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75화 (75/398)

◈ [75화] 불량 교수 (3)

에단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해한다. 이미 이 아카데미에는 자체적인 체계가 완성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야.”

깊은 속사정은 알지 못한다.

여러 정치적 이유와 인력난 따위는 에단이 고려할 문제가 아닐뿐더러, 학생들이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다.

‘에밀라가 검술을 담당하고 있지만 대륙에서 유명하지는 않지.’

아카데미에서 블란테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에밀라는 실력이 뛰어났고, 장래가 유망한 스타 교수였지만, 이는 아카데미 내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대륙 전체로 보면 아직 명성과 입지가 부족했다.

‘근본이 어쌔신이니까 그럴 수밖에.’

그렇기에 블란테라는 이름값을 빌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블란테는 여전히 아카데미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에단도 그다지 아카데미에 힘을 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문을 숨기는 방향으로 결정한 거지.’

덕분에 레벨린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에단이라는 폭탄을 떠안게 됨과 더불어, 블란테라는 명성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애써 블란테를 끌어온 이유도 사라졌고, 아카데미의 평판에도 악영향이 갈 것이 분명했다.

이름이 알려진 적 없는 평민이 교수로 부임했으니까.

검술의 상징성.

그건 현재 에단이 가지지 못한 자격이다.

그렇다고 궁술이나, 기타 무기술을 가르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쪽 분야는 에단도 완전히 문외한이었으니까.

‘본 거라고는 양궁밖에 없는데, 뭐.’

애당초 가문에서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지원을 할 리도 만무하고.

자연스럽게 마법이나 다른 분야도 기각.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나는 체육을 담당한다.”

“……체육?”

“체육이라고?”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에단은 얼추 예상하던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로 그때, 리사가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좋다. 질문하도록.”

이렇게 대답하니까 진짜 교수가 된 기분이었다.

하필 손을 든 사람도 리사였고.

“체육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거죠?”

리사의 목소리에는 호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반감이 가득해 보였다.

“말 그대로 ‘체육’이다. 몸을 쓰는 법, 그리고 단련하는 법을 알려 주지.”

“……그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겁니까?”

리사의 말에 학생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무기술도 아니고 체육이 뭐야…….”

“그 시간에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교수로 온 거지?”

불신과 반감이 가득 찬 반응들.

에단은 피식 미소 지으며 마나를 싣고 그대로 발을 굴렀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에 학생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다들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

예상 못 한 에단의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대체 뭘 믿고 그렇게 건방을 떠는 거지?”

에단이 교탁에 몸을 기댄 채 학생들을 바라봤다.

무형의 압박감이 학생들을 짓눌렀다. 에단의 검은 눈동자가 리사를 향했다.

“몸을 쓰는 데에 자신이 있다라……. 정말 자신이 있나?”

에단은 측면에 준비된 목검을 하나 집어 들었다.

“검만 휘두를 줄 알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가?”

에단의 말에 리사가 입을 열었다.

“물론 검을 다루는 것에 있어 체력과 근력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쉿.”

에단이 검지를 들어 올려 입에 가져다 댔다.

“아직 내 얘기는 끝나지 않았어. 내가 이 반 수업은 처음이니 물어보지. 여기서 가장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이 누구지?”

학생들이 힐긋거리며 리사를 바라봤다.

― 호오, 역시 블란테의 핏줄이라 그건가.

“좋아. 그러면 리사에게 묻지.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지?”

에단의 질문에 고민에 빠져 있던 리사가 대답했다.

“실전 경험입니다.”

리사의 대답에 대다수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에단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 관점이 다르고 각자의 주관이 있으니.”

“그렇다면…….”

“그러니까 주관을 관철하기 위해선 증명해 내야겠지?”

에단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리사의 표정이 굳었다.

“……진심이십니까?”

“당연히 진심이 아니지. 교수인 내가 학생을 진심으로 상대할까?”

장난기 어린 어투. 그 모습이 리사를 더욱 자극했다.

“알겠습니다. 후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사가 몸을 움직이려는 그때, 로만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참을 수가 없군!”

갑작스럽게 흥분하며 일어선 로만.

“제가 그 오만함을 짓눌러 드리죠.”

“…….”

멍하니 로만을 바라보던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 * *

첫 수업부터 또다시 에단의 반 전체가 이동했다.

익숙한 풍경의 훈련장, 이전에는 같은 교수인 크러쉬와 마주 섰지만, 이번에는 학생과 섰다.

― 설마 진심으로 상대하진 않겠지?

‘설마요. 제가 그렇게나 개념 없는 놈으로 보이는 겁니까?’

― ……아니었나?

‘…….’

에단은 목검을 붕붕 휘둘렀다.

낯설지는 않았다. 에단은 검의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까.

‘검술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할 이유도 있고.’

주인공이 없어진 탓에 에단이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골치 아프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해야 했다.

이 일은 그 초석이었다.

로만은 에단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건방진 평민 녀석……!’

감히 고귀한 귀족이자 학장의 핏줄인 자신을 수많은 학생 앞에서 무시하고 조롱했다.

그 사실만 해도 에단의 죄질은 무거웠다.

더군다나 에단은 말도 안 되는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체육이라니.

기가 찼다. 명망 높은 아카데미에서 체육을 가르치려 들었다.

물을 흐리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오늘 제대로 교육을 해 줘야 하겠어.’

로만이 리사를 바라봤다. 리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에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흐흐……. 그 상황에서 내가 나서 줬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지?’

로만이 음흉한 시선으로 리사를 흘겨봤다.

건방진 평민 녀석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그 보상으로 리사를 가져갈 생각이었다.

당연히 리사는 알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을 계획이었지만, 로만의 머릿속은 이미 꽃밭이었다.

머릿속이 꽃밭인 그와 달리, 로만의 패거리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로만을 바라봤다.

“로만, 괜찮겠어?”

“아무리 비겁한 방법을 사용했어도 어쨌든 크러쉬 교수님을 이긴 사람이잖아.”

“맞아, 아무리 그래도 교수인데…….”

그러나 조언 따위는 로만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로만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무리를 바라봤다.

“너희들, 나를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닌데…….”

“그럼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 저 건방진 평민 녀석이 바닥을 기게 만들 테니까.”

로만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 에단은 로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 정신 나간 애송이군.

‘귀엽지 않습니까?’

― 너도 정신이 나간 게냐?

‘설마요.’

―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살살할 생각이지……?

‘그럼요.’

― …….

왠지 불안한 페온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에단은 페온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목을 비틀며 몸을 풀었다.

에단의 미소는 묘하게 섬뜩했다.

하지만 로만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우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나섰다.

“하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단은 소리 내어 웃었다.

― ……큰일 났군.

참담한 미래를 예상한 페온이 혀를 찼다.

로만이 천천히 에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에단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평민 아닙니까?”

“평민 맞아.”

“그런데 대체 뭘 믿고 그렇게 건방을 떠는 거죠?”

― ……아이고.

로만의 도발에 페온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글쎄, 실력 아닐까?”

“하, 설마 그쪽이 크러쉬 교수님을 이겼다고 그렇게 자만하는 겁니까?”

“아닌데?”

에단이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자, 로만의 볼이 꿈틀댔다.

“그 여유가 언제까지 지속되나 보죠.”

‘식상한 대사네.’

지금껏 에단이 상대해 온 모두가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래, 로만 학생. 슬슬 수업을 시작할까?”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에단.

명백한 조롱조였다. 로만은 이를 악문 채 목검을 들었다.

“아, 그래도 교수가 학생 상대로 하는 수업인데 어드밴티지는 줘야겠지. 여기 검 한 자루 있나?”

“검은 지금 들고 있는…….”

“아, 목검 말고, 진짜 검.”

에단이 로만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수업이 될 거 같아서.”

로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딴 거 필요 없어!”

존칭도 잊은 채 로만이 뛰어들었다.

“기회를 줘도 마다하네.”

에단이 목검을 쥔 손을 들며 헛웃음을 지었다.

쾅!

두 목검이 맞부딪쳤다.

힘의 흐름은 팽팽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에단이 순간적으로 목검을 회수하자 팽팽한 줄다리기가 끝나 버렸고, 그 탓에 로만은 순간 중심을 잃었다.

“어어?”

로만이 다급하게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로만의 경로에는 에단의 다리가 있었다.

결국 로만은 균형을 잃고 볼썽사납게 고꾸라졌다.

“풋.”

“푸훕.”

웃음소리가 훈련장에 퍼지자, 로만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일부러 웃기는 거냐?”

로만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빠드득.

이를 악문 로만이 목검으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이 개자식이!”

“교수한테 개자식이라니.”

로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 마나를 운용하는구나.

마나의 운용.

에단은 로만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그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날 죽이려고 하네?’

그렇다면 이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도 된다.

에단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로만은 마나를 사용했지만 그뿐이었다.

검에 마나를 싣지도 못했고, 움직임도 서툴렀다.

보폭, 타이밍, 발의 움직임, 시선 처리.

그 외의 것들까지.

모든 동작이 조잡했다.

쾅!

다시 한번 검과 검이 부딪쳤다.

이번에도 균형은 팽팽해 보였다. 에단이 그렇게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단은 지금 마나를 조금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로만은 전력으로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벌써 지쳤어?”

“닥쳐……!”

“버릇이 없네.”

에단이 검에 힘을 줬다.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순식간에 검의 균형이 깨졌다. 로만이 형편없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익!”

“검술을 보여 줄 것처럼 말하더니, 결국 힘 싸움이야?”

에단이 한 차례 더 힘을 주자, 로만이 나동그라졌다.

“자, 검술 한번 봐 볼까?”

에단이 검을 휘둘렀다.

검술을 보여 주는 게 아니었다.

아주 기본 중의 기본 동작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내려 베기, 찌르기.

연계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딱 로만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스피드를 유지했다.

쾅! 쾅! 쾅!

로만이 다급하게 목검을 휘둘러 에단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는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탓에, 흐름을 끊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반면 에단은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하품을 했다.

“슬슬 지루하지? 속도를 좀 올릴까?”

“잠깐……!”

“잠깐이 어딨어?”

에단의 검이 빨라졌지만, 로만의 대응은 늦어지고 있었다.

로만의 호흡이 순식간에 거칠어지고, 자세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왜? 내 주제를 알게 해 준다면서?”

― ……악마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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