 눈이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나?”
“일단…… 믿도록 하지.”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기다리자, 벽 뒤에서 재차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동 방향은 어디지?
“동쪽, 세계의 중심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 좋다. 의뢰를 받아들이지.
“무력 수준은 묻지 않는가?”
― 중요하지 않다. 상대의 수준이 어떻든 결과는 바뀌지 않으니까.
“엄청난 자신감이군.”
― 착수금은 200골드다. 의뢰 완료 시 추가로 200골드를 받겠다.
대화를 듣던 크러쉬의 입이 벌어졌다.
‘200골드라고?!’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는 크러쉬의 한 달 봉급이 10골드였다.
그것도 매우 높은 수준의 봉급이었다. 평균적인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1골드가 채 되지 않았으니까.
착수금 200골드에 완료 시 잔금 200골드.
총 400골드였다.
웬만큼 부유한 귀족이 아니고서야 엄두도 내지 못할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로만 학생, 이건 너무…….”
로만은 크러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자신은 있겠지?”
― ……우리는 단 한 번도 의뢰에 실패한 적이 없다.
“……좋아 바로 내도록 하지.”
로만이 품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내 통째로 벽 앞으로 던졌다.
슥―
주머니가 벽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총 250골드다. 세어 봐도 좋다.”
‘주머니의 크기는 작아 보이는데…… 아티팩트인가?’
아티팩트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250골드라는 거액을 담기에는 주머니의 크기가 너무나도 평범했으니까.
― ……확인되었다.
“확인했으면 주머니는 돌려주지?”
― 기다려라.
사라질 때처럼 스르륵 주머니가 생겨났다.
로만이 주머니를 들었다. 전과 달리 주머니가 가벼웠다. 주머니를 품에 넣은 로만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탈탈 털어 갔군. 이 정도의 거액을 지불했는데, 믿어도 되겠지?”
― 걱정하지 말도록. 실패란 없으니까.
“좋아, 언제까지 가능하지?”
― 이틀. 그 이상 넘어가지 않을 거다.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오만한 목소리였다.
‘이 녀석들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만의 입가가 비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