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질투의 대가
두려움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공포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이자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그 대상에 대해 알 수 없을 때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모룬은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망나니 에단은 약자였고, 이번 기회에 건방진 동생을 혼내 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다리가 굳어졌다.
머리로는 부정했지만, 본능이 말했다.
몸을 돌려.
도망쳐.
이런 감각은 생소했다.
모룬은 강했다. 태생적으로 강건했고, 어려서부터 검을 쥐었다.
하늘이 놀랄 기재까지는 아니었지만, 검을 곧잘 다뤘으며, 블란테의 피를 이은 자답게 뼈와 근육이 질겼다.
덕분에 남들보다 강했고, 남들처럼 다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그에게 아주 생소했다.
문제는 그 생소한 감정을 가주인 빈센트도 아닌, 에단에게서 느끼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모룬은 그 감정을 외면했다.
― ……뜻밖의 수확이군.
페온은 침음을 내뱉었다.
에단은 지금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아니, 살기라고 칭하기에는 애매한 기백이었다.
에단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블랙 오우거의 힘을 흡수하면서 뜻밖의 것까지 따라온 모양이었다.
피어.
한 구역을 호령하는 급의 몬스터만 내뿜는 기운.
피어를 이겨 내는 정신력을 가진 전사는 드물다.
― 이놈이 특출 난 거지.
담이 크다고 치부하기에는 에단이 보여 준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마나를 갓 다루기 시작한 녀석이 블랙 오우거 앞에서 건방을 떨었으니까.
― 원래는 저게 정상이지.
모룬이 애써 공포라는 감정을 떨쳐 내고 뛰어들었지만, 페온은 알 수 있었다.
발이 굳어 있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경지에 이른 자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공포를 떨쳐 내기 위해서 휘두르는 검 따위는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위력이 강하다고 한들 맞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휘두르는 검.
에단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검이 기세 좋게 떨어져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쳐 갔다.
빠른 검의 움직임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첸은 알 수 있었다.
‘감탄하긴. 그보다…… 에단 도련님의 기세가 심상치 않군.’
에단은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전진했다.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지는 몸의 중심이 되는 다리다.
오블리크 킥.
일명 악마의 발차기.
‘제대로 걸리면 선수 생명이 끝나거든.’
상대의 무릎을 짓눌러, 무릎 관절을 어긋나게 하는 킥 공격이었다.
말이 많은 기술이기도 했다.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치명적인 부상을 초래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싸커 킥, 스탬프 킥, 로우 블로, 써밍, 버팅 등 위험도가 높은 반칙성 공격들과 비교해도 오블리크 킥은 별달리 뒤지지 않는다.
에단이 몸을 슬쩍 낮춰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치 벌레를 밟아 죽이려는 것처럼 발을 들었다. 하지만 에단이 노리는 것은 벌레가 아닌 모룬의 무릎 관절이었다.
‘헛수고다!’
꽤나 날카롭게 들어오는 발이었지만, 모룬은 에단의 공격을 무시했다.
몸의 내구성을 자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책이었다.
콰직!
마나가 실린 에단의 발이 모룬의 무릎을 짓밟았다.
앞으로 체중이 쏠려 있던 모룬은 당연히 대응하지 못했다.
“크악!”
무릎이 어긋나며 모룬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승부가 났군.’
첸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에단의 몸놀림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대치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에단이 최근에 보인 성과들은 모룬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났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에단이 블랙 오우거를 무참히 죽였고, 뒤이어 모룬과 승부를 벌인다니…….
그런데 에단의 움직임에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에 걸맞은 숙련도를 겸비하고 있었다.
저러한 공격은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공격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잔혹한지.
첸은 헛웃음을 흘렸다.
‘검만 안 들었을 뿐이지 완벽하군.’
한편 모룬은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는 검을 가볍게 피해 낸 에단이 모룬의 팔을 붙잡고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이게 감히!’
모룬은 이를 악물었다.
생소한 기술이라 대응이 늦은 데다가, 몸의 내구성을 과신한 실책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모룬은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긋난 무릎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질긴 근육과 인대가 버티고 있었다.
모룬은 우악스러운 덩치답게 힘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비열한 짓밖에 못 하는 녀석이!’
모룬이 팔에 힘을 줬다. 목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이대로 집어던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단의 입가가 비틀렸다.
모룬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에단이 말했다.
“뭐 하냐?”
에단이 웃었다.
모룬은 에단의 웃음을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불안감이 치솟았다.
“뭘 하려…… 끄아악!”
모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에단이 겨드랑이 사이에 있는 모룬의 팔을 꺾었기 때문이다.
‘힘을 주는 방식이 무식하잖아.’
애초에 이제 에단은 근력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모룬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딜 자꾸 가.”
에단이 모룬의 멱살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모룬이 마치 목줄 잡힌 개처럼 끌려왔다.
감정이 실려 있는 무식한 손속이었다.
‘어떻게 해 줄까.’
에단의 머릿속에 다양한 마무리가 떠올랐다. 이미 상대는 전의를 잃었다.
가능하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에단은 모룬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자, 잠깐…….”
모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얼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함이 강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치욕과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전의는 이미 꺾인 지 오래였다.
한 번 부러진 전의는 다시 붙지 않는다.
“잠깐은 없지.”
인생은 실전이야.
에단의 허리가 휘었다. 모룬의 육중한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리고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혔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단단한 목재판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의 지면이 우지끈 부서졌다.
모룬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수플렉스.’
제법 만족스러웠다.
기술의 화려함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합을 맞추는 프로레슬링이 아닌 이상 실전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에단이 상쾌하게 웃었다.
* * *
‘…….’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이후 언제나 평정을 잃지 않았던 첸이 말을 잃었다.
에단의 승리를 점치는 자들은 드물었지만, 블랙 오우거의 사체를 직접 목도한 뒤로는 생각을 달리했다.
저 참상을 직접 만들었다면, 에단이 승리하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승리’라는 단어에 국한해서였다.
첸은 블란테 가문의 기사단장이자 수호기사였다.
에단을 알고 있고, 모룬을 알고 있었다.
에단이 갑자기 재능을 개화한 것인지, 아니면 노리는 것이 있어 힘을 숨겨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간 에단의 행동은 막무가내였고, 달라진 이후로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줬다.
반면 모룬은 부족한 점이 보이기는 했지만, 가문의 적통으로서 충실한 성장세를 보여 왔다.
아직 어린 데다가 주위 또래와 비교해 본다면 모룬은 수위에 들 정도의 강자였다.
‘단지 그 기준이 블란테에 맞춰져 있을 뿐.’
블란테 가문.
수많은 마스터를 배출해 내며, 가주의 옥좌 역시 마스터의 벽을 부순 자들만이 올라섰다.
모룬은 분명 마스터에 오를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블란테의 적통이라면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자질일 뿐이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재능은 블란테에서 흔해 빠진 것이었으니까.
지금껏 모룬이 가문 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던 건 그를 뛰어넘는 혈통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란테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첸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결투를 보고 확신했다.
‘폭풍이 일어난다.’
작은 파란으로 여겼지만, 착각이었다.
파란 정도가 아니다.
가문의 망나니로만 여기던 문제아가 사건을 일으켰다.
그것도 가문의 구도를 바꿀 만한 대사건을.
‘나이 먹고 주책이군.’
평정을 유지하던 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단의 몸놀림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직 경지가 낮았다.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노련함을 가지고 있었다.
수없이 사선을 넘어온 첸은 그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완성되었을 때 그 경지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검을 뽑고 싶군.’
기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검사이자 전사로서 한번쯤 에단과 공방을 나누고 싶었다.
검을 든 자가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투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무기의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 검은 창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스터의 벽을 넘은 자들 중에는 검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유로움.’
갇힌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심상을 구축하고 무리를 완성하는 것에 있어서는, 검이 창보다도 훨씬 위에 있었다.
‘도련님을 보니 느껴지는군.’
벌써부터 미래를 점치기에는 섣부르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첸은 앞으로의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마스터의 경지.’
에단은 그 경지를 깰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첸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보였다.
반면 옆에 있던 네이드는 눈살을 좁혔다.
‘성장했군.’
에단이 바뀐 것은 알고 있었다.
육체와 전투 감각, 그리고 노련한 테크닉 모두 네이드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중 특히 블랙 오우거를 무참히 박살 냈을 때는 경악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나라니…….’
에단은 분명 마나를 수련하지 않았다. 블란테 가문의 마나 수련법은 그 어떤 마나 수련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네이드는 블란테 가문의 수련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그것을 판별할 안목은 있었다.
그렇기에 에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나는 어릴 때부터 수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감응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단순한 망나니로 여겼을 때는 혀를 차며 한심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만, 에단이 변화를 겪게 된 이후로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블랙 오우거를 처치할 때 에단이 보여 준 마나의 운용 방식은 매우 정밀하고 세련됐다.
마나를 다룸에 있어 정상의 경지까지 올라간 마스터의 시선으로 본 장면이었다.
‘경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네이드는 물을 수 없었다.
사실상 의미는 퇴색됐지만, 네이드는 표면상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에단과 같이 수련하던 수습 기사들은 네이드의 정체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수습 기사에 불과한 그들의 발언권은 가문 내에서 극히 미미했다.
‘블란테 가문의 본질은 무력이다.’
제국법에 저촉될 만큼 사특한 방법으로 습득한 힘이 아니라면, 에단이 어떠한 방식으로 강해지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블란테 가문은 힘을 숭상한다.
그간은 모룬이 가문의 적통 중에 가장 높은 경지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 세력 구도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정기 토벌에서도, 이번 결투에서도.
체면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기 가주로 유력하던 모룬의 입지가 크게 흔들려 버린 것이다.
‘모든 게 의도대로였나?’
네이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에단이 과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면, 주위 형제들과 에단에게 집중되는 권력에 반감을 가진 자들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았을 것이다.
가문 내에서 이뤄지는 아귀다툼과 견제는 매우 살벌했고, 잔인했다.
하지만 그간 모든 가문 사람들은 에단을 견제하기는커녕 외면하기에 급급했다.
에단은 가문의 수치이자, 사건을 몰고 다니는 망나니였으니까.
네이드는 말없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에단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