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66화 (66/398)

◈ [66화] 정보 길드 (3)

에단의 말에 잭슨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

“아니, 왜죠? 그녀는 전설적인 용병…….”

“아, 좀.”

에단이 눈을 부라리자, 잭슨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는 뭔 정보 길드라는 녀석이 말이 이렇게 많아.’

자고로 정보 길드라 하면 입이 무겁고, 작은 정보 하나라도 돈을 받고 파는 족속들 아니던가.

그런데 잭슨은 입이 싸도 너무 쌌다.

에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길은 미로 같았다.

골목의 구석으로 향한 잭슨은 숨겨진 맨홀을 열고 지하도로 향했다.

‘……에휴, 진짜.’

예상은 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이 그녀를 만날 때 지하도를 거쳤으니.

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악취가 진동했고 공기는 끈적거렸다.

어둠 속에서도 잭슨의 발은 거침이 없었다. 에단도 어렵지 않게 잭슨을 따라나섰다.

에단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인지할 수 있었다.

찰박찰박.

꽤나 먼 거리를 안내한 잭슨이 옆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더니 천장을 두드렸다.

“흘리는 말을 주의해라.”

잭슨의 말과 동시에 천장에서 사람 하나 지나갈 법한 통로가 생겨났다.

잭슨이 먼저 올라갔고, 그 뒤를 에단이 따라갔다.

통로 위로 올라가자 좁은 통로에 계단이 있었다. 잭슨은 말없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에단도 그 뒤를 따라 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자 검은 벽이 나타났다.

“귀를 막으시죠. 암호를 말해야 하니.”

“괜찮아.”

“괜찮지 않습니다. 여긴 암호가 없으면…….”

“꼬리 없는 쥐. 눈 없는 까마귀.”

“……!”

잭슨의 눈이 커졌다. 순간 막혀 있던 벽이 사라지고 동굴 같은 복도가 생겨났다.

“……대체 어떻게?”

“잘. 난 간다.”

에단이 걷기 시작했다.

좁은 복도와 긴 계단, 그리고 은은한 조명이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잭슨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의심스러운 것투성이였다.

‘아가씨에 대한 것도 모자라…… 통로의 암호까지 알고 있다고?’

위험했다.

본래라면 외부인의 출입은 통제해야 한다. 그것도 에단처럼 뭘 할지 모르는 존재라면 더더욱.

하지만 에단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잭슨의 발을 붙잡았다.

일전의 전투, 잭슨은 자신의 무력을 믿고 있었다.

정보 길드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전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수 싸움에서 압도당했다. 가진 패를 드러내기도 전에 짓밟혔다.

실전이라면 반드시 죽었을 터.

그걸 생각하니 두려움이 치밀었다.

‘그래, 허튼짓을 하지는 않겠지.’

미심쩍은 것투성이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말은 에단이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후회한다고 한들 이미 늦었다.

“부디 실수하지를 않길 바랍니다.”

잭슨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내가 그렇게 경우가 없지는 않아.”

“…….”

그간 에단의 태도를 보았을 때 신용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에단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조명은 점차 어두워졌다.

‘진짜 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보 길드로 가는 길을 왜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놨단 말인가?

계단을 모두 오르자, 문 하나가 나타났다. 에단이 무심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 * *

문을 열자 꽤나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동양풍이었다. 앞을 가리는 은근한 가림막과, 한복인지 기모노인지 알기 힘든 동양식 전통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

에단이 할 말을 잃었다.

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막상 마주하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서 오세요, 귀인이시여.”

묘령의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은한 목소리였다.

“그만.”

“저를 찾아오셨다는 말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만하라고.”

― ……쟤는 왜 저러는 거냐?

이런 상황에 내성이 없기는 페온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여 소녀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나요? 귀…….”

“데릴라.”

“…….”

여자가 갑자기 침묵했다.

“……데릴라가 뭔가요?”

“뭐긴 네 이름이잖아.”

“뭔가 착각하신 모양이군요.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데릴라.”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치기 시작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

“가면 쓴 여인으로 부르세요. 분명히 말합니다. 저는 데릴라가 아닙니다.”

“장난해? 언제 그걸 다 부르고 있어? 데릴라면 충분하지 않나?”

“당신……!”

그 순간 여자의 눈에서 살기가 쏘아졌다.

에단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면 쓴 여인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냥 메이라고 부르세요.”

“그래, 뭐……. 정 원한다면야.”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죠? 그것도 블란테의 유명 인사께서.”

“오, 나를 알고 있나?”

“모르는 게 이상하죠. 버림받은 망나니에서 한순간에 경쟁자를 짓누르고 우뚝 선 강자가 되었으니 말이죠. 심지어 아카데미의 꽃도 꺾었다죠?”

“걔가 꽃인가?”

“그분도 유명 인사죠. 아카데미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예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의 실력도 겸비한 분이니까요.”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인데.”

“그럴 리가요. 저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어두운 과거를 이겨 낸 분이니까요.”

“어두운 과거는 뭐, 어쌔신 시절을 말하는 건가?”

“……당신은 대체 뭔가요? 보고를 받았을 때도 믿기 어려웠습니다만, 대체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뒤바뀔 수가 있는 거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단이 눈살을 찌푸리자, 메이가 입을 다물었다.

“말할 생각이 없으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던 것이죠? 블란테의 정보력이 그렇게나 뛰어났었나요?”

‘그럴 리가.’

에단의 가진 지식은 모두 원작 소설의 힘이었다.

메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메이는 원작의 중요 인물 중 하나였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정보 길드의 수장이었다. 가녀린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저래 보여도 상당히 강하겠지.’

일단 메이는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걸고넘어지면 메이는 결코 지금처럼 곱게 대화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정보를 원하는 건가?”

“후후, 확실히 쉽지 않군요. 역시 귀인…….”

“그만하라고. 귀인이니 뭐니 개소리 지껄이면 네 이름을 동네방네 까발린다?”

빠득.

메이는 이를 갈았다.

“좋습니다.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 캐물을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 저한테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죠?”

“강혁에 대해 알고 있나?”

“……강혁? 그게 누구죠?”

메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단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네.’

정보 길드의 수장도 강혁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강혁은 사라졌다.

그 탓에 세계를 구원할 용사 자리에 엑스트라 악역인 망나니가 서게 되었다.

이건 자신이 원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강혁만 있다면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며 꿀을 빨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자신이 처리하지 않으면 이 세계가 무너질 판이었다.

에단의 목숨은 물론이거니와 휴고, 가토, 네이드, 빈센트, 첸…….

새로운 인연들의 목숨까지 모두 달려 있었다.

에단이 얼굴을 찌푸렸다.

“세계수는 지금 상태가 어떻지?”

가림막 너머로 메이의 몸이 움찔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죠?”

“반응을 보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 정도.”

“……그렇다면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에단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모르겠어?”

주인공이 없다는 건 중대한 사항이었다.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세계수.’

주인공이 초반에 해결해야 할 이벤트였다.

‘그게 남아 있다면.’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있을 뿐.’

하지만 그렇다면.

‘도서관에서의 기연은 무엇이지?’

룬어의 습득.

그리고 거기 써져 있던 내용.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는커녕, 부정적인 내용만 적혀 있었다.

뭐가 바뀐 것일까? 주인공은 또 어디 간 거고?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민보다 행동을 해야 할 때. 붉은 곰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

그러기 위해 여기까지 온 에단이었다.

운이 좋게도 잭슨을 발견했고, 메이와 대면할 기회가 생겼다.

‘정보 길드의 수장과 대면할 기회는 쉽지 않지.’

메이는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였다. 원작 주인공도 갖은 우연이 겹쳐 그녀와 대면할 수 있었다.

‘이것도 블란테의 힘이겠지.’

그저 본신의 힘을 믿고 설치는 애송이였다면 메이는 에단을 만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블란테.’

현시점, 대륙에서 수위에 오른 무력 집단.

그게 블란테가 가진 이름의 힘이었다.

‘그 머저리 새끼들은.’

에단의 형제들은 블란테의 힘에 취해 상대를 짓누를 생각만 할 뿐,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여기서 어떤 말을 할지가 관건이었다.

‘상대는 나를 건들지 못해.’

정보 길드.

정보 거래가 그들의 주 수입원이긴 했지만, 하는 일이 일인 만큼 무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여기서 안면을 트고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족해.’

그러기에는 아쉬웠다. 에단은 안전한 이득만 취하는 일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에단이 의자에 걸터앉은 채 오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지금 무엇을 하는 거죠?”

메이는 권위를 중요시한다. 에단은 그 권위와 마주 서고 있었다.

“검은 웅덩이, 요정의 속삭임, 지하의 탑.”

“……!”

앉아 있던 메이가 몸을 들썩이며 일어났다.

에단이 거론한 것들은 모두 정보 길드의 핵심 지부였다.

“……당신, 대체 뭐야?”

“글쎄, 뭘까?”

에단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자신은 있다. 여기서 틀어져도 상대의 목줄을 붙잡을 자신이.

‘놓칠 생각은 없지.’

얕보이지 않는 것.

그건 현대에서나 이곳에서나 똑같이 통용되는 진리였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군요. 제 앞에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도 오랜만이구요.”

“적어도 가면과 장막 사이에서 정체를 감추는 너보단 내가 낫지 않을까 싶은데.”

에단의 말에 메이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건…….”

“왜? 또 변명을 늘어놓고 싶어서?”

“……어쩔 수 없군요.”

그녀가 가림막을 치우고 천천히 여우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자 희고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눈빛과 표정만큼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 같았다.

에단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메이가 얼굴을 드러내는 건 주인공이 꽤나 고생을 한 뒤에야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이제 내가 고생을 해야 해서 문제지.’

그 생각에 순간 짜증이 났다.

세계수과 관련된 일은 벌써 진행이 꽤나 됐을 터.

메이가 얼굴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를 완전히 신용하고, 상대에 감격했다는 일종의 증명.

정보 길드의 간부 중에도 메이의 본얼굴을 본 자들은 드물었다.

메이는 말없이 에단을 바라봤다. 하지만 에단의 여유로운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숨기던 본명, 그리고 정보 길드의 주요 거점. 얼굴을 드러냈음에도 조금도 바뀌지 않는 표정.

그렇기에 에단의 속을 알기가 어려웠다.

숨겨 둔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기는군.”

에단이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뭐죠?”

메이의 물음은 많은 뜻을 담고 있었다.

과거의 행보부터, 변화, 그리고 앞으로의 목적.

당연히 에단은 모든 것을 말해 줄 생각이 없었고, 메이도 대답을 원해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에단이 몸을 일으켜서 천천히 다가갔다.

메이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무슨 속셈이죠? 더 다가오지 마세요.”

메이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에단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라고 하지……!”

메이가 대응을 하려는 그 순간.

에단이 말없이 손을 뻗었다.

“협력하자고. 후회는 없을 테니까.”

에단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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