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정보 길드 (2)
“이게 무슨……! 설마 블란테가 페르나니엄을 노리고?!”
“무슨 헛소리야. 이딴 촌구석을 블란테가 먹어서 어디에다가 쓴다고.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용무일 뿐이야.”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습니까?”
“시작은 산적 새끼들, 그리고 그 이후는…….”
에단이 잠시 침묵했다. 여기서는 말을 꺼내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규모가 조금 커야지.’
원래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한데 원작 주인공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일이 꼬였다.
그걸 생각하자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몰라도 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미안한데 내가 시간이 없거든? 좋게 가면 안 될까?”
“정말 산적까지 연관되어 있습니까?”
“뭐야? 정보 길드라는 녀석이 그것도 몰라? 그렇다면 실망인데.”
에단의 말에 잭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심증뿐이었습니다. 붉은 곰은 최근에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용병단입니다.”
“그건 알고 있지.”
“끝까지 으시죠. 용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상품성?”
에단은 의미 없는 질의응답에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그것도 정답이기는 하지만, 제가 원하는 대답은 위상이었습니다. 명성이나 위상 따위는 용병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죠. 소문은 그 어떤 명마보다 빠르니까요. 하지만 붉은 곰 용병단의 소문은 너무 빠릅니다. 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용병단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속도죠.”
“한마디로 작위적이다?”
“맞습니다. 용병이라는 전투 집단은 한쪽 권력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야 용병의 가치가 없어지기만 하죠. 장기 말이 될 바에는 귀족 가문의 병졸이 되는 게 나을 정도니까요. 어쨌든 붉은 곰 길드의 소문을 따라 올라가니 끝이 없었습니다.”
“근원지가 어딘데?”
“귀족들의 소행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혀 뜻밖의 루트가 보여서 파 봤더니…….”
“아카데미?”
잭슨이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의뢰와 완벽하게 해결되는 사건,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자가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질 가능성. 모든 게 아카데미의 조작이라고 판단됐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단서는 없고 모조리 심증뿐이었죠. 그래서 물밑 작업을 준비 중이었고요.”
“그 물밑 작업이 용병계에 발을 들이는 거였나 보네?”
“맞습니다. 그게 가장 확실하니까요.”
“다른 용병 인맥은 없었나? 명색이 정보 길드면서.”
조롱이 섞인 에단의 말에 잭슨이 고개를 저었다.
“용병처럼 입이 가벼운 자들을 신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거래 상대일 뿐이죠.”
“큭큭, 그럼 나는 어떤 사람 같은데?”
“……모르겠군요. 대체 당신은 뭘 원하는 겁니까?”
잭슨이 진심을 담아 물었다.
다리를 꼰 에단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너는 말해도 몰라.”
“……지금 장난치는 겁니까?”
에단이 읊조리자, 잭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에단의 말은 사실이었다. 에단은 지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원작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정보 길드도, 붉은 곰 용병단도 마찬가지였다.
‘가진 걸 이용하기 위해서는.’
탁탁.
에단이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에단 블란테.”
“에단……? 그 망나…… 아니, 말썽쟁이 둘째 말입니까?”
잭슨의 중얼거림에 에단이 씨익 웃었다.
“걔가 나야.”
그 순간 잭슨의 눈이 부릅떠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에단은 분명 돼지에 불퉁한 인상을…….”
에단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던 잭슨이 미간을 좁혔다.
“……인상이 사납긴 하군요.”
잭슨의 반응에 에단이 얼굴을 찌푸렸다. 잭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죠. 에단이라는 도련님이 무슨 바람인지 몰라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고작 정보원 나부랭이를 붙잡은 이유가 뭡니까? 그것도 심증 하나만 가지고.”
“아까 말했잖아. 정보 길드가 필요하다고.”
“그 이유를 묻는 거잖습니까. 블란테 정도의 가문이 왜 정보 길드에 집착하죠? 그리고 정식 루트를 통해서도 아닌, 이렇게 정보원 하나를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요.”
‘시간이 없거든.’
사실 이 대화도 생략하고 싶었다. 오늘 중에 일을 정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히 시도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패를 보여 주지 않으면 의심을 살 테고, 협박만으로는 신용을 얻기는커녕 협상도 되지 않을 테다.
‘이쯤이면 됐다.’
유순하고 온건한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면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유를 알려 줄 수는 있어.”
에단의 대답에 잭슨의 표정이 돌변했다.
“하지만 공짜로 줄 수는 없지.”
“……허?”
“이유를 발설하면 나한테도 위험이 따르거든. 너희가 책임질 녀석을 데려와야지.”
에단이 히죽 웃더니 말을 이었다.
“가면 쓴 아가씨 있지? 걔한테 데려가 줘.”
순간 잭슨의 표정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잭슨의 신형이 순간 자취를 감췄다.
고개를 돌린 에단의 눈앞에 날붙이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에단은 가볍게 고개를 비틀어 비수를 피해 낸 뒤, 곧장 팔꿈치를 뒤쪽으로 꽂았다.
퍼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잭슨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다.
“아까 좀 치더라고.”
에단이 씨익 웃었다. 천진한 웃음, 마치 장난감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아가씨에 대해 알고 있지?”
“하하, 이 새끼. 아까부터 날로 먹으려고 드네? 미안한데 내가 좀 바쁘거든?”
에단이 한 걸음 다가갔다.
잭슨이 물러나는 척하며 달려들었다. 한 손에는 비수를 들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에단이 가벼운 스텝으로 사이드로 물러났다. 그러자 잭슨이 숨겨 둔 비수가 빛을 발했다.
퍼억!
그때 에단의 발이 잭슨의 손목을 그대로 가격했고, 그는 손에 쥔 비수를 놓쳤다.
빙그르.
에단의 몸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회전력이 더해진 에단의 뒤 차기가 잭슨의 복부에 꽂혔다.
퍼억―!
“크윽!”
잭슨이 신음을 흘리며 허공을 날았다. 잭슨의 눈은 에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의를 상실한 눈이 아니었다.
에단은 조급해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서 손을 뻗었다.
그 타이밍을 노리던 잭슨이 마주 손을 뻗었지만, 에단이 뻗은 손은 눈속임이었다.
후웅!
뒤에 숨겨 놨던 에단의 주먹이 반원을 그리며 잭슨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체중이 실린 러시안 훅에 잭슨의 목이 크게 꺾였다.
주먹을 얻어맞자 장막이 펼쳐진 것처럼 시야가 뚝― 하고 끊어졌다.
털썩, 잭슨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 순간, 멀리서 곰 같은 체격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질긴 가죽의 주인이었다.
“남의 여관에서 꽤나 소란을 일으키는군요.”
여관 주인이 풍기는 기백이 매서웠다.
용병 출신이라는 말답게 산전수전을 겪은 자의 살기였다.
에단은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손을 들었다.
“정당방위였습니다.”
에단의 대처에 여관 주인이 한숨을 내쉬며 거품을 물고 쓰러진 잭슨을 바라봤다.
“쯧쯧, 정보원이라는 놈이 이렇게 칠칠치 못해서야.”
“이 녀석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게 크게 떠드는데 못 듣는 게 이상하지 않나?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귀는 잘 들립니다.”
“하하, 그래 보이는군요.”
확실히 잭슨은 안일하게 행동했다. 여관에 사람이 없어 보인다고 하여 꽤나 큰 목소리로 자신의 정보를 떠들어 댔으니.
“……그나저나 제가 묻고 싶군요. 정보 길드는 왜 건드는 거죠?”
여관 주인의 물음에 에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단이 올린 손을 내렸다.
“그 대답은 왜 듣고 싶지?”
에단의 말이 평대로 바뀌었다.
“그 위상 높은 블란테 가문의 도련님께서 정보 길드에 신경을 쓰니, 의심을 할 수밖에. 비록 미천한 용병 출신이지만 거기에 친구가 있거든요.”
예상 못 한 여관 주인의 대답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 자신을 낮추는 것치고는 상당히 강하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풍겨 오는 기백.
자신을 낮춰서 말하고 있지만,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겸손한 태도치고는 숨기는 게 있어 보이는데?”
“나이 먹은 아줌마가 뭘 숨기겠어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지. 그리고 저도 이제 지켜야 할 게 있어서 말이에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으니까.
그때 때마침 잭슨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눈을 뜨려는 전조였다. 잭슨은 눈을 뜨자마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직였다.
콰직!
그 순간, 에단의 발이 잭슨의 복부를 짓밟았다.
“큭!”
잭슨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꿈틀거렸다. 에단이 쪼그려 앉아서 잭슨을 바라봤다.
“더 하려면 해도 되고.”
“대체 목적이…….”
“아까부터 왜 다들 그 소리지?”
에단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일어났다.
“나한테 큰 목적이 있어 보여?”
물론 목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발설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무뢰배처럼 막무가내로 일관했다. 격조 없이, 사납게, 망나니처럼.
쓰러져 있는 잭슨의 배 위에 에단이 발을 얹었다.
“왜? 후환으로 협박하게?”
“……정보 길드를 우습게 보지 마라.”
“하, 우습게 보는 건 너 아닌가?”
에단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짜증이 치밀었다. 협상 따위는 역시나 귀찮았다.
“블란테가 우스워? 용병들이 가득한 이딴 영지? 오늘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어.”
페르나니엄은 상인들과 용병들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다.
용병들이 바글거리는 탓에 웬만한 무력 집단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곳이다.
용병들은 거칠고 사나운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블란테라면 얘기가 달랐다.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블란테와 견줄 만한 무력 집단은 찾기 힘들었다.
블란테 개인의 힘만으로도 이따위 영지는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너희의 정보? 자신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당장 나도 너희 우두머리를 알고 있는데?”
“…….”
에단의 말은 반쯤은 과장이었다. 블란테의 무력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에단의 권한을 벗어난 일이었다.
한 도시를 괴멸한다는 결정은 가주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다.
수많은 외압과 지탄을 받을 테고, 그로 인해 입게 될 손해도 적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에단의 패기와 거친 언행이 설득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도 의도는 알아야 합니다.”
잭슨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흥분이 가라앉은 잭슨의 모습에 에단의 기세도 누그러졌다.
“그저 대화하고 싶을 뿐이야. 다른 목적은 없어. 해를 끼치지도 않을 거다. 맹세하지.”
“……알겠습니다. 일단 발부터 치워 주시죠.”
잭슨의 말에 에단이 발을 치웠다. 눈앞에 서 있는 여관 주인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제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여관 주인의 말에 잭슨이 그녀를 힐긋 바라봤다.
“……검은 도끼?”
“한참 전에 버린 이름입니다.”
“허, 여기가…… ‘질긴 가죽’이었군요.”
둘만 아는 것 같은 얘기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할애해 들을 생각은 없었다.
‘이름은 들어 본 거 같은데 가물가물하네. 뭐, 지금 궁금해할 건 아니지.’
“슬슬 가지?”
에단이 재촉하자, 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낸 잭슨이 여관 문을 향해 걸었다.
“……실례했습니다.”
“다음에는 좀 조용히 있다가 가시죠.”
“유의하죠.”
진지해 보이는 둘의 대화를 에단이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머쓱한 표정을 지은 잭슨이 여관 밖으로 나섰다.
“알고 있었습니까?”
“뭘.”
“여관 주인에 대해 말입니다.”
“아니.”
“저 여자는 과거에 검은 도끼라는 아명으로…….”
“야.”
에단이 잭슨을 바라봤다.
“시끄러우니까, 길이나 안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