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성능 확실하네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은 침묵했다. 에단이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자신의 생각보다 성능이 확실했다.
‘어떻게 하죠?’
―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그렇게 대놓고 드러내 놓고.
페온의 불퉁한 핀잔에 에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삐졌군.’
― ……안 삐졌다.
에단이 짧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연한 기회에 얻었습니다.”
“그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습니까.”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빈센트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다면 묻지 않겠다.”
‘사실인데.’
페온이 아니었으면 얻기 힘든 기연이었다. 원작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으니, 원래라면 절대 얻지 못할 물건이었을 테다.
‘성능도 만족스럽고.’
에단처럼 근접 전투를 즐기는 이에게, ‘타이탄의 장갑’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찾기 어려웠다.
마나를 두른 검도 이겨 내는 막강한 내구력이라니.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뜻밖의 수확이야.’
하지만 이를 무기고에서 얻었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괜히 빌미를 줄 필요는 없지.’
미소 짓고 있는 에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빈센트가 미간을 좁혔다.
“검을 쓰더구나.”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건 검술이라고 할 수 없다.”
“뭐, 검을 휘두르면 검술 아니겠습니까.”
“후…….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깨어났습니까?”
“아직이다. 듣기로는 아마 오늘 저녁쯤에는 눈을 뜰 것 같다고 하더군.”
“코는 멀쩡하답니까?”
꽤 피가 많이 튀던데.
에단이 중얼거리자 빈센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손속에 주의하도록.”
“형과 동생을 상대로는 그런 소리 없었는데, 여자라서 배려하시는 겁니까?”
“쓸데없는 잡음을 주의하라는 거다.”
“뭐, 조심하도록 하죠.”
답은 했지만 딱히 말을 따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단은 목숨을 위협받았다. 타인을 죽이려고 한다면 자신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에단이 거칠게 손을 쓴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애초에 에밀라가 흥분한 이유는 내 도발 때문이겠지만.’
에밀라에게는 숨기고자 하는 과거가 있었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었고, 에단은 그 부분을 건드렸다. 에밀라의 역린이었다.
‘그건 그거고.’
에단에게 도발은 일상이었다. 고작 한마디의 도발 때문에 평정을 잃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역량 부족이었다.
그것까지 배려해 줄 이유는 없었다.
“갑자기 신경을 많이 쓰시는군요.”
“……가문에 누가 되지 말라는 거다.”
“하하, 조심하겠습니다.”
‘속이 보이는군.’
빈센트가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문 승계 때문인가.’
빈센트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룬은 가주의 그릇이 되지 못한다.
모룬 본인의 무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뿐이다.
심약한 마음과 감정적인 성향.
모두 가주와는 걸맞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명분은 모룬에게 있었다.
이전까지는 가문의 장자이자, 적통 중에서는 가장 강했으니.
하지만 에단의 입지가 커진 뒤로는 판도가 바뀌었다.
에단의 지지 세력이 생겨난 것이다.
모룬을 지지하던 자들도 그가 가주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가장 큰 명분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력마저도 뒤처진다는 사실이 결투를 통해 증명됐으니, 모룬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가문의 아귀다툼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에단은 지금 한시가 급했다. 아카데미로 가기를 결심한 이상,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야. 녀석을 앞지를 수 있으니.’
원작 소설은 주인공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모든 사건은 주인공 위주로 형성되며 행보마다 기연이 쏟아진다.
그 기연이 사사로운 것이든, 혹은 천재일우의 기연이든.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이용해 사전에 기연을 강탈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조건이 너무 많이 붙었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이미 에단은 아카데미에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깨어나면 말씀해 주시죠.”
“또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이냐?”
“하하, 그럴 리가요. 이제 직장 동료가 될 사이인데 풀 건 풀어야죠.”
“허.”
빈센트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얼굴을 그렇게 박살을 내 놓고 감정을 풀겠다니.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에단이 가볍게 목례하고 영주실을 나오자, 밖에 첸과 네이드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며 에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돌아가자.”
에단은 별채로 향했다.
* * *
“……후우!”
가토가 검을 휘두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가토는 혹독할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다.
휴고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의 훈련량은 평소에도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야?”
“……그걸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도련님? 도련님은 언제나 괴물 같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
“하아…… 그런 수준이 아니야. 이번엔 상대가 달랐어. 아카데미에서 온 교수는 마스터를 바라보는 실력자였다고.”
“그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야?”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라는 존재가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지만, 아직 쉽게 실감이 들지 않았다.
“어. 블란테 내에서도 마스터는 둘뿐이야.”
공식적으로는.
가토가 혼자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토는 네이드를 떠올렸다. 네이드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집사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구나.”
“도련님이 제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그 정도의 성장 속도는 말이 안 돼.”
가토가 휴고를 응시했다. 가토의 시점으로는 휴고도 괴물 같았다.
휴고는 분명 얼마 전까지 마구간을 치우는 하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휴고는 수습 기사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단 몇 개월 만에 일궈 낼 수 있는 성장이 아니었다.
블란테의 기사단에 입단하는 건 어려웠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혹독한 시험을 거치고 나서야 간신히 수습 기사의 자격을 얻는다.
자격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매일같이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 내야만 방출당하지 않았다.
그런 어린 괴물들을 단 수개월 만에 뛰어넘었다.
‘물론 도련님의 훈련이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에단이 제시한 훈련은 그간 쌓아 온 상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체력과 정신력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에단의 훈련은 단 한 시간도 견뎌 내기 버거웠다.
‘그만큼 효과도 확실했고.’
성장 속도가 체감됐다. 체력, 근력, 순발력 모든 게 한 단계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휴고의 성장은 이해가 불가능했다.
에단과 휴고, 둘을 바라볼 때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저 멀리 앞서 나가는 둘을 보면 목표가 희미해졌다.
거기까지 생각한 가토가 검을 으스러질 것처럼 쥐었다.
가토는 휴고가 이해되지 않았다. 휴고에게는 치열함이 엿보이지 않았다.
저런 마음가짐을 가졌음에도 저런 성과를 보이다니…….
‘도련님도 다르지 않았지.’
에단이 야밤중에 가토를 호출해 같이 검을 수련했을 때.
가토는 큰 충격을 느꼈다.
에단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경험이 부족했을 뿐.
가토는 그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기본부터 에단을 지도했다.
감히 자신의 실력으로 에단을 지도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에단은 충실하게 가토의 지도에 따랐다.
애초 가토는 크게 알려 준 것이 없었다.
검을 쥐는 법, 발의 움직임, 시선, 휘두르는 방법.
이게 전부였다.
에단은 그 모든 걸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심지어…… 대련도 패했지.’
에단의 주특기는 맨몸 박투였다. 그간 에단이 싸워 온 것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단은 검만으로 가토를 압도했다.
기교를 부린 것도, 변칙을 섞은 것도 아니었다.
단순한 기본기 하나만으로 가토는 제대로 된 역량을 끌어올리지도 못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어.’
모든 타이밍을 뺏기고, 흐름이 끊기며,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했다.
실전이었다면 수도 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패배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카데미 교수와의 결투를 지켜보며 자신이 당시에 어떻게 패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투의 이해도가 달라.’
에단은 검술이 아닌 전투에서 자신을 압도했다.
그에게 있어 검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재능이 없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루도 정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대련 한번 하자.”
가토가 휴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휴고는 난처하다는 얼굴을 지었지만, 가토의 진지한 얼굴을 보자 차마 거절의 의사는 내보일 수 없었다.
* * *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검술 실력이 꽤나 느셨군요.”
“스승이 좋았거든. 누구랑은 다르게.”
지칭하는 대상을 눈치챘는지 네이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쉽게도 검술은 제 특기가 아니라서요.”
“알고 있어. 너는 검사가 아니잖아.”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면 머저리지.”
“후……. 말로는 못 당하겠군요. 그런데 그 왼손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에단이 피식 웃으며 왼손을 흔들었다. 오늘 이 왼손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런 게 있어.”
에단이 두루뭉술 넘어가자 네이드가 이마를 찌푸렸다.
“……놀라웠습니다. 도련님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더군요.”
“칭찬으로 들을게. 뭐야, 쟤네 또 저래?”
에단이 가토와 휴고의 대련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럴 수가 없겠죠.”
그런 전투를 봤는데, 피가 끓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네이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바라봤다.
에단은 피식 웃으며 연무장을 지나쳤다.
“식사 안 하십니까?”
“어. 오늘은 안 해. 네이드도 그냥 쉬어. 오늘은 따로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그럼 알겠습니다.”
네이드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에단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아마 오겠지.’
에밀라는 찾아올 것이다. 그녀의 성격상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위험의 싹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까.’
기사의 성향은 아니었다. 기사는 명예를 중시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존재였으니까.
에밀라의 본질은 기사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기사 작위를 수여받지 않은 정식 기사가 아니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에단은 책 속에 에밀라를 떠올렸다. 초반 주인공의 성장을 책임져 줄 선생이며, 동료이던 그녀의 과거는 깨끗하고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대다수는 에밀라를 명예로운 검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인식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비수.
암살자.
거칠고 사납기로 유명한 용병들도 혐오하는 것이 바로 어쌔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질이었고, 어쌔신은 자고로 위협의 싹은 사전에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이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어쌔신의 본능이이니까.’
에단은 달빛을 바라보며 차분히 에밀라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