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교수의 정체 (2)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네이드의 목소리가 침중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평생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일이었다.
“뭐야. 찔러본 건데 진짜였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에단의 태도에 네이드의 눈썹이 휘었다.
“……진실을 말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이드의 무거운 태도에 에단이 풀썩 웃었다.
“진짜야. 스스로도 말했잖아. 검사가 아니라고. 애초에 그렇다고 다른 냉병기를 다루는 것 같지도 않고…… 뭐 짐작할 만한 것들이 추려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속을 모르겠고 음침하잖아. 그러니 어쌔신이라고 찔러본 거지.”
“……정말 그것뿐입니까?”
거듭되는 네이드의 추궁에 에단이 네이드를 응시했다.
“어. 그것뿐이야.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하지? 네이드는 지금 블란테의 가신 아닌가? 그거면 충분하지. 과거 따위는 신경 쓸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어.”
에단의 말에 네이드의 눈이 점차 커졌다.
이내 네이드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도련님은 달라지셨군.’
감회가 새로웠다. 묘한 감흥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 말이 맞습니다.”
네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평소와 같은 능글맞은 노신사의 얼굴이었다.
― 역시 걸음걸이가 일반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더니 어쌔신이었구나.
‘눈썰미가 좋군요.’
― 속에도 없는 말은 하지 말거라. 그나저나 어울리지도 않게 사람을 잘 다루는구나.
‘어울리고 말고가 있습니까? 그냥 하는 거죠.’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계획에 속도가 붙었다.
아카데미로 가기 전 적어도 네이드만큼은 자신의 패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신을 심어 줘야 했다. 하지만 결과로 증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네이드는 결국 블란테에 충성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래서 질문의 대답은?”
에단이 네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에밀라의 과거는 알고 있었다. 에밀라도 원작의 히로인 중 하나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은퇴한 지 꽤 오래되어서…… 하지만 짚이는 구석은 하나 있군요. 에밀라 씨가 임관하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어쌔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지?”
“새벽의 달.”
“새벽의 달?”
에단이 시치미를 떼며 묻자, 네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어쌔신이 있습니다. 거물급들만 노린 터라 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겼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무 도중 사망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신분 세탁을 했다는 거네.”
“그렇게 되는군요.”
“신기하군. 전직 어쌔신이 검술 교수라니.”
“도련님은 어떻게 눈치채고 있던 겁니까?”
“시험 도중 협박을 하더라고.”
“협박 말입니까?”
“어. 자기 어쌔신이라고, 끝나고 죽일 거라고 대놓고 말하던데?”
―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게 정말입니까?”
네이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관성 있게 유지하던 표정이 지워지고 살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왜 미리 말을 안 하신 거죠?”
에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재밌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네이드.”
“……네, 도련님.”
“나는 결과로 증명해. 봐봐. 이번에도 결국 이긴 건 나야.”
“이번에는 저도 그냥 넘어가긴 곤란합니다. 자칫하면 도련님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 네이드가 복수해 주겠지. 내 집사잖아. 아닌가?”
에단이 네이드를 응시했다. 네이드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네이드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제가 졌습니다.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요. 그래서 이 여자는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계획? 그건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 * *
에단이 네이드를 보냈다. 네이드는 극구 거절했지만, 에단의 의사가 워낙 완강했다.
그리고 첨언했다. 아카데미에 가는 데 있어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빈센트에게는 보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네이드는 여전히 난감한 의사를 비쳤지만, 에단의 거듭된 당부에 결국 마지못해 순응했다.
‘아, 다른 것보다 밧줄이나 가져다줘.’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시는 거죠?’
‘있어. 쓸데가.’
에단이 음흉하게 웃었다.
* * *
삶은 지옥이었다.
인생은 불우했다. 아니, 슬픔이라는 감정도 후에는 무뎌졌다.
기계로 살아갔다. 그저 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였다.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는 폐기되기 마련이었다.
임무를 행함에 있어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에밀라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일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감정도 죄책감도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는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구원받았다.
묶여 있던 쇠사슬을 끊어 주고, 감정을 다시 일깨워 준 사람이 있었다.
‘레벨린.’
그녀의 또래였지만 레벨린은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이었다. 여태껏 마주해 온, 욕망에 파묻힌 돼지가 아니었다.
레벨린은 목표와 신념이 있는 귀족이었다. 그녀는 에밀라를 구원해 줬으며 에밀라를 필요로 했다.
남들처럼 부속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에밀라 그 자체를 존중해 줬다.
그때부터 에밀라는 바뀌었다. 그 빛에 감화되었다.
과거를 탈피하고 에밀라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삶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과거에 비하면 천국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직 에밀라의 가슴속에는 귀족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혐오는 자신에 대한 혐오이기도 했다.
지웠음에도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혐오.
그러한 감정을 최대한 외면한 채, 에밀라는 임무를 수행하러 내려왔다.
또다시 귀족이 문제였다.
가문이라는 권력에 심취해 주제도 모르고 교수 자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이미 입학시험에서도 최악의 점수로 낙방했다고 들었다.
에단에 대해 나도는 말도 매우 저질스러웠다. 최악의 망나니이자 블란테의 수치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런 이가 교수 직위를 노리다니.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화가 났다. 그렇기에 에밀라는 직접 먼 거리까지 찾아 나섰다.
비록 죽일 수는 없을지언정, 주제 파악을 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패배를 맞이한 것은 그녀였다. 에단은 소문 따위의 망나니가 아니었다.
에단의 몸은 단련한 전사의 것이었지, 나태한 돼지가 아니었다.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에밀라는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에단은 에밀라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모든 심리 싸움에서 패배했다.
허를 찌르는 공격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뤄지는 변칙이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에단은 에밀라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의 편린을 알고 있었다.
알려져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그녀를 거둬 준 레벨린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에밀라는 마음먹었다.
에단을 죽이기로.
에밀라는 다시 그토록 혐오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이번 일만 처리하면 돼.’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감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벨린에게 먼저 보고 후, 에단의 뒤를 파헤치는 게 제대로 된 순서였다.
하지만 에밀라는 이미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토록 지우고 싶던 과거가 끄집어내진 이상, 그녀는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잃을 수는 없어.’
지금 이 삶을.
잃고 싶지가 않았다.
* * *
“야, 안 일어나?”
에단이 에밀라의 뺨을 툭툭 건드리자, 에밀라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에밀라가 힘겹게 눈을 뜨자, 에단이 웃었다.
“……!”
에밀라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에밀라의 몸은 그녀의 의사를 따라 주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조차 막혀 있었다.
에밀라가 당황하며 몸을 훑어보니, 자신의 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에밀라가 당황해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오히려 밧줄의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아, 마나를 쓸 생각은 하지 마. 그러면 바로 죽여 버릴 거니까.”
에단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에밀라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생각보다 성공적이네.”
에단이 쪼그려 앉아서 에밀라를 바라봤다.
이내 막아 놓은 입을 풀어 주자 에밀라가 곧장 입을 열었다.
“무슨 속셈이지?”
“왜? 무슨 속셈이 있을 것 같아?”
“시치미 떼지 마라. 뒤에는 누가 있는 거지? 설마 블란테 가문이 제대로 나선 건가?”
“하하, 설마하니 한물간 어쌔신 하나에 우리 가문이 그 정도로 신경을 쓸까? 그렇게 생각 안 해, 새벽의 달?”
에밀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에밀라는 몸을 비틀었다.
들켜서는 안 되는 과거이자 비밀이었다.
한데 에단은 확실히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에밀라가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운용하려는 순간.
퍼억!
에단의 발이 그녀의 명치에 꽂혔다.
“커헉!”
그녀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에단은 에밀라의 앞으로 다가가 다시 쪼그려 앉은 뒤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잡았다. 숙여진 고개가 들렸다.
에밀라의 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이쯤 되면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여자라고 약하게 때리거나 하진 않거든.”
에단은 살의라는 감정을 마주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하게 조소 지으며 말했다.
“두 번은 없어. 알겠지?”
에단이 에밀라의 눈을 바라봤다. 에밀라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체 뭘 원하는 거지?”
“하하하,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너는 너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 뭘 원하느냐고? 반대로 물을게.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
에단의 물음에 에밀라가 말을 잃었다. 정곡이었고, 그래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에밀라의 신분은 단순히 아카데미의 교수에 불과했다.
에밀라는 귀족도 아니었고, 상인도 아니었다.
권력도, 재력도 없었다.
모든 권력과 의사권은 레벨린에게서 나왔다.
“하나 더 물을게. 네 뒤에 뭐가 있지? 아니, 질문을 바꿀게.”
“…….”
“네 뒤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이야?”
이번에도 에밀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레벨린에 대해 뭐를 알고 있지?’
에밀라는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레벨린에게 매료되었을 뿐. 그녀에게 의심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에밀라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