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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69화 (69/398)

◈ [69화] 상대를 잘못 골랐어

쾅!

굉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잭슨의 볼이 꿈틀거렸다.

‘드디어 시작인가.’

잭슨은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자였지만, 그 또한 정보 길드의 간부였다.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에단.

만난 지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적으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어쩔 수 없어.’

그러나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후던이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했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봐 온 바로, 에단은 결코 곱게 넘어가지 않을 인물이었다.

‘블란테의 압박이 들어오면 우리는 끝이야.’

그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잭슨은 미리 움직였다.

검은 도끼.

은퇴했지만 여전히 전설적인 용병으로 회자되는 그녀에게 의뢰했다. 당연히 그녀는 거절했다. 에단이 블란테 가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서도 건들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과거가 있었고, 잃을 게 있었다.

먼지구름이 일어난 장소는 그녀의 여관, 질긴 가죽이었다.

“여기까지 합시다. 일행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몰라도 돼. 그런데 그것도 알고 있었어? 우리 일행 중에 노인네가 하나 있거든.”

“……무슨 소리죠?”

쾅콰과과광!

먼지구름 뒤에서 살벌한 금속음이 이어졌다.

콰직!

슈우우우웅!

도끼를 짊어 든 거구가 튀어나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먼지 사이로 흰머리의 남성이 장갑을 매만지며 걸어 나왔다.

“아직 노인네 취급은 이릅니다, 도련님.”

“하여튼 귀는 밝아요.”

“……!”

잭슨의 눈이 부릅떠졌다.

네이드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평온하지 않았다.

잔잔한 분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휴식을 방해받아서 조금 불쾌하군요.”

“나도 안 쉬고 있는데 쉬려고 그런 거야?”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보군요.”

“헨리는 어디 있어?”

“아직 안에 있습니다.”

에단이 가토와 휴고를 바라봤다.

“챙겨 와.”

고개를 끄덕인 휴고와 가토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에단이 잭슨을 바라봤다.

“선을 넘었네.”

“당신들은 대체…….”

에단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자신을 건드린 것으로 모자라 일행에까지 손을 뻗었다.

에단이 약했다면, 네이드가 없었다면…….

낭패를 본 쪽은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목숨을 잃었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이드.”

“네, 도련님.”

“제압할 수 있겠어? 전설적인 용병이라던데.”

“그래 봤자 용병 아니겠습니까.”

에단이 뒤를 바라봤다. 다비가 몸을 떨고 있었다.

입이 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애는 죄가 없지.”

에단이 다비에게 다가갔다.

“손 좀 줄래?”

에단이 한쪽 무릎을 꿇고 말하자, 다비가 오들오들 몸을 떨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이거 쥐고 있어.”

에단이 목걸이를 벗어서 건넸다. 세계수의 목걸이다.

“지켜라.”

정해진 시동어는 없다. 에단의 의지가 곧 시동어다.

지이잉.

지금껏 쌓여 온 마나가 다비의 주위에 펼쳐졌다.

“미안하게 됐다.”

에단이 몸을 일으켜 무릎을 털었다.

“애는 죄가 없지만…… 어른은 그러면 안 되지.”

에단이 전방을 바라봤다.

몸이 묶인 간부들, 사지가 부서져서 미세하게 몸을 떠는 후던.

그리고 비장의 수가 수포로 돌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잭슨.

“……미안하게 됐네요.”

그때, 벽에 처박혔던 거대한 그림자가 멀쩡히 걸어왔다.

거구의 여자.

그 덩치는 단순한 살덩이가 아니었다. 투박하고 거대한 양손 도끼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오는 여관 주인.

“제압할 수 있다고 했지?”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그래, 죽이지는 마라.”

네이드가 에단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봐?”

“정이 많으시군요.”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네이드가 침묵하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빨리 제압이나 해.”

여관 주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꽤나 나이를 먹었군요. 이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세월이 야속한 건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네이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서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뭐죠?”

“통성명을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습니까?”

네이드의 말에 여관 주인이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 맞는 말이죠. 우리의 시대는 이미 끝났으니. 그리고 보아하니…… 다비에게 해를 가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그쪽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불쾌하군요. 먼저 손을 뻗은 건 그쪽 아닙니까?”

“……할 말이 없군요.”

여관 주인이 투박한 도끼를 뻗었다. 도끼의 끝이 네이드에게로 향했다.

그걸 본 네이드도 허리춤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스산했다.

― 결과는 정해져 있군.

네이드는 대륙에서 수위에 드는 강자다.

검은 도끼.

그녀 역시, 한때 이름을 떨쳤던 용병으로 원작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하지만 네이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

네이드는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담근 강자다.

비록 첸과 빈센트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순 있지만, 여기서 용병 따위에게 패배할 위치는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판이 날 터.

에단은 이제 다른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왜? 더 부를 애들 있어?”

“……여기는 블란테의 영지가 아닙니다.”

“반대로 말하면, 블란테의 구역이 아닌 곳에서 고작 우리를 상대로 이렇게 고전하는데.”

에단이 잭슨을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가 가문에 돌아가면 어떻게 하려고?”

블란테는 은원을 잊지 않는다. 은원을 행하는 데 있어 비난과 손가락질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그게 블란테의 방식이었다.

‘제기랄.’

잭슨이 고개를 숙였다.

판단을 잘못했다. 에단은 적이 되지 않는다면 위험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에단이 한번 적대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상대보다 위험하고 흉포했다.

오판했다.

에단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음에도 방심해 버렸다.

에단에게 압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에단은 아직 어렸다.

하여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이건 모두 정보 길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져온 참상이었다.

‘이제 끝이다.’

돌이킬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소란이 커져 용병들이 개입하고, 정보 길드의 인원들이 더해지면 목숨은 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뒤는?

정보 길드의 연줄은 거미줄처럼 광범위했다.

귀족, 상인, 용병, 어쌔신.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치부는 있기 마련이고,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자는 없다.

정보 길드는 그 ‘비밀 정보’를 자기의 무기로 삼았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상대의 목을 노릴 비수로써.

하여 정보 길드를 비호하는 세력은 다양했다.

하지만 정보 길드의 적이 ‘블란테’라도, 계속 비호할 수 있을까?

블란테는 원한을 잊지 않고,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불똥이 튀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쭙잖게 옹호하려 들었다가 목이 뜯기는 건 자신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 텐데, 누가 감히 블란테를 막아선다는 말인가.

‘여기서 위험의 씨앗을 제거하는 게 마지막 희망이었어.’

이 이상 어떠한 변명을 늘어놓은들 궁색하기만 했다.

잭슨의 체념하는 듯한 표정에 에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단은 잭슨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콰직.

“왜 저 녀석이나 너나 멋대로 체념하는 거지? 너희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나?”

저따위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힘이 약했다면.

가진 게 없었더라면.

싸늘한 주검이 되는 것은 에단 자신과 일행이었을 터.

먼저 선을 넘은 쪽은 이들임에도 마지막 태도는 저따위라니.

그 점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네이드.”

“네, 도련님.”

“빨리 끝내.”

에단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네이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스.

네이드 주위에 흐르는 마나가 농밀해졌다.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음이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네이드가 마치 흩어지는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보이긴 하나 잡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하앗!”

거대한 도끼가 네이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흉악한 기세였다.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하지만 네이드는 연기가 흩어지듯 검은 도끼의 앞에 다가섰다.

손에 든 작은 단검.

검은 도끼는 네이드가 손을 쓰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새 단검이 검은 도끼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검은 도끼의 몸이 움찔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였으면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평온하고 따스한 목소리.

그렇기에 더 오금이 저렸다.

검은 도끼가 무기를 손에서 놓고는 무릎을 꿇었다.

“……괴물이로군.”

“평범한 인간입니다.”

에단이 뒤를 돌아봤다. 다비는 입을 틀어막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휴고와 가토가 헨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헨리는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저기에 집어넣어 놔.”

에단이 손짓하자, 보호막이 잠시 해제되었다.

헨리가 다비 곁에 들어서자, 에단이 재차 손짓했다.

지잉―

그러자 다시 보호막이 빛을 발했다.

― ……정말이지 좋은 기물을 얻었군.

‘그럴 수밖에. 주인공의 사기템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에단은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잭슨이 몸을 바동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휴고가 떨리는 눈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가토…….”

“왜?”

“이래도 되는 걸까?”

가토가 차가운 눈으로 휴고를 노려봤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우리는 도련님의 검이야. 블란테의 기사라고. 도련님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도련님을 지켜야 해.”

“…….”

“상황 파악이 안 돼? 실력이 약했으면 오늘 죽은 건 우리야. 기억해. 마구간에서 말보다 못한 너의 삶을 구해 준 건 도련님이야. 설마…… 사사로운 정의감과 정에 휘둘리는 건 아니겠지?”

“……미안.”

가토가 눈을 흘겼다.

“만약 네가 머뭇거리면 내가 너를 대적할 거야.”

가토가 휴고의 왼쪽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붙잡았다.

“명심해. 그 문양은 가볍지 않으니까.”

“……알겠어.”

휴고의 표정이 굳었다. 휴고가 힐끗 다비를 바라봤다.

안타까운 감정은 여전했지만, 이제 휴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옳고 그름보다 에단의 명령이 우선이었고, 힘이 없었다면 죽는 것은 일행이었다.

약육강식.

그게 블란테의 방식이었고, 세계의 진리였다.

에단이 잭슨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또다시 누군가 나타나고 있었다.

“똑같은 등장이군.”

네이드가 슬며시 에단의 곁에 붙었다.

“도련님.”

“그래, 얘네 상대로는 방심하면 안 되지.”

정보 길드의 수장.

그리고 그를 따르는 그림자들.

쟤네가 진짜였다.

뚜뚝.

에단은 자신의 목을 비틀었다.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쾅!

에단의 발이 잭슨의 배에 꽂히자, 그는 그대로 벽까지 날아갔다.

벽에 박힌 잭슨의 고개가 뚝 하고 떨어졌다.

“이제 협상을 시작해 볼까?”

당연히 갑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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