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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49화 (49/398)

◈ [49화] 여행 시작 (2)

헨리는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기에는 이미 레벨린에게 저지른 일을 수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단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을 원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헨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럼 이제 말은 편하게 하도록 하지. 자, 이건 선불.”

에단이 헨리를 향해 주머니를 던졌다.

헨리가 화들짝 놀라며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이건 대체……?”

헨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받아 든 주머니를 열어 봤다. 주머니 안에는 환하게 빛나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허익……!”

헨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러다가 턱 빠지겠다.”

“이, 이런 큰돈을…….”

“돈이 필요하던 거 아니었나?”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거금은 못 받습니다!”

“선금이니까 받아 둬. 위약금이라고 생각해. 정 부담을 느낀다면…… 그만큼 굴릴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

“아…….”

그래도 주머니를 되돌려 주려 하던 헨리는 에단의 표정을 보았다.

악마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에단을 보자 오금이 저렸다.

‘저, 정말로 이 금화만큼 나를 굴릴 생각이야.’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금화의 값어치만큼 에단에게 이용당할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반면 에단은 용무가 끝나자 마차 밖을 바라보며 헨리에 대한 신경을 접었다.

‘첫 단추는 끼웠군.’

헨리가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만간 요긴하게 쓰일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가만히 놔둘 생각인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큰 쓰임새가 없다뿐이지, 사람 하나로서의 구실은 충분히 했다.

‘아카데미에서 구른 짬도 있고, 굴리면 충분히 쓸데가 있겠지.’

에단은 준 만큼 반드시 회수할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음흉한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 ……무서운 놈.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에단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밖에서는 휴고가 들뜬 표정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신났어?”

“아, 죄송합니다……. 그냥 이렇게 나와 본 게 처음이라서…… 헤헤.”

‘……그럴 나이인가.’

휴고의 나이는 아직 10대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가문 내에서 허드렛일만 하면서 천대받고 지냈으니, 단순히 거리를 거니는 행위 자체만으로 만족감이 높아 보였다.

“여행 가는 거 아니니까 집중해. 우린 블란테의 기사니까.”

마차를 몰던 가토가 휴고에게 말했다. 가토는 블란테의 기사라는 자부심이 강한 것 같았다.

“으, 응, 조심할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지도 신났으면서.’

가토의 표정도 휴고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붉게 상기되어 있는 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기사라는 목표를 이룬 뒤에 첫 출전.

비록 정식 임무는 아니었지만, 에단이라는 주군을 따라나서는 행위 자체가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았다.

‘좋을 때다.’

둘의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을 즐기게 놔두고 싶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니까 말이야.’

에단이 저 둘을 데리고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블란테인 걸 안 드러낸다고 했지, 얘네까지 숨긴다고는 안 했잖아?’

휴고와 가토는 블란테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전투 시에 입는 갑주는 아니었지만, 블란테임을 증명하는 수단임은 분명했다.

둘은 명실상부한 블란테의 기사였다.

둘이 블란테임을 드러내는 것은 에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한마디로 에단의 권한 밖이었다.

‘평상시에는 떠벌릴 생각은 없지만.’

그것 때문에 로브를 입혔다. 대놓고 드러내서는 안 되겠지만, 필요시에 이용하기에는 충분했다.

“헨리.”

“네, 넵?”

“여기서 아카데미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이 속도로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2주 정도 소요될 것 같아요.”

“2주라.”

뭐 나쁘진 않네.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되지만, 조급할 것까지는 없었다.

‘그 녀석도 아카데미에 있을 테고.’

원작의 주인공.

뛰어난 재능과 온갖 기연으로 순식간에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게 될 예정이었다.

초조할 것까지는 없다.

구태여 원작 주인공을 짓밟을 필요도 없었다.

주인공의 목표는 흐릿했지만, 결국 자신의 행복과 주변 인물들의 행복 중심이었다.

‘알아서 커서 이런저런 상황을 잘 막아 주면 오히려 다행이지.’

원작 내용과는 다르게, 에단은 주인공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을 예정이니 과도한 경계는 불필요했다.

‘그렇다고 죄다 독식하게 둘 수는 없지.’

벌써 주인공이 얻을 것들을 몇 가지 가져왔다.

죽은 나무와 세계수의 목걸이.

‘그리고 예상 밖에 소득도 있지.’

타이탄의 장갑과 페온.

‘이 두 가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

아무리 원작이 불친절한 소설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중요한 설정인 타이탄과 그를 알고 있는 페온의 스토리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다.

에단에게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지만, 무언가 찝찝했다.

‘특히 페온의 존재가 마음에 걸려.’

검을 등한시하던 선대 블란테.

페온의 존재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페온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영체로 그곳에 머물러 있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페온은 당장 쓸모가 있었다. 에단이 아직 개척하지 못한 분야인 마나를 다루는 것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나에 관해서 에단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편법으로 얻는 마나. 그것만으로 마스터의 경지를 뚫는 것은 무리였다.

그간은 순간적인 상황 판단과 변칙적인 공격들로 우위를 점했지만.

‘한계는 명확해.’

결국에는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야 했다. 페온은 그 점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보자고.’

멍청하게 뒤통수를 맞을 생각은 없었다. 숙이고 들어가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 * *

까드득!

레벨린이 이를 갈았다.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뭣도 아닌 망나니 새끼 하나 때문에.

늘 평정을 유지하던 그녀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딴 녀석 하나쯤.”

에단이 교수로 임관된다고 한들 초임 교수의 권한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결국 아카데미를 주무를 수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아카데미의 중축도 결국에는 그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에단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떠올리자 절로 치가 떨렸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원래라면 충분히 블란테를 이용하다 집어삼킬 계획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계획보다 조금 빨리 블란테를 흡수할 생각이다.

‘조금 탈이 나더라도.’

뒤따르는 부작용 따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레벨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 * *

에단 일행의 여정은 여유로웠다. 하인 생활을 오래 해 온 휴고는 순식간에 야영지를 만들었고, 네이드는 간단한 재료로 먹음직한 요리를 금세 만들었다.

소박해 보이는 고기 수프를 입에 넣은 에단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보기보다 훌륭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작게 미소를 지은 네이드가 음식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식량이 여유로운 편이 아닌지라 평소처럼 풍족한 식사는 할 수 없었지만, 맛 하나만큼은 소박하지 않았다.

― 에잉, 몸이 없는 게 한이군.

에단이 페온의 투덜거림을 무시했다.

휴고가 스프를 뜬 수저를 입에 넣었다.

“와∼ 네이드 님, 정말 대단합니다! 그 재료로 어떻게 이런 맛을…….”

“저도 이 녀석이랑 같은 생각입니다.”

“얼굴에 금칠 그만하시죠. 부담스럽습니다.”

헨리가 분위기를 살피다 수프를 한술 떠먹더니 눈이 커졌다.

‘저, 정말 맛있네?’

과장이 섞인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들어간 재료 중에 정말 특별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헨리가 허겁지겁 수프를 뜨기 시작하자 네이드가 작게 웃었다.

식사를 이어 나가던 도중 휴고의 숟가락질이 멈췄다.

곧이어 네이드가 움직임을 멈췄고, 에단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도련님.”

네이드가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지도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네.”

휴고와 가토가 몸을 일으켰다. 가토가 검을 뽑았다.

스르릉―

따뜻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에단이 주변에 흐르는 기척을 느꼈다. 기운이 매섭지는 않은 걸 보니 짐승의 느낌은 아니었다.

‘긴장할 상대는 아닌 것 같고.’

상대방은 아직 다가오고 있었다. 기감이 예민한 휴고와 네이드가 먼저 눈치챈 것이다.

― 걱정은 않아도 괜찮겠군. 하룻강아지 새끼들이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몰려오는구나.

스스슥.

수풀을 헤치는 소리,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발걸음 소리.

“사람이군.”

어이가 없었다. 블란테의 영지를 떠난 지 아직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한데 블란테의 인근에서 나타나는 도적이라니.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때마침 놈들이 나타났다.

화르륵!

횃불이 켜졌다. 수풀을 거둬 내며 수염이 가득한 거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수풀을 짓밟으며 나타나자 그 뒤에 수많은 도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악한 활과 무기들이었지만, 풍기는 기세는 제법 사나웠다.

“사, 산적!”

겁에 질린 헨리가 에단의 뒤에 몸을 숨겼다.

“하하, 반갑다. 이 앙증맞은 녀석들아.”

“……산적인가?”

에단이 눈살을 좁히며 묻자, 거구의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 앙큼한 놈들, 상당히 말이 짧구나. 이번만 봐주도록 하지. 크하하!”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안 하네. 산적이냐고 묻잖아.”

“하하, 그게 그리도 궁금한가? 어려운 것도 아니니 알려 주마. 네 말이 맞다. 우리는 산적이지. 포상으로 그 혀를 잘라 주마.”

거한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감히…….”

가토가 검을 들어 올리려 하자 에단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가토의 시선이 향하자, 에단이 작은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기다려.’

궁금했다. 상대를 제압하는 건 나중에도 충분했다.

“그래. 산적이라는 건 무식하게 생긴 외모만 봐도 알겠고. 그래서 무슨 용무지?”

달라지지 않는 에단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거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래. 객기는 인정해 주마. 이 일대는 우리의 땅이다. 남의 땅에 발을 들였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흠, 여기가 너희들 땅이라고? 그거 이상한걸.”

에단의 말에 남자가 가슴을 두드렸다.

“이상할 것이 뭐가 있지? 여기가 바로 우리 ‘곰 발’ 산적단의 영역인데 말이야.”

거한이 다시금 누린내가 진동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거한의 호탕하고 패기 있는 목소리에, 주변을 에워싼 산적들이 크게 소리치며 호응했다.

“그것참 신기한 일이군. 이 일대는 블란테의 영역이 아니던가?”

“블란테? 흐흐흐…… 그 고고한 척하는 기사 새끼들이 너희 같은 벌레 새끼들의 목숨 따위 신경 쓸 거 같아? 그리고 우리는 블란테 따위 무서워하지 않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곱게 혀나…….”

“이거 참 실수했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그래, 말해 봐라. 질문 하나 정도는 받아 주지.”

― 허허, 도적놈들이 말도 많고, 자비심도 넘치는구나.

에단은 페온의 말에 공감하며 놈들에게 물었다.

“왜 우리를 노린 거지?”

“그걸 몰라서 묻나? 딱 봐도 허접해 보이는 놈들이니까. 이 일대를 돌아다니는 애들은 두 부류밖에 없어. 블란테거나 블란테와 거래를 할 정도의 거물이거나. 우리는 뭐 블란테도 딱히 무서워하지 않지만…… 괜히 블란테를 건드려서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어쨌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쭉정이가 겁대가리 없이 이 일대를 지나다니는데 우리가 그냥 넘어갈 이유가 있나. 어때, 대답으로 충분한 거 같은데?”

거한의 대답에 에단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야, 블란테도 무섭지 않아? 그거참 대단하네. 그런데 너희들 어차피 우리 죽일 생각 아니야? 아까 말한 대로 괜히 후환을 남겨 두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야.”

“흐흐,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녀석이 눈치는 빠르구나.”

“그럼 이 짓거리는 그냥 우리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거겠네?”

“이번에도 정답이다. 애들아, 다 죽여라!”

산적이 웃으면서 에단에게 뛰어들었다. 산적의 손에는 녹이 가득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에단이 한숨을 내쉬며 산적의 앞에 한 걸음 다가섰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지랄.”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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