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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8화 (18/398)

◈ [18화] 천적의 만남 (2)

동굴은 음산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적막을 흩트려 놓았다.

휴고는 잔뜩 움츠러든 채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반면, 에단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특별한 낌새는 모르겠군.’

외관으로는 평범한 동굴로만 보였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긴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 봐야 하나.’

퍼더덕!

키에엑!

“히익!”

어둠 속에서 박쥐가 뛰쳐나왔다. 휴고가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렀다.

“일어나.”

“도, 도련님, 하지만 방금.”

“걔네가 문제가 아니니까 일어나라고.”

“네……?”

휴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단을 올려다봤다.

어둠에 적응된 휴고의 눈에 에단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우, 웃고 있어?’

마치 이제야 나타났다는 표정이었다.

휴고는 에단의 정신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저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휴고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쥐.’

하지만 에단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박쥐가 나타났다는 사실.

맞는 길을 찾아오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찾았다.”

어둠 속에서 사나운 안광이 번뜩였다.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서며 에단에게 경고했다.

휴고를 바라보자 분위기가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동공이 가늘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뱀파이어의 천적.’

휴고의 몸속에는 웨어울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탄력.

아무리 혹독한 훈련으로 몸을 혹사시켜도 하루면 회복되는 짐승 같은 회복력.

이 모든 것이 휴고의 혈통 때문이었다.

그러나 휴고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지내면서 야성이라는 본능이 흐려지고 퇴색된 것이었다.

야성을 잃은 짐승의 야성을 일깨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싱싱한 먹이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기류가 바뀌었군.’

순진무구하던 휴고의 표정이 사납게 바뀌었다.

하지만 유약한 성격으로 일평생을 살아오던 휴고는, 치미는 살의와 야성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운지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더러운 피가 섞여 있구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으로 보이는 남성의 얼굴은 창백했고, 풍기는 분위기는 음산했다.

그는 싸늘하고 낮은 음성을 내며 에단과 휴고를 번갈아 봤다.

“대체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이유가 뭐지?”

“너 같은 애들 족치려고 온 거지. 안 그래?”

에단이 휴고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는 휴고에게 맡긴다.

지금은 힘겨워 보였지만, 곧 있으면 웨어울프의 진면목이 드러날 터였다.

‘이걸 위해서 검술은 가르치지 않았다.’

야수에게 사냥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저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전투 방식이다.

고양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쥐를 잡고, 뱀을 잡아먹는다.

휴고의 피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귀족의 피라고 했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막장 스토리가 확실하다.

하지만 에단은 그 막장 세계관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 나는 먼저 간다.”

휴고를 노려보던 뱀파이어의 시선이 에단에게로 옮겨졌다.

“……감히 나를 조롱하는 것이냐?”

“아니, 천적 놔두고 왜 나한테 신경 써? 알아서 지지고 볶으라고.”

에단의 말이 뱀파이어의 인내심을 무너뜨렸는지 뱀파이어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네놈같이 건방진 녀석은 권속으로 삶기도 역겹군. 그냥 죽어라.”

쐐액!

뱀파이어의 손이 에단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에단은 고개를 간단히 돌리는 것만으로 뱀파이어의 공격을 피해 냈다.

‘손이 빠르긴 하군.’

공격의 낌새가 보일 때부터 대비하고 있었지만, 하마터면 얼굴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피해?”

“네 말투는 못 고치냐? 진짜 듣기 엿 같네.”

에단의 신랄한 비난에 뱀파이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들어주…….”

크아아아악!

뱀파이어가 손을 쓰기 직전에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에단은 뱀파이어가 방심한 틈을 타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차린 뱀파이어가 에단을 뒤쫓으려 몸을 돌렸지만, 뒤에서는 야수가 덮쳐 오고 있었다.

타닷!

휴고의 몸이 바뀌었다. 골격이 거대해졌고, 은빛 털과 긴 주둥이가 생겨났다.

모습이 변모한 휴고가 뱀파이어에게 달려들었다.

가뜩이나 우월한 탄력과 민첩성을 자랑하던 휴고였다.

그러나 웨어울프로 탈바꿈한 휴고의 신체 능력은 그 수준을 아득히 상회했다.

뱀파이어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크아아악!”

뱀파이어가 고통에 찬 비명을 흘렸다. 휴고의 손에 돋아난 날카로운 발톱이 뱀파이어의 어깨를 한 움큼 뜯어 간 탓이다.

뱀파이어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그는 긴 손톱을 마치 칼처럼 휘둘렀다.

뱀파이어의 손끝을 응시하고 있던 휴고는 고개를 들어 뱀파이어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휴고는 완전히 이성이 잡아먹힌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방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뱀파이어가 표정을 굳혔다.

야생에서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던 뱀파이어에게 있어, 위협적인 천적의 등장은 결코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다.

에단은 달려 나가면서도 뒤를 슬쩍 바라봤다.

‘예상보다 강하네.’

원작에서 휴고는 뱀파이어와 비등하게 싸우던 걸로 기억했다.

하지만 웨어울프로 변모한 휴고는 뱀파이어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훈련의 영향인가?’

원작에서의 휴고는 웨어울프로 변하고 나서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완성되지 않은 신체가 과부하를 일으켰고, 본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이 족쇄를 채웠다.

하지만 에단은 휴고에게 최상의 신체를 만들어 줬다.

근력, 순발력, 지구력, 심폐 능력까지.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전투 훈련은 배제하고, 모든 걸 체력 훈련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휴고의 몸은 지금 웨어울프의 모습을 견뎌 내고 있었다.

‘결과는 변하지 않아.’

에단은 보는 눈이 좋았다.

뱀파이어는 방심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한 구역의 패자로 군림하던 녀석이니 그럴 만도 했다.

감각은 무뎌졌고, 그는 여유를 부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여유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졌다.

무시하기에는 깊은 상처였다.

싸움은 대개 먼저 피를 흘린 쪽이 불리했다.

그렇다고 실력 차이가 압도적으로 나는 것도 아니었다.

전투에 익숙한 것은 뱀파이어였지만.

사자는 태어나서부터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휴고 또한 사냥법 따위를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었다.

‘이제 보상을 얻을 차례지.’

에단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뱀파이어는 지나쳤지만, 그 이후로도 에단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와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의 녀석들이었다.

삐쩍 마른 흡혈귀와 코볼트 따위의 하위 몬스터들.

밖에서 볼 때와 다르게 동굴 내부의 크기가 협소해서 그렇다지만, 너무나도 빈약한 상대였다.

에단은 손에 든 단검으로 앞길을 방해하는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나아갔다.

‘아직 부피가 큰 건 익숙하지 않아서.’

에단의 검술이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들, 에단이 가장 잘 다루고 자신 있는 것은 본인의 육체였다.

이번 작전에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맞았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네.’

현대인인 류태신은, 아니, 에단은 지금껏 살생을 저질러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죽이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인간이던 것들’과 ‘인간과 흡사한 크기의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을 죽이면서도 에단은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이 캐릭터의 성격 탓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에단의 성격은 오만방자하고 방약무인한 사이코패스였다.

고문을 즐기고, 살생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망나니 캐릭터에게 빙의한 만큼, 이 정도의 변화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소설 속이잖아.’

소설 속.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곳은 소설일 뿐이다.

푹―

에단은 고블의 뒤를 붙잡고, 그대로 목덜미에 단검을 밀어 넣었다.

‘이 짓에도 적응이 되고.’

처음에는 실수로 옷에 피가 튀는 일이 있었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전과 같은 실수가 줄어들었다.

‘흠, 생각보다 거리가 있는데.’

에단은 단검의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빛 한 점 없는 동굴을 바라보던 에단은, 이내 발을 옮겨 동굴의 심층부로 들어섰다.

“이건가?”

에단은 동굴의 깊은 곳에 꽂혀 있는 작은 나무 막대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죽은 나무.’

뭔가 섬뜩한 이름값과는 다르게 평범한 나무 막대기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에단은 잠시 동안 지면에 꽂혀 있는 막대기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묘하네.’

에단의 감각은 예민했다. 예민한 에단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 이상 발을 내딛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단은 본능을 짓누른 채 계속해서 발을 옮겼다.

이것을 얻기 위해 온 여정이었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정석으로 갈 생각은 없다. 소설의 주인공 녀석을 쫓기 위해서는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이 손을 뻗어 막대기를 움켜쥐었다.

“큭.”

막대기를 움켜쥐자마자 저릿한 느낌과 함께 통증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손에서만 느껴지는 통증이 아니라 피부와 혈관을 타고 몸을 엄습하는 기분이었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당장에라도 손을 뗄 뻔했지만, 에단은 이를 악물고 막대기를 뽑았다.

말라비틀어져 생기를 잃은 나무 막대기는 마치 울기라도 하는 듯 웅웅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네.’

견디지 못할 수준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기운은 점차 줄어들었고, 잠시 후 평상시의 상태를 되찾은 에단은 말없이 죽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죽은 나무에서는 이전과 같은 섬뜩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흠…… 끝난 건가?’

에단은 주먹을 쥐었다 펴 봤다.

아직 체감상 크게 와닿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틀림없다.

그는 죽은 나무를 흡수했다.

‘이제 돌아갈까?’

슬슬 휴고와 뱀파이어와의 싸움이 끝났을 테다.

― 어딜 가느냐.

그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이 발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닐 테고…….”

에단이 중얼거리자 의문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 블란테의 피가 느껴지는구나.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확실한 음성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에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당신은 누구십니까?”

― …….

에단의 물음에 의문의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다 이어 말했다.

― ……나도 블란테의 피를 이은 자다. 너의 선조라고 할 수 있겠지.

……뭐라고?

에단은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선조?

뜬금없이 여기서 그런 설정이 풀린다고?

아니,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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