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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6화 (36/398)

◈ [36화] 첫 번째 기연 (1)

에단이 블란테 가문의 무기고 안에서 나왔다.

무기고 밖에서는 아직 빈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단을 응시하는 빈센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어떤 무기를 가져온 거지?”

에단은 목에 걸린 목걸이를 흔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빈센트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맴돌았다.

“……고작 그딴 걸 가져왔다는 말이더냐?”

황당함과 함께 노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블란테 가문의 무기고에는 보물과도 같은 진귀한 무기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중에는 밖으로 유출됐을 때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것들도 있었다.

검을 다루는 자에게는 꿈과도 같은 기회를, 고작 저런 볼품없는 목걸이 하나랑 뒤바꾸다니.

‘정녕 검의 길을 갈 생각이 없는 거냐.’

빈센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에단이 고의적으로 아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게 마음에 듭니다.”

에단의 입가는 만족스럽게 휘어졌다. 이 목걸이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그 진면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괜히 주인공이 가져간 아이템이 아니지.’

성능 자체도 뛰어났지만, 이 목걸이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열쇠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빈센트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단은 빈센트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했다.

* * *

“으아아아악!”

모룬이 괴성을 질렀다. 모룬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팔과 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언뜻 봐도 중상자의 모습이었다. 모룬은 자신이 겪은 치욕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그따위 머저리 녀석한테 지다니.’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켜 에단을 찾아가 죽여 버리고 싶었다.

과거였다면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을 테지만.

‘……제기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부상과는 별개였다. 몸의 상처야 회복하면 그만이었다. 부러진 뼈는 붙으면 더 단단해진다.

블란테의 육신은 질기고 단단했다. 마치 담금질을 하고, 망치질을 한 것처럼 더욱 강인해졌다.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모룬의 머리에는 회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새겨졌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에단을 찾아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에단의 얼굴을 떠올리면 몸이 벌벌 떨렸다.

‘블란테의 장자이자, 장차 가주가 될 내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모룬은 자신의 뺨을 쳤다.

금 간 목과 허리가 비명을 질러 댔다. 아찔한 통증이 이 상황이 지독한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으아아아악!”

지금 모룬이 할 수 있는 것은 괴성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 * *

“……제기랄.”

카론의 상태도 모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을 잘못 선택했어.’

카론은 가문의 막내였다.

일반적으로 막내에게는 주어진 선택지가 적었다. 가문을 수호하는 기사가 되든가, 아니면 자기 길을 개척하거나.

가문 내에서 입지를 키우려면 형제를 짓눌러야만 했다.

다행히도 블란테 가문은 약육강식이었다. 태어난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카론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있었다.

가문의 수치라고 불리는 에단 블란테.

블란테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 검을 두려워하는 불량품.

에단을 짓밟으면서 카론은 자신의 입지와 자존감을 키워 나갔다.

모룬과 리사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다. 카론은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었다.

그 둘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달랐다.

‘그런데 어째서.’

에단이 뒤룩뒤룩한 지방 덩어리를 제거하고 나타났을 때.

그때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어야 했다.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무난하게 지나갔을 일이었다.

“제기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카론은 이미 완전히 에단에게 짓밟혔다. 반박의 여지도 없는 완패였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설마 모룬 형님도 패배할 줄이야…….”

유일한 희망이던 모룬도 에단에게 별다른 수도 써 보지 못하고 패배했다.

카론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길을 잘못 선택해도 한참 잘못 선택했다.

이제는 체념하고 에단 앞에서 기어야 할 때였다.

카론의 마음속에서 에단에 대한 공포심이 싹텄다.

* * *

에단은 연무장에서 가볍게 뛰며 몸을 풀고 있었다.

빈센트의 복잡한 눈빛에도 에단은 별다른 사족을 달지 않았다.

‘애초에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에단이 알고 있는 정보는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다.

에단이 할 일은 그저 결과로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불안감 대신 기대감이 든다. 에단은 이런 감각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에단이 천천히 속도를 올려 가며 뛰고 있을 때, 말없이 바라보던 페온이 물었다.

― 한 가지 물으마.

“말씀하시죠.”

호흡을 유지하며 달리던 에단이 답했다.

― 왜 굳이 박투를 고집하는 거지? 그 길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페온의 질문에 에단이 대뜸 발을 멈췄다.

에단이 미묘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제가 맨몸 격투를 고집한다고요?”

― ……아니었나?

페온의 물음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전혀요. 저는 맨몸 격투를 고집할 생각이 없습니다.”

에단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다. 에단이 단검을 가볍게 던져 역수로 잡았다.

“그래도 되는 상대이기에 그런 것뿐이죠.”

숙련도가 부족한 것은 알고 있었다.

에단은 류태신이었던 격투기 선수 시절, 평생을 격투에 매진했다.

다양한 역사를 자랑하는 무술의 집합체가 종합 격투기였다.

각국 굴지의 괴물들 사이에서 류태신은 무패를 유지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대응도 류태신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 어떤 전략도 류태신 앞에서는 간단히 파훼되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니 열의는 식어 갔다.

격투에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수련해 왔고, 밟아 온 길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에단에게 있어 격투는 수단이었다.

에단은 가볍게 단검을 몇 차례 휘둘렀다.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의 단검술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공격이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검술은 필요하지도 않았고, 아직 익숙하지도 않고.”

에단이 씨익 웃었다.

― ……정말 재수 없는 놈이구나.

페온이 배신당한 것 같은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자신과 같이 주먹만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에단은 페온의 생각과 달랐다.

‘어쩌면 그게 맞는지도.’

한 번 걸어 본 길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신념은 고집이 되고, 고집은 아집이 된다.

아집을 가지게 되면 성장은 정체된다.

에단은 탐욕적이었다. 그게 뭐가 됐든 모든 것을 탐하려고 했다.

‘그 욕심에 매몰당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써는 에단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 오만함도 실력 있는 자가 가지면 자신감이 되지…… 좋다. 슬슬 때가 되었으니 내가 가진 ‘격투’를 전수해 주마.

페온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단이 눈을 끔뻑거리며 페온을 바라봤다.

“그거 꼭 전수받아야 합니까?”

에단의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뚝뚝 묻어 나왔다.

결국 참다못한 페온이 역정을 냈다.

― 그냥 받아!

* * *

“여기가 블란테의 영지인가?”

말에서 내린 에밀라의 얼굴에는 서늘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말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에밀라의 옷에도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헨리가 헐레벌떡 뛰어오자 에밀라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생겨났다.

“당신이 헨리인가요?”

에밀라의 눈빛에서 추궁의 기색을 읽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에밀라 씨.”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검술 교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에밀라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까칠한 태도에 헨리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감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건의 원흉은 헨리 자신이었으니.

“블란테의 영지에 게이트가 없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없을 줄이야…….”

어느 정도 크기의 영지에는 대부분 게이트가 보급되어 있었다.

물론 서민이 사용하기에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자랑했지만, 그만큼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낙후된 곳이군요.”

“헤헤, 그래도 산골짜기에 있어서 그런지 공기는 좋습…….”

눈치 없이 말을 내뱉던 헨리가 에밀라의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일정은 언제죠?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군요.”

“모, 모레입니다. 예정보다 일찍 오시는 바람에…… 하하.”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숙소라도 안내해 주세요. 짐을 풀어야겠습니다.”

“넵, 제가 머물던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헨리는 에밀라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아주 상전이 따로 없군. 입사일로 따지면 나보다 후배인 주제에.’

하지만 그 말을 밖으로 내뱉을 강단은 없었다.

에밀라는 아카데미에서도 뛰어나기로 유명한 검술 교수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빼어난 외모와 실력 덕분에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얼마나 큰 인기를 얻고 있냐면, 까칠한 성격도 단점이 아닌 매력 포인트라고 불리는 지경이었다.

‘변두리에 처박혀 있는 나랑은 차원이 다르구만.’

헨리는 속이 쓰렸다.

* * *

― 주먹과 발을 쓰는 격투술이 냉병기보다 앞서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렇군요.”

― 꼭 그따위 반응을 해야겠느냐?

“뭐가 잘못됐습니까?”

― 하…… 됐다. 계속 진행하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있느냐? 검을 자신의 몸처럼 여겨라.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군요.”

무협지에서.

페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검은 아무리 잘 다뤄도 도구에 불과하다.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의 몸처럼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 점에서 우리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페온이 마나를 끌어 올리자, 손에 마나가 차올랐다.

― 검에 마나를 실을 줄 아는 마나 유저는 극히 적다. 마스터를 목전에 둔 자들이나 간신히 시전할 수 있는 경지지. 설사 시전하더라도 그 효율은 매우 나쁘지.

페온이 주먹을 뻗었다. 반투명한 몸으로 펼치는 단순한 주먹질이었지만, 그 기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육체만을 극한으로 단련하는 무투가들은 누구나 마나를 몸에 실을 수가 있지. 마나를 전달하고 이동하는 속도, 효율, 반응. 모든 게 검이나 창과는 차원이 달라. 지금부터 그 운용법에 대해 알려 주겠다. 원래라면…… 내가 수련해 온 격투술을 알려 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

에단의 기술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

페온은 여기서 에단에게 무언가를 전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평생을 격투만 수련한 페온도 에단의 끝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쉽구나, 아쉬워.’

만일 살아서 만났다면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웠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념에 젖을 시간이 아니었다. 에단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페온을 바라봤다.

“시작 안 합니까?”

페온은 순수해 보이는 시선 속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탐욕이었다.

성장에 대한 게걸스러운 탐욕. 페온도 강함에 미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감정이라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탐욕스러운 후손에게 밑천이 모두 털릴 것 같은, 그런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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