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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78화 (78/398)

◈ [78화] 선을 넘은 로만

‘이게 다 그 평민 놈 때문이야!’

동기들한테는 수치를 당하고, 아버지인 마크한테는 실망을 안겼다.

평민 교수의 콧대를 눌러 준 다음 리사를 탐하려던 계획은 당연히 물 건너갔다.

로만은 지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모든 책임을 에단에게 전가했다.

로만이 발을 옮겼다. 그가 지나가자, 많은 학생들이 힐긋거리며 바라봤다.

“쟤 왜 저기서 나오냐?”

“설마 또 학장한테 이르러 간 거야?”

“하여간 툭하면 저런다니까. 쯧쯧.”

“큭큭, 한심하다 한심해.”

로만을 따라다니는 조롱과 비아냥들.

당연히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로만은 부서질 듯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곧장 크러쉬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크러쉬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요양을 하고 있었다.

로만이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교수님!”

“로만…….”

같은 상처를 입은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소식은 들었네. 무지한 평민이 자네에게도 손을 뻗쳤다고.”

로만이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근본 없는 수업을 진행하려 하길래 몇 마디 했더니……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하고 폭행해서…….”

사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로만과, 그 얘기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는 크러쉬.

“그런 천인공노할……!”

처음으로 진심 어린 공감을 얻은 로만이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크러쉬 교수님.”

“말하게나.”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됐습니다.”

“……진심인가?”

크러쉬의 눈이 로만을 향했다.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그 같잖은 평민이 신성한 아카데미의 물을 흐리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은 동감하는 부분이다만…….”

크러쉬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로만이 입을 열었다.

“이미 결정하신 문제가 아니었습니까? 저희는 같은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던 것 아니었냐구요!”

“자네…….”

로만이 단단한 눈빛으로 크러쉬를 바라봤다.

“……계획을 준비하지.”

* * *

교직원 기숙사에 돌아온 에단은 음식을 받아 들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단의 접시에는 고기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고기로 산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때, 에단의 앞에 에밀라가 앉았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접시를 바라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굶으신 겁니까?”

입에 고기를 한가득 밀어 넣고 있던 에단이 앞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우물우물.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에밀라의 접시에도 에단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음식이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얼굴을 붉힌 에밀라가 시선을 피하더니 식기를 들었다.

“무, 무슨 불만 있으십니까?”

“아니? 먹고 싶은 대로 먹어. 참고로 나는 하루 단백질량 때문에 이렇게 먹는 거야.”

“단백질? 그게 대체 뭔가요?”

“……그런 게 있어.”

설마 단백질을 모를 줄이야. 운동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영양소 중 하나가 바로 단백질이다.

아무리 격렬한 훈련을 소화하더라도 그 뒤에 제대로 된 영양 섭취가 따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에단은 매일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고, 당연히 많은 양의 단백질이 필요했다.

‘보충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에단이 우걱거리며 에밀라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요?”

“자리도 많은데 왜 여기 앉았냐?”

순간 에밀라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자리를 전세 낸 것도 아니고…….”

“그냥 묻는 건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붉어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에밀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단이 입을 열었다.

“어디 아프냐? 얼굴이 왜 그렇게 빨게.”

에단의 물음에 에밀라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마치 폭발하기 직전처럼.

―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봤나.

페온의 타박에도 에단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걔는 어떻게 됐어?”

에단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에밀라가 입을 열었다.

“다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라가 식기를 놔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십니까? 다비는 아직 어려서 정식 입학은 힘들고, 예비 반에 편성되었습니다. 성적은…… 꽤나 준수하더군요.”

“의외인데?”

“그런데 정말 무슨 관계죠? 딸이라거나 그런 것은…….”

“뭐, 딸이 있을 수도 있겠지.”

순간 에밀라의 표정이 쩍 하고 갈라졌다.

“근데 걔는 아니야.”

“그럼 다행……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자식이 있다는 건가요?!”

“모르겠네.”

에단은 큼지막한 고기 한 점을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류태신이 에단의 몸에 들어오게 되면서 기본적인 기억들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백 프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작은 편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워낙 개차반이었어야지.’

원래 에단의 성격은 정말 구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개망나니였다.

‘어딘가에 자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혹시 모를 사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대충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충격을 받은 쪽은 에밀라였다.

에밀라가 식사를 멈췄다. 에단은 빠르게 식사를 마친 뒤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그럼 난 먼저 들어간다.”

“…….”

에밀라는 에단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 ……어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온이 한탄했다.

* * *

리사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뭐지?”

주변에는 친구들이 간병을 하다 잠이 들었는지 불편한 자세로 쪽잠을 취하고 있었다.

리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몸을 일으키자 갈빗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리사가 등을 기댄 뒤 호흡을 골랐다.

‘……이름만 같은 사람이구나.’

이로써 아주 자그마하게 남아 있던 의심도 확실히 사라졌다.

리사는 자신의 오빠를 알고 있었다.

에단 블란테는 악랄한 성격에 시기심이 많은 자였다. 또한 심지도 굳지 않았다.

자만심은 강하고, 아첨에 약하며, 약자를 무시하는…… 리사가 가장 경멸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임 교수로 부임한 에단은 달랐다.

외관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매 순간 자신감이 넘쳤다.

자만과 자신은 달랐다. 에단은 노력으로 얻어 낸 본인의 실력에 확신이 있었다.

‘변명할 것도 없이 패배했군.’

입맛이 썼다. 리사는 비록 가문을 떠나왔지만, 검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재능도 뛰어났고, 그 재능을 썩히지 않게끔 노력했다.

그런 리사는 언제나 아카데미에서 고평가를 받았다. 비록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장래가 유망한 검사였다.

패배하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보여 주려고 하는 이가 리사였다.

‘나도 모르게 얕잡아 본 건가.’

애초에 실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었다.

‘……앞으로 재밌겠네.’

리사의 승부욕은 남달랐다. 리사의 눈이 열의로 타올랐다.

* * *

로만과 크러쉬는 밤이 되자 몰래 아카데미를 나섰다.

아카데미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에 들어서고 나서야 로만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하셨겠죠?”

로만의 물음에 크러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한 대로 돈은 준비했다만…… 이렇게 거액이 필요한 게 맞는 건가?”

“네. 확실한 녀석들에게 의뢰할 거니까요.”

크러쉬는 뭔가 미심쩍어 하는 눈치였지만, 로만이 강한 자신을 보이자 마지못해 따랐다.

“여기가 맞나?”

“네. 곧 있으면 브로커가 찾아올 겁니다.”

“알겠네.”

로만의 말대로 정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골목에서 나타났다.

“……의뢰인 맞으십니까?”

망토를 쓴 사람이 그렇게 묻자,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잘 따라오시길.”

성별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브로커가 먼저 앞장섰다.

그는 골목길을 전전했다. 마치 미로 같은 구조의 골목길을 거침없이 지나가자 어느새 작은 쪽문 하나가 나타났다.

묘한 긴장감에 휩싸인 크러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브로커는 쪽문을 네 번 두드렸다. 그러더니 쪽문에 가까이 입을 대고 중얼거렸다.

“꼬리 없는 쥐. 눈 없는 까마귀.”

브로커가 암호를 말하자 쪽문이 열렸다.

쪽문 내부에는 비좁은 복도가 나왔다. 비좁은 복도는 어둡고 습했다.

브로커가 앞장섰고, 로만은 브로커를 따라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크러쉬도 인상을 찌푸린 채 로만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복도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방이 하나 나왔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으로 추정되는 그림뿐이었다.

“이건…….”

크러쉬가 앞으로 나서서 마법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공간 이동 마법진이군.”

게이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마법진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사람 한두 명만 이동할 수 있는 굉장히 작은 크기의 마법진이라는 것.

“올라가시면 마법진을 가동하겠습니다.”

“……믿어도 되는 건가?”

크러쉬가 찜찜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자, 로만이 단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를 믿으세요, 교수님.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습니다.”

“……알겠네.”

로만과 크러쉬가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이윽고 문양들이 빛을 발산했다.

마력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며 마법진이 발동하자, 로만과 크러쉬가 방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끄으윽…….”

게이트 마법진 이용 시 겪을 수 있는 특유의 구역감과 두통을 느낀 로만이 신음을 흘렸다.

반면 마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크러쉬는 별다른 반발력이 느껴지지 않는지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던 로만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네, 반갑습니다!”

로만은 검은 옷으로 감싸진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오늘 그분을 만나 뵐 수 있겠죠?”

“네, 바로 올라가시죠.”

크러쉬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로만은 고개를 흔들었다.

“올라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마지못해 수긍하는 눈치였다.

로만은 그런 크러쉬를 앞질러 계단을 올랐고, 이윽고 나타난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사람의 형체만 보이는 얇은 가림막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가녀린 체형의 여자가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반갑습니다, 로만 씨.”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로만 학생.”

“아, 설명드리겠습니다.”

로만이 크러쉬를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여기가 바로 정보 길드입니다.”

“정보 길드라고? 여길 대체 왜…….”

“후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주제 파악 못 하는 평민 녀석은 신사적으로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아카데미에서 퇴출하거나 편하게 죽이는 걸로는 만족을 못 할 것 같아서요.”

로만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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