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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72화 (72/398)

◈ [72화] 블란테의 괴담

최근 블란테의 영지에선 괴담이 떠돌고 있었다.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밤만 되면 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소문 말이야. 처음엔 안 믿었는데, 나도 얼마 전에 직접 들었단 말이지.”

“몬스터 소리 아니야?”

“예끼, 이 사람아. 몬스터 소리를 내가 착각하겠어? 분명히 사람 소리라니까.”

“사람 소리가 그 시간에 거기서 왜 나?”

“그거야 나도 모르지.”

“설마 귀신이라도 나온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잘못 들었겠지?”

영지민들 사이에서 괴담이 점점 퍼지고 있었다.

늦은 밤 울려 퍼지는 괴이한 소리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했기에 블란테 측에서는 조사단을 꾸리지 않았다.

“귀신이 자리를 잡아도 블란테에 잡을 리가 없지.”

“그건 그래. 블란테가 누구야? 신성 기사들도 한 수 접는 기사들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럼에도 밤에 들리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으…….

으아…….

살려줘…….

한 서린 소리들은 몬스터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여 괴담에는 점점 살이 붙었고, 영지민은 공포에 떨었다.

물론 괴담의 내용에는 맞는 말도 있었다.

한 서린 목소리도 맞았고, 괴이한 존재도 있었으니까.

벨몬트.

에단에게 덜미를 잡힌 흡혈귀.

밤의 일족으로 악명을 떨치던 그가 에단에게 굴복한 것이다.

― 내가 애들 보낼 테니까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

벨몬트는 흡혈귀로서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블란테의 기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간 크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하지 않고, 산 깊숙한 곳에 은둔해 있었다.

‘내 팔자야…….’

그러다가 재수가 없게도 에단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에단은 무서운 인간이었다. 흡혈귀인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협박을 했다.

‘……힘을 비축해서 일족을 부흥시키려 한 내 야망이.’

벨몬트가 위험한 블란테의 영지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었다.

죽은 나무.

강한 음의 기운을 내뿜는 죽은 나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죽은 마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나가 정화된 이 시대에, 질 좋은 죽은 마나를 공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흑마법사들도 음지에 숨어서 연명하는 상황이었다.

흑마법 같은 사술을 대륙 전역에서 강하게 제재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당연히 흡혈귀는 멸족의 위기까지 갔고, 벨몬트는 운 좋게 살아남은 흡혈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벨몬트는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밤의 일족이자 고고한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흡혈귀는 몬스터를 지배 아래 둘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밤의 귀족이라는 이명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이게 맞나?’

벨몬트는 몬스터와 함께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에단에게 수십 수백 번 조언 받은 정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 또 왔을 때 만족할 만한 성장이 없으면 운동 안 한 걸로 안다? 점진적 과부하 몰라? 쓰러져서 못할 때까지 하는 거야.

벨몬트는 고블린, 오크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끄으으윽!

취이이이익!

키에에에엑!

각자 고유의 추임새를 넣으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그들.

벨몬트의 가느다란 팔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하아……. 하아…….”

구슬땀을 흘리며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벨몬트의 옆에는 각기 다른 종족이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자신은 본디 고고한 밤의 일족. 타인의 명령을 듣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 너, 도망치거나 그러진 않겠지?

― …….

― 궁금하면 한번 시도해 봐.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웨어울프 녀석을 반죽음으로 만든 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손.

어두운 동굴 속에서 요사스럽게 빛나는 섬뜩한 안광.

그때만큼은 귀족의 권위고 나발이고,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상기한 벨몬트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벨몬트가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흠……. 좀 붙은 건가?”

거울 앞에 선 벨몬트는 자신의 몸을 훑었다.

창백하고 빈약한 몸뚱이. 조금 과장하면 뼈밖에 없어 보였다.

벨몬트가 팔을 접어 이두를 만들어 냈다. 봉긋 솟은 귀여운 이두가 보였다.

“흐흐, 역시 몸이 빠르게 변화하는군……. 이 몸의 재능이란……. 그렇지 않나?”

벨몬트가 몬스터 무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취, 취익!”

“키에에엑!”

오크와 고블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오크도 거울 앞에 섰다. 흉포하기로 소문만 블란테 영지 출신의 오크였다.

“취익!”

오크가 팔을 접자 우악스러운 근육이 드러났다.

근육의 크기도 거대했지만, 체지방이 낮아 혈관도 불거져 있었다.

“…….”

벨몬트가 째리는 눈으로 오크를 바라보자, 오크가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멀어졌다.

“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참…….”

이전에는 하루하루가 권태로웠다면 요즘에는 하루가 짧았다.

에단이 정해 준 루틴을 소화하기가 버거웠으니까.

에단의 명대로 몬스터 몇 마리를 데려와도 매한가지였다.

몬스터는 어디까지나 몬스터.

벨몬트의 권능으로 지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 가면 갈수록 건방져지는 거 같은데…….’

벨몬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마치 서로의 근육을 칭찬하는 것 같은 몬스터들을 보자니 뭔가 아니꼬웠다.

“여, 여긴가?”

그때 근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벨몬트가 화들짝 놀라며 경계했다.

“제길 방심했군.”

평소의 벨몬트라면 침입자가 들어오는 순간 인지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반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방심과 체력의 저하 때문이었다.

벨몬트가 망토를 감았다. 한계를 맞이한 다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정제되어 있었다.

“나의 수하들아, 침입자를 맞이해라.”

취이익!

키에엑!

몬스터들이 우렁찬 목청을 올렸다.

* * *

“여기가 맞나?”

줄리엔이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시선을 내리깔아 약도를 바라봤다. 약도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조악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지만, 줄리엔은 꿀꺽 삼켜 버렸다.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여기까지 찾아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영지에 출입하는 일이야 에단이 전해 준 증표로 가능했지만, 진짜 문제는 블란테의 산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살다 살다 여기에 발을 들일 줄이야…….”

명색이 산적단이었지만, 기껏해야 고블린 한두 마리씩 출몰하는 산에 자리 잡은 줄리엔과 산적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진짜 산에 발을 들이자, 쉽사리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두목,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안 되겠습니까?”

“……자신 있어?”

줄리엔이 수하 산적을 바라봤다.

덥수룩한 수염이 밀린 줄리엔의 얼굴은 상당히 곱상했다.

곱상한 줄리엔의 얼굴에 익숙하지 않은 산적이 고개를 돌렸다.

“그 새끼는…… 사람이 아니야. 산적보다 더한 놈이라고……. 여기서 더 척졌다가는…….”

줄리엔은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떨었다. 산적들도 그런 그가 이해가 된다는 듯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만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뭐가 준비돼 있다고 하니까, 가 보자.”

“……알겠습니다.”

줄리엔을 필두로 산적들이 조심히 발을 옮겼다.

그래도 산에서 살아온 짬밥이 있어서인지 크게 어렵지 않게 동굴 입구까지 도착했다.

“……여기가 맞겠지?”

“마, 맞는 것 같습니다.”

어둡고 음침한 동굴 내부를 보고 나니 거북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여기서 밖으로 나간다면 몬스터의 한 끼 식사가 될 것이다.

“그, 그럼 간다?”

줄리엔이 침을 꿀꺽 삼키고 안으로 들어섰다.

뚝뚝.

물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후욱, 후욱.

산적들의 호흡 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하, 하하, 왜 이렇게 긴장해 있어? 그런 담력으로 산적질은 어떻게 한 거야?”

“그, 그러게 말입니다. 아늑하고 좋기만 한데. 킬킬.”

“……오우거라도 있으면 어떡하죠?”

“…….”

순식간에 산적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줄리엔이 말을 내뱉은 산적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 녀석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산적들이 침묵한 채 동굴 안에 더욱 깊숙이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그 외엔 짙은 적막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적막은 오래가지 않고 깨지게 되었다.

키에에엑!

고블린 한 마리가 어둠을 헤치고 뛰쳐나왔다.

“뭐, 뭐야?!”

“꺄아아악!”

산적들이 구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화들짝 놀란 줄리엔이 그나마 정신을 빨리 차렸다.

줄리엔과 고블린이 바닥에 뒤엉켰다.

“어, 어떡하지?”

“자, 잘 안 보여! 무슨 일이야?”

줄리엔과 고블린이 힘 싸움을 했다. 줄리엔은 나름대로 경험이 있는 산적으로서 고블린을 사냥한 경험도 적지 않았다.

‘근데 뭔 놈의 고블린 힘이 이렇게 세!’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고블린은 교활하고 영악하여 까다로운 몬스터이지, 정면으로 부딪혀 힘을 겨룬다면 상대하기 그리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었다.

고블린의 신체 능력은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줄리엔은 건장한 체형을 가진 장성이었고, 힘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줄리엔과 고블린은 지금 치열한 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 설마?’

순간 에단에게 전해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베, 벨몬트 씨?”

줄리엔의 말에 순간 고블린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키에엑?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쩍 멀어졌다.

“……벨몬트 씨가 맞습니까?”

고블린이 멀어지자, 충격받은 얼굴을 한 줄리엔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하던 산적 하나가 다가와서 줄리엔에게 물었다.

“두목님, 지금 무슨 소리를…….”

“기다리고 있어 봐.”

혼란스럽기는 줄리엔도 매한가지였다.

설마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고블린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대화가 통하는 고블린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줄리엔이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어둠의 장막을 거둬 내고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고한 밤의 일족, 벨몬트였다.

“인간 놈이 감히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벨몬트의 등장에 산적들이 다시 한번 자지러졌다.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벨몬트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참된 반응이 아니던가.

‘그, 괴물 같은 인간 놈…….’

에단을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벨몬트는 머릿속에서 끔찍한 에단의 기억을 지워 내고 눈앞의 침입자를 바라봤다.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건가?”

“아! 죄, 죄송합니다.”

예의 바른 대답에 조금 마음이 풀린 벨몬트가 줄리엔을 바라봤다.

줄리엔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저 사람이 벨몬트구나!’

그렇다면 빠르게 입장을 밝히는 게 사는 길이었다.

“저희는 에단 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흠칫.

줄리엔의 말에 벨몬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에단이라고?”

벨몬트의 표정이 좋지 않자, 덩달아 줄리엔도 당황했다.

‘반응이 왜 저러지?’

“……저, 잘못 찾아왔을까요?”

“아니……. 그 이름을 들으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다.”

“설마 벨몬트 님도?”

“설마 너도?”

줄리엔과 벨몬트,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눈이 촉촉해지며 둘 사이에 동질감이라는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랑 같은 처지구나!’’

서러움이 북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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