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4화 (14/398)

◈ [14화] 새로운 훈련 (2)

추후의 대비.

에단은 그것을 택했을 뿐이다.

당장 목전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

그따위 것을 바랐다면 토벌대에 참가할 생각 따위는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휴고는 데리고 가는 게 맞아.’

원작에서 묘사된 휴고의 재능은 최상위권이다.

그에 대한 방증으로 휴고는 엄청난 성장세를 올리고 있었다.

가능성 넘치는 휴고의 몸이 완성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

‘문제는 그 외의 것들.’

신체 능력만으로는 이 세계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단순 생존이라면 에단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니.’

그런 결과는 에단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투쟁.’

경쟁, 승리.

격투기 선수로서 전 세계를 누비던 당시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에단은 투쟁을 갈망하고 있었다.

투쟁 끝에 모든 것을 거머쥐는 것.

그것이 에단의 목표였다.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한 초석일 뿐이었다.

‘마나라…….’

에단은 아직 마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에단이 알고 있는 마나라고 해 봐야 소설이나 만화의 설정에 불과했다.

그런 에단에게 갑자기 마나를 이해하라고 한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석으로 가면 안 돼.’

정석대로 차근차근 마나를 수련해 나가서는 너무 늦었다.

에단이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녀석은 온갖 진귀한 기회와 기연들을 모조리 습득해 버릴 테니.

‘죽은 나무.’

이번 정기 토벌.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않은 주인공이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여기서 더 커 버리면 에단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시간도 부족하니.’

에단은 휴고를 흘겨봤다.

이 녀석이 이번 작전의 중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더욱 혹독하게 단련시켜야만 했다.

그런데 휴고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불안과 의심이 뒤섞인 복잡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단이 피식 웃더니 다시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아직 살 만하구나?”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감과 동시에 휴고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 * *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난 뒤, 에단은 곧바로 휴식을 취하지 않고 별채의 공원으로 나왔다.

“날이 아직 쌀쌀합니다.”

“난 아직 젊어서 괜찮아.”

에단이 네이드를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그런 훈련법들은 어떻게 고안해 내신 겁니까?”

“몰라. 그냥 감으로 하는 거지, 뭐.”

“끝까지 숨기시는 겁니까?”

“숨기고 말고가 어디 있어? 훈련이 그냥 훈련이지, 뭐.”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노련하게 휴고를 지도하시던데요?”

“큭큭, 내가 남들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나 봐.”

에단이 웃음을 흘리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커다란 보름달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아니, 달이 더 크기도 했으니, 지구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감회가 새롭군.’

정말 소설 속에 들어와 버렸다.

이 기괴한 상황이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꽤나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기껏해야 소설 속일 뿐이고, 현실에서의 삶은 따분했으니까.

이곳에서의 죽음이 현실에서의 죽음과 연결이 돼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굳이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야심한 밤에 무슨 볼일이지?”

에단의 물음에 네이드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훈련 방식은 감탄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만일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가문의 교관으로 초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하고. 본론부터.”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어쩌실 계획입니까?”

“뭘 어쩌긴 어째. 몬스터 잡으러 가는데.”

“장난은 그만하시죠. 아무리 도련님의 재능이 천부적이라고 한들, 도련님은 아직까지…….”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고?”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심지어 나를 수호할 측근도 없고. 토벌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뒈져도 이상할 게 없겠어.”

“그걸 아시면서…….”

“그런데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나?”

달을 바라보던 에단의 눈이 네이드에게로 옮겨졌다.

달빛을 머금은 에단의 눈은 깊었다.

에단의 눈에는 불안감이나 걱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이드, 너는 네가 할 것을 해. 이번에도 결과로 보여 줄 테니까.”

카론 때처럼.

에단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또다시 시간은 흘렀다.

이제 정기 토벌대 출정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다.

정기 토벌이 가까워지자 블란테 가문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에단의 일과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새벽, 오전, 오후.

이렇게 하루에 세 번씩, 휴고와 함께 미친 강도의 트레이닝을 감행했다.

범인이었다면 혈뇨를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훈련 내용의 대부분은 체력과 근력 훈련에 국한되었다.

‘아니, 이제 실전 준비를 하는 거 아니었어?’

에단의 말과 달리 체력 훈련은 지속되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휴고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깃들었다.

정기 토벌이 목전에 다가왔는데 휴고는 아직 검을 잡는 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에단 도련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뭐가 있지?”

에단의 태연스러운 태도에 휴고는 가슴이 답답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어. 계획대로 진행 중이니까.”

휴고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에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 준비는 제대로 되고 있었다.

휴고는 자신이 하는 훈련이 단순한 체력 훈련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폭발적인 신체 능력, 그리고 도약력.’

모든 것은 하나의 동작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에단은 휴고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토벌은 훈련이 아니니까.

에단은 직접 겪어 보지 않았지만, 얼추 예상할 수는 있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몬스터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 터였다.

평범한 인간들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악의와 살의를 대면하는 것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약육강식의 현실 속에 제정신을 유지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진 병사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너는 견딜 수 있어.’

이미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아는 에단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제 슬슬 다른 것도 준비할 때지.’

이제 추가 인원을 모집할 시기가 되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그 말에 휴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훈련을 도중에 그만두다니.

평소의 에단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혹시 어디 아프십니까?”

휴고의 걱정 어린 물음에 에단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뒈질래?”

에단의 살벌한 목소리에 휴고가 찔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갈 데가 있으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에단은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 시작했다.

휴고는 그런 에단을 부랴부랴 뒤따랐다.

* * *

에단이 휴고를 데리고 향한 장소는 본가의 연무장이었다.

기사들의 연무장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훈련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수습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에단과 휴고를 보자마자 훈련을 멈추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에단 도련님이잖아? 여기는 무슨 일이지?’

‘설마 토벌대원을 차출하기 위해서 온 건가?’

‘진짜로? 난 죽어도 가고 싶지 않은데. 이제 정기 토벌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잖아.’

수습 기사들의 무례한 수군거림에도 에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오히려 휴고가 잔뜩 위축된 기색으로 에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야.”

에단이 사나운 눈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에단의 눈길에 휴고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나 쪽팔리게 할래? 어깨 펴.”

에단의 말에 휴고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폈다.

그 모습에 에단이 콧방귀를 뀌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겁을 안 먹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일개 하인에 불과했다.

하인 중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하인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재능을 인정받은 수습 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였다.

자신 같은 일개 하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움츠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휴고는 에단이 한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위축되고 겁먹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에단까지 싸잡아서 욕을 먹게 하는 행동이었다.

적어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삼가야만 했다.

휴고는 최대한 불안함을 내색하지 않은 채로 에단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가 좋겠군.”

에단이 주변을 대충 훑으며 중얼거렸다.

주변의 수습 기사들은 모두 훈련을 멈춘 채 에단을 의식하고 있었다.

원하던 상황이었다.

주변을 말없이 바라보던 에단이 입을 열었다.

“자, 내가 여기서 한가락한다, 앞으로 나오도록.”

에단의 뜬금없는 말에 수습 기사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 반응에 에단이 피식 웃더니, 한 차례 발을 굴렀다.

쾅!

“블란테 가에 몸담은 새끼들이라는 게 고작 이따위의 어중이떠중이 놈들밖에 없는 건가?”

에단의 거친 언행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굴이 붉어진 수습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도련님이라도 이런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겁니까?”

수습 기사의 말에 에단이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너 따위 버러지도 꼴에 기사 지망생이라고 자존심은 있나 보군. 그런 녀석이 방금 전 호출에는 입을 다물고 있었나?”

“그런 갑작스러운 말에 모습을 드러낼 자가 어디…….”

항변을 하려던 수습 기사의 말을 대충 팔을 휘저으며 끊은 에단이 입을 열었다.

“됐고. 너희들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까?”

‘미, 미친!’

점점 도를 넘는 에단의 언행에 휴고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당혹과 공포로 물든 휴고가 에단의 옷가지를 당기며 말했다.

“도, 도련님,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이런 짓을…….”

하지만 에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수습 기사라면 자존심이 꽤나 상했겠지? 하지만 어째. 사실인걸.”

에단의 모욕적인 언사에, 주변에 있던 수습 기사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분노로 떨리는 수습 기사의 목소리에 에단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저 소리 들었냐? 책임? 책임이란다. 하핫! 그럼 당연히 책임질 수 있지.”

에단이 박장대소를 하며 옆에 있는 휴고를 두드리고 있었다.

휴고는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에단의 손찌검을 묵묵히 받고 있었다.

‘더럽게 아프네.’

장난 섞인 손찌검에도 통증이 상당했기에 휴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자, 봐라. 내 첫 번째 단원인 이 녀석도 잔뜩 화가 나 있네. 아직 시원찮은 녀석이지만, 너희들은 상대도 안 될걸?”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휴고가 당황하며 에단을 쳐다봤지만, 에단은 순간 휴고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에단이 휴고의 귓가에 속삭였다.

“반응하지 말고 대충 눈치껏 따라와.”

“대체 무슨 짓을 벌이실…….”

휴고는 에단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에단이 주위를 둘러봤다. 상당한 인파가 몰려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블란테 가문의 수습 기사들이었다.

모두 자질을 인정받은 자들이었고, 가문에 속한 그들의 자긍심은 드높았다.

하지만 에단은 그들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고, 조롱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 망나니였던 녀석이.

‘가문에 먹칠이나 하던 놈이!’

에단의 비아냥거림을 면전에서 들은 수습 기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분노를 주체 못 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인정을 못 하겠어?”

“……솔직히 그렇습니다.”

수습 기사의 대답에 에단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래. 남자가 그 정도 자존심은 있어야지.”

에단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휴고의 등을 밀었다.

“자, 그럼 네놈들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마.”

에단의 말에 수습 기사와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어떻게 증명할 생각이죠?”

“사내끼리 뭐 증명할 방법이 따로 있어? 당연히 이 녀석과 붙어 봐야지. 내가 카론에게 한 것처럼.”

“네? 도련님?”

에단의 말에 휴고의 눈이 커졌다. 휴고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갔다.

에단은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닥치고 앞을 봐. 여기서 실수하면 넌 진짜 내 손에 뒈지는 거야.”

“네, 넵…….”

에단의 말에 휴고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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