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정보 길드 (5)
정보 길드의 간부들이 에단을 따라붙고 있었다.
그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에단은 숨조차 가빠 보이지 않았다.
에단의 체력은 규격 외였고, 아무리 간부들의 무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에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온 에단이, 숨조차 고르지 않고 휴고와 가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은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가라!”
에단의 외침.
당혹감을 떨치지 못한 가토가 우물쭈물하다가 앞으로 뛰어들었고, 휴고는 다비를 보호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흥, 아직 젖도 못 뗀 애송이가!”
가토의 얼굴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했다. 당연히 산전수전 다 겪은 간부들 입장에서는 그가 같잖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새 가토는 평정을 되찾았다. 휴고와의 대련에서 패배한 뒤로, 가토는 평정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간부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가토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은 매서웠다.
하지만 가토는 얼마 전까지 첸과 수련했다.
첸이 가볍게 휘두르던 목검이 지금 눈앞에서 내리꽂히는 검보다 수배는 위협적이고 매서웠다.
가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순식간에 검이 출수됐다.
서걱―
간부의 검이 그대로 양단되었다. 하지만 간부의 득의양양한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역량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검을 양단한 가토의 몸이 빙그르 회전하며 그대로 간부의 복부를 가격했다.
팡!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간부의 몸이 그대로 비행했다.
다른 간부들이 순간 몸을 멈칫했다. 후던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본능이 경고하는 듯했다.
새로 나타난 애송이는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라고.
“다들 저 새끼 먼저…….”
“……쯧쯧.”
후던을 바라보던 가토가 고개를 저었다. 가토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눈빛의 의미를 이해 못 한 후던이 고개를 돌렸다. 본능적으로 감지한 살기였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너 뭐하냐?”
“……!”
후던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빼려고 했으나, 에단의 손아귀가 먼저였다.
후던의 멱살을 잡은 에단의 얼굴이 악귀처럼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에단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후던은 저항해 보려 했지만, 무게 중심에 대한 이해도는 일반인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미 공간과 무게 중심은 에단의 통제하에 있었다. 심지어 신체 능력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에단이 우위인 상태.
후던의 저항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에단은 발을 후던의 다리 사이로 넣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후던은 공중에 뜨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부웅―
몸이 공중에 떠오른 그 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닥에 꽂히는 건 찰나였다.
쾅!
완벽한 업어치기에 후던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콰직!
이어 에단이 무릎을 후던의 가슴팍에 얹자, 후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 모습에 다른 간부들이 급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보고 있을 가토가 아니었다.
곧장 가토가 적들을 향해 뛰어들며 베테랑 간부들과 교전을 시작했다. 가토는 능수능란하게 협공에 대처했다.
정보 길드의 간부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애송이로만 보였던 가토의 움직임이 너무 노련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휴고와 도련님을 상대로 싸워 봤어?’
가토는 울분을 토해 내듯 검을 휘둘렀다.
속임 동작, 변칙.
에단은 상대의 심리를 읽으며 가지고 놀 줄 아는 베테랑 선수였고, 휴고는 짐승 같은 직감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괴물이었다.
두 괴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훌륭한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 가토의 성장세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가토의 검이 빛을 발할 때마다 정보 길드 간부들은 하나씩 제압당했다.
그러는 사이 에단은 신음을 내뱉고 있는 후던을 흘겨봤다.
에단의 싸늘한 표정에 후던은 공포심이 밀려들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란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너 그래도 한가락 하는 애지? 그렇다면 후환을 남겨 두면 안 되지.”
그 말과 동시에 에단이 후던의 발목을 그대로 짓밟았다.
콰직!
“크아아악!”
후던이 비명을 내질렀다. 에단은 무심하게 다리를 한 번 더 들었다.
그러고는 반대편 발도 그대로 지르밟았다.
콰직!
“끄, 끄으으윽!”
에단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 이 개자식들, 이러고도……!”
“그 대사들은 질리지도 않냐?”
에단이 터덜거리며 다른 간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수명이 다해 가는 가로등이 깜빡이며 에단을 비췄다.
에단의 표정에서 불안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너희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우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간부 하나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에단의 손이 더 빨랐다.
쫘악―!
에단의 손바닥이 간부의 뺨을 후려쳤다. 짜릿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밤중에 시끄럽게.”
“커헉.”
남자의 입에서 뽑힌 이와 함께 진득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보지 마.”
휴고가 다비의 눈을 가렸다. 에단이 저 상태에 돌입한 이상, 휴고나 가토는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너희들은 이게 잘한 짓 같지?”
에단이 슬금슬금 몸을 빼고 있는 다른 간부에게 다가갔다. 에단의 손이 간부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런데 왜 그 생각은 못 하냐? 남을 죽이려 들면 너희들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쫘악―!
에단의 손찌검에 간부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우, 우리는…….”
“너희는 정보 길드 뭐시기라고? 뒤에 귀족들도 끼고 있고? 뭐, 용병들도 우릴 쫓는다고?”
“그래……. 이제 시작일 뿐…….”
“야.”
에단이 가토와 휴고를 바라봤다. 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희들, 그거 벗어.”
휴고와 가토가 머뭇거리자, 에단이 눈을 부라렸다. 둘의 행동이 민첩해졌다.
두 사람이 로브를 벗자 가려져 있던 정복이 드러났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흑색 정복, 그리고 가슴팍에 수놓아진 검은 사자.
그 누구도 감히 사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대륙의 포식자.
“브, 블란테?”
다른 간부들은 잭슨과 후던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후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왜? 이제야 상황이 파악돼?”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용병들? 귀족들? 그래, 뒷배가 있다면 죄다 불러 봐.”
“이, 이럴 수는…….”
“그리고 잘 숨어야겠다. 블란테의 적통을 협박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저, 적통이라고?”
한편 뒤쪽에서 에단의 말을 듣고 있던 후던의 표정은 아연해졌다.
처음 잭슨이 블란테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후던은 믿지 않았다.
블란테가 누구던가.
대륙을 호령하는 고고한 사자. 사나운 몬스터를 막아서는 살아 있는 방벽.
그것이 블란테였다. 그런 블란테가 고작 정보 길드에 관심을 가지다니.
겁을 상실한 어떤 간 큰 녀석이 블란테를 사칭했다고 생각해, 다른 간부들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설령 만에 하나, 사칭범이 아니고 진짜 블란테의 끄나풀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상대를 제압하고, 증거를 인멸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정보 길드의 간부들은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이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증거 인멸?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지부를 옮기고 잠시 몸을 숨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참하게 패배했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애새끼들한테.
그들의 자존심이 산산이 조각났다.
처음 공중에 붕 떠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질 때만 해도, 기회를 엿보려 했다. 무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아직 실전 경험은 부족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판이었다.
두 다리를 산산이 부숴 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말의 기회도 노릴 수 없게끔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블란테의 적통이라니.’
에단의 눈빛.
웃음기를 머금었지만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며, 후던은 깊이 후회했다.
‘잘못 건드렸다.’
이런 눈빛을 한 자들은 건드리면 안 된다.
음지에 숨어 있던 기억을 잊은 채 자만해 버렸다.
힘을 과신하는 순간, 이런 날이 오기 마련이었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후던은 자신의 목숨으로 이 일을 끝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꽉 감았다. 에단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후던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너, 지금 뭐 하냐?”
“……!”
후던의 동공이 미미하게 떨렸다.
에단이 입꼬리를 비틀며 후던의 손목을 붙잡았다. 후던이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에단의 근력은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에게 후던의 손목을 꺾는 행위는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수월했다.
기무라 락? 키 락?
기술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비틀면 된다.
콰드득.
들려서는 안 될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손목의 뼈가 손쉽게 조각났다.
“왜? 네 목숨 하나로 끝낼 생각이었어? 네 목숨이 그렇게 가치가 높나?”
소름 돋는 목소리. 에단은 웃으면서 협박했다.
그때 멀리서 한 인영이 다가왔다.
어둠에 가려진 얼굴이 가로등 빛과 달빛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에단이 잭슨에게 인사했다.
“……그쯤 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 안 돼.”
에단의 단호한 대답에 잭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곤란해집니다.”
“곤란하게 해 봐.”
에단의 태도는 삐딱했다.
잭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정보 길드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에단이 굳은 표정의 잭슨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뭐라고? 적으로 돌려?”
“정보 길드를 우습게 보지 않는 게…….”
몸을 일으킨 에단이 후던의 반대편 팔꿈치를 밟았다.
콰직!
“끄아아악!”
사지가 모두 박살 난 후던이 몸을 꿈틀거렸다.
“허리도 쓰기 싫어?”
에단이 조용히 읊조리자, 후던의 몸이 움직임을 멈췄다.
후던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그는 이제야 에단이 어떤 인물인지 깨달았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휴고와 가토를 바라봤다.
“경험도 있겠다. 할 수 있지?”
에단이 턱짓했다.
“전부 묶어.”
두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부들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가토와 휴고가 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단이었으면 제압으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
에단은 천천히 잭슨에게 다가갔다.
굳이 화를 숨기지 않았다. 분노한 감정에 따라, 몸에서 자연스럽게 피어가 흘러나왔다.
― 무서운 녀석.
고작 블랙 오우거의 마나를 흡수했을 뿐인데 이 정도였다.
에단은 여기서 멈출 녀석이 아니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페온은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는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지.
― 이 녀석이라면…….
자신의 목표를 대신 이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페온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에단은 잭슨의 앞에 도착했다.
에단의 검은 동공이 잭슨의 갈색 동공을 응시했다.
잭슨은 긴장을 숨기지 못했다.
“……저도 블란테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아는 놈이 그래?”
“하지만 여기서 굴복하면 어차피 무너집니다.”
“그래, 뭐 납득은 되네. 그런데 이해도 해 줘야 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잭슨이 침을 삼켰다.
더 이상 뒤가 없었다. 양지와 음지 사이, 중간 지점에서 살아가는 게 그들이었다.
한 번 실패해, 얕잡혀 보이면 끝장이었다.
잭슨이 주위를 둘러봤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없었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는 용병과 상인의 도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소문이 퍼지는 곳이었다.
여기서 굴복할 수 없었다.
“미리 조치를…….”
쾅!
큰 굉음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