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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61화 (61/398)

◈ [61화] 주인공

“반갑다.”

에단의 말이 나오는 순간, 모두들 수군거리면서 한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소문의 평민?”

얼추 봐도 비싼 장신구를 차고 있는 귀족 무리.

그리고 귀족들 사이에서 기가 죽어 있는 평민들.

반의 분위기를 대강 파악한 에단이 천천히 위에서부터 학생들을 훑어봤다.

‘쟤가 내 여동생이군.’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에단의 기억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에단처럼 평민 행세를 하고 있지만 결코 감출 수 없는 귀족의 위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사는 에단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뭐, 그럴 수 있지.’

지금의 에단은 외모와 분위기가 모두 달라졌으니까.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이름뿐이었다.

‘그나저나 주인공이 누군지를 모르겠군.’

이 반에 있는 것은 확실했는데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워낙 잘생겼다고 묘사하길래 알아보기 쉬울 줄 알았는데…… 모르겠군.’

특출한 녀석이 있다면 페온이 먼저 입을 열었을 텐데,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원작 주인공 찾기를 포기한 에단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자, 조용. 출석 부른다.”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학생들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추, 출석?”

“우리 출석 확인 같은 거 한 적 있었어?”

“없는 거 같은데…….”

학생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한마디로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소리다.

에단은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책을…….

‘아, 준비한 게 없었지.’

에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밀라에게 말이라도 해 둘 걸 그랬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어차피 자신이 아는 몇 명의 이름만 부르고 말면 되는 일이었다.

에단이 대충 단상에 손을 얹어 삐뚜름하게 섰다.

“리사.”

에단이 리사의 이름을 부르자, 예상한 인물이 반응을 보였다.

“대답 안 하나?”

“네.”

리사의 대답에 에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강혁.”

두 단어. 이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국식 이름이었다.

에단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위를 주시했다. 하지만…….

‘……뭐지?’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에단이 재차 입을 열었다.

“강혁?”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강혁이 누구야?”

“강혁이라고 알아?”

“아니, 처음 듣는데? 다른 반 애 말하는 거 아니야?”

“다른 반에도 없을걸? 애초에 이름도 특이하잖아.”

“뭐야……. 저 교수 왜 저러는 거야?”

학생들의 반응에 에단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주인공이 없었다.

―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냐?

페온의 물음에도 에단은 침묵했다. 에단이 리사를 바라봤다.

‘그래, 리사 근처에 있어야 해.’

에단이 리사 곁에 다가갔다. 리사 곁에는 남자 학생이 앉아 있었다.

에단이 다가서자 학생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떠올랐다.

“이름이 뭐지?”

“야, 얀입니다.”

“너는?”

에단이 고개를 돌려 다른 근처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대답은 같았다. 강혁이라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업은 잠시 보류다. 그동안 자율 학습이다.”

에단이 몸을 돌렸다. 학생들이 웅성거렸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도서관.’

당연히 도서관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에단은 밖에 돌아다니는 직원을 아무나 붙잡아 도서관의 위치를 물었다.

마침내 도서관을 찾아낸 에단이 안으로 들어섰다. 도서관의 규모는 거대했고, 웅장했다. 마탑의 서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페온은 말없이 에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단이 이렇게나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대륙의 역사. 마왕, 그리고 용사.”

에단은 기억을 더듬어 주인공이 책을 찾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갔다.

영웅담을 정리해 놓은 듯한 책의 순서.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무 글귀도 써져 있지 않은 낡아빠진 책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에단은 말없이 그 책을 빼 들었다.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선택받은 용사만이 얻을 수 있는 힘과 조언.

아카데미에서 얻게 되는 첫 번째 히든 피스였다.

에단은 천천히 책을 펼쳤다.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남은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룬어]

[절망]

책에서 음산한 검은 빛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빛은 에단의 팔을 타고 오르더니 이내 피부에 깃들기 시작했다.

― 무, 무슨 일이냐?

“…….”

에단은 빛을 발하고 있는 문자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글귀와 무늬는 희미해지며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룬어…….’

용사이자 주인공만이 얻을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절망’이라는 룬어.

주인공이 얻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서도 주인공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제기랄, 그 소리는.’

주인공이 진작 해결했어야 하는 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먼저 세계수.’

분명 세계수의 오염을 막지 못했을 거다.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면, 상황이 더욱 급박했다. 세계수가 완전히 오염되어 버리면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자신은 엄청난 페널티를 안게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적들은 막대한 이점을 얻는 것이고.’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

몸을 돌린 에단이 곧장 교무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에단이 예고 없이 문을 덜컥 열자, 레벨린이 미간을 좁히며 에단을 바라봤다.

“무슨 볼일이죠? 지금 수업하셔야 할 시간 아닙니까?”

“그건 사과하지.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흐음, 말씀해 보시죠.”

“강혁,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가?”

에단이 레벨린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레벨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장 대답했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군요.”

“……고맙군.”

대답을 들은 에단이 곧장 몸을 돌리자, 레벨린이 그를 불러 세웠다.

“정확합니다.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외우고 있으니까요.”

“암기력 하나는 대단하군. 그 정도면 천재 아닌가?”

“비꼬시는 거면 됐습니다. 혹시 알아봐 드릴까요?”

싱긋 입꼬리를 올리는 레벨린을 보며 에단이 피식 웃었다.

“내가 찾을 거니까 필요 없어.”

“그거 유감이군요.”

“아, 그 말을 빼먹었군.”

“……뭐죠?”

“오늘 월차 낼게. 급한 일이 있어서.”

“무슨 월차가 있다고…… 저기요!”

에단이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은 뒤 달리기 시작했다.

계획이 바뀌었다.

‘녀석들을 만나야겠어.’

상황이 달라졌다. 여유롭게 관조할 순 없었다.

‘귀찮아졌군.’

시간이 촉박했다.

* * *

다그닥, 다그닥.

“이게 맞아?”

“몰라, 우리는 까라면 까야지.”

“나도 아카데미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뭐야? 블란테의 기사라는 놈이 그따위 곳을 선망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명심해. 너는 블란테의 가신이야. 마음가짐을 바로 하라고.”

“너는 가 보고 싶지 않아?”

“……어.”

“대답이 조금 늦었는데.”

“아니라니까?!”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발끈해.”

휴고와 가토의 대화를 바라보던 헨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하……. 말하는 것만 보면 영락없는 애네…….”

그런 헨리를 보던 네이드도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보기에는 헨리 씨도 충분히 어린 축에 속합니다.”

“아, 그런가요? 괜히 머쓱해지네요.”

헨리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에단이 빠지고 예정되지 않은 일정이 생겼지만, 포기해서 그런지 꽤나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동생이 보고 싶네.’

헨리가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 어린 동생이 생각났다.

* * *

에단이 정문을 바라봤다.

‘시간이 없어.’

에단에게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빨리 일행들과 만나야 했다.

에단은 철문에 손을 얹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근육이 부풀고 혈관이 돋아났다.

쿠구구궁.

철문이 굉음을 일으키며 밀려나고 있었다.

발밑이 움푹 파였다. 에단이 인상을 쓰며 힘을 주자 쿵! 소리와 함께 철문이 활짝 열렸다.

문밖에는 문지기가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에단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얼굴을 감싼 채 오들오들 떨었다.

“야, 그땐 조금 미안했다. 그러니까 다음엔 잘 좀 하자.”

에단이 지면을 박찼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일행과 에단 간의 거리는 하루가 넘게 걸릴 만큼 벌어져 있었다.

‘일단 최대한 뛰어 봐야지. 유산소 트레이닝은 오랜만인데.’

에단이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분주하게 발을 놀려야 따라붙을 수 있을 터였다.

* * *

일행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꽤나 익숙해졌는지 능숙하고 빠르게 준비를 끝마쳤다.

“……평화롭네요. 안심도 되고.”

모닥불 앞에 앉아 헨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평화와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늘 초조함과 촉박함에 쫓기는 기분로 살았다. 실적 부족과 불안정한 미래, 그리고 부양할 가족이 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되었다.

그런데 모든 걸 놓아두고 홀가분한 기분이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헨리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제 주제에 이런 곳에 끼어 있어도 될까요?”

“…….”

휴고와 가토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만히 식사를 준비하던 네이드도 헨리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다가와 수프 한 접시를 건넸다.

“이거라도 드시죠.”

“감사합니다.”

헨리가 수프를 받아 들었다. 수프에서는 따뜻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잘 모르겠네요. 아직.”

“모르시면 괜찮습니다. 저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건 도련님도 다르지 않았죠.”

“도련님이요?”

헨리가 되물었다. 덩달아 가토와 휴고도 귀를 쫑긋 기울였다.

셋의 반응이 재밌는지 네이드가 미소를 머금었다.

“궁금하신가요?”

“네.”

“저도 궁금합니다.”

“저도…….”

모두 궁금해하자,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할아버지처럼 네이드가 입을 열려 했다.

그 순간.

“그 이야기, 나도 좀 들어 보자.”

수풀을 헤치고 에단의 머리가 등장했다.

“꺄아아아아악!”

헨리가 비명을 질렀다. 네이드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고, 가토와 휴고도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도, 도련님?”

“도련님이라고?”

“아니……. 도련님이 여긴 왜.”

“왜 이렇게 놀라?”

에단이 땀에 푹 절은 옷을 벗었다. 얼마나 땀과 열을 머금었는지 옷에서 김이 나오는 것 같았다.

에단이 옷을 쥐어서 물기를 짜내었다. 옷에서 물이 흥건하게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무식하게 뛰어 댔군.’

조금만 찾아봤다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간만에 땀도 빼고 좋지, 뭐.’

제대로 유산소 운동을 했으니, 이제 단백질과 수분을 보충할 차례였다.

“네이드, 내 것도 있나?”

“네. 여유롭게 했으니 드시죠.”

“고맙군.”

에단이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에게서 풍기는 체취에 헨리가 볼을 붉혔다.

‘모, 몸이…….’

에단의 몸은 정말 잘 벼린 검 같았다. 갑옷같이 우락부락하지는 않았지만, 돋아난 혈관과 꿈틀거리는 근육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여기까지 대체 무슨 일로…….”

“계획이 조금 틀어져서 말이야.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 할 것 같아.”

“일이라는 것은…… 말씀하신 그것 말씀인가요?”

“어, 정보 길드. 녀석을 좀 찾아봐야겠어.”

강혁에 대한 정보. 그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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