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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77화 (77/398)

◈ [77화] 블란테의 괴담 2

산적 두목 줄리엔과 밤의 귀족 벨몬트는, 서로에게 묘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고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그 악독한 악마 녀석에게 대항해 볼까요?”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나는 이곳을 나가면 갈 곳이 없다.”

벨몬트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줄리엔이 울컥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사악한……! 마족보다 더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괜찮으니 너라도 떠나도록. 고통받는 건 나로도 족해.”

벨몬트의 말에 줄리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벨몬트 님 혼자 이런 칙칙한 장소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안 그러냐, 얘들아?”

줄리엔이 뜨거운 눈으로 수하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렇…… 죠?”

줄리엔이 다시 벨몬트를 바라봤다.

“이것 보십시오. 모두 저와 같은 반응입니다. 저희는 벨몬트 님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겁니다!”

“자네……!”

둘이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와락!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포옹이 다시 시작됐고, 그 모습을 오크와 고블린도 애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취, 취익.

키, 키에엑.

이윽고 몬스터들과 산적들이 시선이 교차하자, 두 무리 사이에도 미묘한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남자의 뜨거운 포옹을 끝낸 줄리엔이 벨몬트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떠난다고 한들…… 그 무시무시한 녀석이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확실히 그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안타깝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벨몬트.

“지금은 힘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비록 지금은 악에 굴복하고 있지만, 반드시 기회가 올 겁니다.”

“확실히!”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저희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혹시 자네도 나와 같은 것을 강요받았나?”

“아니요……. 혹시 저는 여기로 오라는 말만…….”

“그 악마 놈이 나에게 시킨 일이 있네.”

“대체 어떤 잔학무도한 짓을…….”

“보고 있게나.”

벨몬트가 천천히 움직였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버피 테스트.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렸다가 바로 점프하는 동작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

고작 열 개를 끝낸 벨몬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후욱, 후욱, 괜찮네. 다음 동작도 보여 주지.”

벨몬트가 스쾃 동작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버피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바들바들.

안쓰러울 정도로 흔들리는 다리.

하지만 벨몬트는 이를 악물고 가능한 횟수까지 채운 다음에 엎어졌다.

“벨몬트 님……!”

“가만히 있게나!”

벨몬트는 이를 악문 채 줄리엔을 바라봤다.

“나는 아직 보여 줘야 할 게 남아 있어!”

결의에 차 있는 벨몬트의 눈.

줄리엔은 고개를 피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벨몬트의 진심 어린 모습에 줄리엔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게 마지막 동작일세.”

벨몬트가 바닥에 엎드린 다음 그대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희고 가느다란 팔이 금세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차마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웠다.

“끄으윽!”

이를 악문 채 몸을 밀어내는 벨몬트. 곁에서 지켜보던 줄리엔이 주먹을 움켜쥐며 응원했다.

결국 마지막 동작을 끝낸 벨몬트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벨몬트의 몸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줄리엔이 벨몬트에게 달려갔다.

“벨몬트 님……. 이 무슨 가혹한……!”

“모두 100회.”

“그게 무슨…….”

“이 모든 동작을 쉬지 않고 100회 반복할 수 있을 만큼 훈련하라고 하더군. 그 악마 놈이.”

“정말 마족보다 더한……!”

“하지만 말이야…….”

“네?”

“왠지 모르게 즐겁지 않나? 살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더군……. 중량에 저항하는 근육. 제대로 자극을 주면 피가 쏠려 근육이 비대해지지.”

처음에는 화가 났다.

강요받는 운동만큼 하기 싫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벨몬트는 운동을 즐기게 됐다. 자극을 깨우친 것이다.

비록 아직 초반이었지만, 벨몬트의 마인드는 훌륭한 헬창이었다.

벨몬트가 자신의 팔을 접어 앙상하기 그지없는 이두박근을 보여 줬다.

“어떠냐?”

“아릅답습니다…….”

줄리엔의 대답에 다른 산적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저게?’

아무리 봐도 나뭇가지 같은 팔뚝인데?

줄리엔을 응시하는 벨몬트의 눈은 힘이 풀려 있었다.

“할 수…… 있겠나?”

“해 보겠습니다!”

줄리엔이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소년 같은 얼굴.

그 얼굴이 부하들을 향했다.

“할 수 있겠지?”

“네……. 뭐…….”

앳된 줄리엔의 얼굴에 익숙하지 않은 산적들이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들으셨습니까? 저희는 언제나 벨몬트 님과 함께입니다!”

“자네……!”

저게 어려운가?

아니, 지금 분위기가 대체 왜 이래?

두목은 수염을 깎더니 나사도 하나 빠져 버린 거야.

부하들은 그런 생각들을 떠올렸지만, 여기서 대놓고 반박할 수 있는 간 큰 산적은 없었다.

저래 보여도 줄리엔의 무력은 산적들 중 으뜸이었고, 쓰러져 있는 파리한 얼굴의 남자도 악명 높은 뱀파이어 일족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적들과 몬스터들의 피와 땀을 공유하는 처절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 * *

블란테 가문의 집무실.

빈센트는 오늘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똑똑.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빈센트는 기척만으로도 노크를 하는 인물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들어오게.”

빈센트의 대답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첸이 들어와 가볍게 목례했다.

“무슨 일인가?”

“최근 영지에서 괴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괴소문?”

빈센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지에서 떠도는 괴소문이라니 금시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거지?”

“산맥 근처에서 괴이한 신음 소리 같은 게 들린다고 합니다.”

“허, 귀신이나 언데드라도 있다는 소리인가?”

“저도 몬스터가 아닌가 했지만, 인간 남자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빈센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음 소리, 그것도 남자들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니, 어이가 없었다.

“보나 마나 시답잖은 일이겠지. 신경 쓰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빈센트의 말에 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에단에게서는 연락이 없나?”

“네. 별다른 연락은 없군요.”

“이런 괘씸한…….”

원래 정 없는 녀석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연락 한 통이 없을 줄이야.

“내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군. 어째 하나같이…….”

빈센트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빈센트의 부인은 카론을 낳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원래부터 무뚝뚝했던 빈센트는 부인을 여의면서 더욱더 감정 표현이 무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딸인 리사는 아꼈다.

다만, 가주의 권위를 위해 대외적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리사는 훌쩍 가문을 떠나 버리고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다.

가문의 골칫거리이던 에단은 갑자기 백팔십도 달라진 모습으로 가문을 휩쓸더니, 리사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로 떠나 버렸다.

빈센트로서는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 키워 봤자 의미 없구나……. 첸, 내 자네밖에 없네.”

“……부담스러우니 그만하시죠.”

빈센트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첸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첸은 빠르게 집무실을 나섰다.

“…….”

빈센트는 한참 동안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 * *

아카데미는 소문이 빨리 퍼지는 곳이다. 당연히 에단의 수업 내용도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A반에 새로 부임한 교수 얘기 들었어?”

“그 크러쉬 교수님을 입원시킨 교수 말하는 거야?”

“맞아! 화재의 그 교수님!”

“뭐야, 되게 비겁한 수작질로 이겼다고 하지 않았나? 왜 또 얘기가 바뀌었어?”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에 로만이랑 리사가 제대로 참교육당했더라고. 진짜 아무것도 못 하고 실력 차이로 졌다더라.”

“아, 진짜? 로만 그 녀석은 학장 아들인 거 티 내고 건방을 떨어 대더니……. 아주 쌤통이다.”

“그치? 큭큭. 그리고 설사 속였다고 해도, 대결 중에 방심한 사람 잘못 아니야? 상대를 얕잡아 보니까 속는 거지.”

“그렇게 말하니까 그 말도 맞는 것 같네. 그나저나 평민 출신이 그렇게 무작정 들이박을 수 있나? 나도 그 교수님 수업 한번 듣고 싶다.”

에단의 평판은 순식간에 올라갔다.

악의적인 소문을 주도한 로만이 침몰한 영향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소문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니까.

반면 정신을 차린 로만은 치욕과 모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로만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학장실로 향했다. 에단의 존재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기 위해서다.

“아버지! 그 평민 자식이!”

“……이곳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마크의 매몰찬 반응에 로만이 발을 주춤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 당황한 쪽은 마크였다.

마크가 로만의 상처투성이인 몸을 훑어봤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당연히 속이 쓰리고 화가 치밀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에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래, 여기에는 무슨 용무지?”

마크의 형식적인 어조에 오히려 로만이 멈칫했다.

“아버…… 아니 학장님! 감히 평민 교수가 아카데미의 물을 흐리고 있습니다! 주제도 모르는 그 교수를 당장 파면…….”

로만이 열변을 토해 내는 동안, 마크는 로만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크의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혹시 무슨 일…….”

“로만.”

“……네.”

“지금 그따위 말 하러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그게 무슨…….”

“아카데미의 학장인 내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미안하다 아들아.’

마크는 여기서 냉혹해져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평소의 마크라면 로만을 두둔하고 에단을 호출해서 징계를 내렸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에단의 가문이 블란테였기 때문이다. 마크는 블란테와 적대할 자신이 없었다.

마크도 권위주의에 찌든 귀족이었다.

귀족과 평민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상대는 블란테야.’

하지만 상대는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역사와 규모, 그 모든 것에서 마크의 가문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록 마크가 지금 아카데미 학장을 맡으면서 가문의 평판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블란테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마크는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는 귀족이었다. 그렇기에 레벨린의 선택을 받은 거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마크는 그런 귀족이었다.

‘네게도 말을 해 주고 싶지만.’

마크는 정보다 이성이 앞선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입이 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만에게 언질을 해 주는 순간, 에단의 출신이 블란테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끝이다.’

블란테가 자신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레벨린에게도 버림받게 될 터.

그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크는 더욱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

“너에게는 아카데미가 장난인가?”

“……아버지.”

“어허,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 말했지? 지금 나는 아카데미의 학장이고, 로만 자네는 학생에 불과하네. 용무가 끝났으면 어서 빨리 나가도록.”

예상치 못한 마크의 반응에 로만은 서러움이 북받쳤다.

‘아버지까지 저를…….’

로만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하늘 높이 치솟던 로만의 자존심이 산산조각 났다.

‘아버지께서도 나에게 실망하셨구나!’

이건 전부 그 건방진 평민 교수 때문이었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로만이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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