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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8화 (38/398)

◈ [38화] 아카데미 측의 시험 (1)

터벅 터벅.

에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보는 눈이 많았다. 이번에는 야외 연무장에서 시험이 진행되었다.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시험이라.’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는 직접 아카데미까지 찾아가 망신을 당했지만,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었다.

감정이 고조됐다.

링이나 옥타곤에 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싸우기 직전에 느껴지는 감각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단이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시선이 보였다.

어제 에단을 도운 가토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에단을 바라봤고, 인파 사이에는 카론과 모룬도 보였다.

‘속 보이기는.’

한쪽 팔과 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룬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누구보다 에단이 꼴사납게 패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자기만 손해일 텐데.’

가문의 위세만 떨어진다.

블란테의 영지에서 블란테가 패배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질 생각도 없지만.’

에단이 목을 풀었다. 목에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당신이 에단이군요.”

터진 길 사이로 에밀라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과 얼음을 연상케 하는 수려한 외모가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는 자들도 있었다.

‘역시 쟤가 나왔네.’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검술을 가르치는, 즉 실질적으로 전투에 조예가 깊은 교수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아카데미 측에서 올 수 있는 교수를 예상하여 특정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내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나 보군.’

에밀라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감정이 없어서 저런 눈빛을 내뱉는 게 아니었다.

그저 분노의 표출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네. 제가 에단입니다. 이제 직장 동료가 될 사이인가요?”

“……듣던 대로 자유분방한 입을 가지고 계시군요. 어디서 나오는 오만함이죠?”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오만이 아니라 자신이라고도 부르죠.”

“하, 말은 잘하는군요. 이전에 아카데미에서 무참하게 당했다고 하던데, 그건 기억 못 하나 보죠?”

에밀라의 귀여운 도발에 에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에단이 한 손으로 귀를 후볐다.

“글쎄요. 제가 과거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에단의 태도에 에밀라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과거를 부정하는 겁니까? 그 태도가 과연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에밀라 님은 과거를 잊지 않는 편인가요?”

“……무슨 의미죠?”

“별 의미 없습니다.”

날 선 대화가 오가고 있는 와중에 첸이 다가왔다. 첸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좋군.’

아카데미를 낮게 여기는 것은 첸도 다르지 않았다. 아카데미라는 집단에 안 좋은 인식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생각을 달리해야겠어.’

첸이 에밀라를 바라봤다.

단련된 몸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성이었지만, 옷 사이로 단련된 근육이 느껴졌다.

발걸음, 호흡, 눈빛, 기도.

모든 것들이 에밀라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첸은 묘한 호승심이 일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할 줄은 알았다.

‘결과가 기대되는군.’

에밀라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에밀라는 결코 모룬 따위와 비교될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에단은 모룬을 완전히 압도했다. 모룬과의 대결에서 보여 준 것이 전부였다면, 에단이 불리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승부의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생각을 마친 첸이 두 명에게 시선을 던졌다.

“준비되셨습니까?”

에밀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에단도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며 의사를 대신했다.

이윽고 첸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 결투가 공정할 것을, 블란테의 기사 첸이 보증한다. 모두 각각의 명예의 먹칠하지 않게끔 결투에 임하도록.”

첸의 검이 떨어졌다.

시험의 시작이라 생각했지만, 첸은 결투를 보증했다. 여기에는 첸과 빈센트의 의도가 묻어 있었다.

‘결투라.’

에밀라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분명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서릿발보다도 차갑다.

‘후회하게 해 주지.’

가볍게 코를 눌러 주고 갈 생각이었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켜 괜히 빈센트 가문에 감정을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먼저 시작한 건 이 녀석이니까.’

모든 것은 소문이었다. 누구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검증되지 않는 내용들.

확인된 사실은, 에단이 아카데미 시험에 응시했고, 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처참한 성적으로.

에밀라가 검을 뽑았다. 검신이 얇은 아름다운 검이었다.

에밀라가 검을 뽑자 에단도 검을 뽑았다. 두껍고, 투박한 검이었다.

에밀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에밀라 정도 되는 경지의 검사는 검의 외관만 봐도 검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관리가 안 된 검.’

수준 낮은 검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코 좋다고 할 수 있는 검도 아니었다.

유추하자면 수련용 철검. 그것도 관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빠득.

에밀라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반면 에단은 허공에 검을 휘두르면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또 그 짓을 하려고.’

에단의 검을 의식하던 카론과 모룬이 인상을 찌푸렸다.

에단은 언제나 검을 쓰는 척하면서 검을 미끼로 사용해 왔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변수에, 자신들은 언제나 첫수를 내어 주고는 했다.

‘이번에도 같은 수법인가?’

하지만 에단은 검을 내던지지 않았다.

“먼저 안 와?”

에단의 가벼운 언행에 에밀라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매가 약일 수도 있겠지.”

에밀라가 가볍게 튀어나왔다. 가볍고도 빠른 움직임이었는데, 마치 유연한 동물을 보는 것 같았다. 에단이 에밀라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소설에 서술된 내용으로 미리 알고는 있었다. 외관만 봐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저 검은 베기 위한 검이 아니다. 약점을 노리고 찌르기 위한 검.

그렇다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이유는 뭘까.

쐐액!

에밀라의 검이 에단의 미간을 노렸다. 에단이 고개를 젖혀 피해 냈다.

“무서운데.”

빠른 일격에 에단이 휘파람을 내뱉었다. 어깨의 움직임으로 공격 방향을 예측하지 않았다면 피해 내기 어려웠으리라.

살의가 담긴 일격은 아니었지만, 피해 내지 못한다면 목숨을 잃을 위력이었다.

‘피했어.’

에밀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죽일 작정은 아니었지만 가벼운 상처 정도는 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대수롭지 않게 피해 냈다.

‘언제까지 여유를 부리는지 지켜봐 주마!’

에밀라의 눈이 변했다. 기를 죽여 놓고 시작하려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초장부터 제대로 갈 생각이었다.

에밀라가 다시 공세를 가져가려던 순간, 그 흐름을 끊은 것은 에단이었다.

부웅!

몽둥이가 날아오는 듯한 소리가 에단의 검에서 들려왔다.

‘피할까? 아니야.’

에밀라는 경지에 이른 검사다. 에단이 휘두르는 검격 깊지 않다는 것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런 검을 중간에 파훼시키는 것은 에밀라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심을 끊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에단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답했다.

“얼씨구, 자신 있어?”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에밀라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수를 돌리기에는 늦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친다.

에밀라의 검신은 가늘었다. 그러나 질 좋은 명검이다. 부러지지도 않을뿐더러, 부러지게끔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밀라는 순간 검이 부러진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무슨…… 힘이……!’

콰드드득!

에단의 근육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와 동시에 에밀라가 쥔 검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위태로운 대치 상황에서 에단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에단은 검술의 대가가 아니었다. 그쯤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에단은 격투가로서는 완성되었지만, 검사로서는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단에게도 자신 있는 것이 있었다.

큰 기술을 요하지 않는 기본 검술.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사선 베기.

모든 검술과 검법의 근간이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폭, 타이밍, 힘을 주는 방향성.

이 모든 것이 에단의 주특기였으니까.

매끄러운 연계? 상대의 흐름을 끊는 수 싸움?

에단에게는 사치였다.

“후읍!”

에단은 호흡을 삼켰다.

앞발을 내디뎠다. 발을 지면에 못 박아 놓고 검을 휘둘렀다.

군더더기 없는 검일 뿐, 어느 곳에도 화려함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거면 족하다.

서걱!

에밀라는 에단의 검을 피해 냈다. 본능적으로 저 검과 부딪치는 순간 좋지 않은 꼴을 보이게 되리란 걸 느꼈다.

“잘 선택했어.”

에단이 웃었다. 에밀라는 섬뜩함을 느끼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에단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에단의 검이 연계되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연계는 아니었다. 연계는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매우 빨랐으며, 무거웠고, 강했다.

마치 폭풍과 같은 검이었다. 에단은 체력에 한계가 없는 것 같이 검을 휘둘렀다. 에밀라는 거리를 벌리고 싶었지만, 에단을 떨치기란 쉽지가 않았다.

‘무슨 속도가……!’

흐름을 끊어야 했다.

방금의 경험으로 느꼈다. 검끼리의 힘 싸움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이야!’

힘만으로는 검이라는 도구를 정복하지 못한다. 검사(劍士)는 역사(力士)가 아니었다.

‘지금!’

에밀라는 연계가 부자연스러운 순간을 노리고 회심의 일격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에단이 미소 지었다.

‘걸렸네.’

에단은 검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아직 검을 다루는 것에는 초심자나 다름없었다.

기교나 깊이 면에서는 에밀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에단이 ‘싸움’이라는 행위에서도 초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에단은 누구보다 베테랑이었다.

류태신은 무적이자 무패의 챔피언이었으니까.

미끼를 던지고, 그것을 낚아채는 것은 선수 시절 류태신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에밀라의 검이 에단을 향해 찔러 오는 순간, 에단의 몸이 빙그르 회전했다.

에단의 다리가 에밀라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느낌 좋고.”

제대로 들어간 뒤차기.

뒤차기는 모든 킥 공격을 통틀어도 위력 면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런 위력의 공격을 에단이 사용했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장 내장이 파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나로 보호하지 않았으면 죽을 뻔했어.’

에단이 몸을 트는 순간 복부를 마나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내장이 터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심지어 막았음에도 에밀라는 순간 배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에밀라가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자, 에단이 발을 멈췄다.

에단의 호흡은 평온했다.

반면 에밀라의 얼굴은 벌써부터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할까.’

이렇게 서로 수 싸움을 하면서 겨루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로가 동등한 조건일 때에만 해당되었다.

에단과 에밀라는 전제 조건이 달랐다.

에밀라는 숙련된 마나 유저였고, 에단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심자였다.

그런데 에단에게 있어 이 대결은 패배해서는 안 되는 대결이었다. 더군다나 에단은 패배를 매우 싫어했다.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에단이 씨익 웃으며 에밀라를 바라봤다. 에밀라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아하니 지금이 적기인 것 같았다.

에밀라를 흔들어 줄 적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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