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평민 교수 (4)
에단이 부임한 첫날부터 사건이 벌어진 탓에, 아카데미 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맴돌았다.
소문은 부풀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에단의 신분이었다.
대외적으로는 평민에 불과한 에단이 귀족의 피가 흐르는 크러쉬를 박살 냈다.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구성원의 대다수는 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생을 귀족의 일원으로서 고고한 자존심을 키워 온 그들에게 이번 사건은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소문에 점차 살이 붙기 시작했다. 결투가 벌어진 계기도 만들어졌다.
― 초임 교수가 크러쉬 교수님을 모함했다더라.
―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렸다더라.
― 수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웃으며 비꼬았다더라.
소문은 썩 그럴듯했지만, 자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악의적인 소문을 주도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에게 대들어?’
로만은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배움을 구하는 학생이기에 앞서, 권위 의식과 선민사상에 찌든 귀족이었다.
하지만 거만함과는 달리 로만 가문의 위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평범한 귀족, 평범한 재산, 모든 것이 평범했지만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마크.’
아카데미의 학장인 마크는 로만의 아버지였다.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가문이 엄청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로만은 떵떵거리며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었다.
로만도 바보는 아니었다. 대놓고 학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연중에 내색하기 마련이었고, 로만의 성격이 그랬다.
자연스레 로만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평민을 차별하고 귀족의 위신을 드높이는 무리가 형성된 것이다.
그 카르텔에는 교수인 크러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그런데 최근 부임한 평민 교수인 에단이 반역이라 부를 만한 일을 일으켰다.
‘그 평민에게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
로만은 거만한 성격과는 별개로 겁이 많은 편이었기에, 자신에게 위험이 될 만한 행동은 자중했다.
‘배경이라도 있으면 위험한데…….’
그 예가 바로 에밀라였다.
마크는 로만에게 신신당부했다. 사소한 사건은 넘어가 줄 수 있지만, 에밀라한테만큼은 대들지 말라고.
로만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있는 법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로만의 직감은 곧잘 적중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로만은 마크에게 찾아가 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아직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진정되지 않았던지, 마크는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넘어갔다.
― 그 녀석은 신경 쓰지 마.
― 왜요? 감히 귀족을, 그것도 선배 교수를 건드린 것 아닌가요? 혹시 녀석이 귀족이라도 되는 겁니까?
― ……그건 아니다. 내가 알아서 징계를 내리든 할 테니, 괜한 소란을 일으키지는 말도록.
하지만 이번만큼은 로만도 넘어갈 수 없었다. 귀족이 아니라는 확답은 들었으니 행동에 나서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로만은 자신의 카르텔을 중심으로 소문을 퍼트렸다. 로만이 결투 장면을 직접 지켜본 것은 아니었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 내용을 바꿀 수 있었다.
크러쉬는 학생을 지키다가 비열한 수에 당한 선역으로.
에단은 갓 부임한 주제에 크러쉬를 속여 다치게 만든 인면수심의 교수로.
물론 결투 장면을 지켜본 학생들은 그 소문을 부정하곤 했지만, 이미 대다수의 학생은 로만이 퍼트린 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었다.
‘이제, 자기 발로 이곳에서 나가게만 만들면 돼.’
애초에 아무런 근본도 없는 평민이 귀족들을 가르친다는 사실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러쉬 교수님을 만나 봐야겠어.’
로만이 병실에 있는 크러쉬를 찾아갔다. 크러쉬는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얼굴에 상처를 입은 만큼 수치심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구지?”
“로만입니다, 교수님.”
“여기까지 와 준 것은 고맙지만, 나가 줬으면 좋겠군.”
음울한 크러쉬의 목소리에 로만이 고개를 저었다.
“크러쉬 교수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건을 일으킨 평민 녀석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로만의 말에 크러쉬의 몸이 움찔했다. 그런 크러쉬의 반응을 보고 로만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교수라고는 하나, 그따위 행패를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소문은 들으셨습니까?”
“소문?”
로만이 간략하게 자기가 주도하고 퍼트린 소문을 설명했다. 가만히 로만의 말을 듣던 크러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역시 고귀한 핏줄은 뭔가가 다르군…….”
크러쉬의 진심 어린 칭찬에 로만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로만은 이내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녀석을 아카데미에서 쫓아내 버리죠. 어차피 배경도 없는 평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녀석에게 교수라는 자리는 과분한 직위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만…… 어떻게?”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로만이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 * *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임에도 에단은 태연했다.
‘뒷배가 있다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이야.’
징계나 퇴출을 걱정하지 않고, 이런저런 상황에 마구잡이로 들이대도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편할 줄은 몰랐다.
― 분명 블란테의 이름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름은 안 쓰지 않았습니까.’
내가 과시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알아서 엎드리는 상황이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오늘 하루는 이미 지났고, 내일부터 에단은 자신이 원하는 반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
‘이제 주인공과 마주하게 되겠군.’
그리고 덩달아 건방진 여동생도.
과연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잘 가고 있는 건가?’
에단이 떠난 일행들을 떠올렸다. 휴고와 가토, 헨리는 상당히 불안했지만, 네이드가 함께한 만큼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일행을 그곳으로 보낸 이유는 달리 있지 않았다.
‘정보 길드.’
정보 길드가 주로 활동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붉은 곰도 덤으로 엮으면 좋고.’
붉은 곰은 언젠가 마주쳐야 하는 패거리 중 하나였다.
녀석들도 레벨린의 패 중 하나였으니까.
‘급하게 벌집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여유를 가져도 좋았다. 어차피 귀찮은 일은 모두 원작 주인공이 해결할 테니까.
에단은 자신의 안위를 챙김과 동시에 본인의 성장만 추구하면 되었다.
‘시간 아까운데 몸이라도 풀고 있을까.’
에단이 웃통을 벗었다. 그간 혹독한 단련을 견뎌 온 에단의 몸은 하나의 무기와도 같았다.
부피, 밀도, 그리고 데피니션까지.
완벽하게 자리 잡은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에단이 팔을 지면에 대더니 그대로 물구나무를 섰다.
“습.”
에단이 호흡을 들이마셨다. 들이마신 호흡의 압력이 배를 단단하게 잠갔다.
이 정도 경지에 다다르면 복압과 호흡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습관에 가까웠다.
에단은 물구나무 푸시 업을 시작했다. 단순히 횟수를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폭발력을 위해서라면 빠르게 움직이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이미 폭발력은 충분했다. 그런 훈련은 가문에서 넘치도록 했다.
‘이 정도 중량은 크게 부담도 없고.’
이미 에단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좋았다. 야수화한 휴고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닌 에단에게,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게.’
수축과 이완, 1초면 끝날 동작을 1분에 가깝게 쪼갰다.
근육이 늘어나는 상황과 몸에 걸리는 부하를 즐겼다.
‘적응했다고 자만하면 안 되지.’
평생 동안 사용하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던 몸에 들어왔다.
그런 몸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렇게 시간이 남을 때 천천히 몸을 느끼는 시간이 필요했다.
에단이 우두커니 물구나무를 서서 푸시 업을 하던 도중, 벌컥 문이 열렸다.
“당신……!”
에단이 고개를 들었다. 방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은 에밀라였다. 에밀라의 얼굴에 담긴 표정이 분노에서 당혹으로 바뀌었다.
“뭐야?”
에단이 미간을 좁히며 번쩍 일어났다. 에단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여기 남자 층 아니었나? 무슨 볼일이지?”
에단의 물음에 에밀라가 고개를 피하며 말했다.
“……왜 그런 꼴로 있는 거죠?”
“보면 몰라? 운동 중이었잖아.”
에단이 수건을 하나 꺼내 들어 목에 걸쳤다.
“……원래 그렇게 아무 장소에서나 옷을 벗습니까?”
“여기가 아무 장소야? 내 방에서 웃통 까고 운동하겠다는데 뭔.”
“하…… 빨리 옷이나 입으시죠.”
“싫어. 씻고 입을 거니까. 할 말이 있으면 지금 말해.”
“당신……. 됐습니다. 당신은 뭘 믿고 그렇게 막무가내인 거죠?”
에밀라의 질문에 에단이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건 왜 물어?”
“어떻게 첫날부터 사고를 칠 수 있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러게 직원 교육을 잘 했어야지. 뭘 믿냐고? 난 언제나 자신이 없으면 행동을 안 해. 난 나를 믿고, 그리고 내 가문을 믿지.”
에단이 입꼬리를 올리며 에밀라에게 다가갔다. 에밀라가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에단이 말을 이었다.
“너도 자신이 있어서 내 침소에 두 번이나 찾아온 것 아닌가?”
에단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에밀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소리를……!”
“농담이고, 혼자 있을 생각이니까 나가.”
에단이 에밀라를 슬쩍 밀었다. 에밀라는 쉽사리 밀려났고, 문은 그대로 닫혔다.
“…….”
에밀라가 멍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봤다.
* * *
다음 날, 에단은 업무실이나 교무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강의실로 향했다.
오늘은 드디어 주인공과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에단이 발을 옮기자, 그에게 향하는 시선들도 함께 움직였다.
‘저 사람이 소문의 그 사람이야?’
‘잘생기긴 했는데 딱 봐도 인상이 사납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짓을 벌인 거지?’
곱지 않은 시선과 목소리들.
‘재밌네.’
하지만 에단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시선들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가문에서도 지금과 같은 멸시와 조롱의 시선을 한몸에 받지 않았던가.
‘거기까지만 하면 봐줄게.’
하지만 소곤거리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건들기 시작한다면 말이 달라졌다.
‘벌집을 건드렸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주지.’
그전까지는 지금처럼 관대하게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에단은 학생들의 말을 무시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 복도를 걷던 에단이 목적지를 확인하고 씨익 웃었다.
[A반]
문 앞까지 다가간 에단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학생의 시선이 에단을 향해 쏘아졌다.
“반갑다, 친구들.”
에단이 학생들을 둘러봤다.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에단의 모습에 학생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군.’
곱지 않은 시선들을 느끼며 에단은 생각했다.
‘여기는 어떻게 휘어잡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