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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59화 (59/398)

◈ [59화] 평민 교수 (3)

에단은 단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여행 도중에도 지속적인 마나 컨트롤을 숙달하려 노력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소홀하게 한 적이 없었다.

에단의 움직임은 쏘아진 화살과도 같았다. 크러쉬는 에단을 너무 얕잡아 봤다.

하여 방심이라는 독약을 삼키고 말았다.

에단이 크러쉬의 눈앞에 이동하고 나서야 크러쉬의 동공이 서서히 커졌다.

“이, 이게 무슨……!”

크러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에단의 몸놀림을 감히 쫓을 수도 없었다.

크러쉬가 몸을 돌린 건 나름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에단이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다.

그의 다급한 행동은 에단에게 딱히 의미가 없었다. 에단의 손에 푸른 마나가 깃들었다.

쾅!

이윽고 귀가 멀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에단의 주먹이 크러쉬의 실드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에단의 주먹이 일으킨 충격에 지면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크러쉬가 볼품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에게선 더 이상 권위와 품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히, 히익……!”

크러쉬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대처하는 것도, 지금의 크러쉬에게는 무리였다.

“시, 실드!”

그는 남은 한 줌의 마나를 쥐어짜 실드를 만들어 냈지만, 그 행위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꽤나 빠르게 드러났다.

“후우.”

에단이 심호흡을 했다.

반투명한 마력의 보호막을 보며 간만에 호승심을 느꼈다.

에단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들 아직 실드를 완전히 깨부수기는 쉽지 않았다.

역량의 차이가 심한 블랙 오우거를 사냥했을 때도 약점 부위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승산이 희박했을 터였다.

‘자신이 없지는 않은데.’

에단이 오른손을 힐긋 바라봤다.

충만한 기운 속에서 복합적인 힘들이 느껴졌다.

신체의 재능, 블랙 오우거의 힘, 그리고 흡수한 마나.

에단이 허리를 젖혔다.

누구도 당해 주지 않을 과장된 동작처럼 보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상대를 노리는 비수가 아닌, 눈앞의 푸른 벽을 부숴 버릴 망치였으니까.

뒷발을 축으로 에단의 허리가 뒤틀렸다. 신체에 회전력이 실렸고, 오른손이 큰 포물선을 그렸다.

이윽고.

디딤 축으로 사용한 다리가 있는 자리가 움푹 파였다.

마나가 깃든 에단의 주먹이 휘둘러지며 바람이 뭉개지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후웅!

주먹을 뻗는 순간, 에단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이건 부쉈다.’

콰앙!

에단의 오버 핸드가 거칠게 꽂혔고, 동시에 크러쉬의 실드가 허무하게 부서졌다.

“커헉!”

실드가 깨지며 그 반작용이 크러쉬를 직격했다.

“안녕?”

에단이 다가왔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을 꿈틀거렸다.

“귀족답지 않게 왜 그래?”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러쉬의 코앞에 멈춰 선 에단이, 그의 뒷덜미를 붙잡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바들바들.

공포에 질린 크러쉬가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이, 이거 놔!”

크러쉬가 에단의 손을 떨쳐 내려는 듯 반항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에단이 반대 손을 들었다. 크러쉬의 눈이 흔들렸다.

“왜? 대충 감이 와?”

“무, 무슨…….”

찰싹!

에단의 손이 크러쉬의 뺨을 거칠게 갈기자, 크러쉬의 고개가 홱 하고 넘어갔다.

학생들은 침묵했다.

승부의 결과가 예상을 벗어난 것도 있지만, 에단의 행동 자체가 경악스러웠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 그것도 선배, 심지어 귀족의 뺨을 때리다니.

가볍게 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에단의 손이 크러쉬의 뽀얀 뺨에 부딪히는 순간, 크러쉬의 살이 터져 나갔다.

그의 볼이 거무튀튀하게 죽었다. 에단이 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야, 벌써부터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지. 넌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러면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에단을 지켜보던 페온이 고개를 저었다.

건방을 떨던 크러쉬가 얄미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지워질 정도로 에단의 손속은 잔혹했다.

에단의 손은 그것 하나로 멈추지 않았다.

쫘악!

섬뜩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학생들의 침음 소리가 뒤따랐다.

몇몇은 고개를 피했다.

그간 크러쉬의 차별 행위와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수업 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잔혹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보기는 힘들었다.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에단이 풍기는 위압감에 다리가 벌벌 떨릴 지경이었으니.

크러쉬는 뛰어난 마법사는 아니었다. 전방위적인 지식과 교육에 관해서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일신의 무력은 결코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고위 마법사와 비교했을 때의 말이다. 크러쉬는 아카데미 교수였고, 5서클의 마법사였다.

웬만한 전투 마법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경지에 들어선 마법사라는 소리다.

에단은 그런 크러쉬를 꺾었다.

그것도 힘겨운 혈투가 아닌,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꺾듯이 아주 손쉽게.

하니 당연하게도 에단의 흉흉한 기세를 뚫고 결투를 만류할 사람은 없었다.

크러쉬의 몸이 축 늘어져, 실이 끊어진 인형 같은 꼴이 되었다.

에단이 크러쉬의 몸을 짤랑거리며 흔들었다.

‘설마……?’

크러쉬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멈추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에단이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조금 과한가?’

하지만 괘씸함 때문에라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이 대결의 시발점은 에단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에단의 실력이 부족했다면, 크러쉬의 손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을 거다.

이런 잔챙이 따위에게…….

에단은 기가 찼고, 화가 났다.

류태신은 원래도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에단의 몸에 빙의한 이후로 감정적인 대응이 더욱 극심해졌다. 망나니의 본성이 어딜 가진 않은 것이다.

크러쉬의 입과 코에서 붉은 피와 침이 줄줄 떨어졌고, 동시에 아랫도리도 축축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만하세요!”

에단의 손이 휘둘러지기 직전, 순식간에 학생들을 뛰어넘어 등장한 에밀라가 에단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에단은 언성을 높이는 에밀라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교육. 아, 이건 좀 이상한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타인의 목숨을 앗아 갈 짓을 벌였다면 응당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게 에단의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에밀라가 보기에는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당장 크러쉬 교수님을 내려놓으세요!”

에밀라의 고압적인 태도에 에단의 눈꼬리가 휘었다.

“그건 권유입니까? 협박입니까?”

“당신……!”

에밀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당장 검을 뽑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려움.

두 번의 압도적인 패배로 인해, 에밀라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각인되었다.

한번 각인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수많은 학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에밀라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자, 에단이 피식 웃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와 함께 크러쉬의 몸이 볼썽사납게 바닥에 떨어졌다.

“레벨린한테 혼 좀 났나 본데?”

에단이 씨익 웃더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학생들이 길을 터 줬다.

“첫 수업에 못 볼 꼴 보여 줘서 미안.”

에단은 학생들에게 손을 휘저어 보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에밀라는 복잡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 * *

― 그새를 못 참고 일을 벌였구나.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 ……때리는 것에도 정도를 두는 게 낫지 않겠느냐?

“글쎄요.”

에단이 씨익 웃자, 페온이 포기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렇게나 막무가내로 일을 벌여도 괜찮은 게냐?

“어차피 아카데미에서의 목적은 크게 없습니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치솟는다고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블란테에 비할 바가 아니죠.”

― 그걸 아는 놈이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사달을 벌여?

“재밌지 않습니까.”

― ……미친놈.

사실 재미를 떠나서 주인공과의 끈을 잇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 컸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 게 유리할까.’

에단의 지식은 제한적이었다. 원작을 모두 읽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은 곳까지만 봐도 대륙의 절대자가 된 주인공은 끝없는 혈투를 벌였고, 동료들은 모두 죽어 나갔다.

‘녀석을 그 이상으로 성장시킬 수가 있나?’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에단이 얻은 기연들도 모두 주인공이 가져가야만 했다.

이미 인과는 뒤틀렸다고 봐도 좋았다. 모든 기연과 성장을 주인공에게 몰아주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개죽음당해서는 소용없지.’

에단은 살기 위해서, 또 강해지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주인공의 실수, 그리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건들에 손을 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적당한 조력자의 위치에 서 있으면 되겠군.’

과한 신용은 불필요했다. 적당히 선을 지키며 조력자에 위치에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을 뺏어 갈 생각은 없다.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

‘세계를 구원하는 데에는 크게 관심 없어.’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자잘한 이벤트들은 어차피 주인공이 나서서 해결할 문제였다.

* * *

에단이 부임한 첫날부터 사건이 발생했다.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설마 첫날부터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크러쉬의 상태는 보기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에단의 손속 없는 손짓에 뺨이 터지긴 하였지만, 이 정도면 마법과 포션으로 금세 회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교수 사이에 폭행이 있었고, 명분 또한 에단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크러쉬는 대외적으로 귀족가의 자제였고, 소문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명마보다 빠른 것이 소문이다.

블라디미르 가문은 결코 이 사건을 묵시하지 않을 터. 게다가 크러쉬도 여기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에단에게 징계를 내릴 수도 없었다.

에단이 정말 평범한 평민에 불과했다면 교수직에서 제명하면 그만이겠지만, 에단의 가문은 블란테였다.

지금은 몸을 웅크리고 있으나, 에단이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 자고 있던 사자가 몸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욱씬.

에밀라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쩌다가.’

에밀라는 오전부터 레벨린에게 불려 갔다. 핀잔이나 타박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레벨린을 봐 온 에밀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신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에밀라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에 불신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레벨린과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크러쉬의 일은 또 어찌해야 할까.

눈을 질끈 감은 에밀라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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