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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5화 (25/398)

◈ [25화] 블랙 오우거 (3)

쿵!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수습 기사들의 몸이 휘청거렸고, 오직 에단과 휴고만이 시선을 공중에 던졌다.

“떨어진다.”

가토가 에단과 휴고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무 사이에서 발하는 달빛 덕에, 커다란 그림자 같은 게 떨어지는 모습은 보였다.

가토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림자가 다가왔다.

‘저게 설마…….’

쾅!

믿고 싶지 않았지만,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어둠 속에서 대충 봐도 족히 수 미터는 넘어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었다.

“이게…… 블랙 오우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구전이나 무용담으로 들어 보기는 했다.

도저히 인간이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몬스터가 크고 사나운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서도 크기가 유난히 큰 개체가 오우거였다.

위험한 녀석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화는 오히려 부족해 보였다.

실제로 마주한 블랙 오우거는, 바라본 즉시 오금이 저릴 정도의 괴물이었다.

‘이거랑 싸우라고?’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토는 쥔 검을 놓지 않았다.

방금 전 도약을 보고 더욱 확실히 알았다.

도망이란 선택지는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한 번의 도약이 그 정도니 녀석이 마음먹고 쫓아온다면 순식간에 잡힐 게 빤했다.

검을 들어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을 터였다.

스르릉―

가토가 검을 꺼내는 소리에 에단은 뒤를 슬쩍 바라봤다.

다들 겁에 질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유일하게 가토만이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역시 아직 어리군.

페온의 중얼거림에 에단이 고개를 들어 블랙 오우거를 바라봤다.

이게 어린 거라니…….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에단이 피식 웃었다.

그게 기폭제였다.

블랙 오우거가 손을 들어,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세 사람은 몸을 피했다.

거리가 멀어진 휴고의 입가에는 송곳니가 드러나 있었다.

크르르―

“가만있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휴고를 보며 에단이 말했다.

휴고의 수인화는 신체에 큰 부담이 간다. 게다가 직전의 결투에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육체에는 이미 큰 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여기서 다시 수인화를 시킬 수는 없었다.

‘보는 눈도 많고.’

아직 휴고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에단의 말을 듣자마자 짐승처럼 가늘어져 있던 휴고의 눈동자가 돌아왔다.

“싸울 생각 안 하나?”

에단이 뒤를 바라봤다.

토벌대원들은 모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기사가 되고자 하는 의지는 고작 그 정도였군.”

예상은 했지만 실망이 컸다. 에단은 가토를 바라봤다.

“너는 좀 괜찮고.”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됩니까?”

가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블랙 오우거가 내려친 바닥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별도의 커다란 준비 동작 없이 그저 내려찍은 것뿐이었다.

한데도 파괴력이 저 정도라니.

저걸 제대로 얻어맞으면, 정말 뼛조각 하나도 안 남을 것 같았다.

“먼저 공격해 봐.”

선심 썼다는 듯이 말하는 에단.

가토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튀어나왔지만, 지금 그걸 일일이 말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공격은 해야 해.’

가토가 검을 움켜쥐고는 상체를 숙였다.

근육이 수축했고, 이내 가토가 블랙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리부터!’

큰 신장 탓에 치명상을 노릴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아 보였다. 하여 가토는 블랙 오우거의 아킬레스건을 먼저 노렸다.

그나마 그 부위의 가죽이 가장 얇아 보였고, 부상을 입히면 행동에 큰 제약을 줄 수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깡!

‘이런 미친!’

가토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검으로 가죽을 베었음에도 엄청난 반발력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쇳덩이를 향해 망치질을 한 것 같은 감각에, 손이 저릿하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크륵?”

블랙 오우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벌레를 상대하듯 블랙 오우거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늦었다!’

반응이 늦은 가토가 이를 악물었다.

나름대로 몸을 틀었지만, 이미 한 박자 늦었다. 오우거의 발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주위가 어두웠음에도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덮치는 게 느껴졌다. 마치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끝인가.’

허무한 결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최후를 꿈꾼다. 기사로서 평온한 죽음을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명예로운 죽음을 원했고, 자신의 용맹과 업적을 인정받기를 바랐다.

그것이 기사라는 족속이다.

한데 이런 죽음이라니…….

에단의 토벌대에 참가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기회가 주어졌는데 잡지 않는다면 머저리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지도 않다니.

절망감에 휩싸여 있는 그때, 가토의 목덜미가 확 당겨졌다.

“수고했다.”

에단이 가토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있는 힘껏 집어던진 것이었다.

날아가는 방향은 휴고가 있는 장소.

가토는 놀랄 새도 없이 공중을 부양했다.

한편 에단은 마나를 다리에 실었다. 블랙 오우거의 발길질을 피해 내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대충 감이 잡히는군.”

어떻게 해야 마나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에단이 발끝에 힘을 싣자, 발밑에 있던 지면이 터져 나갔다.

에단의 손에는 가토가 들고 있던 검이 들려 있었다.

― 쯧, 내가 있음에도 기어코 무기를 쥐는구나.

에단은 페온의 투덜거림을 무시했다.

지금 에단은 무기 없이 저 괴물에게 상처를 입힐 자신이 없었다.

에단이 접근하자 블랙 오우거가 에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크기에 비해서는 대단히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에단이 보기에는 공격의 면적만 넓을 뿐 더없이 느렸다.

에단은 재빠르게 달려 나가며 방향을 틀었다.

노릴 곳은 정해져 있었다.

쉬익!

검술은 익숙하지 않았다.

애초에 블랙 오우거라는 규격 외의 괴물을 상대로 검술이 통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블란테 가문의 검술도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을 상대한다고 상정하고 발전해 왔으니.

그렇다면 가장 직관적이며,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높은 효용성을 자랑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에단이 몸을 숙이자 허벅지가 부풀어 올랐다.

예열된 근섬유가 폭발할 것처럼 수축했고, 혈액과 함께 마나가 깃들었다.

― 너 설마…….

에단에게는 마나의 여유가 없다. 페온의 힘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조금은 여유가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험이다.

팡, 소리와 함께 에단이 쏘아져 나갔다.

가토는 눈을 부릅떴다.

에단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마나다!’

저만한 움직임은 신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가토는 확신했다.

에단은 지금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마나는 숨길 수가 없다.

가문 내에서 에단이 가진 이미지 탓이 아니었다.

그간 지켜본 바로는 에단은 신체만 단련하고 마나를 수련하지 않았다.

가토가 물었을 때도 계획이 있다고만 말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 점이 가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나.

정식 기사가 되면 블란테 가문의 비전 마나 수련법을 배울 수 있었다.

에단은 가문의 적통이다.

수많은 마스터를 배출해 낸 마나 수련법을 배울 자격을 타고난 것이다.

모두가 염원하는 기회를 가진 주제에 마나를 등한시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에단이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어째서 망나니라는 소문이 돌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일같이 말도 안 되는 하드 트레이닝을 거듭했다.

‘대체 어떻게?’

마나를 쌓고 운용하는 것에는 재능의 여부와 관계없이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정밀한 마나 운용이라니.

놀란 것은 네이드도 마찬가지였다.

동굴에서 나온 에단이 뭔가 달라졌다는 것은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마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동굴을 갔다 온 그 반나절 만에 마나를 깨우쳤다니.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 겁니까.’

하지만 블랙 오우거는 이제 막 마나를 다루는 애송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네이드는 마나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블랙 오우거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허용하면 아무리 에단이라도 무사할 리가 없었으니까.

언제든지 저 전투에 개입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했다.

에단이 도약했다.

에단은 아직 검에 마나를 두르지 못한다.

블랙 오우거의 가죽은 마나를 두르지 못한 날붙이로는 생채기도 내기 어려웠다.

그 사실은 에단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야, 뭐. 잘 잡았던 거 같은데.’

에단과 원작의 주인공은 상황도, 입장도 다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원작 주인공과 다른 방법으로 사냥을 하면 되는 일이니까.

허공을 날던 에단은 바닥에 착지해 곧장 블랙 오우거의 사타구니 근처로 다가갔다.

‘여기도 가죽이 질긴지 한번 봐 볼게.’

에단의 칼끝은 블랙 오우거의 사타구니를 향했다.

푸욱―

검이 들어갔다.

― ……이런 끔찍한 짓을.

페온의 목소리에서 참담함이 전해졌다.

가토와 네이드, 휴고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저런 방식으로 공격할 줄이야.

에단의 손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지직!

에단이 칼날을 옆으로 돌렸다. 살이 뭉개지고 찢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단의 머리 위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피로 샤워를 하는 모양새였지만, 에단은 눈을 감지 않았다.

쿠어어어어어!

블랙 오우거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만으로 지면이 흔들리고, 나무가 떨렸다.

날짐승과 새 따위가 블랙 오우거의 괴성을 듣고 도망갔다.

“미안해서 어쩌냐.”

아직 안 끝났는데.

에단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차례 헤집은 상처를 잡고, 그대로 검을 쭉 밀었다.

워낙 근섬유 하나하나가 촘촘하고 가죽이 단단해서 이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에단의 팔뚝에 핏줄이 돋아났다.

마치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에단이 전력을 다해 다시 한번 상처 부위를 헤집었다.

크아아아아!

블랙 오우거가 발광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푸욱―

검은 그대로 오우거의 사타구니에 깊이 박혔고,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부러져 버렸다.

검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이미 재사용이 불가능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가토의 무기였지만, 어쨌든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저렴하게 먹혔다.

“후우.”

겨우 숨을 골랐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블랙 오우거의 재생력이 얼마나 빠른지는 모른다.

설마 중요 부위가 넝마가 되어도 모두 회복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놈이 언제 광분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지면을 박차고 올라가는 에단의 옷은 블랙 오우거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누워 있는 오우거의 가슴팍 위에 올라간 에단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블랙 오우거의 눈에서 살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

블랙 오우거는 언제나 포식자의 입장이었다.

지금과 같은 고통은 그에게 무척이나 생소했다.

질긴 가죽은 한 번도 갈라진 적이 없었으며, 아무리 흉포하고 사나운 몬스터도 블랙 오우거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바빴다.

오늘은 뭘 잡아먹을까 고민하는 나날이었지, 고통을 배울 날은 없었다.

블랙 오우거가 에단을 잡기 위해 팔을 휘둘렀지만, 애먼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에단은 블랙 오우거의 얼굴까지 다가가 몸에 잔류해 있는 마나를 손에 집중시켰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아까처럼 폭발적인 움직임을 낼 수는 없었다.

오우거의 가죽이 질기다는 건 방금의 공방으로 체감했다.

하지만 생명체라면 질기지 않은 조직도 있기 마련이다.

에단이 오우거의 눈꺼풀을 잡았다.

“조금 아찔할 텐데, 금방 끝나.”

에단의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푸우욱!

에단의 손이 오우거의 안구를 관통했다. 얼마나 깊게 들어갔는지, 에단의 어깨까지 들어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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