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블랙 오우거 (1)
‘블랙 오우거라고?’
네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까지는 한 발짝 물러서서 에단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에단을 관찰하는 입장이었고, 주제넘게 에단의 행보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주된 역할은 어디까지나 에단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묵인할 수가 없었다.
블랙 오우거.
네이드는 실제로 마주한 적이 있는 몬스터였다.
그 존재 자체가 희귀해서 일반인은 평생 한 번 마주하기도 힘든 몬스터.
가뜩이나 존재 자체로도 재앙인 오우거인데, 그보다 더욱 흉포하고 강한 괴물.
에단은 지금 그런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너무 위험해.’
블랙 오우거는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도 상대하기 힘든 녀석이다.
마스터인 네이드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수습 기사들과 에단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도련님,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허락을 받고 행동했지?”
에단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네이드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이드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블랙 오우거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어. 알고 있어. 평범한 몬스터였으면 애초에 잡을 생각도 안 했지.”
네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저를 믿고 이런 만용을 부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잘못 판단하고 계신 겁니다.”
에단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나설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에단의 생각처럼 나서서 싸워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네이드는 어디까지나 에단을 보좌하는 입장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습 기사들까지 돌봐 줄 생각은 없었다.
“필요 없어.”
“……그 말씀,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어.”
에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네이드는 말없이 에단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 경고는 여기까지입니다.”
에단이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과는 전제가 달랐다.
마나를 실은 공격이 아닌 이상 블랙 오우거의 가죽을 꿰뚫을 수는 없는 탓에, 마스터급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였다.
‘모두 죽겠군.’
직접 보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에단의 오판으로 토벌대는 전멸할지도 몰랐다.
‘깨닫는 것이 있겠지.’
하지만 에단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다, 자신은 조언자일 뿐이니 말릴 생각을 접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에단이 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드는 아쉬운 눈으로 휴고와 가토를 바라봤다.
‘여기서 버리기에는 아까운 인재들이다.’
둘의 재능은 진짜였다. 이대로 무사히 성장한다면 가문의 무기가 될 자들이었다.
네이드는 여유가 된다면 저 둘까지는 구출할 생각이었다.
“그럼 움직이지.”
에단이 앞으로 나섰다.
토벌대는 어둠을 헤치며 블랙 오우거를 향해 나아갔다.
* * *
‘온몸이 아파…….’
에단의 뒤를 따라가던 휴고는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다.
온몸이 아팠지만, 그중에도 턱이 가장 아팠다.
입을 벌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흐릿한 안개가 머릿속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도련님은 뭔가를 알고 계시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억을 잃은 사이에 무언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에단의 태도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은 태도가 휴고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배려해 주시는 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휴고는 그 인정에 보답하고 싶었다. 에단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블랙 오우거.’
몬스터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위의 반응을 보면 엄청난 몬스터인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자신이 있어 보였어.’
휴고가 보아 온 에단은 언제나 남들이 이해 못 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무모한 결정으로 보여도, 타당한 이유와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증명해 왔지.’
휴고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늘 무시와 조롱을 당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어째서 보잘것없는 자신을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후회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각오를 다진 휴고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상황은 어떻지?”
모룬이 자신의 부관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부관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토벌은 순항 중이며 아군의 피해는 극히 미미합니다. 이대로만 가면 수일 내에 토벌은 무사히 끝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리고 녀석은 뭘 하고 있지?”
“에단 도련님은 저희 토벌대에서 이탈했습니다. 저희와 다른 길로 향해 정확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별 성과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지 사냥꾼들 말로는, 그쪽 방향에는 고블린 몇 마리가 서식하는 게 전부라고 합니다.”
“흥, 멍청한 녀석.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그래도 얻어 가는 게 있었을 텐데.”
모룬이 콧방귀를 뀌며 에단의 선택을 비웃었다.
처음 에단의 토벌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불안했다.
이전에도 예상치 못한 일들을 해 온 에단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으나, 다시 보고를 들으니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졌다.
이전까지는 운이 좋게 유야무야 넘어갔는지 몰라도, 이번 선택은 확실한 만용이었다.
모룬은 그 사실이 썩 마음에 들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고생했어. 돌아가면 충분한 보상을 주지.”
“영광입니다.”
부관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역시 줄을 잘 택했군.’
이번 토벌을 통해 모룬은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테다.
블란테 가문의 후계자.
그 파급력은 적지 않았다.
하물며 부관에게는 어떠한 권력이 떨어질 것인가.
부관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 * *
‘흠, 이렇게 하는 건가?’
에단은 페온이 설명한 대로 마나를 순환시켰다.
어딘가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는데, 페온은 이것이 어두운 마나의 부작용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나쁜 감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당히 서늘한 감각이 정신을 맑게 만들어 주는 기분이었다.
‘의존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나는 오직 수단일 뿐이었다.
이제 처음 얻은 기연. 아직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애초에 이런 외각 영지는 소설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에단은 이번 토벌이 끝나면 수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거길 가야 가로챌 것이 많아지지.’
여기서 얻을 건 모두 얻었다.
‘블랙 오우거.’
이놈만 처치하면 명분은 충분했다.
원래라면 가문에서 쫓겨나는 형식으로 아카데미로 향하겠지만, 이제는 가문의 지원을 등에 업고 갈 수 있을 터였다.
‘어느 정도일까.’
흥미가 생겼다.
제대로 된 몬스터를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휴고 녀석은 조금 실망이었고.’
웨어울프로 변한 휴고는 강했지만, 상대하기 쉬웠다.
신체 능력만 믿고 날뛰는 탓에 정직한 공격만 날아왔고, 덕분에 예측하기가 수월해 그리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다.
― 이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 된다.
페온이 에단의 곁에서 길을 알려 주었다.
에단의 밤눈은 지극히 평범했다.
반면 페온은 영체나 다름없었다.
에단에게 귀속된 상태이긴 하나, 영체에게 어둠 따위는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블랙 오우거가 있는 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건지…….
페온이 길을 알려 주면서도 자조적으로 신세 한탄을 내뱉었다.
― 그리고 너는, 내가 블랙 오우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챈 거냐?
“그냥 그럴 거 같았습니다.”
에단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실 몰랐다.
블랙 오우거의 대한 설명은 소설에서 그리 잘 드러나 있지 않았다.
‘흡혈귀 녀석이 탐내는 놈이었으니까.’
원래 소설의 전개대로라면 지금쯤 벨몬트가 블랙 오우거를 자신의 수하로 만들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하고 있어야 했다.
다만, 에단이 조금 이르게 당도한 탓에 벨몬트는 아직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브, 블랙 오우거 말입니까?’
벨몬트에게 처음 블랙 오우거에 대해 물었을 때 떨리던 그의 눈이 떠올랐다.
말하기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에단이 눈을 부라리자 겁을 집어먹으며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실토했다.
‘아직 어린 상태라…….’
블랙 오우거의 성장은 빨랐다.
생후 1년이 채 안 돼서 모든 성장이 끝이 난다.
지금은 생후 약 6개월 정도.
하지만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상태임에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자신의 영역을 만들지도 못한 어린 녀석이라고 했지만, 일대에 상대가 없는 만큼 마음껏 날뛰고 있다고 들었다.
하나 어리다고 멍청하지는 않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인간들을 극히 경계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에단은 밤에 움직였다.
블랙 오우거는 야행성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태여 시간대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낮과 밤을 따지지 않아도, 사냥하는 데에 지장이 없으니 자기가 원할 때 움직이는 것이다.
주변에 원하는 사냥감이 느껴지면 자다가도 눈을 뜬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가 없지.’
낭비할 시간이 아까울 뿐, 두려움이나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호승심이나 흥미가 전해질 뿐이었다.
그런 에단을 지켜보던 페온은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군.’
에단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타당한 이유를 기반으로 과감하게 행동하는 거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어.’
검을 버리고 무투를 택한 페온인 만큼, 에단의 움직임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볼 수 있었다.
에단의 몸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무게 중심의 이동은 자유로웠으며 거리감은 완벽했다.
이론으로만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에단의 움직임은 베테랑의 것이었다.
상대방을 유인하는 것, 그리고 허점을 기회로 바꾸는 것까지.
에단은 모든 게 능숙했다.
아직 어린 나이다. 실전 경험을 쌓기에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참 궁금했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과 동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자.
페온도 알고 있었다.
검의 이점은 확실했다.
살상력이 월등했고, 파생되는 기술도 무궁무진했다.
체계화된 검술은 맨몸으로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웠다.
반면 검을 든 자는 맨몸인 자를 상대하기가 매우 수월했다.
하지만 페온은 주먹을 택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가문 모두가 무시하던 페온은 결국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 점이 문제였다.
블란테 가문은 검술 명가인 만큼 힘을 숭상한다.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가문이었다.
그런데 경쟁자로는 생각지도 않던 페온이 이변을 일으켰다.
그들 입장에서는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후계자들은 합심하여 페온을 배신했다.
페온은 발악을 하며 숨어들었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장소에 하필 사기를 묶어 두는 기물이 있어 페온은 승천하지 못하고 영체가 되어 남아 있던 것이었다.
‘녀석이 내 대신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군…….’
에단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되는 페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