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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48화 (48/398)

◈ [48화] 여행 시작 (1)

마차 안은 조용했다. 말없이 책을 읽는 네이드와 한적하게 창가를 바라보는 에단.

그리고 힐긋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헨리.

“왜 그렇게 눈치를 보는 거죠?”

“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직 쉽게 믿기지가 않아서…….”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계시죠. 어차피 곧 한배를 타게 될 사이 아닌가요? 아, 이미 타긴 했군요.”

에단의 농담조에 헨리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에단의 제안은 헨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대체 나의 뭘 보고 제안하는 거야?’

운 좋게도 아카데미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헨리의 실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에단의 의중이 이해되지 않았다.

헨리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헨리의 가방에서 진동이 새어 나왔다.

“앗!”

헨리가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뒤지자 통신 수정구가 울리는 것이 보였다.

“자, 잠시만 조용히 해 주세요.”

아카데미와 직통으로 연결된 통신 수정구였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보고조차 건너뛰고 독단적인 결정을 감행했다. 감히 어떻게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헨리가 침을 삼키며 수정구의 암호를 풀자 수정구가 빛을 발했다.

에단과 네이드는 흥미로운 눈으로 헨리와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 헨리 씨? 보고는 들었습니다.

“네, 넵……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 하아…… 난감한 일이긴 하지만 헨리 씨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믿기 힘들기는 해도 에밀라 씨를 이겼다면 자격은 충분한 거겠죠. 이미 명분을 잃었습니다.

헨리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레벨린이 말을 이었다.

― 하지만 헨리 씨에게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헨리 씨가 여지를 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일정을 최대한 늦추세요. 저희 측에서도 조치를 취해야 하…… 헨리 씨?

헨리가 고개를 숙인 채 끅끅거리고 있었다. 마치 웃음을 참는 모양새였다.

“크큭…… 크하하하핫!”

헨리가 폭소를 터트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단이 헨리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던 발가락을 회수했다.

그와 동시에 에단이 통신 수정구를 빼앗아 왔다. 헨리가 당황하며 에단에게 손을 뻗었지만 닿을 리가 없었다.

에단이 입 모양으로 헨리에게 말을 전달했다.

‘가만히 있어요.’

이미 수정구를 빼앗긴 헨리에게는 선택 사항이 없었다. 에단이 수정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갑습니다, 레벨린 씨.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 ……누구시죠? 상당히 당황스러운데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에단입니다. 아끼던 수하의 얼굴을 아주 박살을 내 버리고 말아서, 사죄의 의미로 이렇게 수정구를 넘겨받았습니다.”

― ……확실히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셨군요.

‘뭐야, 서로 일면식이 있었어?’

모르던 사실이다. 에단과 레벨린과의 접점은 원작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 사실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에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 글쎄요. 저는 반대의 의견입니다만…… 에단 씨를 보아하니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런데 헨리 씨는 어디 계시죠? 지금 상당히 불쾌합니다.

“하하, 불쾌하실 것 없습니다. 헨리 씨는 이제 당신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으니까요.”

그 순간 헨리의 턱이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 헨리가 경악하며 다가왔지만, 네이드가 저지해서 차마 에단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 ……무슨 소리시죠?

“혹시 귀가 잘 안 들리시나요? 헨리 씨는 이제 당신들 직원이 아니라고요. 제가 스카웃했습니다.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 저평가를 받고 있는 인재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어서 말이죠.”

― 당신이 감히 뭔데…… 아니, 에단 씨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서 그렇게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거죠? 헨리 씨의 정식 고용주는 아카데미입니다. 아무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처리한다고…….

레벨린의 말이 길어지자 에단이 말을 도중에 끊었다.

“절차야 이제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허, 저희가 대체 왜 그래야만 하죠? 정중한 부탁도 아니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당신을 위해서?

레벨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에단은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에단이 거만하게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왜? 그러면 한번 진짜 무례하게 가 줄까?”

― ……뭐라고요?

“아카데미에서 내가 뭔 짓을 해도 괜찮아? 당신들이 쌓아 올린 좋은 평판, 내가 다 시궁창으로 처박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 당신 지금…….

“나는 블란테야. 아카데미의 협박 따위는 좆도 신경 안 쓴다고. 아까도 말했지. 명분은 우리한테 있다고. 그런데 어쩌려고? 이제 와서 정식 계약을 파기라도 하게?”

―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어. 협박하는 거야.”

에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신이 하는 짓은 협박이 맞았으니까.

* * *

헨리는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당장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단에게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여전하시군요.

“상당히 돌려서 말하네? 솔직하게 말해도 돼. 망나니 새끼 버릇 어디 안 간다고.”

에단의 계속되는 도발에 레벨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이러시는 이유가 뭐죠? 정말 헨리 씨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헨리의 가치는 에단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벨린 또한 헨리의 가치를 모르지 않았다.

단지 확신이 없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여유를 두면서 큰 계획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왜 가만히 놔둬야 하지? 그것도 나를 방해할 게 빤한 녀석을.’

에단을 향한 경계?

그딴 게 무서웠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레벨린은 에단의 앞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몸을 사리는 건 적성에 안 맞아.’

어차피 나중에 가면 블란테의 존속 자체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최대한 블란테 가문이 무너지지 않게끔 할 생각이었다.

애초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지금과 같이 가문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함이었으니까.

“왜, 싫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이미 그러기로 마음먹었거든.”

― ……감당하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레벨린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이건 그녀의 경고였다.

하지만 에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에단이 조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감당할 자신 있고? 조만간 보자고, 레벨린 팀장.”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에단이 네이드를 향해 수정구를 던졌다. 수정구를 받아 든 네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통신을 끊었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헨리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수정구를 붙잡았다. 하지만 강제로 통신이 종료된 수정구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헨리가 원망 어린 눈초리로 에단을 쏘아봤다.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책임질 거라고 했지 않았나요?”

“아…… 현기증이…….”

에단의 태연한 대답에 헨리가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에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았습니까?”

에단의 속없는 물음에 헨리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속은 뻥 뚫렸네요.”

헨리의 표정을 본 에단이 웃었다.

* * *

빠드득.

레벨린이 이를 갈았다. 언제나 가면 같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녀의 얼굴에 금이 갔다.

“……꽤나 거슬리게 해 주는군요.”

블란테는 큰 덩치의 사자였다. 함부로 삼키려 들면 안 됐다.

“언제까지…… 그렇게 으스댈지 지켜보겠습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블란테가 먹기 좋은 크기가 됐을 때, 한 번에 집어삼킬 생각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놀랍군.”

레벨린이 에단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가문의 힘을 믿고 생각 없이 내뱉는 말버릇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그때처럼 마구잡이로 내뱉는 게 아니라 말 속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주의해야겠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에밀라는 레벨린의 중요한 패 중 하나였다.

그런 에밀라가 패했다는 것은 상당히 뼈아팠다.

‘괜찮아. 에밀라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그녀가 패했다는 것은 학생들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밝혀지지만 않으면 에밀라의 가치는 퇴색되지 않을 터.

‘아직 우위는 우리가 가지고 있어.’

상대는 고작 블란테의 망나니였다. 협상 테이블 위에서 객기를 부려 봤자, 레벨린은 제 마음대로 주무를 자신이 있었다.

‘모든 것은 계획을 위해서.’

원대한 계획에 차질 따위는 없어야 했다.

그것도 날아드는 부나방 때문이라면 더더욱.

* * *

“……그러면 저는 이제 어찌하면 되는 거죠?”

헨리가 울상을 지으며 묻자, 에단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요?”

“책임져 준다고 하셨잖아요!”

“말이 이상하시네.”

에단이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헨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물쭈물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헨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사정이 있어서 일을 그만둘 수 없어요…….”

헨리가 음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아카데미의 처사가 가혹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렇다 할 스펙과 경력이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그녀에게는 아카데미가 최선이었다.

“걱정 마시죠. 저는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지금 급여의 두 배.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죠?”

에단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헨리가 고개를 숙였다.

“네…… 빚이 있습니다.”

적은 빚이 아니었다. 채무의 압박이 그녀를 그간 몰아세우고 있었다.

채무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기에 달아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켜야만 하는 가족이 있었다.

“여동생도 있고.”

“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뭐라고요?”

헨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못 들으셨나요? 채무도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채무자들? 그 녀석들이 블란테보다 두렵습니까?”

“그건…… 아니죠.”

아무리 채무자가 두려운 존재라고 해도 감히 블란테와 비교할까.

블란테는 대륙에서도 위명 높은 무력 집단이었다.

“그러니까 순순히 고용되시죠. 어차피 이제 선택지는 없습니다.”

에단이 미소 지었다. 정말로 이제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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