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뿌려둔 씨앗 (3)
“나까지 끌고 와서 뭐 하는 거야……?”
휴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가토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런 차림으로 기사 서임을 받을 생각이야?”
가토가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묻자 휴고가 당황했다.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치?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빨리 준비해.”
“나는 예복이 없는데?”
“하…… 이거 입어.”
둘은 부랴부랴 준비하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머리를 급하게 말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토의 예복은 기사 서임식을 대비라도 한 듯 잘 다려져 있었다.
“머리는 넘기고, 눈빛도 중요하다.”
가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기에 휴고는 차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응, 알겠어.”
휴고는 이 모든 게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가토는 일사불란하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 둘은 구두까지 신고 방을 나섰다.
에단의 연무장으로 향하는 가토의 얼굴은 전쟁에 참전하는 전사같이 무거웠다.
“……대단하군요.”
가토와 휴고의 차림새를 본 네이드의 감상이었다. 에단은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큭큭큭, 고작해야 약식 서약인데 준비 제대로 했구먼.”
에단의 목소리에서 기특함이 묻어났다. 둘의 진지한 모습이 썩 보기 좋은 탓이었다.
이내 가토가 에단에 앞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휴고도 어정쩡한 자세로 가토를 따라 했다.
“거창한 말재주는 없어서 좋은 말은 못 해 주겠다. 상관없겠지?”
“그렇습니다.”
가토의 진지한 대답에 에단의 입가는 호선을 그었다.
“난 한 가지만 원한다. 말뿐인 희망을 심어 주진 않을 거야. 날 따라와 견뎌 내면 강하게 만들어 줄게. 너희는 날 배신하지만 않으면 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에단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둘을 바라봤다. 가토와 휴고가 고개를 들었다.
가토의 눈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고, 우왕좌왕하던 휴고의 눈빛도 이내 단단해졌다.
“도련님이 주신 은혜.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휴고와 가토가 대답하자 에단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평소에 사용하던 연습용 철검이 아닌, 오는 길에 들고 온 화려한 휘장이 담긴 검이었다.
― 수하는 잘 구했군.
‘동감합니다.’
첫 동료였다. 격투기 선수 시절처럼 자신에게 빌붙어 먹는 기생충은 필요 없었다.
험난한 앞날이었다. 온갖 기연과 동료를 지닌 주인공도 어려워하던 길이었다.
그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 했다.
그러기 위한 첫 단추였지만 에단은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키웠고, 자신이 확신했다. 그거면 족했다.
에단이 검 끝에 마나를 실었다.
일반적인 푸른색의 마나가 아닌, 혼탁한 묵빛의 마나였다.
‘어떤가요? 이게 검은 사자와 더 어울리지 않습니까?’
― 큭큭큭, 부정하진 않으마.
“너희의 신의에 묻겠다. 휴고와 가토, 너희 둘은 나 에단 블란테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겠나?”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에단의 검이 휴고의 어깨에 얹어졌다가 바로 가토의 어깨로 옮겨 갔다.
묵빛의 마나가 둘의 의장을 손상했는데, 그을림은 마치 각인 같았다.
에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너희는 지금부터 나의 기사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가토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휴고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훈련 시작해야지?”
“……네?”
“이제 너희는 정식으로 권한을 얻었어. 마나 수련의 기회를 잡은 거지.”
“그, 그런가요?”
“왜, 기쁘지 않아?”
“매우 기쁩니다.”
“그래, 축하해. 첸 경 이제 오셔도 됩니다.”
에단의 부름에 연무장 밖에 서 있던 첸이 천천히 들어왔다.
“언제부터……?”
“방금 전에 오셨다. 너희를 위해 힘들게 모셔 왔으니…….”
에단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분명 웃고 있었는데 마치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열심히 해야지?”
“네…….”
가토와 휴고가 울상을 지었다.
* * *
훈련이 시작되기 전, 에단은 잠시 휴고를 불렀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마나 수련은 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해. 미리 말은 해 뒀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
휴고가 불안한 표정으로 묻자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잘못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야. 너에게는 저 마나 수련법이 안 맞아.”
“네? 역시 제가 자격 미달로…….”
“그런 게 아니야. 말 그대로 안 맞는 것뿐이니까.”
휴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에단의 말은 사실이었다.
‘휴고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는 웨어울프와 인간의 혼혈이었다.
인간의 수련법을 사용 못 하는 건 아니다. 휴고의 동물적인 감각이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인족에게는 반인족에게 맞는 수련법이 존재했다.
굳이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어.’
휴고가 수인화가 되었을 때, 휴고의 신체 능력은 비단 근육의 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휴고는 체내의 마나를 사용했다. 휴고가 보여 주던 빠르고 폭발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근육의 탄성과 힘만으로는 보여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알겠습니다.”
휴고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에단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걱정 마. 조만간 제대로 설명해 줄 테니.”
아직은 이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싫어도 알게 될 사실이다.
재능은 휴고만 한 녀석이 없었다. 이미 휴고의 성장 속도는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잘 들어 둬. 쓸모는 있을 테니.”
마나 조작법과 수련법.
저 방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인간을 상대할 때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수인화할 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지.’
휴고에게 급한 건 마나가 아니었다.
에단이 휴고를 보내고 몸을 돌렸다.
에단의 앞에서는 네이드가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네이드.”
“네, 도련님.”
“믿는다.”
“……감사합니다.”
네이드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자 에단이 움직였다.
‘못 해 먹을 짓이군.’
오글거리는 짓은 적성에 안 맞았다.
* * *
‘이 정도였나?’
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블란테 가문이 자랑하는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직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 왔다.
그러며 재능만 가지고는 뛰어난 기사가 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독기가 필요해.’
기사는 검을 잘 휘두른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기본 소양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둘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가토는 전도유망한 수습 기사였고, 다른 한 명은 마구간 하인 출신이었다.
‘이 둘이 하인과 수습 기사였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어째서인지 휴고는 마나 수련을 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전투 센스와 눈썰미가 엄청났다.
가토는 훈련에 임하는 집중력과 눈썰미가 매우 좋았다.
‘체력은 어이가 없는 수준이군.’
마나를 수련함에 앞서 둘의 체력을 테스트해 보고, 탈진을 시켜 놔야 했기 때문에 일단 체력 단련을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 두 사람의 체력은 정말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아쉽구나.’
첸은 감정을 비치지 않기로 유명한 기사였다.
그런 첸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토와 휴고, 두 사람 모두 기사단에 입단했다면 빠르게 치고 올라올 재능이 엿보였다.
‘그만큼 도련님의 안목과 수련 방식이 좋다는 거겠지.’
아쉬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에단에게 감탄하게 되었다.
‘지금 해야 할 건 가문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도하는 것.’
첸의 눈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무랄 게 없어.’
끝도 없는 체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의지력.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둘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기까지면 충분하다.”
“네!”
“네!”
가토와 휴고가 우렁차게 대답하자, 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블란테 가문의 마나 수련법은 조금 특이하다. 다른 가문들처럼 정적이고 우아하지 않지. 우리는 투박하고 격렬하다. 하지만 그만큼 확실하지. 왜 블란테의 마나 수련법이 베일에 싸여 있고, 그만큼 수련하기 어려운 줄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첸의 물음에 가토와 휴고는 서로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정면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야. 내가 직접 수련을 지도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첸이 검을 뽑아 들었다.
가토와 휴고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첸은 둘의 표정을 보고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검을 들어라. 생에 두 번은 없을 기회일 테니.”
가토는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을 뽑았고, 휴고는 수련용 건틀렛을 착용했다.
‘무투인가.’
첸의 눈이 가늘어졌다.
휴고의 몸놀림을 보고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휴고의 탄력적인 움직임과 직관은 검술보다는 무투에 어울렸다.
‘도련님의 영향인가.’
일말의 걱정도 들었다. 블란테 가문은 힘이라는 가치를 최고로 치지만, 그 본질은 검술 명가였다.
“너는 그게 편한가?”
“아, 넵. 검을 쥐려고 했으나 도련님의 당부가 있으셔서…….”
“좋다. 검을 들지 않은 만큼 그만큼의 리스크와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첸은 검을 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일순간 첸의 기도가 바뀌었다. 마나를 이용해 위압감을 조성한 게 아니었다.
그저 둘을 압도하려고 마음먹은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 같아.’
휴고가 침을 삼켰다. 본능이 당장 몸을 돌려야 한다고 계속해서 경고했다.
긴장한 것은 가토도 다르지 않았다. 가토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블란테의 마나 수련법은 단순하다. 전투하며 성장하지.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번만 말할 테니 귀를 기울이도록.”
잠시 말을 멈춘 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전투에 집중해라. 전투 중에 내가 흘리는 마나를 의식하고 집중해라. 전투의 흐름대로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휴고 너는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나의 움직임을 느껴라. 그것만으로도 너는 성장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마음에 드는군. 그럼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