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7화 (27/398)

◈ [27화] 블랙 오우거 (5)

에단이 블랙 오우거의 사체에 다가가자, 토벌대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고가 에단을 따라가려 했지만, 가토가 휴고의 팔을 붙잡았다.

“도련님 건들지 마. 저 괴물을 잡았는데 얼마나 설레시겠어.”

“……응.”

무언가 착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방해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남은 문제는 죽은 마나를 흡수할 때 받을 시선이었다.

‘마스터의 눈을 가릴 수 있을까?’

사실 걸린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검술 명가라는 위명답게 블란테 가문은 힘을 숭상한다.

윤리와 도덕 따위보다 힘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소리였다.

몬스터의 사체에서 마나를 추출한다는 것은 분명 지탄받을 수도 있는 행위였고, 위기의식을 느낀 형제들이 그것을 빌미로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못하면 쓰나.

눈앞의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에단이 손을 뻗었다. 블랙 오우거의 사체는 아직 뜨거웠다.

손에 전해지는 감촉으로도 온기와 함께 가죽이 매우 거칠고 질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가죽이 마치 쇳덩이처럼 느껴졌다.

‘이런 놈을 잡은 거군. 그럼 시작해 볼까.’

에단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부터는 본능의 영역이었다.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사람이 걷는 법을 자연히 깨우치듯,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 시작하마.

페온이 마나를 슬며시 흩뿌렸다.

상대를 현혹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에단이 마나를 운용하는 모습으로 보일 터였다.

그것이면 족했다.

‘……장난이 아니군.’

두근두근.

심장이 격동한다. 혈액이 힘차게 돈다. 그와 함께 혈관이 도드라졌다.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블랙 오우거의 마나는 해일 같았다.

신체에 부하가 걸린다. 몸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이었다.

‘과유불급?’

까짓것, 체하지, 뭐.

눈앞의 진수성찬은 다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욕심이 많았다.

몸의 원주인도 그랬고, 류태신도 그랬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 했다. 이후 어떻게 될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에단의 입가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이런 미련한 녀석! 당장 그만두지 못해?!

페온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에단과 동화된 페온의 눈에는 지금의 상황이 확연하게 보였다.

에단의 상태는 지금 태풍을 몸에 담은 것과 같았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수준이 아니었다.

블랙 오우거의 생명력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죽은 자의 마나였다. 당연히 신체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 소탐대실이다, 이것아!

블랙 오우거의 마나가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 한들, 에단의 가능성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갓 마나를 다룬 녀석이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자 페온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제가 결정합니다.’

에단은 평정을 잃지 않았다.

광포화? 이성을 잃어?

웃기는 소리.

에단의 머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천천히.’

불거진 혈관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생명력이 격동했다.

‘마나홀에 모두 담지는 못해.’

여기서 욕심을 부리다가는 마나홀이 터져 버릴 것이다.

에단은 흐르는 마나를 전신으로 이끌었다.

뼈, 인대, 근육, 피부.

모든 신체에 마나가 깃들자, 극한의 통증이 치밀었다.

에단의 몸은 지금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넘쳐흐르는 힘을 몸에 강제로 주입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에단은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거의 다 왔다.

여기서 포기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후우.”

에단이 손을 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에단의 머리는 어느새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 너는 미친놈이 분명하구나…….

죽을 위기를 겪고도 태연하게 서 있는 에단을 보고 페온이 혀를 내둘렀다.

그 짧은 순간에 죽을 고비만 몇 번을 넘겼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 인정하기는 싫지만…….

바뀌었다.

‘성장했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 짧은 순간에 에단이 얻은 성취는 어마어마했다.

“괜찮으십…… 허억!”

에단의 몸이 휘청거리자, 휴고가 빠르게 다가와 부축했다.

온몸이 땀에 푹 젖어 있는 에단의 모습을 본 휴고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시끄러.”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휴고가 호들갑 떠는 탓에 골이 울렸다.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지만, 정신이 아득해져 그럴 수 없었다.

‘기절하는 게 얼마 만이더라.’

* * *

에단이 기절하자, 네이드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안일했군.’

에단은 아직 어렸다.

결단과 행동이 단호하다고 한들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괜찮을 거라고 마음대로 판단해선 안 됐는데…….

네이드가 급하게 에단의 상태를 확인했다.

“……단순히 잠든 것뿐입니다.”

네이드의 대답에 토벌대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도련님께서 의식을 잃은 관계로 지금부터는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토벌에 나온 뒤 처음으로 네이드가 강하게 의사를 피력했다.

반발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네이드가 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지로의 복귀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네이드는 밤눈이 밝았다. 에단을 짊어지고도 날짐승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토벌대원들조차도 네이드의 뒤를 겨우 따라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하자, 다시 몬스터가 한두 마리씩 출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이드의 가벼운 손짓에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엄청나군.’

옆에서 지켜보던 가토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네이드가 강자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마스터인 거 같은데…….’

이전에 보았던 정식 기사들의 대련을 참고해 무위를 가늠하는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을 보이려면 마스터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터.

‘……집사가 마스터라니.’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아마 헛소리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째서 마스터씩이나 되는 자가 한낱 집사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어서도 안 되겠지.’

자신은 아직 정식 기사에도 오르지 못한 수습 기사였으니.

하아∼

가쁜 숨과는 별개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정신을 잃은 에단을 네이드가 짊어지고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복귀한 네이드는 에단이 안정을 취하도록 조치한 뒤에 곧바로 영주실로 향했다.

“……그게 정말인가?”

“한 치의 과장도 없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네이드가 거짓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쯤은 빈센트도 알고 있었고, 망나니이던 에단이 달라진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한데 그것을 감안하고 들어도 믿기가 어려웠다.

“블랙 오우거라고?”

그 괴물이 산맥에 있었다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마터면 큰 피를 흘릴 뻔했다.

블랙 오우거는 그 존재 자체로 재앙과 다름없었다.

성인식 개념인 토벌로 접근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게. 혹시 자네가 손을 쓴 겐가?”

“믿기 힘드신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그 어떤 도움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로 에단 도련님의 방자한 태도를 고칠 생각이었으니까요. 물론 예상과는 다르게…… 제가 한 방 먹었지만요.”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찼다.

네이드가 헛웃음을 흘리자, 빈센트도 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믿기 힘들군.’

저 소리를 듣고도 쉽게 믿기 힘들었다.

블랙 오우거가 어떤 존재란 말인가.

빈센트도 직접 사냥한 경험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마스터 초입의 경지에 든 뒤에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 상대를 에단이 이겼다.

아무리 성체가 아니라고 해도 힘든 싸움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한데 전투에 관한 상세한 묘사를 듣고 나니 더 기가 찼다.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수비적인 자세로 기회를 포착해도 모자랄 판에 도박 수를 쉴 새 없이 던졌다니.

꾸짖고 싶었지만, 에단은 결과로 증명했다.

“토벌의 결과는 나왔군.”

두말할 것도 없이, 에단이 역대 최고의 업적을 세웠다.

* * *

“뭐라고? 복귀라고?”

모룬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갑작스럽게 받은 전언이었다.

토벌은 순항 중이었고,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확실한 마무리 후에 명예로운 귀환을 하고 싶었던 모룬에게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전언이었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르신 거지?”

마음 같아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전언은 가주가 직접 내린 명령이었고, 가주의 말을 전달한 수행원도 가문 내에서 수위를 다투는 ‘진짜 기사’였으니.

“더 이상 토벌은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유가…….”

모룬은 짜증이 치민 나머지 언성을 높일 뻔했지만, 말을 전달하는 기사의 서늘한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지금은 참을 때였다.

* * *

카론도 복귀 명령을 전해 들었다.

완벽한 토벌 끝에 하는 복귀는 아니었지만, 대원들에게는 달콤한 단어였다.

토벌이 순항 중이라고 한들 그 과정 자체는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의 따뜻한 잠자리는 언제나 그리웠으니까.

하지만 카론은 복귀 소식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왜?”

지금 상황에 복귀라니.

“나도 모른다.”

모룬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서려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것은 피차일반이었다.

하지만 둘 모두 가주의 명을 거스를 용기는 없었기에, 순순히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뭔가 불안한데.’

이전부터 느껴 온 해소 안 되는 찜찜함이 더욱 커진 기분이었다.

* * *

“……그게 무슨!”

“……블랙 오우거?”

영지로 복귀하자마자 전해 들은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미, 믿을 수 없다. 그래! 헛소리가 분명해! 내 업적을 질투해서 거짓말을 한 게야!”

“……지금 블랙 오우거의 사체를 수습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

이제야 모룬도 현실을 직시했는지 고개를 떨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확실한 성과와 업적을 가지고 금의환향하는 자신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초라하게 복귀하는 에단.

모룬의 예상은 이런 것이었다.

반나절 전만 해도 모든 게 순탄했고, 예정대로였다.

하지만 돌아와 확인한 상황은 정반대였고, 전달받은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블랙 오우거라는 업적은 고작 오크나 고블린을 잡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

“……직접 봐야겠다. 안내해.”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카론도 모룬의 뒤를 따랐다.

영지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둘은 다시 영지를 떠났다.

* * *

체구가 워낙 거대했기에, 블랙 오우거를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병사가 동원되고, 마차와 짐마차를 동원한 뒤에야 블랙 오우거의 사체를 옮길 수 있었다.

“……말 그대로군.”

모룬과 카론보다 먼저 도착한 빈센트가 블랙 오우거의 사체를 찬찬히 살폈다.

네이드에게 상세한 보고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다.

‘사타구니에 있는 상흔. 거칠게도 헤집었군. 발목의 힘줄도 끊겨 있고…… 안구 하나는 완전히 넝마가 됐어.’

허.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정말 보고 그대로였다.

“……큭큭, 내 아들이지만 정말 망나니가 따로 없군.”

블란테의 개망나니.

에단의 별칭이었다.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인 모양이었다.

‘망나니 그대로군.’

넝마가 된 사체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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