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협상 (1)
“……제압 가능할까요?”
메이가 정면을 향해 걸어 나가면서 말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메이가 눈을 감았다.
“그 정도인가요?”
“옆에 있는 중년 남성이 위험합니다. 만일 교전이 벌어지면…… 아가씨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블란테라지만 대체 저 정도의 사람을 어디에서…….”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까마귀.
정보 길드의 수장인 자신을 지키는 수호대.
무력으로는 그 어떤 집단에게도 꿀리지 않고, 난전에서는 그 누구보다 위협적인 자들.
냉정한 판단력과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가진 까마귀들이 승산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희박한 것이었다.
눈앞의 남자.
‘에단 블란테.’
블란테 가문의 둘째이자, 골칫덩이인 망나니.
‘완전히 틀려먹은 정보군.’
망나니라는 점은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거침없이 정보 길드를 들이박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단순한 망나니였다면 저런 세력과 무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권력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이용하고 있어.’
뒷배만이 아니다. 이렇게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에단 본인의 무력일 터.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번 일은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썩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나름대로 에단과 얘기가 잘 끝난 상태였다.
한데 수하를 컨트롤하지 못해, 일이 이 지경까지 흘러갔다.
그러니 책임 소재는 자신에게 있었다.
‘대가를 치러야지.’
하지만 저 어린 사자에게 어떤 대가를 제시해야 한단 말인가.
처음엔 최후의 수단으로 교전도 생각했다. 에단은 아직 장성하지 못한 블란테였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자신과 까마귀들로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까마귀들은 승산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에단의 곁에 있는 저 중년 때문에.
정보 길드의 수장인 메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위험한 사내였다.
싸우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메이는 수없이 많은 괴물을 만나 왔지만, 기가 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괴물이라고 한들 한낱 사람이었고, 그녀는 사람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모르겠어.’
검은 단색의 정복을 입은 노신사.
얼핏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외관이었지만, 메이의 본능은 다급하게 경종을 치고 있었다.
문제는 저 노신사만이 아니었다.
에단, 단순한 망나니인 줄 알았지만 잘못 생각했다.
막무가내인 듯하면서 냉정했다.
욕심은 많아 보였지만, 욕심을 뒷받침하는 힘과 권력을 쥐고 있었다.
‘앞으로 어디까지 커질지.’
예측조차 되질 않는다.
에단은 아직 어린 사자였다. 지금도 이럴진대 후에는 어떤 폭풍이 일어날지 두려울 지경이었다.
에단이 메이를 향해 다가가자, 까마귀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네이드가 미끄러지듯 따라붙었다.
“움직이면 죽습니다.”
소름 돋는 목소리.
어둠에 숨은 까마귀들을 네이드는 정확히 인지했다.
네이드의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달빛과 마나를 머금은 단검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히 빛났다.
‘짜증 나는군.’
에단은 메이를 향해 걸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정이 어긋났다.
주인공은 홀연히 사라졌고, 상대는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강자존.
에단은 격투기 선수 시절부터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모두가 에단의 이빨이 빠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블란테라는 뒷배가 있었음에도 에단은 오늘 목숨이 위험했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자신의 행위를 명예로운 희생으로 여겼다.
그 점이 화가 났다.
체념, 결의.
그 표정은 저 녀석들이 지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차라리 끝까지 이기적인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에단이 왼손에 힘을 줬다.
뿌드득.
에단의 손에 착용된 타이탄의 장갑은 아무리 강하게 움켜쥐어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에단을 바라보던 메이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그 말은 곧 책임을 지겠다는 소리지?”
“네. 수하의 잘못이 곧 제 잘못이니까요.”
메이의 표정은 담담했다.
에단이 그 담대한 표정을 보고 코웃음 쳤다.
“그럼 제시해.”
“네?”
“내가 너한테 물어야 하나? 네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말해.”
“……그게 무슨.”
“만약 내 성에 차지 않으면.”
에단의 입가가 비틀렸다.
“오늘 너희들은 전부 죽어.”
그가 내뱉은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 말씀, 진심이신가요?”
“그럼 내가 한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려?”
― ……위험하지 않겠느냐?
‘블란테가 언제 굽히는 것을 봤습니까?’
에단의 곁에는 네이드가 있었다.
휴고와 가토는 훌륭한 전력이다.
에단도 전투에 돌입하면 사용할 수 있는 패를 가지고 있었다.
룬어, 페온.
그리고 상대가 모르는 장비들도 있었다. 승산은 충분했다.
위험? 감수할 수 있었다.
메이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에단의 눈을 바라봤지만, 그 눈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적대하려 들고 있어.’
보복 따위는 가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보 길드가 보복을 두려워해야 했다.
상대는 블란테니까.
메이가 고개를 돌려, 묶여 있는 간부들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후던을 바라봤다.
후던이 수치심에 고개를 푹 숙이자, 메이는 눈을 감았다.
“……정보 몇 개로는 성에 안 차시겠죠.”
“당연한 소리 아닌가? 네 목숨이 그렇게 헐값은 아닐 거 아니야. 내 목은 너보다 비싼데?”
에단의 비아냥거림에 메이를 지키는 그림자가 꿈틀거리자, 네이드에게서 살기가 폭사되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표정은 평온했으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진심이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얼 제시하지? 어떤 걸 내걸어야 에단의 분이 누그러지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
어쭙잖게 이득을 취하려 들면 에단은 곧바로 눈치챌 것이 빤했다.
그녀의 말에 정보 길드의 명운이 걸려 있었기에 말과 행동에 주의를 가져야만 했다.
“……자리를 이동하시지 않겠습니까?”
메이가 그렇게 말하자, 에단이 잠시 고민했다.
“네이드.”
“네, 도련님.”
“자신 있어?”
“노인네를 너무 부려 먹으시는 것 아닙니까?”
“왜 말을 돌려? 아까는 정정하다더니.”
“위험합니다.”
“좋아, 이동하지.”
듣는 척도 하지 않는 에단의 모습에 네이드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자신 있으니까 아까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허허,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닌가 봅니다.”
네이드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에단이 몸을 돌려 다비에게 다가갔다.
세계수의 목걸이가 펼쳐진 장막. 장막은 주인을 인식하는 건지, 에단을 자연스럽게 통과시켰다.
장막으로 들어온 에단이 손을 뻗었다.
“고생했다.”
“…….”
다비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뒤편을 바라봤다.
여관 주인이 먼지를 털어 내고 일어서며 쓰게 웃었다.
맷집은 좋은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네. 빨리 가 봐.”
에단은 변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이었고, 시간을 돌리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
에단이 여관 주인을 흘겨봤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얼마나 애절한 사연이 있는지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 각자 자신만의 사연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번은 없어.”
경고였다.
이번에는 한 번 넘어갔지만, 이후에도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에단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에단이 세계수의 목걸이를 목에 걸고 메이 앞에 섰다.
“이제 가지?”
메이가 슬며시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렸다.
이곳에는 듣는 귀가 많았다.
* * *
메이는 에단을 데리고 아지트 중 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의 모든 인원은 정보 길드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에단과 일행을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아지트로 이동한 메이는 곧바로 직원을 통해 후던과 잭슨, 그 외 부상당한 인원을 후송했다.
“……상태가 좋지 않군요.”
치료사로 보이는 직원 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치료하세요. 낫게 한 뒤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메이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후던과 간부들은 차마 메이를 마주 볼 수 없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시선을 돌린 메이가 계단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혼자 다녀올게.”
“도련님.”
“걱정 마.”
에단이 씨익 웃었다.
“내가 그렇게 허접하지는 않으니까.”
네이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메이를 바라봤다.
“부디 실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싸늘한 경고. 메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길을 안내했다.
꽤나 넓은 방. 메이의 집무실인지 응접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에단은 메이가 말하기도 전에 의자를 빼 와 걸터앉았다.
에단의 행동을 바라보던 메이의 볼이 꿈틀거렸다.
“여기는 손님을 불러 놓고 차 한잔 대접 안 하나?”
협상 테이블.
에단이 가장 귀찮아하면서도 자신 있어 하는 분야 중 하나였다.
메이는 눈썹을 미묘하게 꿈틀거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맞은편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지만 차는 따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네요. 다음부터는 유의하겠습니다.”
“그냥 해 본 소리야. 뭘 믿고 너희가 주는 걸 덥석 먹겠어?”
에단의 말에 메이의 볼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하하…….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농담 같아?”
“……협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어, 있어. 그런데 마음에 안 드네.”
“……어떠한 점이 불쾌하게 느껴지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너무 목이 뻣뻣해.”
쾅!
에단이 테이블 위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최대한 거만한 표정으로 메이를 바라봤다.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여기서는 망나니처럼 나가야 한다.
― 미친놈.
페온이 혀를 찼다.
메이는 에단의 태도를 보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뭐지?’
정보 길드의 수장이 되기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메이였다.
가장 천대받는 직업들부터, 가장 고고해 보이는 귀족까지.
연기하지 않은 직업이 없었고, 모두를 속이고 현혹했다.
그렇게 메이는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온갖 더러운 일들을 처리하며 한 무리의 수장이 된 것이다.
정보 길드의 수장이 되고 난 뒤 이러한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
에단에 대한 평판은 알고 있었다.
‘블란테의 망나니.’
하지만 최근 행보가 바뀌고 있었다.
없다시피 하던 입지를 크게 늘렸는데, 늘린 방법도 파격적이었다.
악명 높은 몬스터인 블랙 오우거를 단독으로 토벌하고, 아카데미의 유명 인사인 에밀라를 굴복시켰다.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다 망신당했던 에단이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도 교수로 말이다.
‘최근에 벌인 일도…….’
얼마 전에 입수한 정보가 있다.
블라디미르 크러쉬.
마법 가문 블라디미르의 적자이자, 아카데미의 교수인 크러쉬를 학생들 앞에서 무참히 박살 냈다는 정보.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에단의 행보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또 뭘 원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과거와 달라지긴 했지만 망나니 같은 행보는 변화하지 않았다.
메이는 사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에단에게서는 그 무엇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그 탓에 벌써부터 협상에서 말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원하는 거지……?’
상대는 블란테였다.
재물, 권력, 힘.
정보 길드가 가진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족했다.
그렇다면 줄 수 있는 것은…….
메이가 주먹을 쥐었다.
“저희를 원하는 겁니까?”
메이의 대답에 테이블 위에 얹힌 다리가 슬며시 내려가며, 에단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제야 대화가 조금 통할 것 같네.”
‘이거였구나…….’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탐욕을 부릴 줄은 몰랐다.
‘……기가 차는군.’
블란테는, 아니, 에단은 지금 정보 길드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