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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1화 (21/398)

◈ [21화] 죽은 나무 (2)

정통으로 꽂힌 프론트 킥.

제아무리 휴고의 가죽이 두껍고, 맷집 또한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지만, 명치에 꽂힌 일격이었다.

그것도 달려가던 본인의 힘이 더해진 카운터였다.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휴고는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뒤로 도약하며 거리를 벌렸다.

공중에 붕 뜬 휴고가 몸을 빙그르 돌리며 착지했다.

상당히 긴 체공 시간.

과연 짐승 같은 몸놀림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크르르.

휴고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흉흉한 안광이 넘실거리고, 누린내가 진동하는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휴고라는 이름을 가진 야수는 눈앞에 있는 인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고작 먹잇감으로 여긴 상대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사나운 얼굴로 경계하고 있는 휴고를 응시하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왜? 물려고? 개새끼가 사람을 물려고 하면 안 되지. 멍멍.”

에단의 비아냥거림에 휴고의 흉포성이 더욱 날뛰었고, 이내 준비 자세를 취하더니 그대로 달려들었다.

휴고는 대미지를 입지도 않았는지 매우 민첩했다.

그의 몸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웠다. 사족 보행으로 질주하는 휴고는 늑대보다도 빨랐다.

둘 사이의 거리는 상당했지만, 에단에게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에단의 눈이 휴고를 좇았다.

달려오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의 눈꺼풀은 깜박임 하나 없이 휴고를 추격했다.

근육의 섬유 가닥이 하나하나 보이는 것 같았다.

휴고는 지금 짐승이었다.

짐승의 움직임은 기민하고 유연하지만, 정직하며 영악하지 않았다.

속임수가 없고, 허수가 없다.

인간과 달리 꾀를 부리지 않는다.

하여 휴고는 자신이 노리는 방향을 올곧게 응시한 채 공격해 왔다.

공격의 경로가 예측 가능하다면, 회피하는 데에는 큰 동작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상체를 젖히기만 해도 피할 수 있었다.

후웅!

파공음이 살벌했다.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슬며시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전신에 피가 돌았다.

예열된 몸이 달아오르니 신체의 반응 속도가 빨라졌다.

의도와 의식대로 몸이 반응했다.

필요한 것은 직관뿐이었고, 생각은 곧 결과였다.

‘마나의 여유분은…….’

에단은 몸 안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며, 그 힘을 가늠해 봤다.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현대인의 정신을 가진 에단은 마나를 다루는 행위가 생소했다.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위험했다.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확신할 수 없는 과정과 결과.

그걸 떠올리니 흥분되기 시작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익숙지 않은 힘을 다루는 행위 자체에서 설렘을 느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크릉!

공격이 허사로 돌아가자 휴고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돌렸다.

휴고의 몸은 유연했다.

인간이라면 하기 힘든 동작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것이 짐승과 인간의 차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휴고가 재차 뛰어들었다. 공격 사이의 여백이 없었다.

공격의 연계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높은 신체 능력이 그 여백을 메운 것이었다.

이번에는 회피하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두 팔을 모두 이용해서 덮쳐 왔다.

일반인이라면 오금이 저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에단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걸 조용히 지켜보던 페온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페온은 에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긴박하게 몸을 피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여유를 부리다니!

혹시 공포로 몸이라도 굳은 건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페온은 지금이라도 에단의 몸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

“가만히 있으시죠.”

에단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몸을 살짝 숙였다 펴자,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나갔다.

허공을 날아간 에단이 팔꿈치로 휴고의 턱을 가격했다. 벌려져 있던 휴고의 입이 다물어지며 순간적으로 고개가 젖혀졌다.

에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젖혀지는 휴고의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무릎에 푸른 마나를 밀어 넣었다.

콰직!

휴고의 턱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몸이 뒤로 허물어졌다.

하지만 그때…….

크르릉!

풀려 있던 동공이 꽉 조이며 휴고가 정신을 차렸다.

그 모습을 본 에단의 입꼬리가 스스륵 올라갔다.

“이걸 견뎌?”

휴고가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돌려 거리를 벌렸는데, 턱이 완전 박살 났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턱에서는 침이 뚝뚝 흐르며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야, 대단하네.”

인간이라면 결코 견딜 수 없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휴고는 견뎌 냈다.

그것이 인간과 야수의 차이일 테다.

크르르르.

휴고가 낮게 울었지만 이전처럼 함부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야수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달려들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반면 에단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지만.’

남은 마나가 간당간당했다. 잘 쳐봐야 앞으로 한 번 내지는 두 번이다.

‘내색할 수는 없지.’

포커페이스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제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에단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에단의 보폭에 맞춰 휴고가 뒷걸음질 쳤다.

침을 질질 흘리는 휴고의 눈에서는 전의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정신 차릴 때까지 좀 맞아야겠어.”

말을 마친 에단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휴고의 눈이 바뀌며, 에단이 뛰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낮췄다.

순식간에 에단을 덮치려는 심산이었다.

이윽고 휴고가 쏘아져 왔지만, 이전 같은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야수의 마음은 이미 꺾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야성을 잃은 야수는 더 이상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짐승일 뿐이지.’

에단이 달려드는 휴고의 팔을 잡아채자, 휴고가 당황하며 팔을 휘두르려 들었다.

‘힘이 세긴 하네.’

그렇다면 힘을 쓸 틈을 주지 않으면 된다. 에단이 휴고의 품에 파고들어 발을 짓밟았다.

콰직!

깨갱!

휴고에 입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에단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 봤다.

에단의 눈은 사자의 눈처럼 번들거렸고, 휴고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렸다.

“정신 못 차린 대가야.”

에단의 무릎이 휴고의 명치를 때렸다.

퍽!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릎이 연달아 휴고의 배와 가슴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휴고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휴고의 입에서 피가 흐르며 거대한 육신이 축 늘어졌다.

“미안하다.”

휴고의 허리춤을 붙잡은 에단이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페온은 에단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 ……잔인한 놈.

페온은 차마 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후웁.

에단이 숨을 들이마셨다.

복압을 유지하며 하체에 힘을 줬다.

더 강한 힘을 내기 위해 허리와 하체에 마력을 실었다.

남은 마력은 크지 않았다. 모든 마력을 근육에 밀어 넣었다.

‘지면에서 뽑아내듯이!’

후웅!

휴고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와 동시에 에단의 허리도 유연하게 휘었다.

콰앙― !

휴고의 몸은 머리부터 지면에 꽂혔고, 곤두박질쳐진 충격으로 인해 주변에는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휴고의 몸이 잠시 바들거리는 걸 본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짐승은 짐승이네.”

맷집 하나는 인정했다.

에단이 휴고의 위로 올라서자 그의 눈에 공포감이 어렸다.

에단이 팔을 들었다.

시합에서는 금지된 기술이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윽고 팔꿈치가 수직으로 내리찍혔다.

콰직―

한 번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듯 수차례 팔꿈치가 떨어졌다.

콰직― 콰직―

에단의 팔꿈치가 찍히자, 휴고의 몸이 몇 차례 들썩였다.

그리고 이내 휴고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윽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회복되겠지…….’

원작의 묘사에 따르면, 모습이 변할 때마다 자잘한 상처는 회복된다고 했다.

― …….

페온은 할 말을 잃은 듯, 말없이 에단을 바라봤다.

“봐줄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 ……그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야수화한 휴고는 손속에 자비를 베풀 상대가 아니었다.

― 그나저나 그 움직임. 그건 처음 보는 것인데…….

휴고와의 교전에서 보인 에단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에단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매우 위력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화려함을 배제한 극한의 실전 동작들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저 움직임은 체계적으로 훈련받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검을 등지고 평생 무투에 매진했기에 더욱 잘 안다.

페온은 에단의 나이를 가늠했다.

아직 앳된 얼굴을 보면 성인이 아닐 테다.

― 이게 천재라는 건가…….

페온도 나름대로 천재라는 족속을 많이 만나 봤지만, 이런 녀석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마력 한 톨 느껴지지 않기에 내심 얕잡아 봤는데, 에단의 진면목은 그런 것에 있지 않았다.

“야.”

에단의 시선이 옮겨졌다.

시선이 향한 곳은 뱀파이어, 벨몬트가 있는 장소였다.

벨몬트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물론 기분 탓은 아니었다.

“안 일어나?”

에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까지 하나 지켜본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벨몬트는 그 서늘한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에단이 벨몬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까는 잘도 지껄이더니 이제 와서 죽은 척이야.”

“…….”

벨몬트는 최선을 다해 무시했다. 방금 전 교전은 정말 끔찍하고 잔혹했다.

다시금 그 장면을 떠올린 그는 눈앞의 인간과 엮이고 싶은 생각이 모조리 사라졌다.

하지만 에단은 축 늘어진 벨몬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야.”

낮게 깔린 목소리에 벨몬트가 자기도 모르게 힐긋 눈을 뜨고 말았다.

에단의 눈과 마주치자, 곧장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너 장난하냐?”

이딴 거에 속을 줄 안 건가?

에단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벨몬트는 간절했다.

오금이 저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는데, 이런 감각은 그가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돼.”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차피 벨몬트의 용도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죽은 나무.’

사용법을 익힌 적은 없었다.

당연히 사용 설명서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걷는 법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이제 죽은 나무의 성능을 알아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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