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무서운 산적 (1)
에단을 습격한 산적은 나름대로 영리한 축에 속했다.
요즘같이 치안이 발달한 시기에는 노략질을 하기가 어렵다.
병력이 많은 만큼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도적들도 서로가 경쟁하는 시대였다. 규모가 커지면 분쟁이 벌어진다.
이권 다툼은 그들에게도 숙명이었고, 분쟁을 벌일 정도로 규모가 커진 도적들은 소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소규모로는 아무것도 안 돼.’
굶어 죽으려고 도적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될 만한 수확을 얻으려면 그럴 만한 대상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상인이라면 돈 몇 푼에 상행의 명운을 걸지 않는다. 목숨과 상품을 지키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그를 경호하는 경호 인력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녀석들을 노려봤자 피만 볼 뿐이지.’
노련한 용병들이 얼마나 무서운 족속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잔혹한 손속은 도적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용병들은 전투 경험으로는 월등히 앞서니 괜히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산적 두목은 고민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뒷배가 좋은 조건으로 끌릴 만한 제안을 받은 것이었다.
― 도적들이 기피하는 곳이 있다네. 그게 어딘지 아는가? 바로 블란테가 있는 곳이지.
약탈이나 하는 도적들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도적질로 부를 불린다고 한들, 도적은 결국 수배당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그렇기에 평생을 불안감에 떨며 살아야 한다.
그런 자신들에게 부와 신분, 그리고 직위를 내건 제안이 왔다. 너무 큰 대가인지라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그만큼 달콤해 보이는 과실이었다.
하지만 과실을 따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그 어떤 도적들도 자리 잡지 않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장소인 블란테의 인근.
블란테는 모르는 이가 없는, 대륙을 주름잡는 무력 집단이었다.
그런 괴물 같은 놈들이 도사리는 곳에서 감히 노략질을 하다니.
아무리 도적들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이긴 해도, 그런 간 큰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한에게는 뒷배와 함께 자신감이 있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되잖아?’
고정 관념을 이용했다.
블란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블란테가 행차할 때는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화스러운 행보를 보여 줬다.
블란테와 거래하는 상인과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상응하는 경호 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녀석들만 피하면 돼.’
모두가 기피하고, 또 두려워하는 장소에 뿌리를 심은 것이다.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만한 놈들을 삼킨다.
그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그래도 결국에는 꼬리를 잡히겠어. 그 녀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여기서 마무리다.’
슬슬 자리를 뜰 때가 되었다. 안심하고 안주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눈앞의 이 허름한 마차를 마지막으로 털어 버리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산적 두목이 달려들었다.
그래도 한 무리의 우두머리라서인지 기세가 상당히 매서웠다.
험상궂은 외모와 그를 뒷받침하는 덩치.
산적 두목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흥분한 산적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뛰어들었다.
전의는 오를 만큼 올라 있어서인지, 패배를 의심하지 않는 승자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산적들이 헨리를 보는 눈에는 음욕이 가득했다.
마지막에 좋은 물고기가 걸렸다는 듯 음탕한 웃음이 만연했다.
빠악!
이내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하하! 재미없으니까 단번에 죽이지는 마라!”
산적 두목이 호방하게 웃었다.
“너같이 건방진 새끼에겐 쓴맛을 좀 보여 줘야지!”
산적 두목은 도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쇳덩이를 휘둘렀다.
에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아오는 도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젖혀 공격을 피했다. 도끼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피해?”
네가 감히? 라는 표정이다. 에단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그딴 걸 맞아 주리?”
“이익!”
얼굴이 달아오른 산적 두목이 거칠게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에단의 태도도 바뀌지 않았다.
팔짱을 낀 에단이 여유롭게 공격을 하나하나 피해 냈다.
쉭― 쉬익―
도끼는 여전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상황이 바뀌지 않자 산적 두목은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이상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며 속이 울렁거렸다. 불길함이 치밀었다.
산적 두목은 눈치가 빨랐다. 그게 그동안 노략질을 하면서도 살아남은 이유였다.
‘주위가 조용해.’
에단의 여유는 바뀌지 않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시끄럽던 산적들의 웃음소리가 끊겼다.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소름이 끼쳤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하릴없이 휘두르는 자신의 도끼질 소리뿐이었다.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산적 두목이 아니었다.
“이제야 끝났냐? 대체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밥 먹던 도중이라 아직 소화가 안 돼서 그만…….”
에단이 타박했다. 이미 산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에도 산적은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피가 끓기는커녕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도끼질이 뚝 하고 멈췄다. 호흡이 가쁘고 심장도 거칠게 뛰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땀은 흐르지 않았다.
산적이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히, 히익!”
수십이 넘던 산적들이 모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개중에는 피를 철철 흘리는 자들도 있었고, 몸이 기괴하게 꺾여 있는 놈도 있었다.
그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괴멸한 것이다.
가토와 휴고는 가볍게 목과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고, 네이드는 여전히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자, 잘못 건드렸어.’
벌집을 건드려 버렸다.
습격에도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빠르게 판단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저지른 오판으로 인한 참상을 보며 산적 두목은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렸다.
“야.”
에단이 산적 두목을 불렀다. 산적 두목이 화들짝 놀라며 에단을 바라봤다.
“네, 넵?”
“넵? 방금 ‘넵’이라고 했냐? 방금은 곱게 죽일 생각이 없다느니 뭐라느니 하지 않았나?”
“그, 뭔가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
에단이 산적 두목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 이름이 뭐야?”
“주, 줄리엔입니다.”
산적 두목의 대답에 에단이 얼굴을 구겼다.
“줄리엔? 이름하고 얼굴이 매치가 안 되는데?”
“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건 없고…… 이름이 안 어울리는 게 죄는 아니니까. 죄송할 일은 따로 있잖아.”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악마의 웃음이었다.
콰직!
“커헉!”
에단이 발끝으로 줄리엔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줄리엔이 신음을 터트리며 몸을 숙였다.
“어쭈, 몸을 숙여?”
에단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줄리엔의 귀에 꽂혔다. 줄리엔이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끄으윽!”
콰직!
다시금 이어지는 발길질.
줄리엔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를 악물고 쓰러지지 않았다.
“야.”
“네, 넵!”
“아까 하던 거, 마저 해 봐.”
“…….”
“곱게 죽이지 않겠다. 뭐 그런 거 했잖아. 이야…… 정말 오금이 저리더라. 오줌 지리겠어.”
“……죄송합니다.”
콰직!
“끄으윽.”
다시금 이어지는 에단의 조인트에 옆에서 지켜보던 휴고와 가토가 소름이 끼치는지 팔을 매만졌다.
“……그, 에단 님?”
헨리가 에단을 부르자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에단의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아, 아닙니다.”
해맑은 에단의 표정을 보자 헨리가 곧바로 찌그러졌다.
“야.”
“네, 넵!”
“너희들 간도 크다? 여기서 몇 탕이나 해 먹은 거야?”
“그…….”
줄리엔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에단이 팔을 들었다. 찔끔 놀란 줄리엔이 손을 들었다.
“다섯 번 정도…….”
“뒈질래?”
“죄송합니다. 열 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흐음…… 열 번이나 약탈을 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에단이 네이드를 바라보며 묻자, 그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죄질이 매우 나쁘군요. 감히 블란테의 입김이 닿는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블란테……? 혹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줄리엔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예감이 적중한다면.
줄리엔의 표정이 불안감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어, 맞아. 우리 블란테야.”
에단이 휴고와 가토를 향해 손짓했다.
“로브 좀 벗어봐.”
에단의 말에 휴고와 가토가 로브를 벗었다. 로브를 벗자, 블란테를 상징하는 검은 사자의 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 히이익!”
줄리엔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뭐야? 아까는 블란테도 안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저, 정말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쇼!”
줄리엔이 곧장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연신 찧었다.
머리에 피가 흐를 기세를 본 에단이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왜?”
에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악어의 입에 머리를 집어넣었구나!’
후회가 막심하게 들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한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지금은 구차하게라도 목숨을 구걸할 때였다.
“다, 다시는 이런 짓 벌이지 않겠습니다!”
“야.”
에단이 부르자 줄리엔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진심이 조금도 안 느껴지잖아.”
에단이 줄리엔의 덥수룩한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지면에 내다 꽂았다.
콰직.
“끄으윽!”
줄리엔이 신음을 흘렸다.
흙바닥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지만, 에단은 머리채를 놓지 않고 다시금 들어 올렸다.
“줄리엔.”
“네, 넵!”
“대답은 한 번만 해.”
“네!”
“이 정도 규모면 너희 아지트도 있겠네?”
“…….”
“하하, 대답을 안 하네. 괜찮아.”
쾅!
줄리엔의 얼굴이 다시 바닥과 인사했다. 그러자 줄리엔의 얼굴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었다.
얼굴에서 피와 먼지가 같이 흘러내렸다.
“줄리엔.”
“네! 아지트 있습니다! 저희가 손수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에단이 몸을 일으키자 줄리엔도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얘네 다 묶어 두고 가자.”
“이놈들을 전부 말씀입니까?”
“어. 죽이진 않았지?”
가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몰라서 치명상은 피하고 모두 기절시켰습니다.”
“그럼 다 깨워.”
“알겠습니다.”
휴고와 가토가 기절해 있던 산적을 모두 깨웠다.
깨어난 산적들 중에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반항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몇 대 쥐어 터지자 다시 얌전하게 바뀌었다.
“뒈질래?”
휴고가 손을 흔들면서 경고하자 악을 쓰던 산적이 얌전해졌다.
―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말이다. 안 그러냐?
페온의 물음에 에단은 대답을 회피했다.
“야, 산적 두목.”
“네, 부르셨습니까.”
“이제 안내해.”
자원을 보충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