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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58화 (58/398)

◈ [58화] 평민 교수 (2)

크러쉬는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에단은 감탄 섞인 휘파람을 불며 주위를 둘러봤다.

학교의 내부는 정갈하고 고급스러웠다. 확실히 돈을 바른 태가 났다.

에단의 휘파람 소리가 거슬렸는지 크러쉬가 헛기침 소리를 냈다.

“크흠, 적당히 하시죠. 봐드리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아, 예.”

― ……저 건방진 놈을 가만히 둘 생각이더냐?

오히려 페온이 분이 치미는지 에단을 닦달했다. 에단은 별다른 반응 없이 크러쉬의 뒤를 따라 강의실 문 앞에 섰다.

‘반이 많군.’

에단이 느낀 감상이었다.

‘성적별로 나눠 둔 걸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아카데미에도 비리가 존재했다.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평민들은 본인의 실력보다 낮은 반에 배정받았다.

반대로 본인의 실력보다 과분한 대우를 받는 고위 자제도 존재했다.

‘난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주인공이 해결할 문제였다.

정의감 넘치는 평등주의자 주인공은 그런 차별을 묵과하지 않았고, 반대로 에단은 귀찮은 일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강의실 앞에 서자 학생들이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러쉬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제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니군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크러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와 함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지며 침묵이 강의실에 내려앉았다. 정적이 깔린 강의실 내부를 주시하던 크러쉬가 입을 열었다.

“수업 전에 떠들고 있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벌을 주고 싶지만…….”

크러쉬가 힐긋 에단을 바라봤으나 에단은 웃음기를 머금고 앞만 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개중에는 에밀라와 함께 걷던 모습을 떠올렸는지 소곤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조용.”

그런 모습이 심기에 거슬렸는지 크러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은 새로 온 교수입니다. 비록 귀족이 아닌 천한 신분이라 수업을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알아서 잘 배우도록.”

크러쉬는 별다른 말도 없이 에단을 평민이라고 소개했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작은 조소가 떠올랐다.

“뭐야, 평민이야?”

“수준 떨어지네. 평민이 뭘 알려 준다고.”

“그러게 말이야. 큭큭.”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에단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시선이 바뀌는 데에는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터.

‘언제나 그랬으니까.’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격투기 선수로 활동할 때도.

망나니라며 가문에서 천대받을 때도.

실력으로 뒤집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기분 나빠 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후의 일을 떠올리자 기대감이 들었다.

에단이 씨익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

태연자약한 행동에 크러쉬가 다시 미간을 좁혔다. 기가 죽기는커녕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수업을 보면 어차피 좌절할 게 빤하지.’

크러쉬는 자신 있었다.

자신은 유서 깊은 마법 가문의 자제였으며, 마법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 또한 마탑의 마법사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마.”

크러쉬가 부양 마법으로 두꺼운 책을 꺼내 펼치며 수업을 시작했다.

‘지루하군.’

수업을 시작한 직후부터 에단은 연신 눈을 끔뻑였다.

크러쉬의 수업은 지루했다. 교육이 아닌 자기 피력에 가까웠다.

어려운 단어를 복잡하게 늘어놓다가 결국은 자신의 자랑으로 귀결된다.

심기가 불편하기는 페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페온이 계속해서 투덜거렸지만, 에단은 별다른 반응 없이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루함은 그대로였는지라, 에단의 자세가 점점 삐딱해지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런고로 마법은 고귀한 혈통의 전유물…….”

크러쉬가 흘깃 고개를 돌려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팔장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심지어 몸을 벽에 슬며시 기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죠?”

“보면 몰라요? 수업 참관 중이죠.”

“지금 그게 수업을 듣는 태도입니까?”

크러쉬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하지만 에단은 콧방귀를 뀌었다.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말이죠.”

“지루……하다고?”

크러쉬의 말이 평대로 바뀌었다.

“감히…… 하찮은 평민 따위가 내 수업을 모욕해?”

크러쉬는 살벌한 눈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분노한 그의 주위로 마나가 넘실거렸다. 에단이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야.”

“……뭐라고?”

“말은 자기가 먼저 놨으면서 왜 과민 반응이야? 내가 학생이냐? 같은 교수인데 누구 앞에서 권위를 세우고 있어?”

“……하.”

학생들이 숨을 들이마셨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다들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평민인 교수가 귀족의 신분을 가진 교수에게 저런 태도를 취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학생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에단은 크러쉬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심기가 불편한 이는 비단 크러쉬뿐만이 아니었다.

에단 역시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레벨린에게도 무데뽀로 들이박았던 자신이었다.

에단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압도감이 흘러내렸다.

블랙 오우거의 피어였다.

크러쉬는 에단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위축되었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일개 평민에 불과한 에단에게서 위압감을 느낀다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후환이 두렵지도 않나?”

“꼭 뭣도 없는 놈들이 후환 타령을 하더라.”

에단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 학생들을 둘러봤다. 이 반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주인공 얼굴도 모르고.’

뭐, 설마 여기에 원작 주인공이 있지는 않겠지.

원작 주인공은 에단과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에 흑발을 지닌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서 질러 버려도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야, 마법이 그렇게 잘났어?”

“허, 미천한 신분이라 그런지 하찮은 질문을 하는군. 당연한 것 아닌가? 무식한 검술에 비해 마법은 고고한…….”

“아, 그래? 근데 에밀라는 검술 교수가 아니었나? 에밀라가 그렇게 무식하고 미천해?”

그 순간, 크러쉬의 눈빛이 바뀌었다.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에단을 노려보던 크러쉬가 입을 열었다.

“……감히 에밀라 씨와 너 따위를 비교하는 건가?”

“왜? 걔도 평민인 건 매한가지잖아.”

“에밀라 씨는 너 따위와 비교될 수 없는…….”

“너 앵무새냐? 같은 말만 반복하게.”

학생들은 바짝 얼어 있는 채로 에단과 크러쉬의 말다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향해 에단이 시선을 돌렸다.

“오늘 부임하게 된 교수다. 다시 내 소개를 하지.”

크러쉬의 반응을 무시한 채, 에단이 한 걸음 나아갔다.

“검술과 체술이 내 담당 과목이다. 이 머저리가 방금 말했지? 마법이 월등하고 검술 따위는 열등하다고.”

에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보여 줄게. 검술이 과연 열등한지 말이야. 수업을 듣는 너희들에게도 객관적인 결과가 필요할 거 아니야.”

“지금 멋대로 무슨 짓을…….”

에단이 몸을 돌려 크러쉬를 바라봤다. 크러쉬는 분노와 당혹감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때? 너도 자존심이 있으면 증명하고 싶을 거 아니야. 이번 기회에 네 말을 증명해 봐.”

“…….”

“미천한 평민 따위는 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어떻게 말이지?”

“방법이 뭐가 있겠어. 당연히 결과를 보여 줘야지. 왜, 쫄려?”

에단이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에단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 * *

크러쉬는 에단의 횡포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오늘 주제 파악을 시켜 줘야겠어. 아니, 이대로 죽여도 괜찮겠지.’

감히 갓 부임한 평민 교수 주제에 에밀라와 스스로를 비견한 것부터 중죄였다.

‘거기다가 내 수업도 망쳐 놨지.’

수업은 평소처럼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귀족 자제들은 알아서 잘 따라왔을 테지만, 저열한 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평민 따위가 지고한 마법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에단은 크러쉬의 수업 방침을 면전에서 조롱했다. 크러쉬에게는 견딜 수가 없는 모욕이었다.

‘교수라고는 하지만 평민 하나 죽는 일이니 아무 문제 없겠지.’

역량의 차이를 실감시킨 뒤,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비참하게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대놓고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실수를 가장할 생각이었다.

크러쉬와 에단은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둘만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에단은 학생들도 이끌고 갔다. 크러쉬도 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학생들 앞에서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할 생각이었다.

에단과 크러쉬는 연무장 앞에 마주 섰다.

“흥, 이제 와서 울며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혀가 더럽게 길구나?”

“……죽는 게 소원이라면 들어줘야지.”

“지랄.”

에단이 뒤를 돌아봤다.

학생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스러운 모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건 없지.’

그렇기에 격투기 챔피언이었던 류태신 시절, 그만한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에단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판단은 너희들이 해라. 과연 이 새끼가 말한 것처럼 귀족 마법사가 월등한지.”

“흥, 너 따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보여 줄 생각이다. 검을 들어라. 수준 차이를 실감시켜 주지.”

“검? 그건 너한테는 사치지.”

“뭐라고?”

“내가 말했잖아. 나는 ‘검술’과 ‘체술’을 담당한다고.”

에단이 검지를 까딱거렸다.

“너는 맨손으로도 충분해.”

“좋다. 후회하게 해 주마!”

크러쉬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자 결국 폭발했다.

‘어떻게 아카데미에 발을 들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게 해 주마!’

“매직 미사일!”

크러쉬의 머리 위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마나가 모여 형성된 마법의 화살.

그 숫자는 적지 않았다. 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매직 미사일.

“이제야 겁을 집어먹었나?”

벌써부터 승리라는 감정에 도취했는지 크러쉬는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섰다.

“그 대사 안 질리냐?”

에단의 말에 크러쉬가 이를 갈았다.

“죽어라!”

공중에 떠 있던 마법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졌다.

맹렬한 기세로 쇄도하는 화살 세례에 에단이 슬며시 몸을 웅크렸다.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가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에단의 허벅지에 마나가 깃들더니, 에단의 몸이 마치 쏘아지듯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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