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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51화 (51/398)

◈ [51화] 무서운 산적 (2)

산적들의 아지트는 야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숫자에 비해서 아지트의 규모가 큰 편이었다.

돈은 물론이고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도 상당히 쟁여 두었고, 심지어는 가축도 기르고 있었다.

“보존식도 꽤 있고 좋네.”

조만간 이곳을 정리할 생각이었는지, 떠날 채비까지 되어 있었다.

“내가 잘 쓸게.”

“헤헤, 제가 오히려 영광입니다. 전부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에단이 줄리엔의 뒤통수를 두드리며 말하자, 그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속이 쓰리다 못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차마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산적답지 않게 검소한 삶을 지양하면서 아등바등 모아 온 재산이었다.

그러한 재산을 한순간에 모조리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항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에단이 너무 무서웠다.

“오늘은 여기서 지내면 되겠네. 얘들 다 묶어 놔.”

그 말에 가토가 에단에게 다가왔다.

“……이놈들을 살려 두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놈들도 쓸데가 있거든.”

개똥도 약에 쓴다는데, 그냥 버리기는 아깝잖아.

* * *

훌쩍훌쩍.

산적들의 흐느낌 소리가 이어졌다.

그간 힘겹게 쌓아 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직 덜 맞았지?”

커져 가는 흐느낌 소리에 짜증이 치민 휴고와 가토가 몸을 일으켰다.

서슬 퍼런 안광이 줄줄 흐르자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산적들은 알고 있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저들의 외모는 눈속임이라는 걸.

웃으면서 상대를 곤죽으로 만드는 모습.

그 상황을 직접 겪은 산적들은 둘을 보자마자 오줌을 지릴 뻔했다.

“다시 밥부터 먹을까.”

에단이 네이드를 바라봤다. 네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소매를 걷었다.

“할 일이 늘어 버렸군요.”

대부분이 육포 따위의 보존식이었지만, 산적들의 본거지인 만큼 음식과 식자재는 풍족했다.

네이드가 소매를 걷자, 페온와 가토도 일손을 도왔다.

꽤나 그럴듯한 음식들이 순식간에 준비되었고, 묶여 있는 산적들을 방치해 둔 채 에단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오물오물.

헨리는 말없이 음식을 씹으면서 에단을 바라봤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 포악한 돼지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니.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날카로운 인상이 있긴 하지만, 에단은 누가 봐도 잘생긴 편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빛.

살에 파묻혀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말로 파묻혀 있던 보석이 세공된 것 같았다.

‘성격은…… 바뀐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전처럼 패악질을 일삼지는 않았지만, 들이박고 보는 성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레벨린과의 통신에서도, 방금 전 산적과의 조우에서도 에단은 조금도 기가 죽어 보이지 않았다.

에단의 태도는 늘 거만했고, 거침없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없던 실력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가문만 믿던 망나니에서 힘과 뒷배를 모두 갖춘 오만한 사자가 되었다.

‘……아카데미에서는 괜찮을는지 모르겠네.’

본의 아니게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헨리는 아카데미에 대한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에단이 스스로 블란테임을 드러내지 않겠다고는 말했지만, 과연 그렇다고 한들 그의 태도가 평소와 다를까 생각해 보면…….

역시 회의적이었다.

‘아, 음식.’

잠시 상념에 빠져 있었더니 음식이 빠른 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헨리가 상념을 지우고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었다.

“쩝쩝, 헨리 씨 배가 많이 고프셨나 봐요?”

햄스터처럼 음식을 볼에 가득 채운 휴고가 그리 묻자, 헨리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쿨럭, 네……. 조금…….”

하지만 지금은 사사로운 대화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 * *

‘……이러면 지원을 덜 받은 게 의미가 있나?’

헨리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정작 에단이 매우 흡족해 보였기 때문에 따로 말은 하지 않았다.

식재료가 보충되었고, 마차의 크기는 그대로였지만 말이 한 필 늘어 쌍두마차가 되었다.

쌍두마차는 큰 도시의 내부가 아니라면 보기 힘들었다.

말 자체가 워낙 비싸고 말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보니, 말을 가지고 있는 상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쌍두마차인 것치고는 마차의 외관이 매우 부실하긴 했지만, 어쨌든 말이 하나 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상당히 높아졌다.

에단이 떠날 채비를 갖추자, 산적들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글픔에 눈이 촉촉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에단을 노려보는 자들도 있었다.

“표정이 참 보기 좋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그러한 태도를 에단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에단을 노려보던 산적 하나가 급하게 눈을 깔았지만, 에단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빠각!

“꺼헉!”

에단의 발이 산적의 정강이를 거칠게 찍자, 산적의 몸이 굽어졌다.

“왜 몸을 숙이지?”

에단의 서늘한 목소리에 산적이 재빠르게 몸을 세웠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발길질이었다.

빠악!

“야, 너도 이리 와.”

“저, 저 말씀입니까?”

에단이 대뜸 줄리엔을 향해 손짓했다. 안쓰러운 시선으로 부하를 지켜보던 줄리엔이 당황하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줄리엔의 근처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그러면 거기에 너 말고 다른 놈도 있어?”

에단의 눈빛에 줄리엔이 기가 잔뜩 죽은 표정으로 에단 앞으로 다가섰다.

“너, 애새끼 교육 제대로 안 해?”

빠악!

에단의 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줄리엔의 정강이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끄흑!”

“너도 정신을 못 차렸네?”

남들보다 가혹한 처사에 줄리엔은 서러움이 복받쳤지만, 에단은 투정을 받아 줄 사람이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애들 교육을 똑바로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아, 그래? 알기는 아네?”

빠각!

줄리엔의 몸이 다시 숙어졌다.

하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에단의 눈총에 줄리엔은 빛의 속도로 몸을 일으켰다.

에단의 갈굼을 말없이 바라보던 일행은 하나같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휴고가 가토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우, 우리한테는 친절하게 대해 주신 거였구나…….”

“……앞으로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하자.”

그간 해 온 지옥 같은 트레이닝과 에단이 보여 준 악마 같은 모습이 약과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굼의 늪은, 공포 그 자체였다.

‘여, 역시 무서운 사람이야.’

헨리는 겁을 집어먹다 못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에단에 대한 공포심이 더더욱 뇌리에 각인되었다.

한편 줄리엔은 이를 악물고 옆에 있는 산적을 노려봤다.

괜히 빌미를 줘서 자기까지 이런 꼴에 처하게 만들다니.

에단을 향한 분노보다 옆에 있는 수하들에 대한 원망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너는 안 되겠다. 그냥 보내 주려고 했는데.”

“네? 그게 대체…….”

줄리엔이 애처로운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블란테 직할령에 있는 산 알지?”

“네……. 알긴 하죠……. 그,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하기로 악명 높은 곳 아닌가요……?”

“잘 아네.”

에단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 줄리엔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내가 약도를 하나 줄게. 적혀 있는 대로 따라가면 동굴이 하나 나오거든?”

“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거기에 들어가면 너를 손꼽아 기다리는 애가 하나 있을 거야.”

“설마…….”

“너희들 다 거기로 가라.”

줄리엔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그럼 우리는 갈 테니까 너희도 잘 찾아가. 아, 도망갈 녀석은 중간에 도망가도 돼.”

에단의 말에 산적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대신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하다’는 말이 뭔 뜻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럴 각오가 있으면 도망가도 돼.”

산적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검게 죽었다.

에단이 떠나기 전에 줄리엔을 응시했다.

줄리엔은 지옥 같았던 일들을 떠올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너는 수염이랑 머리 싹 자르고.”

“……알겠습니다.”

그간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공고히 만들고자 유지해 온 긴 머리와 수염이었지만, 에단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거스를 수가 없었다.

괜히 에단의 말을 거역했다가 무슨 후폭풍을 맞게 될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산적들보다 더한 놈.’

정말로 치가 떨렸다.

그때 에단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너희들 이름이 뭐 곰 발바닥 어쩌구라고 하지 않았나?”

“……곰 발 산적단입니다.”

“아, 그래. 너희 혹시 ‘붉은 곰’ 용병단 알아?”

에단의 물음에 줄리엔의 눈이 커졌다.

뒤늦게나마 표정을 관리했지만 에단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뭐야, 아는구나.”

에단이 히죽 웃자, 줄리엔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분들은 어떻게?”

“그건 알 필요 없고. 뭐, 걔네 따까리였냐?”

줄리엔은 순간 고민했다. 신의를 지키느냐, 아니면 당장 자신의 정강이를 지키느냐.

결정은 빨랐다.

“……네. 인연이 있기는 합니다.”

“보나 마나 빤하네. 뭐, 여기 알선받고, 정보 주고 그런 거겠지.”

줄리엔의 눈이 다시금 커졌다. 에단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에단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 새끼들, 지금 어디서 뭐 해?”

* * *

에단 일행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마차는 여전히 허름하고 불편했다.

― 용병단 따위를 찾는 이유가 있느냐?

‘별건 아닙니다. 일대에서 꽤나 이름값을 날리는 녀석들이라고 들어서요.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 흐음…… 알겠다.

페온이 의구심을 떨쳐 내지는 못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에단이 가진 정보는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붉은 곰이라…….’

꽤나 이른 시기에 그들과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산적들 따위가 블란테 근처에 자리를 잡을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테니,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그게 붉은 곰이라니. 이름이 비슷해서 물어봤는데 우연찮게 얻어걸렸다.

‘위치도 괜찮군.’

마침 그들은 아카데미로 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찌할까.’

아카데미에 빠르게 도착하는 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붉은 곰도 후순위에 불과했다.

선택은 에단의 몫. 에단은 턱을 괸 채 휴고와 가토를 바라봤다.

‘쟤네를 쓸까?’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굳이 비효율적으로 뭉쳐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자신이 가진 정보는 제한적이다. 붉은 곰과 관련된 사건은 아직 진행되기 전이고, 알고 있는 지식들은 모두 미래의 사건들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도 대부분이 주인공 위주의 서술들.

‘그래도 키워드만 있으면.’

그렇다고 한들 에단이 가진 정보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정보는 큰 이점이다. 더군다나 온갖 기연이 난무하는 이 세계관에서라면 더더욱.

산적, 그리고 용병.

시기가 적절하다. 그래서 오히려 거슬렸다.

‘앙큼한 짓을 하는군.’

때마침 블란테 영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산적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붉은 곰 용병단.

이 모든 것들이, 레벨린이 깔아 둔 초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레벨린은 결국 블란테를 집어삼키는 게 목적일 테니까.

‘이런 꼴로 움직인 덕에 뜻밖의 수확을 얻었군.’

만일 블란테임을 숨기지 않고 여정을 떠났다면, 산적단은 결코 에단 일행을 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붉은 곰 용병단의 정보를 얻지도 못했을 테고.

‘소상인들은 계속해서 피해를 입었겠지.’

조금씩 블란테에 관한 괴담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테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것에는 점차 살이 붙기 마련이다.

에단은 앞을 바라봤다. 잠이 덜 깬 휴고가 입을 벌려 하품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가토가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야, 너 때문에 마차 속도 느려진 거 안 보여? 몰기 힘드니까 좀 떨어져.”

“……아까는 호위니까 좀 붙어야 한다며.”

가토에게 지적당한 휴고가 작게 투덜거렸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란 말이야. 훈련 때 안 배웠어?”

둘의 대화를 듣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군.’

읽던 소설 속에 들어오다니. 유행이 지나도 너무 지난 설정이 아니던가.

게다가 편치 않은 앞날이 예상되었다. 원작은 총 20권이 완결이었고, 류태신은 15권을 보던 중 소설 속으로 끌려 왔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봐도 원작의 결말이 빤히 보였다. 이미 주변 인물이 다 죽어 가는 와중인데 좋게 끝나 봤자 결말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즐거웠다.

의욕과 의지를 잃고 점점 시들어 가던 감정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류태신은 챔피언이었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이곳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었고, 에단은 시험하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

성장하고 쟁취하는 것.

투쟁을 통한 승리.

그것이 에단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였다.

설렜다. 류태신이었을 때는 진절머리 나기만 했던 인간관계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휴고, 가토, 네이드, 페온, 빈센트.

동료라는 단어는 믿지 않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믿어 왔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들이라면…….’

조금은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용히 가자.”

“넵!”

“네!”

티격태격하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끊겼다.

정적이 찾아왔고, 말발굽 소리만이 여정에 함께했다.

맑은 하늘을 보며 에단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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