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7화 (17/398)

◈ [17화] 천적의 만남 (1)

훈련은 탄력을 받았다.

능력을 감추고 있던 네이드는 어쩔 수 없이 수습 기사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미 에단에게 비밀이 까발려진 터라 더 이상의 비밀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력이 부족했다. 에단으로서는 쓸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사용해야 했다.

수습 기사들은 자존심이 높았고, 일개 집사인 네이드에게 지도를 받는 것은 그만한 자존심을 내려 놓을 때나 가능한 문제였다.

처음에는 작은 반발이 있었지만, 네이드가 실력을 행사하자 모두 잠잠해졌다.

네이드의 실력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이런 실력자에게 받는 지도가 얼마나 귀중한지는 말해 봤자 입만 아팠다.

시간은 촉박했고, 인원은 부족했다.

마음가짐부터 다질 시간이 없었다.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에단은 최단기간 내에 최고의 효율을 요구했다.

정기 토벌은 기사들끼리의 명예로운 결투가 아니었다.

명예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적들의 목을 베고, 그들의 씨를 말려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최대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들 위주로 훈련해야 한다.

효율은 곧 높은 살상력이다.

에단은 그 점을 강조했고, 네이드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에단의 명을 따랐다.

‘기대를 걸고 있는지도 모르지.’

에단이 앞으로 어떤 이변을 불러일으킬지.

네이드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 * *

에단의 토벌대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자 소문이 돌았다.

에단의 토벌대에 합류한 자들은 모두 미래를 촉망받는 수습 기사들이었다.

기사들도 눈여겨보던 자들이 모두 에단의 밑으로 들어갔다.

예측하기 힘든 에단의 행보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아무리 미래가 기대되는 자들이라고 한들 그들은 일개 수습 기사였으니까.

“큭,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건가?”

소식을 전해 들은 모룬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에단의 십인대가 본격적으로 행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첫 단원으로 마구간이나 지키던 하인을 뽑았다고 하길래 박장대소를 했건만, 남은 인원들은 수습 기사로 구성했다고 한다.

꽤나 놀라운 성과였지만 그것뿐이다.

수습은 어디까지나 수습. 마나를 다루지 못했다.

큰 전력이 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머릿수가 달랐다.

에단이 통솔하는 부대를 제외하면 모든 부대는 모룬의 통솔을 받는다.

큰 작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정기 토벌은 그리 힘겨운 전투가 아니었다.

고되긴 하지만 상대는 일개 몬스터에 불과했다.

체계적인 수련을 거듭한 병사들과 기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 정기 토벌은 얼마나 피해를 적게 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인원수에다 수습 기사라면 빤하지.’

위협은커녕 가소로웠다.

실낱만큼 남아 있던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녀석에 대한 보고는 이제 필요 없겠어.”

“괜찮으시겠습니까?”

“고작 수습 기사들로 뭘 한다고 티나 나겠어? 어차피 업혀 가는 녀석이야. 신경 꺼.”

모룬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 * *

영주실에 첸이 찾아왔다. 정기적인 보고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 이번엔 녀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지?”

빈센트는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첸을 바라보았다.

에단이 바뀐 뒤로 소란이 잦아든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별일이라고 여기던 것이, 요즘은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일지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토벌대 구성을 완료한 것 같습니다. 휴고라는 하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대받던 수습 기사들입니다.”

“흐음…….”

빈센트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습 기사라.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지금의 입지에서는 수습 기사를 영입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10명의 단원. 마나를 깨우치지 못한 수습 기사.

그리고 에단.

이대로 정기 토벌이 진행되어 봤자 결과는 자명했다.

대부분의 업적은 모룬에게 넘어갈 터였고, 에단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치기나 객기였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마음에 걸렸다.

일전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에단은 뭔가 숨겨둔 패가 있는 것 같았고, 그렇기에 뭔가를 또 저지를 것 같았다.

“계속 지켜봐 주게.”

빈센트는 첸에게 그리 부탁했다. 이대로 신경을 끄기에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을 벌일 것 같단 말이지.’

이번 일로 가문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정기 토벌 날의 새벽이 밝자, 블란테 가문은 전투를 준비했다.

저택 전체에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검술 명가라는 명성답게 병사 하나하나가 풍기는 기세도 심상치 않았다.

이것은 사냥이기도 했지만, 전쟁이기도 했다.

자신의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

아직까지 블란테라는 이름이 패배한 적은 없었지만, 사상자는 늘 발생했다.

그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출전이 얼마 남지 않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윽고 모룬이 갑옷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갑옷에는 블란테를 상징하는 검은 사자 무늬가 빛나고 있었다.

“완벽하군.”

모룬이 미소 지었다. 병사들을 보자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토벌은 작위를 승계받기 전, 자신의 용맹과 명예를 입증하는 자리였다.

‘멍청한 동생 녀석도 보이는군.’

에단이 이끄는 십인대는 자신의 대군과 비교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에단이 설칠 때는 화가 치밀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일말의 연민마저 들었다.

“출전한다!”

성문이 열리고, 모룬의 지휘를 받는 병사들이 성을 나섰다.

토벌의 개막이었다.

* * *

에단은 휘파람을 불며 병사들을 바라봤다. 지금 저들과 함께 나갈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토벌대는 어차피 따로 외곽으로 빠질 계획이었으니.

“이제 와서 겁을 집어먹은 거냐?”

언제 다가왔는지 카론이 에단에게 비아냥댔다.

에단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가득 담아 카론을 바라봤다.

“너는 할 짓도 더럽게 없냐? 왜 여기서 시비를 털고 있어.”

“이, 이 자식이!”

에단의 반응이 예상과 다른지 카론의 얼굴을 붉어졌지만, 그는 이내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흥, 그렇게 건방을 떨더니 결국 결과가 이따위인가?”

“아직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허세를 부리긴…….”

“허세는 나한테 처맞기 전에 네가 부리던 게 허세고.”

“이익!”

카론이 다시 성을 내기 시작했지만, 에단은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슬슬 출발해 볼까?”

단원들은 올 게 왔다는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계획은 기억하고 있겠지?”

“……그 말이 정말 사실입니까?”

가토는 아직도 반신반의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에단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쓸데없는 걱정 마. 진짜 반전을 보여 줄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에단은 자신이 있었다.

* * *

블란테의 영지 밖은 산맥이 둘러싸고 있고, 산맥에는 사나운 몬스터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그 개체 수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을 때, 몬스터들은 생존을 위해 산맥을 내려온다.

몬스터가 내려오기 전에 토벌대는 산을 올랐다.

산은 험난했다. 그러나 병사들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거칠었다.

그들은 덮쳐 오는 몬스터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착실히 척살해 나갔다.

토벌대는 거침없이 토벌을 진행했다.

반면 에단은 후미에 있었다. 선두에 나가서 몬스터를 처치하지도 않은 채 유유자적 여유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카론은 의구심을 느꼈다.

‘역시 포기한 건가?’

그 추측이 가장 타당해 보였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저 여유로운 태도가 거슬렸다.

“언제까지 쫓아오게?”

에단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자 카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이전에 결투에도 느꼈지만, 에단은 이전과 달라졌다.

싸가지가 없는 것은 다를 바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속을 알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대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속셈이랄 것까지는 없고.”

에단이 피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등산을 시작하려고.”

* * *

에단은 모룬의 토벌대가 진격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산맥에는 몬스터가 득실거렸다.

당연히 에단이 향하는 길목에도 수많은 몬스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에단의 앞을 가로막은 수습 기사들은 별 어려움 없이 몬스터를 처치해 나가고 있었다.

첫 토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한 행동이었다.

몬스터가 쓰러졌다고 방심하지 않고, 몬스터의 목덜미에 확실하게 검을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감흥이 없는 것은 에단도 마찬가지였다.

에단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험난한 길목을 건너고 있었다.

‘낙엽의 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방향으로.’

원작에서 묘사된 짧은 글귀.

그 글귀 하나를 믿고 무작정 걷고 있었다.

산을 오를수록 몬스터는 점점 사나워졌고,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피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몬스터가 자극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몬스터는 혈향을 맡고 더욱 몰려올 터였다.

한차례 생각을 정리한 에단이 속도를 올렸다.

위기를 느끼기에는 아직 일렀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군.’

해가 뜨기 전에 출전한 터라 아직 어두워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숲의 심층부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빛이 점차 사라져 갔다.

시야가 어두워진다.

“도련님, 이 앞부터는 위험합니다.”

에단의 곁에서 네이드가 말했다.

네이드의 본능은 이 앞이 쉽지 않다는 걸 경고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앞으로 가는 것은 바뀌지 않으니까.”

에단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상당히 많은 거리가 남아 있었다.

“허억, 허억.”

토벌대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각오가 얕은 건 아니었다.

강도 높은 긴장이 지속되니, 심신 모두 금방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덮칠지를 알지 못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수습 기사들의 눈에 불안감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했다.

‘과연 에단을 믿어도 되는 걸까?’

‘망나니가 내뱉은 말에 현혹된 것은 아닐까?’

‘기사는커녕 여기서 죽으면 어떡하지?’

토벌대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장소에서는 일말의 방심이 피해와 직결된다.

키엑!

수풀에서 고블린이 뛰쳐나왔다.

집중력이 떨어진 탓에 고블린의 목표가 된 토벌대원의 대처가 늦었다.

얼굴에 고블린의 몽둥이가 꽂히기 전, 휴고의 칼날이 녀석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순간의 대처라고 믿기 힘들 만큼 민첩한 반응이었다.

“고, 고맙다.”

“방심하지 마세요.”

휴고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에단을 따라나섰다.

목숨을 구한 수습 기사는 입을 다문 채 발을 옮겼다.

“슬슬 이쯤인데.”

에단은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저녁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다가왔다는 증거다.

‘이제 이 녀석이 중요하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휴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소설 속에서도 토벌대에 휴고가 따라나섰다.

“보인다.”

주변이 어두워 형체가 확실치 않았지만, 눈앞에 동굴이 하나 보였다.

토벌대원들이 침을 삼켰다.

정말 에단의 말대로 동굴이 보였다. 고블린 따위의 녀석이 터를 잡았다기에는 동굴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음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여기를 들어간다고?’

전의를 불태우던 그들조차도 망설이게 할 정도였다.

동굴 안에는 몬스터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몬스터는, 습격하는 몬스터보다 배로 까다로웠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휴고, 넌 나랑 간다.”

에단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휴고 하나만을 데리고 동굴로 향하려 했지만, 곁에 묵묵히 있던 네이드가 반대했다.

“저곳은 위험합니다, 도련님.”

“위험한 건 여기도 매한가지야.”

에단의 궤변에 네이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그때, 에단이 네이드의 눈을 응시했다.

“의심하지 마. 돌아올 거니까.”

에단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에단이 뒤를 돌아 휴고를 바라봤다.

“너도 쫄지 말고.”

휴고는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두 시간 내로 못 나오면 먼저 퇴각해.”

“……야영지를 만들고 있겠습니다.”

에단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고와 함께 동굴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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