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몬스터 토벌 (2)
“갑자기 휴고는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거죠?”
“그럴 이유가 있어. 그 녀석 지금 어디에 있지?”
“……휴고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마구간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 안내해.”
에단은 멋대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휴고를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오늘 보면 처음일걸?”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게 있어. 잔말 말고 길이나 안내해.”
‘첫 단추는 맞춰졌고.’
원래라면 주인공 파티에 함께하게 될 녀석이었지만, 자신이 먼저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야성의 휴고.’
비록 남성 캐릭터라 원작에서의 입지는 적었지만, 실력은 확실한 놈이었다.
녀석이라면 이번 토벌 작전에서도 존재감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 * *
블란테 가문의 마구간은 규모가 매우 컸다.
마구간의 숫자도 적지 않았지만, 각각의 크기도 컸다.
한 마구간에서 수용하는 말의 숫자도 많고, 말도 전부 명마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블란테의 마구간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휴고가 일하고 있는 마구간은 매우 조용했다.
묘하게 스산한 기운까지도 느껴졌다.
‘흠, 묘하네.’
마구간에 들어섰지만, 말들은 에단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영양 상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윤기가 흐르는 털들을 보아하니 영양 쪽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에단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때, 말들은 괜찮아 보여?”
“네. 상태는 훌륭하군요. 관리를 잘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이…… 말들이 겁을 먹고 있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말을 마친 에단이 다시 한번 주변의 말들을 둘러봤다.
‘녀석의 특성 탓인가.’
야성의 휴고.
녀석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휴고에게는 또 다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말들이 겁을 먹은 건가.’
짐승은 인간보다 예민한 법이다.
본능적인 감각이 인간보다 예민하면 예민했지, 결코 둔하지 않다.
그때, 저 멀리 마구간을 분주하게 정리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얼굴까지 가리고 있는 로브 탓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근처의 말들이 유독 더 겁을 먹은 걸 보니 휴고일 듯싶었다.
“맞아?”
“맞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건장한 체형은 아니네.’
얼핏 보면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체격이었다.
에단이 발걸음 소리를 내며 남성에게 다가갔다.
“누, 누구……?”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몸을 돌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그러다 몸에 두른 예복을 확인하고는 부랴부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예고 없이 찾아온 건 나니까 미안해할 건 없고. 휴고 맞지?”
“……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에단이 주위를 훑어봤다.
조용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마구간이건만, 일하고 있는 자는 휴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네이드.”
에단이 네이드를 부르자, 그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네, 도련님.”
“여기는 원래 이딴 식인가?”
“아닙니다.”
“네가 하는 게 애들 총괄이지?”
“……그렇습니다.”
“잘 좀 하자.”
“주의하겠습니다.”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에단은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는 아직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후드 좀 벗지?”
에단의 말에 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후드를 걷었다.
‘흉터가 크긴 하군.’
휴고의 왼쪽 볼에는 사선으로 그어진 커다란 자상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휴고에게는 상당히 큰 트라우마로 작용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에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류태신으로 살던 기간까지 합치면 흉터 따위에 꺼림직함을 느낄 나이는 이미 지났다.
게다가 격투기 선수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전신에 문신을 하는 경우도 흔했다.
‘저런 흉터쯤이야.’
오히려 흉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여긴 원래 너 혼자서 일하는 건가?”
“……네.”
휴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하자 에단은 혀를 찼다.
“언제부터?”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알고?”
“……저만 들어오면 말들이 얌전해진다고 해서…….”
“네이드.”
“네, 도련님.”
“여기 마구간 소속 하인들 모조리 잘라.”
“알겠습니다.”
“인력이 부족할 일은 없잖아? 가문의 자원을 허비하는 꼴을 볼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한 에단은 가만히 휴고를 바라봤다.
‘지금으로서는 알기 힘들군.’
예민한 감각으로는 타인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에단이었지만, 지금의 휴고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바로 불러서는 안 되겠고. 내일 내가 있는 별채로 찾아와.”
“네…… 네?!”
휴고가 당황하며 되물었지만, 이미 에단은 몸을 돌린 뒤였다.
뒤돌아선 에단은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마구간을 나서고 있었다.
* * *
다음 날이 되자 휴고는 에단의 별채로 찾아왔다.
“길 안 잃고 잘 찾아왔네.”
“감사합니다…….”
“그럼 연무장으로 가자.”
에단은 휴고를 이끌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단을 뒤따라갔다.
‘내가 연무장에는 왜 가는 거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이 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낱 시종에 불과한 자신이 연무장에 갈 이유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에단에게 그 이유를 여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휴고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에단을 뒤따랐다.
연무장에 도착한 에단은 말없이 휴고를 바라보더니 옷가지를 던졌다.
“먼저 이걸로 갈아입어라.”
“이건…….”
휴고가 받아든 옷가지를 보고 멍하니 있자, 에단이 말을 붙였다.
“연무복이야.”
“연무……복 말씀이신가요?”
“어. 먼저 체력부터 봐야 할 거 아니야.”
휴고가 가지고 있는 기본 몸 상태.
그걸 먼저 확인해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휴고는 에단의 말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느라 드러난 휴고의 몸에는 오래된 흉터가 가득했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에단도 절로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다친 건 아닐 테고. 학대인가.’
원작에서는 그에 대한 묘사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원작에서 조명을 받는 캐릭터는 주인공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자 캐릭터였다. 휴고는 나름대로 주인공의 동료임에도 비중에 있어서는 가차 없었다.
휴고가 주섬주섬 옷을 모두 갈아입고 불안한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말랐군.’
휴고의 몸은 삐쩍 말라 있었다.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영양 섭취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았다.
에단이 인상을 구겼다.
“뭐야. 먹는 걸로도 차별받는 거야?”
“…….”
휴고가 대답함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자, 에단은 네이드를 불렀다.
“네이드.”
“네, 도련님.”
“이거 안 보여?”
에단이 휴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휴고의 앙상한 몸에 네이드도 잠시 미간을 좁혔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해. 천하의 블란테 가문이 애들 밥 못 먹인다는 소문이 나돌면 좋겠어?”
에단의 말에 네이드가 고개를 숙인 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연무장을 나서는 네이드의 표정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뭐, 그래도 대충 몸은 움직일 수 있지?”
에단의 말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까지 찍고 와 봐. 전력으로.”
에단이 손을 뻗어 벽을 가리켰다.
어림짐작한 거리로는 대략 200미터.
벽을 찍고 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록이 20초 중반 정도만 나와도 매우 훌륭하다.
“뭐 해, 안 뛰고.”
에단이 눈을 부라리자 휴고가 화들짝 놀라며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닷.
‘뭐야. 저 엉성한 자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출발이었다.
마치 달리기를 처음 해 보는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달리는 휴고의 모습에 에단은 작은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실망은 기우에 불과했다.
휴고의 몸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세는 엉망이었지만, 보폭이 커지며 체공 시간이 길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늦으면 꽤나 힘들어질 거야!”
에단이 호통치자, 휴고의 발이 더욱 분주해졌다.
탁!
휴고의 손이 벽을 짚었다.
그 순간, 에단의 눈이 커졌다.
휴고의 무게 중심 이동이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벽을 짚은 휴고가 마치 짐승처럼 튀어나왔다.
‘탄력 좋다는 흑인도 이 정도는 아니야.’
최고의 탄력을 가진 흑인들. 그중에서도 지상 최대의 괴물들만 모여 있다는 미식축구 선수들도 이만큼의 탄력은 가지지 못했다.
이건 본능의 영역이었고, 재능의 영역이었다.
아직 몸을 다루는 것에 미숙한 휴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이라고 봐도 좋았다.
휴고가 순식간에 에단이 있는 자리까지 뛰어왔다.
‘20초도 안 걸린 거 같은데.’
엉성한 자세로 나오리라고 믿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심지어 휴고는 호흡이 가빠 보이지도 않았다.
조금 빨라졌던 호흡이 순식간에 안정되기 시작했다.
‘야성의 휴고라기에 다른 건 무시했는데.’
근본적인 신체 능력 자체가 매우 훌륭했다.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야. 너 하인 그만해라.”
“네, 네?”
휴고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대뜸 휴고가 무릎을 꿇었다.
“……제가 뭔가 결례를 저지른 건가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울먹이는 표정으로 애원하는 휴고를 보며 에단이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인 말고 내 밑에서 직속 병사하라고. 왜, 싫어? 적어도 밥은 잘 먹게 해 줄 건데.”
에단의 말에 휴고가 눈을 껌뻑거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그게…… 정말인가요?”
“어. 배 터질 때까지 먹여 줄게. 대신 내 말만 잘 따르면 돼.”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띠던 휴고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
에단이 손을 뻗어 휴고와 손을 맞잡았다.
‘짐승 같은 손이군.’
에단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휴고의 손에서 느껴지는 야성을.
“자, 그럼 밥 먹기 전에 마저 할 건 해야지?”
“……네?”
“먼저 팔굽혀펴기부터 하자.”
에단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 * *
“마구간 하인을 데려갔다고? 왜?”
모룬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하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마구간에서 일하던 하인들은 모두 가문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 에단이 쫓아냈다는 말이야? 아니, 지가 뭔데?”
기가 찬 모룬은 괘씸한 마음에 에단을 찾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하인을 쓸 정도로 사람이 없나? 하긴, 이 상황에 누가 그 녀석 밑으로 들어가겠어. 눈치라는 게 있다면.’
형제 중에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자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모룬이 이내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알아서 하게 놔둬.”
“예? 하지만…….”
“끽해 봐야 하인이라며. 이걸로 꼬투리 잡기도 귀찮다. 우리는 이번 토벌만 제대로 준비하면, 더 이상 에단 녀석이 나대는 꼴은 안 봐도 된다고.”
모룬은 일전의 일 때문에 일말의 경계심이 들었지만, 에단이 한낱 하인을 수중에 얻은 걸 보니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어디 한번 애써 보라고.’
이미 은연중에 소문은 돌고 있었다.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는 기사나 병사라면 절대 에단의 밑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터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너는 끝장이야.’
건방진 동생을 떠올린 모룬이 웃었다.