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블랙 오우거 (4)
에단의 팔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감촉이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솜털이 곤두서고, 자극적인 감각이 뇌리에 전해졌다.
“…….”
좌중이 침묵했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충격에서 헤어난 자가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네이드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에단을 얕잡아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네이드는 에단을 고평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넘을 수 없는 간극은 존재했다.
아무리 에단의 재능이 뛰어나고, 날고 긴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번 토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블랙 오우거 토벌.
듣기만 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능숙한 오러 유저도 쉽게 여길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토벌대의 구성원 중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자는 네이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마나 수련법도 전수받지 못한 수습들.
이 구성으로 블랙 오우거를 잡는다는 건 만용이고 오판이었다.
결단력과 담력은 칭찬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해 줄 요량이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수많은 수습 기사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 깨닫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네이드의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가고 말았다.
‘이럴 수가…….’
눈앞에서 확인을 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나를 사용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에단은 마나를 운용했다.
발끝에 실린 근육의 움직임, 순간적인 폭발력.
마스터인 자신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능숙한 운용이었다.
‘숨기고 있었나?’
그럴 리가.
에단의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꿰고 있었다.
담당 수행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에단과 함께해 왔다.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고, 어떻게 엇나가기 시작했는지를 모두 알고 있다.
에단은 마나를 수련한 적도 없을 뿐더러, 이를 감추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럴 이유도 없지.’
힘을 숭상하는 명가인 블란테 가문에서는 힘이 곧 권력이다.
그렇기에 에단이 마나를 숨기는 것은 더욱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아.’
에단이 마나 유저로서의 경지가 수위에 올라 있다면 저렇게까지 힘들게 블랙 오우거를 처치하지 않아도 됐을 터.
사용할 수 있는 마나 양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렇게 잔혹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블랙 오우거를 잡은 것일 테다.
네이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정작 에단은 인상을 찌푸렸다.
‘불쾌한 기분이군.’
상대의 머릿속을 헤집는 감각은 좋지 않았다.
잔혹한 손속과 빠른 결단력이 고약한 취미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정말 명줄이 길어.’
블랙 오우거의 몸이 꿈틀거렸다.
사후 경직이라고 하기에는, 반격을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엿보였다.
에단은 어깨까지 밀어 넣은 손을 휘저어 머릿속을 다시 한번 헤집었다.
크륵크르르륵!
블랙 오우거의 입에서 피 끓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씁.”
에단이 울컥 올라온 피가래를 뱉어 냈다.
‘죽겠군, 정말.’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아직 제대로 마나를 수련하지도 않았다. 스스로의 감각을 믿고 남용한 것이다.
그 반작용은 확실했다.
‘대가치고는 싸게 먹혔지만.’
여기서 마나의 운용을 망설였다면 토벌대는 몰살했을 것이다.
‘목숨은 건졌을지도 모르지.’
에단이 가늘게 뜬 눈으로 네이드를 바라봤다. 네이드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단이 블랙 오우거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쿵!
평소라면 사뿐히 내려올 높이였지만, 넝마가 된 몸은 그마저도 비명을 질러 댔다.
“도련님!”
에단의 몸이 살짝 휘청거리자, 휴고가 당황하며 다가왔다.
에단은 재빨리 자신을 부축하는 휴고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보냈다.
“……미안하다.”
“……갑자기 무슨 말이십니까?”
휴고의 턱은 아직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지금 당장 블랙 오우거 사체를 수습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전문 인력이나 장비가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저 괴물을 영지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 미친놈…….
페온은 에단이 정말 미친놈이라 생각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해냈다.
풋내기 뱀파이어와 웨어울프를 압도하는 것을 봤을 때도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블랙 오우거를 쳐 죽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블랙 오우거.’
마스터가 아니라면 전문적인 사냥꾼들도 상대하기 꺼려하는 녀석이다.
엄청난 크기에 걸맞은 괴력, 마나를 두르지 않은 창칼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가죽.
육중한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스피드, 그리고 간악한 행동.
오죽하면 블랙 오우거를 처치하는 이에게 엄청난 명성과 함께 슬레이어라는 호칭이 붙겠는가.
한데 그런 괴물을 에단은 홀로 잡았다.
그것도 손쉽게.
‘행동에 망설임이 없어.’
사소한 판단 실수로 생사가 갈리는 상황에서도 에단은 망설이지 않았다.
몬스터의 급소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급소를 노리기 위해서는 더욱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목숨을 거는 행위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에단은 그런 순간순간의 판단에 망설임이 없었고, 그 판단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 냈다.
‘이 녀석이 더 괴물이군.’
페온은 고개를 저었다.
마나의 운용?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 쓰는 것이 분명한 마나를 마스터처럼 자유롭게 사용했다.
물론 에단의 몸은 그 반동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대가치고는 매우 싸게 먹힌 상황이다.
― 샘이 나는군.
자신도 가문 내에서 재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위치였지만, 에단을 보자 질투가 치밀 정도였다.
“……정말 이 녀석을 죽인 겁니까?”
에단에게 다가오는 가토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음에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블랙 오우거를 잡았어.’
헛웃음이 나왔다.
정기 토벌?
같잖았다.
아무리 고블린과 오크 따위가 범람해 봤자, 고블린이고, 오크다.
감히 블랙 오우거의 이름에는 비빌 수가 없었다.
에단이 처음 블랙 오우거를 거론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한번 내린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기에 따라나섰다.
‘과장이 아니었어.’
악명에 걸맞은 괴물이었다.
검을 든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고, 두려움과 맞서는 게 버거웠다. 마치 죽음을 마주한 것처럼 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에단은 달랐다.
‘마나를 사용했어.’
어떻게 사용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가 알기로 에단은 아직 마나를 깨우치지 못한 일반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나의 사용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에단의 행동 하나하나가 뇌리에 깊게 박혀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지?’
뛰어난 기사는 많이 봐 왔고, 그들 중에는 예지에 가까운 예측을 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오랜 시간을 수련하고, 경험을 쌓아 그 경지를 개척한 것이었다.
반면 에단은 아직 신출내기였다.
기사로 인정받지도 않았고, 실전 경험이라고는 대련 몇 번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목숨이 걸려 있는 혈투에서 저런 움직임을 보여 주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천재라는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간 수재, 천재라는 소리로 동기들 사이에서 칭송받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진짜 천재 앞에서 자신은 벌레만도 못했다.
가토가 에단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에단 님께서 구해 주신 목숨. 이제 에단 님을 향해 사용하겠습니다.”
가토의 목소리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에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얘가 왜 이래?’
갑자기 쓸데없는 짓을 하니까 부담감이 확 느껴졌다.
‘설마 검 때문인가?’
에단이 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가토의 검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에단이 보기에도 명품임은 확실했다.
‘제기랄.’
속이 쓰렸다.
* * *
“크하하하!”
모룬이 호탕하게 웃었고, 야영지는 왁자지껄했다.
전투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아 마치 연회가 열린 것 같았다.
수많은 병사들이 바싹 마른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언뜻 보면 해이한 기강에 눈살을 찌푸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토벌대의 지휘관인 모룬의 결정이었다.
‘유례없는 대승이군.’
사상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토벌은 순항했으며, 마지막 전투에서는 몬스터들이 모두 등을 보이며 허겁지겁 도망쳤다.
하지만 놈들을 쫓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에단, 그 머저리 녀석이 뭘 하든 이젠 의미가 없겠군.’
이번 토벌은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간 쌓인 실력을 증명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여흥이자 사냥 같았다.
모룬은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 성과라면 더 이상 잡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그 건방진 망나니도 고개를 숙이겠지.’
에단의 초라한 전과와 자신의 업적이 비교될 테고, 망나니는 자연스럽게 찌그러지리라.
모룬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다들 축배를 들어라!”
반면 카론은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뭔가 미심쩍어.’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후방에서 병력을 지휘하는 모룬과 달리, 카론은 전투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렇기에 느끼는 점이 달랐다.
카론이 토벌에 참가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카론의 재능은 범상치 않았고, 실전 경험이 필요했으니 매 토벌마다 꼬박꼬박 참가해 왔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이번 토벌은 순조로웠다.
너무 순조로워서 문제였다.
이상했다. 분명 토벌 초반에는 이전보다 몬스터의 머릿수가 많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몬스터들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왜지?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에단 그 새끼는 뭐하고 있는 거야?’
토벌 초반부터 개별 행동을 한 에단이었다.
그 정도의 소규모 토벌대라면 다른 짓을 꾸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일인당 똑같은 수의 몬스터를 잡아도, 전체적인 전과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뭔가 불안해.’
처음 에단에게 당했을 때도 지금과 같았다.
승리를 자신하고, 자만심이라는 감정이 싹틀 때, 에단은 자신의 뒤통수를 후렸다.
너무 순조롭다. 그래서 불안하다.
‘이럴 때가 아닌데.’
주변은 왁자지껄하고, 숲과 산의 밤은 사나웠다.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에 자신이 속한 토벌대는 가장 늘어지고 있었다.
그 탓에 카론은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시발 개같네.’
자꾸만 싹트는 불안감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 * *
“잠깐.”
에단은 휴고의 부축을 잠시 밀어내고 블랙 오우거의 사체에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블랙 오우거의 크기에 다시 한번 압도됐다.
‘이런 녀석을 잡다니.’
새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 너 설마…….
페온이 설마 하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에단은 대답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몸은 엉망이긴 한데…… 시간이 없어.’
그러고는 죽은 블랙 오우거의 사체에서 마나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페온 님, 안 들키게 좀 부탁드립니다.’
― 허…… 알겠다.
페온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마나를 이용해 에단의 행동을 가렸다.
지금 에단의 행동은 블랙 오우거를 어루만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괜한 말이 나오지 않게 주의할 필요가 있지.’
사체에서 마나를 뽑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가문의 사람인 네이드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방치하면 마나는 흩어지게 될 테지.’
블랙 오우거.
사체에서 풍겨 나오는 마나만 봐도 상등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에단은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